[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5)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 김상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다섯 번째 이어말하기 |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우리는 일터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일터에 들어간 후까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합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요구하는 기준은 그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끊임없이 밀어냅니다.
‘반차별’은 어떻게 자본의 힘에 대응할 수 있을까요?
서로 다른 일터에서 경험하는,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주세요.

 


 

 

 

 

세 번째 이야기손님 

현수막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애여성노동자, 김상

 

 

 

나는 일상적으로 활동보조가 많이 필요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옷 입고 식사를 하는 이 모든 과정이 남의 손에 거쳐 이루어진다. 내가 스스로 있는 것은 또박 또박은 아니지만 말을 할 수 있고, 오른손을 움직여 전동휠체어를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는 정도이다. 사실 아주 어릴 적부터 장애를 가지고 살았기에 나는 내 장애에 익숙하다. 때론 거부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리고 나는 오래 전부터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꿈 꿨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그 꿈은 좀 더 명확해져 갔고,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게 되었다. 우선 독립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사회에서 노동자로서 갖춰야 최소한의 기준(학력, 건강한 신체, 전문적 기술 등)에 훨씬 못 미치는 내가 가진 조건에 부딪히며 번번이 좌절을 거듭하기도 했다.

그러다 장애인인권운동을 접하고 내가 받았던 차별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달으며 투쟁현장에 동참했었다. 그러면서 여러 장애인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꿈에 그리던  독립도 할 수 있었다. 상상으로만 여겼던 삶을 내가 살아간다는 것에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라는 생각 대신 오늘의 스케줄을 생각해내고 바쁘게 출근 준비하는 내 모습이 가끔은 이질적으로 느껴진곤 했다.

나는 한 번도 노동자로서의 삶을 기대받지 못 했다. 우리 가족은 나에게 글을 읽을 정도만 교육을 시켜줬고, 좁은 집 안에서 가족들이 해 주는대로 살아가길 원했고, 후에 조용한 시설로 들어가주길 바랬었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저항감을 표현했지만 나 또한 어느 정도 수궁했었던 것 같다. 가족도 나도 사회적인 차별에 암묵적인 동의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를 둘러싼 차별을 함께 혹은 스스로 떨쳐내며 10년이 넘게 노동을 하면서 살아 가고 있다.

물론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10년 동안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했던 시절…… 활동가를 직업군으로 보느나, 마느나에 문제를 떠나서 나한데는 직업적인 인식과 삶에 터전,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았고 서툴렀다. 집회에 나가선 어떻게 발언하고 고민을 해야 할지 몰랐으며, 실무에선 서류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 했다. 동료들은 늘 기다려주고 지지를 아끼지 않았지만 스스로 갖추지 못 한 무언가에 매달리고 실망했던 적도 많았다. 그것은 활동가로서의 나만의 기준이 세워져 있어서 더 강박적일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뒤 늦게 들었다.

사실 현재 나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생산력을 필요로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와 욕구로 사회적기업 현수막 업체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어렵다. 시민단체 주문이 많다 보니 급하게 기자회견 주문이 들어올 때면 느린 손동작과 빨리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마음속에 울림이 뒤엉켜 버리곤 한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나의 노동력은 보잘 것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와 동료들은 서로의 한계를 보듬어 주며 함께 노동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아직은 우리와 같은 공간이 많지 않기에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철학을 세울 것인가에 대해 긴 논의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작년에 사회적기업 정부 지원 기간이 끝난 이후로 사무실 사정이 안 좋다. 자본의 속도와 효율성을 배제한다는 기조를 지키기 위해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사정이 안 좋아도 해고란 칼날을 빼 든 것 대신 함께 조금 굶어도 같이 생존하자란 구호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외침은 기존 노동현장에서 배제 당해온 절박한 마음에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 나와 동료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을 계속 이어나갈 것을 다짐해 본다.

 

 

 

 

다섯 번째 이어말하기 |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01

02

03

첫 번째 이야기손님

나를 잃지 않고

일하고 싶은

형태

두 번째 이야기손님

이름을 불리고 싶었던

아리데

번째 이야기손님

현수막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애여성노동자

김상

 

 

 

 

 

 

 

활동보고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5)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 아리데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다섯 번째 이어말하기 |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우리는 일터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일터에 들어간 후까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합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요구하는 기준은 그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끊임없이 밀어냅니다.
‘반차별’은 어떻게 자본의 힘에 대응할 수 있을까요?
서로 다른 일터에서 경험하는,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주세요.

 


 

 

 

 

두 번째 이야기손님 

이름을 불리고 싶었던, 아리데

 

 

 

안녕하세요. 아리데입니다. 어찌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고민하다 그냥 제 이야기를 쭉 풀어나가는 게 제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해보려고 해요. 두서없더라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가출을 참 많이 했어요. 하도 많아서 셀 수도 없어요. 부모님께서 제가 단체활동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제가 활동하는 것을 못하게 하려고 했거든요. 저는 그게 싫으니까 자연스럽게 싸우는 횟수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점점 집을 나오는 일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짧게는 2일에서 길게는 1년 동안 가출을 했구요. 저번 달에 부모님이랑 화해하고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싸우고 지금 또다시 집을 나와서 살고 있어요.

 

 

당장 집을 나오니 막막하더군요.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청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없고 모두 다 “친권자 동의”가 필요하더라구요. 어쨌거나 당장 집을 나왔으니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서 홍대에 있는 한 고깃집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갔어요. 마침 사장님이 있었는데 참 쿨하시더군요. “응 이름이 뭐야?”, “학교는? 안 다녀? 그럼 오래 할 수 있겠네. 하루 12시간 해도 되지?”, “당장 내일부터 나와.”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시급 5000원에 주6일 하루 12시간을 일하기로 했어요. 아르바이트 구하는 게 이렇게 후다닥 이루어지는 건가… 싶었어요.

그리고 그 고깃집에서 2달 조금 넘게 일했던 것 같아요. 일하면서 온갖 모욕과 폭력을 경험했어요. “똥파리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도 들어보고, 정말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욕도 들어보고.. 아마 평생 살면서 그렇게 집약적으로 욕을 먹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렇게 두 달을 일하고 나니 “내가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음식점 일을 그만뒀어요. 사실 정확히 표현하면 도망쳤어요. 말 그대로 “내일부터 안 나가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안 나갔어요.

 

나오고 나니 후련하기는 한데, 또다시 알바를 구할 걱정에 힘들었어요. 아르바이트 면접 보는 것은 정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저를 압박하기에 충분했어요. 고깃집에서 한 번 크게 상처를 받고 나니까 또다시 알바를 구하기가 싫어졌어요. 아르바이트 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보다 “살기 위해 해야지”라고 말하면서 하기 싫은 걸 꾸역꾸역 해야하는 게 너무 답답했던 것 같아요. 한 달 내내 일해서 80만원 받는데 방세에 공과금에 핸드폰 요금에… 이것저것 내고나면 남는 돈이 없어 매일 굶주리는 삶이 지긋지긋했어요. 아무 생각없이 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어쨌거나 저는 또다시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패스트푸드점, 사무보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받은 부당한 대우는 말로 다 설명할 수도 없을 만큼 많아요. 주휴수당을 비롯한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은 물론이고, 저 퇴근하는데 매니저님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것저것 어렵고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항상 아르바이트가 했어요. 혼자 이것저것 다 하는 건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그럼 너가 매니저 해, 내가 알바 할게.” 라면서 비웃기 일쑤였어요.

 

수많은 부당한 일들이 많았지만 제가 가장 상처받았던 것은 사람들이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었어요. 그저 일을 하는 기계일 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죠.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오랫동안 일해보자고 이야기했으면서 갑작스럽게 비성수기가 되니 나오지 말라는 문자를 받은 적도 있어요. 제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는 벽에 있는 달력에 “인건비 절감!” 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어요. 툭하면 “싫으면 나가든가.”라고 이야기하고. 조그만 실수에도 욕을 들으며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에서 까겠다고 이야기해요. 몸살이 나서 일을 못나간다고 하면 “아 그래? 그럼 그냥 내일부터 나오지 마, 너 말고도 쓸 사람은 많아.” 라고 이야기해요. 함께 일하고는 있지만 감정적인 교류는 거추장스러운, 정말 일하는 기계가 된 느낌이죠.

