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4) 냄새의 출처 : 희정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들어본 말 중에 하나는 무엇일까요?
‘냄새나’ ,‘ 더러워’ , ‘가까이 가기 싫어’ …
누군가에 대한 차별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냄새의 자리에는 ‘진짜’ 냄새가 아닌 차별적인 시선이 있음을,

그 시선이 변화할 때 누군가들의 삶에도 향기가 깃들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냄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세 번째 이야기손님 

기록노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싶어하는, 희정

 

 

 

1.
고백하자면, 음식물 쓰레기차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소독차를 본 어린아이처럼 뒤를 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런 증상은 지난겨울부터 시작됐다. 쓰레기 수거노동자들의 건강권 취재를 위해 일터에 갔다가, 음식물 쓰레기차 뒤에 매달려 이동할 기회를 얻었다. 쓰레기차 뒤 좁은 발판에 올라 두 팔로 매달려 가는, 청소노동자들의 이동방식이 문제로 거론되던 참이었다. 위험하다하기에 얼마나 위험한가 싶어 차에 매달렸다.

 

야심한 시각이었고, 그 동네 사람들은 웬 여자가 내지르는 악~ 소리를 들었을 게다. 보기보다 속도가 꽤 빨랐다. 골목골목을 이동하는지라 휘청거림도 컸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입을 벌릴 때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깊숙이 들어온다는 게였다. 그때 기분이 어떤지를 알고 싶다면, 집에 며칠 묵힌 음식물 쓰레기 앞에서 숨 한번 크게 들이마시면 된다.

 

옆에서 같이 매달려가던 노동자 한 분이 그 와중에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름 되면 이것보다 몇 배나 힘들다. 냄새만으로 코 안이 헌다. 이런 말들이었다. 숨조차 쉬고 싶지 않던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코 속이 헐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냄새만으로 코가 헌다는 게 상상이 안 갔다.

 

어쨌든 한 번 매달린(?) 경험 때문인지, 그날 이후로 쓰레기차만 지나가면 반가웠다. 그런데 요사이는 더는 반갑지 않다. 날씨 탓이다. 음식물 쓰레기차가 옆을 스쳐만 가도, 차에 매달렸을 때 맡았던 악취보다 몇 배나 강한 것이 코를 찔렀다. 그제야 여름에는 코 안이 헐 정도라 한 노동자의 말을 이해했다. 이제 나는 쓰레기차를 보면 숨을 참고 미간을 찌푸리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은 여전히 쓰레기차에 매달려 코 안이 헐어가고 있다.

 

왜 굳이 그런 식으로 이동을 할까. 쓰레기에 코를 대고 차 뒤에 매달리면 코만 허는 게 아니다. 손과 옷에 음식물 찌꺼기가 묻는다. 피부병이 우려된다. 사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왜 굳이? 나도 의문이었지만, 막상 나조차 몇 번 수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정말 조수석에 타기 싫었다. 쓰레기차는 꽤 높았다. 수거차에서 내려 쓰레기를 치우고 다시 차에 올라타야 했다. 차는 100미터마다 섰다. 쓰레기가 그 정도 거리마다 놓여 있었다. 노동자들이 차에 내리고 오르는 작업도 100미터마다 반복됐다. 이 과정이 하룻밤에 200번 넘게 있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번잡스럽고 힘들다.

 

또 오르고 내리며 특정 부위가 차체에 닿거나 자주 사용되었다. 실제 이와 같은 반복으로 엉덩이뼈 근육이 망가진 노동자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리하지 않고 살살 움직이면, 야밤에 시작한 일은 해가 떠도 끝나지 않는다. 시간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할당된 구역 쓰레기를 모두 수거해야 하루 일이 끝나는 식이다. 노동자들은 근육 손실과 과로질환에 시달리느니, 그냥 코 좀 헐고 재수 없으면 차에서 떨어지는 것을 택하게 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나름의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더러운 냄새쯤이야 선택을 하는데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날 내가 맡은 냄새보다도 더 충격적인 것은, 세면 시설이 몇 해 전만 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샤워시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난 후에야 생겼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인근 가게에서 물을 얻거나 생수를 사와 얼굴하고 손만 대충 씻고 퇴근하는 식이었다. 왜 샤워시설이 없었냐? 물으니, 노동자들은 회사가 돈이 없다고 했다. 사장 하나에 사장 아들 이사 하나에 직원 일곱 여덟 되는 그런 업체였는데, 서울시랑 계약을 맺어 쓰레기봉투가 50원 100원에 판매되는 비용으로 운영을 한다고 했다. 하청 단가가 낮아 업체도 허덕인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만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닌지, 노동자들이 씻지 못하는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건설 노동자들 또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씻을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피로한 퇴근길, 전철이나 버스 구석에 몸을 웅크리거나 일부러 서 간다고 했다. 땀 냄새 때문에 눈총을 받느니 몸이 힘들어도 서서 간다고.

