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평등법 제정의 원칙과 방향

 

21대 국회에 차별 금지에 관한 기본적인 법률안이 세 개 발의되었다(이하 세 법률안을 ‘차별금지/평등법안’이라 통칭). 발의된 세 법안은 기본적인 구조가 유사하며 세부사항에서 각자의 특징과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제 이 법안들을 통합적으로 심의한 후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차별을 가장 효과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여 통과시켜야할 책임이 국회에 남겨졌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평등법 제정 과정에서 지켜져야할 원칙과 논의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1) 평등은 배제와 함께 갈 수 없다. 누군가를 법에서 배제하기 위한 논쟁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 차별금지사유에 대한 입장

 

차별금지법을 두고 한국사회는 오랜 기간 동안 ‘누군가를 법의 보호에서 배제시켜야 한다, 그를 위해 특정한 차별금지사유는 법에서 삭제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싸워왔다. 이러한 주장이 어떻게 차별과 혐오 조장으로 이어지면서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을 훼손하게 되는지, 한국사회는 온몸으로 경험해왔다. 모두를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시민들의 거센 요구는 이제 누군가를 법에서 배제하자는 차원의 논쟁을 넘어서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하다. 유엔 또한 ‘인종,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반복하며 한국의 차별금지사유 논쟁에 경종을 울려왔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서의 논쟁 역사에 비추어볼 때, 누군가를 배제시키기 위한 차별금지사유의 삭제 논의가 21대 국회에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최근에도 성별정체성, 고용형태와 관련하여 성소수자를 또는 비정규직을 차별할 수 있도록 관련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하라는 취지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21대 국회는 평등을 위한 법에서 누군가를 배제하라는 모순적인 주장이 민주사회의 공론장 안에서 용납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선언해야한다.

 

 

2) 차별금지/평등법은 차별에 문제제기 하려는 사람들에게 확장된 언어를 제공하는 법이어야 한다.

 

○ 통합적인 차별의 개념 제공

 

차별금지/평등법안은 제1장 총칙에서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 표시.조장광고 등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차별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현행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간접차별을 명시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하는 등 법마다 차별의 개념을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 차별금지/평등법은 통합적인 차별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개별 법에 따라 다른 차별 규율의 범위를 표준화하여야 한다. 한편 외국의 차별금지법은 그 규율범위에 직접차별, 간접차별 뿐만 아니라 괴롭힘, 성희롱(성적괴롭힘)을 포함하고 있다. 복합차별의 특수성에 비추어 이에 관한 별도의 조항을 둔 법제도 많다. 이미 세계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이러한 차별의 개념들이 한국의 차별금지/평등법에도 반영되어야 한다. 차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피해자들의 언어가 역사적으로 쌓인 결과물이 국내외 차별금지법제에 명시되어 있는 차별의 개념이다. 차별금지/평등법은 차별의 개념을 2021년에 맞게 갱신함으로써,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제공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

 

○ 차별판단기준의 후퇴없는 법안 논의

 

차별금지/평등법안은 제3장에서 사회의 주요 영역별로 금지되는 차별에 관한 구체적인 조항들을 두고 있다. 제3장은 한국사회가 그동안 확인해온 차별 판단 기준들을 구체적으로 조문화한 것이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차별 판단 기준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하여 법안의 조문을 다듬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기존에 행해왔던 차별을 법 제정 이후에도 계속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조문 수정 요구는 단호하게 거부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기존의 차별 판단 기준을 후퇴시키는 차원의 조문 수정에 맞설 것이다.

 

 

3) 차별금지/평등법은 불이익 없이 차별에 문제제기하고, 공정한 토대에서 차별을 논할 수 있도록 돕는 법이어야 한다.

 

○ 공정한 토대의 기본이 되는 입증책임 특례조항의 중요성

 

차별의 문제는 입증과 관련하여 매우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사람을 다르게 대우한 것이 합리적인 이유 없는 행위로서 차별에 해당하는가가 문제될 때,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자료는 대부분 다른 대우를 한 행위자측이 가지고 있다. 따라서 차별 문제에서는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있는 행위자가 차별에 관해 주요한 입증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문제되는 행위를 한 행위자에게 차별에 관한 주요한 입증책임을 지우는 입증책임에 관한 특례조항은 국내외의 모든 차별금지법이 빠짐없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항이다. 차별금지/평등법안의 입증책임 배분 조항, 고용에서의 정보공개 의무조항은 공정한 토대에서 차별을 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 차별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조치 방지

 

차별금지/평등법안에는 차별에 관해 진정하거나 소제기했다는 이유로, 혹은 차별피해자를 돕는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보복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불이익조치 금지조항이 존재한다. 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사람과 그를 돕는 사람은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발견하여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공익신고자다. 차별금지/평등법은 차별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자나 조력자가 보복에 대한 우려 없이 그에 문제제기할 수 있도록 보호함으로써, 개인의 피해를 회복하고 사회의 공익을 증진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해야 한다.

 

 

4) 차별금지/평등법은 차별의 피해를 원상회복하고, 유사한 차별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법이어야 한다.

 

○ 가장 효과적인 차별 구제 방안의 모색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평등법안은 제4장 차별의 구제 제도와 관련하여 강조점이 조금씩 다른 내용을 두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 및 시정명령, 피해자의 소송 지원 및 소제기시 특례조항 등 차별의 구제를 위한 조항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하는 제도들이다. 각각의 제도 하나하나를 쪼개어 평가하기 보다 이들 제도가 맞물려 작동할 때 무엇이 피해 회복을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일지가 전체적으로 평가되고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차별피해자에게는 차별이 없는 정의로운 상태로 회복될 권리가 있다. 차별 시정 제도의 전체적인 그림을 놓고 가장 실효성있는 방식을 찾아 마련할 것을 국회에 요구한다.

 

○ 차별적인 관행과 구조를 바꾸어내는 법

 

차별금지/평등법은 차별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더불어 차별을 반복하게 만드는 관행과 구조에도 주목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 차별적인 관행과 구조를 실제로 바꾸어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유연하게 찾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차별금지/평등법안은 차별행위자 개인을 형사처벌하기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에서 차별 피해의 원상회복 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와 같이 다양한 차별 시정 조치를 권고하거나 명령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 내지 시정명령 제도, 법원의 적극적 조치 판결 조항, 기업 등의 악의적인 차별을 막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은 유사한 차별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장치로서 차별금지/평등법에 주요 조항으로 들어가야 한다. 차별금지/평등법안 중 국가와 지차제의 차별시정의무에 관한 제2장 역시 국가가 차별시정과 예방에 관한 기본계획을 세워 시행하고 평가함으로써 기존의 차별적인 관행과 구조를 바꿔나갈 수 있도록 하는 내용들이다. 국가기관이 평등 증진을 자신의 주요 과제로 인식하면서 차별 시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근거조항이 차별금지/평등법에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21년 8월 11일 차별금지/평등법 연내 제정을 위한 입법투쟁 돌입 기자회견 “평등을 제정하라”에서 발표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