 

수많은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직장에서 나올 때 도망치듯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것을 빼면 사실 다 도망치듯이 나왔구요.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직장을 도망치듯이 나오면 어른들은 항상 “청소년들은 미성숙해, 책임질 줄 몰라.”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책임질 관계라는 게 존재하기는 했는지 의문이에요. 일방적으로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문자를 보내는 건 왜 책임지지 않는다는 질책을 받지 않는지도 모르겠어요. 청소년 노동자들은 일하면서 이름을 불리지 않아요. 그저 “야”, “너”, “알바”로 불리게 돼요. 이름 없는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무책임하다고 하기 전에, 그들이 왜 그렇게 도망쳐야 했는지를 한 번이라도 물어봐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섯 번째 이어말하기 |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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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첫 번째 이야기손님

나를 잃지 않고

일하고 싶은

형태

두 번째 이야기손님

이름을 불리고 싶었던

아리데

번째 이야기손님

현수막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애여성노동자

김상

 

 

 

 

 

 

 

활동보고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5)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 형태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다섯 번째 이어말하기 |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우리는 일터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일터에 들어간 후까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합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요구하는 기준은 그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끊임없이 밀어냅니다.
‘반차별’은 어떻게 자본의 힘에 대응할 수 있을까요?
서로 다른 일터에서 경험하는,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주세요.

 


 

 

 

 

첫 번째 이야기손님 

나를 잃지 않고 일하고 싶은, 형태

 

 

 

최근 며칠 동안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이라는 이번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주제를 떠올리면서 생각했습니다. 일터에서 나를 밀고 있는 힘이 무엇일까? 그 힘의 근본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힘이 밀어낸다면 나는 밀리지 않기 위해서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그중에서도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일터에서는 나에게 남성다움을 강요하고 결혼을 강요합니다. 이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한지 횃수로 8년째. 취직을 할 때마다 단골인사는 여자친구는 있는지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자친구는 있냐는 질문은 결혼은 언제할거냐? 라는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올해 저는 서른 한 살인데 벌써 제 주위의 남자 동료들은 이미 결혼을 했거나 할 예정이라 요즘 들어 회사에서는 저에게 소개팅을 제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얼른 여자 친구 사겨요 그래야 1~2년 안에 결혼 하지?”

 

일터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저는 이성애자 남성이 되어 버리고 여자 친구가 없으니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되고 당연히 여성과 결혼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20대 중반까지는 친한 레즈비언 친구가 가상의 여자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일하던 일터가 나에게 마치 너는 이성애자 남성이야! 너는 꼭 이성애자 남성이어야 해! 라고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8년부터 5년째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콜센터에서 일하다보면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성에 대하여 거부하는 모습과 마주하게 됩니다. 스스로가 친절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 못견뎌하며 일터를 떠나던 남성 상담원 노동자들이 여성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내가 그래도 남자인데 언제까지 이래야하냐?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뭐 남자니까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무의식적으로 이미 남성스러움이 여성스러움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 생각하는 일터에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이성애자 남성임을 강요 받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이 많은 콜센터이지만 그 안에서도 남성 노동자들의 문화는 다른 일터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회식은 꼭 모두가 참여해야하고 여성 노동자들이 회식 자리에서 사라진 후에는 남자들끼리의 친목을 도모한다며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자고 하거나 좋은데 가자는 이야기를 하기도 당연하게 합니다. 남자니까! 남자가! 형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굳이 회식 자리에 계속 참여해야 하는 일터는 그만 두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들게 만들었습니다.

 

나를 내보일 수 있는 직장 동료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나와 동갑이던 남성 동료에게 나의 성적지향에 대하여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마치 지나가는 열병이라는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그 이후에 회식 때 같이 노래방을 간 적이 있는데 일부러 야한 영상이 나오는 화면을 보여주며 괜찮지 않냐고 이 여자 좀 보라며 노골적으로 이야기 했었고 한번은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며 내가 낼 돈을 대신 내줄테니 즐기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물론 노래방 도우미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손님이 진상손님인지 어떤 때 가장 일하기 어려운지에 대하여 이야기 했던 것은 나쁘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그 날 동성애자인 저의 성적지향은 완전하게 무시당했다 생각합니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일터에서 동성애자인 나는 유령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드러내니 이제는 아예 무시하였습니다. 많이 화가 났고 괴로웠지만 일터에서 그 일에 대하여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었고 이야기해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 후에 그 회사에서 퇴사를 했습니다. 물론 더 괜찮은 회사를 찾아서 옮길 수 있는 더 나은 환경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저에게 있지만 이것은 더 나은 곳을 찾기 위한 권리를 말하기 이전에 일터에서 내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밀려난 것이고 자발적으로 그만두게 포기하게 만든 것입니다. 당시에 2년 7개월 정도를 다닌 일터였었고 주임의 직급에 부팀장이었던 상황에서 그것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제 삶에 있어서도 가장 모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그 직장동료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형태 니가 아직 여자 맛을 못봐서 그래~! 진짜 더 경험해보면 달라질거야!”

 

앞으로 살면서 그런 사건으로 내가 노력하고 쌓아왔던 것을 내가 이성애자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밀려나게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일터는 저에게 이성애자 남성이기를 강요합니다. 그래서 남자다워야 하고 당연히 여성을 사랑해야 하고 여성과 결혼을 해서 당연히 이성애자만으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가족을 구성하기를 압박합니다.

 

저는 제가 이성애자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밀려나고 싶지도 않고 밀릴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일터는 저에게 이성애자 남성이 아니어도 저는 이성애자 남성이 아닙니다 동성애자 남성입니다! 라고 일터에서 드러내지 말라고 합니다. 저는 저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 현실이 동성애자만의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부당한 것은 개인이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인해서 그런 일터에서 일하는 것이니 더 좋은 일터로 가기 전까지는 일터에서는 닥치고 일만하라는 소리로 들립니다.

 

남성이 아니기 때문에 고학력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이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에 일터는 채용시부터 혹은 일하는 동안에 일터에서 노동자를 밀어냅니다. 같은 사람이고 같은 노동자인데도 세상은 노동자도 노동자마다 계급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정말 은밀하고 조용하고 때론 교묘하게 속내를 드러냅니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공포스러운데 세상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당연히 남성이 여성보다는 노동을 더 많이 해야하고 저학력자보다는 고학력자가 더 나은 노동을 할 기회를 가져야하고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비정규직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게 싫으면 정규직이 되어야 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은 취업을 할 기회조차 박탈 당하기 쉽고 이성애자가 아닌 노동자는 일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밀어내는 힘이 또 다른 노동자들을 밀어내고 내가 밀리면 다른 노동자들도 같이 밀린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의 고난이 다른 이들에게도 고난으로 닿고 있어서 그 고난이 나를 일터에서 밀려나게 할 때 같이 그 힘을 밀어내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밀려나지 않고 밀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나를 잃지 않고 일하고 싶습니다.

 

 

 

 

다섯 번째 이어말하기 |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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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첫 번째 이야기손님

나를 잃지 않고

일하고 싶은

형태

두 번째 이야기손님

이름을 불리고 싶었던

아리데

번째 이야기손님

현수막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애여성노동자

김상

 

 

 

 

 

 

 

활동보고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4) 냄새의 출처 : 준우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들어본 말 중에 하나는 무엇일까요?
‘냄새나’ ,‘ 더러워’ , ‘가까이 가기 싫어’ …
누군가에 대한 차별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냄새의 자리에는 ‘진짜’ 냄새가 아닌 차별적인 시선이 있음을,

그 시선이 변화할 때 누군가들의 삶에도 향기가 깃들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냄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네 번째 이야기손님 

분홍 매니큐어를 하는, 준우

 

 

 

3년 전에 겪었던 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경험했던 에피소드인데요. 당시엔 스마트폰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전인 시절이라서 지하철 안에서도 옆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액정 화면만 보고 있는 요즘과는 달리, 주변 낯선 사람의 행동이나 차림새를 두고서 시간 떼우기 용으로 괜시리 사람 구경하고 수근거리고, 나아가 간섭하기까지 하는 사례가 꽤 있던 때지요.

 

당시 저는 지하철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제 손가락엔 2센티미터 정도 길이로 기른 후 끝을 동그랗게 다듬은 손톱이 달려(?) 있었고, 그 위에는 분홍색에 빤짝이가 살짝 첨가된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지요. 그때 문득 옆자리에서 저에게로 어떤 시선이 쏟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옆을 돌아보았습니다. 50대 중후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 분이 저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더랬죠. 그러다가 저와 눈이 마주친 후에는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이) 저와 눈을 빤히 마주치려 하더군요. 몇 초 후 갑자기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역시 그분은 저의 일상에 개입하기로 나름 결심을 한 거 같았어요.) “남자가 그렇게 손톱 칠하고 다니면 안 되는 거 아뇨?” 이렇게 한번 물꼬가 트이고 나니 그분은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더군요. 손톱 물들이고 다니는 건 어린 여자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느니, 남자가 손톱이 길면 위생에 안 좋다느니, 아들 같아서 하는 얘기인데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깔본다느니… 저는 귀찮으니 피하자 싶어 일어나며  “남의 일에 신경 끄세요'” 한 마디 했을 뿐입니다.