 

사장님 차 배기량은 늘어나지만 노동자들의 씻을 공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그 사장님이 여유가 생김 그런 공간 하나쯤 마련해 주려 하지만, 사장님 머리 위에 앉아 단가 후려치기를 하는 원청 기업(또는 시市)이 있는 한 가능치 않는 일이다. 그 옆에서 우리는 노동자란 땀내 나는 그런 존재니까 생각하고 만다. 노동자는 땀 흘리고 땀 냄새를 풍긴다. 

그들이 땀내를 풍기는 이유는 육체노동으로 땀을 흘렸기 때문이 아니다. 작업공간 내 씻을 공간이 없었고, 환기와 냉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땀 흘려 성실히 일한 노동자에게 샤워 시설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법적으로 처벌이나 강력한 시정이 가능한 사회라면, 노동자가 흘린 땀은 마르기도 전에 씻길 것이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돈 있는 자본가 시민 계급은 청결과 위생이라는 관념을 획득했지만 공장에서 일하기 바쁜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었다. 냄새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누는 차별과 배제의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문제는 여전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위생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지 몇 백 년이 지났고, 이제는 어디서든 수도만 틀면 물이 나온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퀴퀴한 땀 냄새로 말하여 진다. 실제 작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씻을 공간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노동자의 냄새가 몇 백 년이 지나도 여전하다는 것은 노동자의 지위가 그 몇 백 년 전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게 아닐까 의심 들게 한다. 더불어 노동자의 땀 냄새는 어쩌면 강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2.
노동자가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악취를 맡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성수동 작은 구두 공장에 취재를 갔을 때,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 그럼에도 겨울이라 창문은 닫혀 있고, 환풍기 하나가 저 멀리서 느리게 돌아갔다. 잠시 후 민망했는지 사장이 와서 창문을 열라고 작업자들을 다그쳤다. 난로 석유 냄새가 나니 창문을 열라고 했다. 사장님 말은 바로 하셔야지요. 난로 냄새가 아니었다. 그건 본드 냄새였다. 구두 가죽을 붙이는 데 수많은 양의 공업용 본드가 사용됐다. 한 작업자는 말했다. 괜찮아요. 코는 금방 적응해요. 작업환경이 사람을 위해 있지 않으니, 일하는 사람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밥 먹으러 가는 시간도 아까워 냄새 가득한 뿌연 공장에서 밥을 시켜 먹는 사람들이었다. 후딱 먹어치우고 구두에 또 손을 댄다. 그만큼 바쁘다. 그들은 공장 안에서 일해도 구두 하나 당 수당으로 먹고 사는 허울 좋은 일당제 개인사업주들이다. 일당도 단가도 자꾸만 떨어져,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바보 만든다는 본드 냄새 따위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

 

바보 정도만 되면 감사한 일이다. 본드 정도면 감지덕지다. 때로는 머리에 종양이 생기고, 가슴에 암 세포가 생기고, 시신경이 망가지고, 백혈구에 이상이 온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청정산업, 굴뚝 없는 공장이라 불리던 반도체 산업에서 직업병이라 의심되는 백혈병이 발생했다. 하지만 공장에서 어떤 약품을 쓰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정보는 차단되었다. 일단은 직업병 제보자들에게 알음알음 작업현장에 대해 묻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 자주 질문한 것이 어떤 냄새가 났냐는 것이었다. 화학물질 사용을 알기 위해서였다.

 

암모니아 냄새, 비린내, 우유 상한 냄새, 썩은 계란 냄새. 제보자들의 답은 다양했다. 무슨 공장에서 저런 냄새가 나는가, 나는 좀 놀랐다. 지린내라 표현되는 냄새가 났다. 화학약품이 뒤엉켜 만든 냄새였고, 밀폐시설과 환기시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냄새였다. 심지어 냄새 때문에 구역질을 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사람이 일하다 토를 할 정도의 냄새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존재했다. 왜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자신이 장녀라는 어떤 사람은 말했다. 꿈에 반도체 공장이 나왔는데, 자기가 그곳에서 방진복을 입고 있더라. 여기서 일을 하면 또 몸이 아플 텐데. 나와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발이 안 떨어지더라. 가족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하지? 우리 집 벌이는 누가 하지? 반도체 공장을 나온 지 10년이 된 지금도, 10년 내내 아프면서도 꿈 속에서 조차 공장을 나오지 못했다.