 

이런 황당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일들은 매니큐어를 하고 다니는 때면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재밌게도, 저에게 맞다고 여겨지는 성별과 걸맞지 않은(혹은 걸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매니큐어는 그 색감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눈에 띄나 봅니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들이 저에게 참견할 권리를 가져도 된다고 간주되나 봅니다. 건너편에 앉아서 노골적으로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던 일군의 중년 여성들이 있었고, 그 외에도 비웃는 듯 힐끗거리던 시선들도 여러 차례 경험하곤 했지요. 앞서의 남자 분과 같이 제가 남자답게 살기를 충고하는(그들 입장에서 볼 때)/간섭하는(제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을 반 년에 한 명씩 꼬박꼬박 만나곤 한다는 건 흥미로운 일상입니다.

 

“어머, 난 여자 분인 줄 알았네.” 이 말은 제가 머리를 어깨 아래로 기르고서 보라색 매니큐어를 한 손으로 돈을 건낼 때 식당 주인께서 던진 친근함(?)의 사과였습니다. 이 소소한 사건 역시도 지하철의 경우와 같은 맥락을 지니는 에피소드일 겁니다. 즉, “상대방은 나의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으로 판단한 것일까? 그렇게 알아낸/짐작한 성별에 따라 나를 대하는 방식은 달라지는 건가? 사람들 간의 관계맺음에게 있어서, 왜 이리도 차림새로 성별을 알아채는 게 중요한 건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소한 해프닝일 수 있는 이 에피소드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성별과 연관된 차림새에 대해서 얘기를 풀어보기 위해서입니다.

‘패싱(passing)’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통과하기’라고도 번역되곤 하는 이 단어의 용래는 이렇습니다: 원래 산업화 시기에 유태인들이 유럽 사회 안에서 유태인임을 덮어둔 채 사회에 녹아드는 것을 뜻하는 단어에서, 20세기 중반 미국의 흑인해방운동 내에서는 유색인종이 백인 사회에 진입하는 통과 과정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였습니다. 그리고 동성애자가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에 (동성애자임이 가려진 채) 지내는 것을 패싱으로 일컬어지기도 했고, 트랜스젠더가 특정한 성별로 인지됨을  ‘패싱된다’란 말로 표현하곤 하지요. “남자로/여자로 패싱되었어”라는 식으로요.

 

주변의 트랜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패싱의 성패 여부가 복잡미묘한 문제지점으로 떠오르는 장소로 공중 화장실과 병원, 탈의실 등 성별로 구성/구획된 공간을 자주 말하곤 합니다. 이를테면, 트랜스 여성이 공중 화장실 앞에서 어느 쪽으로 들어갈지를 망설이는 상황.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몸으로 여자 화장실과 여자 탈의실에 들어갈 경우 성폭력적 상황에 대한 우려를 야기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성인 자신이 그 공간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사실. 이처럼 자신의 성별과 자신의 차림새와 공간 간 걸맞음 여부를 일상적으로 타협해야 하고, 스스로의 행위와 욕망이 제약되고 검열되어야 한다는 사실.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시시때때로 포기하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체념하고서 지낸다는 이야기들 말이지요.

 

저는 이 상황 속에서 느낄 감정들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어떤 트랜스 남성은 남성으로 패싱되지 않는 조건들 – 소위, 제 아무리 꾸며도 차림새가 도저히 남성스럽지 않다든지, 덩치가 작다든지 등 – 때문에 협상을 하며 지낸다는 이 감정은 어떤 것일지요. 협상의 대상은 사회 전반에 퍼진 성별이분법적 사고관이기도 하고, 그것을 뿌리 깊게 내재화하고 있는 옆 사람의 간섭이기도 하고, 나아가 그러한 관점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합니다. 부당한 거 같고, 이유 없이 차별 당한 거 같은데도… 그게 차별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호할만큼 복잡하기도 하고, 이렇게 태어나버린 자기 탓 같기도 하고, 남자/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사고는 너무 당연한 거 같아서 그로 인한 차별은 사실 차별이 아닌 거 같아 보이고, 남에게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짐에 화가 나면서도, 자기가 봐도 스스로가 사회적 규범을 일탈한 혐오스러운 존재 같기도 하고…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에 주목해 봅니다. 당사자만이 느낄 이런 느낌 외에는 어디가 어떻게 차별적인지 잘 설명하기도 힘든 미묘한 지점에서 차별을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차별을 감지한다는 건 대단한 게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매니큐어, 바지, 치마, 정장 셔츠, 압박 붕대, 귀걸이, 목걸이, 가방의 형태, 손목시계의 크기, 긴 생머리, 짦은 머리, 염색, 흉터, 수염, 근육, 덩치, 키… 이러저러한 게 버무러져서 0.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직관적으로 전해지는 차림새라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타인의 시선을 체감하고, 배제당함을 수용하게 되고, 차별당함을 인지하고, 자기검열을 행하고, 자괴감과 자긍심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고, 자타 모두를 대상으로 인정투쟁을 벌여야 하는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이야기를 다른 소재로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편한 옷과 꾸민 옷, 바지와 치마, 귀걸이와 팔찌에 대해서도 매니큐어와 같은 맥락으로 차림새 이야기를 풀 수 있겠습니다. 나아가서 연령, 직업, 계급 등에 관련하여서도 그렇고요.

나이에 맞는 차림새?
직업에 맞는 차림새?
소득에 맞는 차림새?

이처럼, 규율에서 어긋나지 않으려는 자발적(?)일 수 있는 차림새에 관한 일상적인 노력들, 또는 규율에 어긋난 채 생존해가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공간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너무 순식간이라서 그리고 너무 일상적이라서 망각한 채 혹은 적응해버린 채 지내는 ‘찰나의 차별적 시선들’은, 사람들의 옷 차림새와 악세사리 위를 그물망처럼 얼기설기 엉켜 오가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의 차별사유 중 성별정체성이 들어가야만 한다고 말할 때, 그 사유로 인해 발생하는 일상적 차별경험은 어떤 것일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란 (의외로!) 힘듭니다. 그러한 차별경험의 일례로서 차림새에 관한 경험들과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차별이 무엇인지는 어쩌면 법 조문 안에 절대 다 담지 못 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니, 차별은 자신이 받은 느낌으로 실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차림새를 볼 때 무엇을 보는 걸까요? 거기서 무엇을 판별하고 무엇을 인지하는 걸까요? 우리는 거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남의/나의 옷차림에서 무엇을 읽는가는 어쩌면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미묘하게 드러내는 척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01

02

03

04

첫 번째 이야기손님

‘반말 해도 되는 사람?’

마문

번째 이야기손님

동자동 쪽방지역 주민

공동체와 함께하는

조승화

세 번째 이야기손님

기록노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싶어하는

희정

네 번째 이야기손님

분홍 메니큐어를

하는

준우

 

 

 

 

 

 

활동보고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4) 냄새의 출처 : 희정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들어본 말 중에 하나는 무엇일까요?
‘냄새나’ ,‘ 더러워’ , ‘가까이 가기 싫어’ …
누군가에 대한 차별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냄새의 자리에는 ‘진짜’ 냄새가 아닌 차별적인 시선이 있음을,

그 시선이 변화할 때 누군가들의 삶에도 향기가 깃들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냄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세 번째 이야기손님 

기록노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싶어하는, 희정

 

 

 

1.
고백하자면, 음식물 쓰레기차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소독차를 본 어린아이처럼 뒤를 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런 증상은 지난겨울부터 시작됐다. 쓰레기 수거노동자들의 건강권 취재를 위해 일터에 갔다가, 음식물 쓰레기차 뒤에 매달려 이동할 기회를 얻었다. 쓰레기차 뒤 좁은 발판에 올라 두 팔로 매달려 가는, 청소노동자들의 이동방식이 문제로 거론되던 참이었다. 위험하다하기에 얼마나 위험한가 싶어 차에 매달렸다.

 

야심한 시각이었고, 그 동네 사람들은 웬 여자가 내지르는 악~ 소리를 들었을 게다. 보기보다 속도가 꽤 빨랐다. 골목골목을 이동하는지라 휘청거림도 컸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입을 벌릴 때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깊숙이 들어온다는 게였다. 그때 기분이 어떤지를 알고 싶다면, 집에 며칠 묵힌 음식물 쓰레기 앞에서 숨 한번 크게 들이마시면 된다.

 

옆에서 같이 매달려가던 노동자 한 분이 그 와중에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름 되면 이것보다 몇 배나 힘들다. 냄새만으로 코 안이 헌다. 이런 말들이었다. 숨조차 쉬고 싶지 않던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코 속이 헐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냄새만으로 코가 헌다는 게 상상이 안 갔다.

 

어쨌든 한 번 매달린(?) 경험 때문인지, 그날 이후로 쓰레기차만 지나가면 반가웠다. 그런데 요사이는 더는 반갑지 않다. 날씨 탓이다. 음식물 쓰레기차가 옆을 스쳐만 가도, 차에 매달렸을 때 맡았던 악취보다 몇 배나 강한 것이 코를 찔렀다. 그제야 여름에는 코 안이 헐 정도라 한 노동자의 말을 이해했다. 이제 나는 쓰레기차를 보면 숨을 참고 미간을 찌푸리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은 여전히 쓰레기차에 매달려 코 안이 헐어가고 있다.

 

왜 굳이 그런 식으로 이동을 할까. 쓰레기에 코를 대고 차 뒤에 매달리면 코만 허는 게 아니다. 손과 옷에 음식물 찌꺼기가 묻는다. 피부병이 우려된다. 사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왜 굳이? 나도 의문이었지만, 막상 나조차 몇 번 수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정말 조수석에 타기 싫었다. 쓰레기차는 꽤 높았다. 수거차에서 내려 쓰레기를 치우고 다시 차에 올라타야 했다. 차는 100미터마다 섰다. 쓰레기가 그 정도 거리마다 놓여 있었다. 노동자들이 차에 내리고 오르는 작업도 100미터마다 반복됐다. 이 과정이 하룻밤에 200번 넘게 있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번잡스럽고 힘들다.

 

또 오르고 내리며 특정 부위가 차체에 닿거나 자주 사용되었다. 실제 이와 같은 반복으로 엉덩이뼈 근육이 망가진 노동자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리하지 않고 살살 움직이면, 야밤에 시작한 일은 해가 떠도 끝나지 않는다. 시간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할당된 구역 쓰레기를 모두 수거해야 하루 일이 끝나는 식이다. 노동자들은 근육 손실과 과로질환에 시달리느니, 그냥 코 좀 헐고 재수 없으면 차에서 떨어지는 것을 택하게 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나름의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더러운 냄새쯤이야 선택을 하는데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날 내가 맡은 냄새보다도 더 충격적인 것은, 세면 시설이 몇 해 전만 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샤워시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난 후에야 생겼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인근 가게에서 물을 얻거나 생수를 사와 얼굴하고 손만 대충 씻고 퇴근하는 식이었다. 왜 샤워시설이 없었냐? 물으니, 노동자들은 회사가 돈이 없다고 했다. 사장 하나에 사장 아들 이사 하나에 직원 일곱 여덟 되는 그런 업체였는데, 서울시랑 계약을 맺어 쓰레기봉투가 50원 100원에 판매되는 비용으로 운영을 한다고 했다. 하청 단가가 낮아 업체도 허덕인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만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닌지, 노동자들이 씻지 못하는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건설 노동자들 또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씻을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피로한 퇴근길, 전철이나 버스 구석에 몸을 웅크리거나 일부러 서 간다고 했다. 땀 냄새 때문에 눈총을 받느니 몸이 힘들어도 서서 간다고.

 

사장님 차 배기량은 늘어나지만 노동자들의 씻을 공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그 사장님이 여유가 생김 그런 공간 하나쯤 마련해 주려 하지만, 사장님 머리 위에 앉아 단가 후려치기를 하는 원청 기업(또는 시市)이 있는 한 가능치 않는 일이다. 그 옆에서 우리는 노동자란 땀내 나는 그런 존재니까 생각하고 만다. 노동자는 땀 흘리고 땀 냄새를 풍긴다. 

그들이 땀내를 풍기는 이유는 육체노동으로 땀을 흘렸기 때문이 아니다. 작업공간 내 씻을 공간이 없었고, 환기와 냉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땀 흘려 성실히 일한 노동자에게 샤워 시설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법적으로 처벌이나 강력한 시정이 가능한 사회라면, 노동자가 흘린 땀은 마르기도 전에 씻길 것이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돈 있는 자본가 시민 계급은 청결과 위생이라는 관념을 획득했지만 공장에서 일하기 바쁜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었다. 냄새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누는 차별과 배제의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문제는 여전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위생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지 몇 백 년이 지났고, 이제는 어디서든 수도만 틀면 물이 나온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퀴퀴한 땀 냄새로 말하여 진다. 실제 작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씻을 공간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노동자의 냄새가 몇 백 년이 지나도 여전하다는 것은 노동자의 지위가 그 몇 백 년 전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게 아닐까 의심 들게 한다. 더불어 노동자의 땀 냄새는 어쩌면 강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2.
노동자가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악취를 맡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성수동 작은 구두 공장에 취재를 갔을 때,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 그럼에도 겨울이라 창문은 닫혀 있고, 환풍기 하나가 저 멀리서 느리게 돌아갔다. 잠시 후 민망했는지 사장이 와서 창문을 열라고 작업자들을 다그쳤다. 난로 석유 냄새가 나니 창문을 열라고 했다. 사장님 말은 바로 하셔야지요. 난로 냄새가 아니었다. 그건 본드 냄새였다. 구두 가죽을 붙이는 데 수많은 양의 공업용 본드가 사용됐다. 한 작업자는 말했다. 괜찮아요. 코는 금방 적응해요. 작업환경이 사람을 위해 있지 않으니, 일하는 사람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밥 먹으러 가는 시간도 아까워 냄새 가득한 뿌연 공장에서 밥을 시켜 먹는 사람들이었다. 후딱 먹어치우고 구두에 또 손을 댄다. 그만큼 바쁘다. 그들은 공장 안에서 일해도 구두 하나 당 수당으로 먹고 사는 허울 좋은 일당제 개인사업주들이다. 일당도 단가도 자꾸만 떨어져,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바보 만든다는 본드 냄새 따위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

 

바보 정도만 되면 감사한 일이다. 본드 정도면 감지덕지다. 때로는 머리에 종양이 생기고, 가슴에 암 세포가 생기고, 시신경이 망가지고, 백혈구에 이상이 온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청정산업, 굴뚝 없는 공장이라 불리던 반도체 산업에서 직업병이라 의심되는 백혈병이 발생했다. 하지만 공장에서 어떤 약품을 쓰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정보는 차단되었다. 일단은 직업병 제보자들에게 알음알음 작업현장에 대해 묻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 자주 질문한 것이 어떤 냄새가 났냐는 것이었다. 화학물질 사용을 알기 위해서였다.

 

암모니아 냄새, 비린내, 우유 상한 냄새, 썩은 계란 냄새. 제보자들의 답은 다양했다. 무슨 공장에서 저런 냄새가 나는가, 나는 좀 놀랐다. 지린내라 표현되는 냄새가 났다. 화학약품이 뒤엉켜 만든 냄새였고, 밀폐시설과 환기시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냄새였다. 심지어 냄새 때문에 구역질을 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사람이 일하다 토를 할 정도의 냄새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존재했다. 왜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자신이 장녀라는 어떤 사람은 말했다. 꿈에 반도체 공장이 나왔는데, 자기가 그곳에서 방진복을 입고 있더라. 여기서 일을 하면 또 몸이 아플 텐데. 나와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발이 안 떨어지더라. 가족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하지? 우리 집 벌이는 누가 하지? 반도체 공장을 나온 지 10년이 된 지금도, 10년 내내 아프면서도 꿈 속에서 조차 공장을 나오지 못했다.

삼성과 다른 전자산업 기업들이 제공하는 (다른 생산직에 비해 상대적인) 고임금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병들어도 클린룸을 뛰쳐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고임금을 제공하지 않아도, 노동자들은 뛰쳐나오지 않았다. 고용되지 않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전무하고, 임금이라고 해봤자 최저임금 수준을 보면 알만하다.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이 당연한 구조고, 그래서 고용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나를 고용한 그곳에서 무슨 냄새가 나든, 어떤 공기가 코로 들어오는 지금은 안 잘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3.
노동자는 열심히 일한다. 그래야 안 잘린다. 그래야 생활임금을 지킬 수 있다. 택배 배달노동자를 취재차 따라다닌 적이 잇었다. 그 분은 날 배려한다고 물건을 평소에 2/3 밖에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2분에 하나 꼴로 배달을 했다. 그저 상자 옮기는 행위가 끝이 아니다. 운전을 해 주소지에 도착한다. 운전 사이사이 다른 고객들에게 전화를 해 부재를 확인한다. 도착하면 탑차 운전석에서 내려 짐칸 문을 열고 짐을 찾아 꺼내고 문을 닫고 집을 찾아가 벨을 누르고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고, 사람이 없으면 또다시 전화를 걸어 물건을 어찌할지 확인하는 작업이 2분 안에 끝나야 한다. 차에서 내리면 뛰기 바쁘다.

 

일을 얼추 정리하고 택배 노동자와 인터뷰에 들어간 시간이 저녁 9시.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전표 정리를 한다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종일 뛰면서 일을 해도 일이 안 끝난다. 이런 사정이니 밥을 제대로 먹으며 일할 리 없다. 그는 배달을 하다가 식당에서 나는 냄새, 가정집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나면 허기져 ‘미치는 거’라 했다. 저녁에 배달 간 집 식구들이 밥상머리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콱 막힌다 했다. “서글프죠.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식구들하고 다 같이 밥 먹어본 적이 언젠가….” 일상적인 음식 냄새조차 노동자에게는 서글픔이 된다.