삼성과 다른 전자산업 기업들이 제공하는 (다른 생산직에 비해 상대적인) 고임금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병들어도 클린룸을 뛰쳐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고임금을 제공하지 않아도, 노동자들은 뛰쳐나오지 않았다. 고용되지 않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전무하고, 임금이라고 해봤자 최저임금 수준을 보면 알만하다.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이 당연한 구조고, 그래서 고용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나를 고용한 그곳에서 무슨 냄새가 나든, 어떤 공기가 코로 들어오는 지금은 안 잘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3.
노동자는 열심히 일한다. 그래야 안 잘린다. 그래야 생활임금을 지킬 수 있다. 택배 배달노동자를 취재차 따라다닌 적이 잇었다. 그 분은 날 배려한다고 물건을 평소에 2/3 밖에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2분에 하나 꼴로 배달을 했다. 그저 상자 옮기는 행위가 끝이 아니다. 운전을 해 주소지에 도착한다. 운전 사이사이 다른 고객들에게 전화를 해 부재를 확인한다. 도착하면 탑차 운전석에서 내려 짐칸 문을 열고 짐을 찾아 꺼내고 문을 닫고 집을 찾아가 벨을 누르고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고, 사람이 없으면 또다시 전화를 걸어 물건을 어찌할지 확인하는 작업이 2분 안에 끝나야 한다. 차에서 내리면 뛰기 바쁘다.

 

일을 얼추 정리하고 택배 노동자와 인터뷰에 들어간 시간이 저녁 9시.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전표 정리를 한다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종일 뛰면서 일을 해도 일이 안 끝난다. 이런 사정이니 밥을 제대로 먹으며 일할 리 없다. 그는 배달을 하다가 식당에서 나는 냄새, 가정집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나면 허기져 ‘미치는 거’라 했다. 저녁에 배달 간 집 식구들이 밥상머리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콱 막힌다 했다. “서글프죠.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식구들하고 다 같이 밥 먹어본 적이 언젠가….” 일상적인 음식 냄새조차 노동자에게는 서글픔이 된다.

 

노동자 간에도 다른 냄새가 존재할까 싶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의 한 노동자에게 물었다. 정규직 비정규직 냄새가 무엇이 다르냐고. 정규직이 꺼리는 힘든 일을 비정규직이 하니 땀내가 더 난다 이 정도의 답변이 올 줄 알았는데, 그는 ‘담배 냄새’를 말했다. 정규직은 라인에서 담배를 피며 일하는 게 가능한데 같은 공정 옆 자리에서 비정규직이 담배를 물면 반장 조장이 쫓아와 한 소리, 지나가던 정규직이 한 소리 한다는 게다. 자동차 공장에서 담배 냄새를 풍길 수 있는 사람은 정규직뿐이다.

 

노동조건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으면 어떤 냄새든 차별과 불평등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다. 정당하지 못한 우리 노동은 서글프고, 별 것이 다 서럽기 때문이다.

 

4.
한 친구에게 물었다. ‘노동하면 어떤 냄새가 떠올라?’ 노동자의 입장에서 대답해주길 바란 질문이었다. 그 친구는 되물었다. ‘노동의 냄새는 다 똑같은 거 아니야?’ 답변이 의아했다. 노동의 냄새가 똑같다? 노동 특유의 냄새가 차별이나 혐오, 배제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다?

 

노동자인 그는 말했다. “노동을 하며 나는 냄새는 복합적이잖아.” 어떤 냄새이건 그건 노동의 과정에서 포함되어 있는 것,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 했다. 빵을 만드는 사람은 빵 냄새가 나는 거고. 화장품을 파는 사람은 화장품 냄새가 나는 거고. 돼지우리를 치우는 사람은 축사 냄새가 나는 거고. 주물 공장 노동자에게는 철과 불 냄새가 나는 거다. 그 속에 땀내가 섞이고 동료의 체취가 섞이고 공장 기계 냄새, 그 지역 특유의 냄새 등이 섞인다. 냄새란 노동을 하는 자가 자연스레 맡는 것이고, 자연스레 뿜어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노동의 냄새를 맡고 노동의 냄새를 몸에 묻혀감에도, 우리 스스로도 노동하면 땀내부터 떠올리게 된다. 노동의 냄새를 특화시킨다. 사람을 나누고 쪼갬으로 효율과 이윤을 얻어가는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에 우리 또한 동참하고 있다.

 

나는 노동자들이 맡아야 하는 독한 냄새에 분노한다. 이들이 그리고 내가 가능한 한 냄새가 잘 빠지는 환기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일하길 원한다. 특정 냄새에 신분의 차이나 서글픔을 느끼지 않길 바란다. 그럼에도 나는 노동이 어떤 특정한 냄새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련다. 우리는 모두 노동을 하며, 그 노동의 과정에서 냄새를 가지게 됨으로.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01

02

03

04

첫 번째 이야기손님

‘반말 해도 되는 사람?’

마문

번째 이야기손님

동자동 쪽방지역 주민

공동체와 함께하는

조승화

세 번째 이야기손님

기록노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싶어하는

희정

네 번째 이야기손님

분홍 메니큐어를

하는

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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