 

노동자 간에도 다른 냄새가 존재할까 싶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의 한 노동자에게 물었다. 정규직 비정규직 냄새가 무엇이 다르냐고. 정규직이 꺼리는 힘든 일을 비정규직이 하니 땀내가 더 난다 이 정도의 답변이 올 줄 알았는데, 그는 ‘담배 냄새’를 말했다. 정규직은 라인에서 담배를 피며 일하는 게 가능한데 같은 공정 옆 자리에서 비정규직이 담배를 물면 반장 조장이 쫓아와 한 소리, 지나가던 정규직이 한 소리 한다는 게다. 자동차 공장에서 담배 냄새를 풍길 수 있는 사람은 정규직뿐이다.

 

노동조건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으면 어떤 냄새든 차별과 불평등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다. 정당하지 못한 우리 노동은 서글프고, 별 것이 다 서럽기 때문이다.

 

4.
한 친구에게 물었다. ‘노동하면 어떤 냄새가 떠올라?’ 노동자의 입장에서 대답해주길 바란 질문이었다. 그 친구는 되물었다. ‘노동의 냄새는 다 똑같은 거 아니야?’ 답변이 의아했다. 노동의 냄새가 똑같다? 노동 특유의 냄새가 차별이나 혐오, 배제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다?

 

노동자인 그는 말했다. “노동을 하며 나는 냄새는 복합적이잖아.” 어떤 냄새이건 그건 노동의 과정에서 포함되어 있는 것,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 했다. 빵을 만드는 사람은 빵 냄새가 나는 거고. 화장품을 파는 사람은 화장품 냄새가 나는 거고. 돼지우리를 치우는 사람은 축사 냄새가 나는 거고. 주물 공장 노동자에게는 철과 불 냄새가 나는 거다. 그 속에 땀내가 섞이고 동료의 체취가 섞이고 공장 기계 냄새, 그 지역 특유의 냄새 등이 섞인다. 냄새란 노동을 하는 자가 자연스레 맡는 것이고, 자연스레 뿜어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노동의 냄새를 맡고 노동의 냄새를 몸에 묻혀감에도, 우리 스스로도 노동하면 땀내부터 떠올리게 된다. 노동의 냄새를 특화시킨다. 사람을 나누고 쪼갬으로 효율과 이윤을 얻어가는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에 우리 또한 동참하고 있다.

 

나는 노동자들이 맡아야 하는 독한 냄새에 분노한다. 이들이 그리고 내가 가능한 한 냄새가 잘 빠지는 환기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일하길 원한다. 특정 냄새에 신분의 차이나 서글픔을 느끼지 않길 바란다. 그럼에도 나는 노동이 어떤 특정한 냄새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련다. 우리는 모두 노동을 하며, 그 노동의 과정에서 냄새를 가지게 됨으로.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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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손님

‘반말 해도 되는 사람?’

마문

번째 이야기손님

동자동 쪽방지역 주민

공동체와 함께하는

조승화

세 번째 이야기손님

기록노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싶어하는

희정

네 번째 이야기손님

분홍 메니큐어를

하는

준우

 

 

 

 

 

 

활동보고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4) 냄새의 출처 : 조승화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들어본 말 중에 하나는 무엇일까요?
‘냄새나’ ,‘ 더러워’ , ‘가까이 가기 싫어’ …
누군가에 대한 차별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냄새의 자리에는 ‘진짜’ 냄새가 아닌 차별적인 시선이 있음을,

그 시선이 변화할 때 누군가들의 삶에도 향기가 깃들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냄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두 번째 이야기손님 

동자동 쪽방촌 마을공동체와 함께 하는, 조승화

 

 

가난은 분명 냄새가 있다. 가난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시선이 만드는 냄새도 있겠지만 가난이 풍기는 냄새는 차별적 시선을 더욱 확고하게 한다. 가난의 냄새? 이 냄새를 대부분은 싫어한다. 혹은 원치 않게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이 냄새를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본적 없다. 이 가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 바로 쪽방촌이다.

 

1. 쪽방에서 무슨 냄새가 난다고?

 

서울역 맞은편은 빌딩 숲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그 빌딩 뒤편에는 한사람 누울 만한 작은 방들이 모여 만들어진 쪽방촌이 있다. 동자동 쪽방촌. 쪽방은 1.5-2평 크기의 방에 따로 주방시설은 없으며 주민들은 공동화장실, 공동세면장을 사용한다. 방세는 월세 18-25만원까지. 가난한 주민에게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보증금을 낼 수 없는 형편이라 이 불편한 쪽방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주민의 대부분은 남성, 주민의 대부분은 1인 가구, 주민의 대부분은 월평균 50만원의 소득.

 

이런 형편의 쪽방과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서 전혀 냄새가 안 난다면 이상한 일이다. 50년 이상 된 낡은 쪽방 건물에는 이상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건물 특유의 냄새가 풍긴다. 재래식의 비위생적인 화장실은 여름철에는 방 안까지 그 냄새가 들어와 코를 찌르기도 한다. 쪽방 안은 오래된 건물의 먼지, 곰팡이 냄새가 습기 차고 오래된 벽지를 뚫고 들어오고, 다 깨진 창문을 통해 거리의 냄새가 들어와 뒤섞여 쪽방 특유의 냄새를 지닌다. 거기에 음식 냄새까지. (부엌이 따로 없는 쪽방은 방 안에서 밥을 지어 먹는다.) 제법 깔끔한 주민들도 이런 쪽방만의 특유한 냄새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원치 않게 이 냄새에 익숙해지고 이 냄새가 몸에 배여 냄새가 나는지도 잘 모르고 살아간다.

2. 짙은 가난이 켜켜이 쌓인 냄새들

 

길 구석에 쌓인 소주병들에서 나는 냄새는 동네에 알콜릭 주민이 많다는 것을 단박에 알게 한다. 비가오지 않는 날엔 동네 골목 골목 주민들이 모여 앉아 소주나 막걸리를 드시는 모습과 쉽게 마주친다. 술로 인해 가끔 싸움도 일어난다. 하지만 적은 소득에 유일한 즐거움이라 쉽게 술을 끊지는 못하신다. ‘술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사나’라고 얘기하는 주민도 있다. 가족 그리고 사회와의 단절을 경험한 주민들이 제법 많으시다. 오래된 고독이 많들어 낸 냄새인지. 혹은 안 아프신 분이 없을 정도인 동네라 약냄새인지. 뭔가 외로움 짙은 냄새를 동네에서 맡을 때가 많다.

 

노숙과 쪽방을 반복하는 주민들에게서 가끔 노숙과 노숙과 비슷한 상태가 되어버린 쪽방을 볼 때가 있다. 신문지나 옷가지를 끊임없이 방에 가득 모아 산을 이루고 그 위에서 주무시는 주민도 만나기도 한다. 그 속에 냄새는 사실 무슨 냄새라고 얘기하기 힘든 냄새가 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끔 이 속에서 냄새와 냄새의 갈등이 일어난다. 쪽방에 오래 거주한 주민은 자연스럽게 노숙의 냄새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 냄새로 주민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짙은 가난은 코를 찌르는 묘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냄새를 가지지 않은 이들이 이 냄새를 마냥 싫은 눈빛으로 본다면, 쪽방주민은 노숙인은 마냥 혐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냄새가 좋아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다. 가난이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듯.

 

3.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나는 냄새들

 

아주 가끔 쪽방에서 썩은 비린내 같은 냄새가 날 때가 있다. 나도 이 냄새를 맡아 본적은 없다. 다만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비린내가 나는 방을 열면 사람이 죽어 있다. 사람이 죽어 오래 방치되면 이런 냄새가 난단다. 이것이 쪽방의 고독사이다. 우리 동자동 쪽방에서만 해도 1년에 4-5번은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외로이 살다가 누구에게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고 쪽방에서 외로이 죽음을 맞이하고 며칠 후 방에서 냄새가 나서 이웃에게, 쪽방 방세를 받으러 온 관리자에게 발견된 죽음.

 

내가 그 비슷한 냄새를 맡은 것은 죽어가는, 혹은 삶을 포기한 듯 보이는 한 주민에게서 라고 생각 든다. 이웃 쪽방주민이 한 쪽방에서 냄새가 나고 사람이 죽어가는 것 같아 나와 함께 그 쪽방에 가보았다. 술병은 방안에 뒹굴고 있었고 다리가 장애가 있어 보이는 주민은 그냥 방 가운데 쓰러져 누워 계셨다. 이미 방에는 배설물과 그로인한 여러 이물질, 구더기가 가득 있었다. 이런 상태로 일주일이상 방안에 나오지 않고 있던 것이다. 토할 듯 역한 냄새가 내 온몸에도 번졌고 죽음 직전의 냄새처럼 느껴졌다.

 

주민들은 이 냄새에 무덤덤하다. 또 누군가가 죽었구나. 라고 생각 할뿐이다. 쪽방관리인도 고독사한 주민의 시신이 처리되면 급하게 방을 치우고 또 쪽방주민을 받는다.

4. 이것이 사람 냄새다.

 

이것이 불편해도 우리사회가 만든 가난의 냄새이고 사람의 냄새다. 특별할 것도 없다. 나와 다른 냄새라며 혐오하는 그들에게도 더 역한 냄새가 날 수 있다. 이 냄새의 근원에는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 없이 풍기게 되는 냄새이다. 이 냄새가 가난한 이들의 탓이라 돌리고 단지 혐오스럽게 생각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그 가난한 이를 무시하는 것이 분명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난을 개인에게 돌리게 되는 행위. 그리고 우리사회의 가난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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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첫 번째 이야기손님

‘반말 해도 되는 사람?’

마문

번째 이야기손님

동자동 쪽방지역 주민

공동체와 함께하는

조승화

세 번째 이야기손님

기록노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싶어하는

희정

네 번째 이야기손님

분홍 메니큐어를

하는

준우

 

 

 

 

 

 

활동보고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4) 냄새의 출처 : 마문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들어본 말 중에 하나는 무엇일까요?
‘냄새나’ ,‘ 더러워’ , ‘가까이 가기 싫어’ …
누군가에 대한 차별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냄새의 자리에는 ‘진짜’ 냄새가 아닌 차별적인 시선이 있음을,

그 시선이 변화할 때 누군가들의 삶에도 향기가 깃들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냄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첫 번째 이야기손님 

‘반말 해도 되는 사람?’, 마문

 

 

한국에 온 지 제가 16년째입니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다가 이주노동운동을 했고 지금은 이주민문화예술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겪은 여러가지 차별의 시선과 태도들에 대해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그리고 강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몇 개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 – 여기는 반말권인가?

 

처음 한국의 공장에서 일할 때 여기는 다들 서로 반말을 하는 문화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한테 그들이 저를 부르는 것처럼 “야, 밥 먹으러 가자” 라고 했죠. 그 때 표정들이 떠오릅니다.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 형 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저도 그냥 형이라고 하면 형님이라고 하라고 눈을 부라리곤 했는데 이주노동자들한테 한국 선주민이 형님 이라고 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은 분들한텐 이름을 부르는 건 예사고 “어이, 거기, 야” 라고 부르는 게 마치 정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구공장에서 십 년 넘게 일하면서 선주민이 이주민에게 한국사회에서 주로 쓰는 존칭을 하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주민에게 ‘님’ 자를 붙이거나 ‘어르신’ 이라고 하면 마치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 두 번째 장면 – 공장장님이 공장장이 될 때

 

가구공장에서 일하면서 이주노동운동을 하고 그 와중에 옆지기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고 가구공장에서도 공장장이 되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게 됩니다. 특히 공장장을 찾으러 방문한 사람들이 당신이 공장장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은 사소한 일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뒤돌아 있으면 아시아권은 이주민과 선주민이 당연히 구별히 안됩니다. 저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뒤돌아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공장장을 만나러 온 외부 손님이 처음엔 멀리서 “공장장님” 이라고 불렀다가 제가 뒤돌아보니 바로 “어이 공장장” 이라고 말한 일도 있었습니다.

 

# 세 번째 장면 – 택시기사님, 도대체 뭐가 성공인가요?

 

일상화된 반말의 세계에서 제가 존칭의 세계로 들어온 건 결혼을 하고나서부터 였습니다. 재밌는 건 제가 선주민 여성과 결혼을 하고 한국국적을 갖게 되면서 저를 태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다짜고짜 반말을 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던 사람도 제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시 존칭을 쓰게 되더군요. 깍듯하다기보다는 일상적인 존칭을 쓰는 거죠. 택시를 타면 한국말을 잘한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걸 보통 물어보십니다. 그러다가, 한국 선주민 여성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사님들이 대뜸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이 성공했네’ 도대체 뭐가 성공했다는 걸까요. 늘 궁금합니다. 결혼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성공했다는 건지,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이 성공했다는 것인지, 이주민이 아니라 선주민에게도 결혼했다는 말에 무조건 성공했네 라고 말을 하는 지 말입니다.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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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손님

‘반말 해도 되는 사람?’

마문

번째 이야기손님

동자동 쪽방지역 주민

공동체와 함께하는

조승화

세 번째 이야기손님

기록노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싶어하는

희정

네 번째 이야기손님

분홍 메니큐어를

하는

준우

 

 

 

 

 

 

활동보고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3)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 Ⅱ : 미류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세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Ⅱ

 

차별은 사람들을 특정한 자리로 몰아넣고 가두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리를 빼앗고 내 쫓습니다.
공장과 학교의 담벼락, 공공장소, 국경, 병원 문턱, 화단과 농사짓는 땅이 누군가에는 넘지못할 벽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

 


 

 

 

 

네 번째 이야기손님 

쫓겨나는 장소에서 사람을 만나자는, 미류

 

 

 

서울에 와서 처음 구한 집은 하숙집이었다. 2층짜리 다가구 주택에 옥탑 방이 하나 딸린 집이었다. 친구와 나는 옥탑 방에 같이 살기로 했다. 짐을 풀고 나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집을 구할 때는 그 딸만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학생이라고 했다. 칸칸이 쪼개놓은 쪽방에 두 명씩, 큰 방에는 다섯 명이 같이 살았고, 우리를 포함한 하숙생이 모두 29명이었다. 식당은 하나, 화장실은 두 개였다. 아침밥은 7시 반부터 8시 반 사이에 1층에 내려와서 먹으면 된다고 했고, 온수는 7시 반부터 8시 반 사이에 나온다고 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머리를 감을까 밥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한 번은 화장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가 머리를 감는데 샴푸 거품을 막 내고 머리를 헹구려는 찰나에 온수가 뚝 끊겼다. 얼음 같은 냉수가 머리에 떨어지는데, 온수 대신 뜨거운 물이 눈에서 떨어졌다. 괜히, 서러웠다.

 

 

봄이 왔다. 동네 슈퍼를 지나가는데 탐스러운 딸기를 한 가득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과일을 먹어본 지가 언제인지, 친구와 함께 먹으려고 한 봉지 가득 딸기를 샀다. 집에 들어갔더니 단수 중이었다. 딸기를 씻을 수가 없어 한 편에 놓아둔 채 그냥 잤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여전히 단수다. 딸기를 두고 그냥 나갔다. 저녁에 들어와 보니 물이 나오고 있었다. 딸기를 씻으려고 봉지를 열었다. 새빨간 딸기 위로 하얗게 핀 곰팡이. 혹시나 하고 곰팡이가 핀 딸기를 걷어냈지만 바닥까지 모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냉장고가 없어도 하루쯤은 괜찮겠지 했는데, 하나도 맛보지 못하고 모두 버렸다. 다시 괜히, 서러웠다.

 

다음날 아침, 밥을 먹지 않고 머리를 감았다. 학교 나갈 준비를 마치고 1층에 들렀다. 아주머니한테 뭐라도 얘기를 좀 해야겠다 싶었다. 뭔가 얘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댔다. 아주머니는 예의 친절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단수가 될 예정이었으면 미리 알려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주머니는 그걸 일일이 방문에 붙여놓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하루 못 씻는 게 그리 큰 문제냐 했다. “딸기가 다 곰팡이가 피어서…….” 말이 입 밖으로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에 사람도 많은데 한 시간밖에 온수가 안 나와서…….” 아주머니는 결국 친절한 표정을 버리고 한 마디 내뱉었다. “이래서 내가 여자는 안 받는데, 내가 있었으면 안 받았을 텐데.” 스물아홉 명의 사람이 한 시간 동안 밥도 먹고 씻기도 해야 하는 게, 여자라서 못 참는 일인가? “아주머니, 그건 여자가 아니어도 너무 심한 것 같은데요.” 아주머니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하숙생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러 다시 찾아오는 줄 아느냐고. “그렇게 불편하면 다른 집 알아봐.”

 

“저 오늘 이사 갈게요.”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저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그래도 그냥 울고만 있기는 싫어서 용기를 낸 마지막 한 마디가 그것이었다. 그 말을 마치고 집을 나왔다. 동네 전봇대에 붙어 있는 광고지들을 보면서 전화를 하고 집을 보고 전화를 하고 집을 보고. 그렇게 집을 구한 후 학교에 있는 동아리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급하게 사람을 모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은 금세 가방에 들어갔고, 어딘가에서 동아리 사람들이 빌려온 리어카에 모두 실었다. 그렇게 그 집을 나왔다. 쫓겨난 것인지, 나온 것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화창했던 하루의 기억. 서러웠던 여러 가지 일들 중 하나. 다른 일들이 그렇듯 문득 떠올랐다가 흐지부지 사라졌다가 다시 튀어나왔다가 어느 순간 숨어 버리는, 그런 일들 중 하나였다. 시간이 흘러 여성주의라는 말도 알게 되었고 주거권과 관련된 활동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이사 나와서 들어간 집은 아파트의 방 하나를 세놓은 집이었다. 들락날락하기가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너무 편안하게, ‘집’에서처럼 지냈다. 우리가 흔히 ‘집’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편안함. 그래서 처음부터 좋은 주인을 만났다면 울면서 이사할 일은 없었을 텐데.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주거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 하는 우연에 따라 삶이 흔들린다는 것이야말로 모욕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삶이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차별 아닌가.

 

누구나 쫓겨나지 않는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걸, 쫓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해외 입법례를 보면서, 임대인이 임차인을 함부로 내쫓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집을 빌려 줄 때 전기나 난방, 온수와 같은 기본적인 설비들을 갖추고 보장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자라서 안 받는다.” 이런 말은,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함부로 못 할 이야기다. 많은 나라들이 성별, 인종, 나이, 가족상황 등을 이유로 주택 임대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여자라서”와 같은 말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의 차별 수준을 보여준다. 물론 그 나라들에서도 이런저런 이유의 차별과 주거권 침해는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 전 그날, 차별금지법이 있었다 하더라도 내 선택이 달라졌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원했던 건, 그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중 받는 집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었으니까.

 

‘여자라서 안 받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살게 된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여자’라는 건 내가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스티커가 아니었다. 여자지만 먹고 씻는 문제로 불편하다는 소리 하지 않는 사람으로도 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열심히 씻는 편도 아니지만 살라는 대로 맞춰서 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차별이나 주거권 침해를 소개해 달라는 기자한테 알려주면 보나마나 “그것 말고 다른 사례는 없나요?”라고 할 만한 이야기다. 나 역시 이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나 여러 번 망설였다. 하지만 나는 ‘사소한’ 것들을 놓친다면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마리를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며칠 전 읽은 존 버거의 <벤투의 스케치북>이라는 책에 마침 이런 말이 있었다.

 

“저항은 영(零)으로, 강요된 침묵으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항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만약 이루어진다면, 작은 승리가 있다. (…) 그 순간은, 지나가지만, 이미 출력이 되었다. 저항의 본령은 어떤 대안, 좀 더 공정한 미래를 위한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아주 사소한 구원이다. 문제는 이 사소한이라는 형용사를 안고 어떻게 시간을, 다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차별, 쫓겨남, 이런 말들은 언제나 거대하다. 그러나 우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소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소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어떤 순간을 지목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나눌 때, 그것은 더 이상 사소할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우리를 연루시켰고, 그래서 이 세상은 더 이상 우리와 무관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쫓겨났지만 내 발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감각을 얻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만 살지는 않겠다는. 그것이 나 혼자 크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만도 아니라는. 쫓겨나는 자리, 차별의 자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 대한문 앞에서 평등을 예감하는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

 

 

 

 

세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Ⅱ

 

 

01

02

03

04

첫 번째 이야기손님

늦잠 자는 시간을

사수하고 싶었던

난다

두 번째 이야기손님

상품 말고 사람이 숨  

쉬는 서울역을 바라는

이동현

세 번째 이야기손님

차별을 말하기가

겁니 어려운

네 번째 이야기손님

쫓겨나는 장소에서

사람을 만나자는

미류

 

활동보고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3)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 Ⅱ : 숨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세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Ⅱ

 

차별은 사람들을 특정한 자리로 몰아넣고 가두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리를 빼앗고 내 쫓습니다.
공장과 학교의 담벼락, 공공장소, 국경, 병원 문턱, 화단과 농사짓는 땅이 누군가에는 넘지못할 벽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

 


 

 

 

 

세 번째 이야기손님 

차별을 말하기가 검니 어려운,

 

 

 

안녕하세요. 저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루머 숨이라고 합니다.
홍보물에 제 소개를 한 걸 보면,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하기 겁니 어려운’ 숨이라고 되어 있을 거예요. 저는 성매매와 관련해서 차별을 이야기 하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 그건 성매매에서 반차별을 이야기 할 때, 무엇을 차별하지 말자는 것인지가 늘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모호하다고 하는 것은 성판매 여성의 차별의 경험이 모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저희가 생각하는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너무도 명확하고, 성매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호소하는 차별 경험은 너무도 생생해요. 문제는 성판매 여성이 말하는 피해 혹은 차별을 전해 듣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문제는

 

어떤 사람은 성판매 여성의 피해 이야기를 듣고, 아, 성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금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성매매에 대한 국가적인 규제가 성판매 여성의 생계가 위태하다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두 가지 모두 성매매시장에 대한 입장과 성판매 여성의 인권의 문제를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합법화나 근절주의와 같은 성매매에 대한 직접적인 법적인 문제로 모든 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각각의 입법정책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는 건 굉장히 이원화되고 단순화하고 도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문제는

 

성판매 여성들이 경험하는 피해를 아무리 이야기 해도 그걸 차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를 성판매 여성의 ‘선택’의 문제로 돌려 버리는 것인데요, 성판매 여성이 성매매 시장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거부하거나 선택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나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한 번 선택하면 그 안에서의 문제에 문제제기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봐요. 우리는 누구나 선택한 것 안에서도 끊임 없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동성애를 선택하면, 결혼 했으면, 공장에 들어갔으면, 아무 것에도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죠.

 

보통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직장 내에서 혹은 일상 생활 공간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다면 분명히 차별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을 성산업 안에서도 예외 없이 경험합니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이 차별이라고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겪는 안전의 위협과 경제적인 족쇄는 성매매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질 때가 많아요.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이 성폭력으로 명확하게 고소해도 경찰이 성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주나 사채업자들 혹은 구매자들이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도 하죠. 하지만 제 3자의 눈으로도 판단하기 힘들다면 그만큼 우리도 차별에 공모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차별이 낙인으로 이동하는 지점입니다. 두 가지 모두에서 성판매 여성의 차별 경험에 대한 ‘무감각함’을 느낍니다. 모호하고 무감각하고 그러나 이중적이고, 그래서 막막하기도 한 게 성매매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보통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언니들은 문제와 말썽이 많은 구매자들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 이를테면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술이 꽐라가 되어서 정신을 못차리고 토한다거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떼를 쓴다거나 강제로 원치 않는 체위를 시도한다거나 자기 성기에다가 구슬 박아와서 진물이 흐르고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거나 잠도 안 재운다거나 사정하지 못했다고 돈을 줄 수 없다며 한 번 더 하자고 한다거나 하는 등의 난동을 부리기도 하죠. 이런 구매자들을 진상이라고 이름 붙이거든요. 보통 우리가 진상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내용과는 천지차이입니다. 이 정도 진상짓 아니면 진상이라고 명함도 못내미는,, 이 정도만 아니면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반면에 얼마전에 글 하나를 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야톡이라는 밤문화 사이트가 있는데요, 성구매자들이 유흥업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어플겸 블로그였던 것 같아요. 이 곳에서는 아가씨 진상에 대해서 성토를 하고 있는 글이 있었어요. 우리만 진상이냐, 너희도 진상이다 하면서. 가슴을 만지려고 하니 몽우리가 져서 아프니 만지지 말라고 한 것, 치마 속에 손을 넣자 팬티가 있어서 제대로 만질 수 없었던 여성, 술을 아무리 권해도 조금씩만 마셔서 술취한 모습을 보는 재미를 안 준 여성, 노래를 시켰는데 노래를 못 부른다며 앉아서 이야기로 접대한 여성,, 모두가 진상 아가씨에 포함 되어 있었는데요, 진상의 수위가 다르다는 것이 너무나 느껴집니다. 언니들은 구매자들의 거의 파렴치한 범죄행위에 대해서 진상이라고 이름 붙이는 반면, 구매자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동으로 부터 여성들이 감히!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것 자체가 진상으로 찍히는 일이라는 것. 언니들은 이미 선택을 한 이상 그 곳에서 어떠한 선택권도 없다는 것을 구매자들이 당연시 한다는 겁니다.  피해가 있건 없건은 중요하지 않죠.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인 구조가 굉장히 명확한 풍경입니다.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혹은 안마시술소나 룸살롱과 같이 구매자를 위해 세팅된 공간에서, 성판매자들이 권력을 가지기란 매우 힘든 일이어서, 실제로 많은 경우에 성구매자들의 폭력에 노출되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성판매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직장에서 상도덕이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무너졌을 때, 내규로서 혹은 암묵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정도의 안전이 있는 반면에, 성판매자들을 지킬 수 있는 장치는 별로 없어요.

 

업주나 관리자들과의 관계에 따라 공식적인 대처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고, 대신 성판매자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지침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 안전지침이라는 것은 운이 좋거나 나 자신이 대단한 담력과 싸움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의미가 사라질 수 밖에 없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별 것 아닌 개인의 노하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정말 안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위안이라도 필요해서 입니다.

 

하지만 이런 안전지침은 오히려 아가씨를 진상이라고 낙인찍게 하고 낙인 찍는 자들은 여성이 성산업에 자신을 완전히 오픈하도록 길들입니다. 이것은 국가를 막론하고 성매매가 합법적이거나 금지되어 있거나를 막론하고 성판매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성판매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는 성산업의 합법화나 불법화와 별 상관이 없고, 정숙하지 않은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만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관리와 통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요즘 성판매자의 비범죄화를 주장하고 법개정 활동도 하고 있는데요, 성매매와 관련한 문제를 성매매 관련법으로만 해결할 수는 절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여서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세상에 있는 차별이 몽땅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죠. 하지만 차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피해와 보호로만 이야기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다양한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성판매자의 비범죄화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라 간접차별에 제동을 거는 일이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구요, 여성을 창녀와 성녀로 구분지으려는 시도를 멈추는 일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저희가 사람들에게 성매매와 차별을 연결해서 이야기 하기 어렵다고 느낀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더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성판매 여성이 겪는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 왜 이런 차별이 만들어 지는가, 왜 여성은 성판매라는 인권이 열악한 시장에 보다 열려 있는가, 왜 여성은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지, 혹은 왜 여성은 스스로 그 일을 선택하고 있는가, 성판매를 한다고 해서 어떠한 차별이든 겪어도 되는가, 같은 이야기가 충분히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Ⅱ

 

 

01

02

03

04

첫 번째 이야기손님

늦잠 자는 시간을

사수하고 싶었던

난다

두 번째 이야기손님

상품 말고 사람이 숨  

쉬는 서울역을 바라는

이동현

세 번째 이야기손님

차별을 말하기가

겁니 어려운

네 번째 이야기손님

쫓겨나는 장소에서

사람을 만나자는

미류

 

 

활동보고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3)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 Ⅱ : 이동현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세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Ⅱ

 

차별은 사람들을 특정한 자리로 몰아넣고 가두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리를 빼앗고 내 쫓습니다.
공장과 학교의 담벼락, 공공장소, 국경, 병원 문턱, 화단과 농사짓는 땅이 누군가에는 넘지못할 벽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

 


 

 

 

 

두 번째 이야기손님 

상품 말고 사람이 숨 쉬는 서울역을 바라는, 이동현

 

 

 

서울역. 길의 끝, 길의 시작

 

작년 10월 서울역과 인근 쪽방 등지에서 살고 있는 다섯명의 홈리스가 서울역을 카메라에 담고, 광장에서 사진전을 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사진전 제목이 “서울역, 길의 끝에서 길을 묻다”였습니다. 그들은 사진을 통해 “나의 인생 보관소”, “월세 없는 방” 등으로 서울역을 묘사했습니다.

 

서울역으로 대표되는 공공역사의 거리홈리스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는 노숙인으로 인해 국가 이미지가 실추된다던지, 불결하고 위험하다는 류의 얘기입니다. 많은 이들이 공공역사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는 홈리스의 존재를 문제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의견들에는 홈리스들이 다른 선택지가 있음에도 굳이 공공역사를 선택한다는 인식이 전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노숙상태에 처한다는 것은, 이사할 때 여러 조건을 따져 집을 구해놓고 움직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적 공간을 유지할 경제적 능력이 소진됐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곳은 공공의 장소일 수밖에 없기에 그들은 갖가지 문제들을 안고 공공역사로 흘러옵니다. 아마도 이들은 인생의 종착역이란 심정으로 서울역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숙 첫날밤의 고통은 하루 속히 서울역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절박함을 주었을 것입니다. 서울역에 홈리스가 많은 게 문제일까요? 그렇다면 서울역에서 출구를 찾으려 조바심하는 이들을 꾸짖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서울역을 우리사회 빈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 갖가지 문제들에 시달리는 민중들을 만나는 공간, 이들의 질문에 답을 같이 고민하는 공간으로 사고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햄버거와 명품에 빼앗긴 사람의 자리

 

오랫동안 노숙생활을 했던 홈리스들은 서울역 구 역사 얘기를 많이 하십니다. 역사 한 중간에 있는 분수대 주위에서 많은 이들이 밤을 보냈다 합니다. 첫차가 다니기 전 자리를 털고, 청소 아줌마, 아저씨들과 함께 자리를 정리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일과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2004년 신역사가 개통되면서 이런 방식의 삶은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화역사(주)의 돈으로 지어진 신 역사는 금세 상업시설들이 빼곡히 입점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역 안에 박스 한 장을 깔려면 막차가 끊겨 점포들이 문을 닫는 새벽 1시 반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청한 잠이건만 첫차가 나가는 2시 반이면 영낙없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나마 이 조차 오래지 않아 서울역 측이 누워자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철도공사 측은 2011년 8월부터 “야간노숙행위 금지”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말대로라면 특정 시간 특정 행위를 금하는 것으로 보이나, 이 조치는 사실 서울역 내 노숙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노숙인 퇴거조치로 기획되었고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철도공사는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의 원인으로 1)임계점에 다다른 높은 민원 2)테러 위협을 들었습니다. 서울역이 노숙인을 내 몰고 싶어서 내 모는 것이 아니라 ‘고객님’ 들의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석연치 않습니다. 민자역사의 약 90%가 상업시설이란 점에서 알 수 있듯, 서울역을 비롯한 공공역사는 줄곧 상업시설의 유치, 광고수입 확대를 추구해왔습니다. 노숙인의 존재는 이런 상업화 경향과 충돌합니다. 구매력조차 없으면서 품격을 떨어뜨린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는 바로 서울역의 상업화 확대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기획된 것입니다. 실제, 서울역은 강제퇴거 조치 이듬해인 2012년에 전국신상품전시장(5월), 공예품전시장(6월)을 오픈했고, 지난 5월 13일에는 대합실 한 복판에 대규모 중소기업명품관을 설치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 서울역의 한 해 매장임대, 광고 수입은 37억 원으로 급증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서울역은, 상품은 자유롭되 가난한 이들은 밀려나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폭탄 돌리기

 

“서울역 계엄군”, 노숙인 퇴거를 위해 고용된 이들을 일컫는 한 거리홈리스분의 표현입니다.

서울역에는 ‘특수경비용역’이란 이들이 있습니다. 경찰 특공대와 흡사한 복장으로 활동하는 이들의 업무는 서울역에 있는 홈리스들을 내 모는 것입니다. 철도공사는 이들을 고용해 서울역을 노숙 청정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건데, 이들은 사법경찰권도 없는 단순용역에 불과합니다. 법적 권한이 없다보니 의지할 것은 위협과 물리력 밖에 없어, 이들에 의한 빈번한 인신모욕과 폭행 사건은 예견된 것입니다. 결국 지난 5월에는 한 50대 거리홈리스분이 이들에 의해 두 차례에 걸쳐 폭행을 당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상처는 나았으나 그는 지금도 여전히 그 사건으로 인한 수치심으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철도공사는 6억 2천만원을 들여 7월 13일부터 또 새로운 용역업체를 투입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내몰린 홈리스들은 서울역 광장은 물론 인근 지역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주변 상인들이 모여 홈리스들을 내몰기 위한 행동에 나섰습니다. 지난 5월, ‘서울역 환경개선 연합회’라는 모임이 창립 총회를 가졌는데, 이 모임은 서울역 인근(13~14번 출구 인근) 상인과 건물주들이 연합한 것으로, 이 일대에서 노숙인들을 퇴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것입니다. 이들은 인근 노숙인들로 인해 영업권의 지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며, 인근에 머무는 노숙인들을 “서울역에 가서 있어라”라며 내 쫓고 있습니다. 서울역 강제퇴거조치로 내몰린 노숙인들이 서울역 외부로 이동하니 인근 상인들은 영업손실을 이유로 다시 서울역으로 노숙인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폭탄 돌리기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공장소답다는 것

 

거리, 광장, 공원, 공공역사… 공공장소라고 인정하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홈리스는 이들 공간에서 삶을 의탁합니다. 노점상은 거리를 터전으로 생계를 의탁합니다. 자본에 의해 탄압 받는 노동자들은 광장에 천막을 치고 저항합니다. 탄압받는 민중들은 가두에 나와 현실을 알리고 시민들에게 연대를 호소합니다. 이것은 공공장소를 변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장소 자체가 갖고 있는 본래 기능이고 성격이라 생각합니다. 정부와 자본은 이를 법 위반 행위라하고, 공공장소를 무단 점유한다며 비난하고 탄압합니다. 그러면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전파와 자본의 이윤챙기기에 공공의 공간을 무한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장소답다는 것은 생의 절박함을 의탁하고 호소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 이를 바탕으로 떨치고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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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 자는 시간을

사수하고 싶었던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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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서울역을 바라는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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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장소에서

사람을 만나자는

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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