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법률위원회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는 헌법상 평등이념을 실현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목표로 하는 전국 17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연대체입니다. 차제연의 기획과 실행의 역할을 수임하는 집행위원회를 비롯하여 캠페인팀, 조직팀 등의 팀과 법률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법률위원회는 법학자, 변호사, 노무사 등 차별금지법에 애정과 관심을 가진 법률전문가들이 함께 하고 있고, 20명 내외의 위원들이 꾸준히 차별금지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자체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법률위원회는 국내, 해외의 차별과 관련된 사안(판결 등 포함)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고, 법적 시각을 담은 논평을 발행합니다.
최근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으로 촉발된 역사 왜곡 문제는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의 5.18 민주화운동 비하 사건으로 이어지며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될 수 없는 혐오표현. 하지만 혐오 표현 규제가 자의적이거나 과도한 검열로 흐르지 않도록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혐오표현 문제를 ‘표현의 자유’와 ‘강력한 처벌’이라는 대립을 넘어 ‘평등’을 구현해나가는 과정으로서 혐오표현 논쟁의 핵심과 우리 사회에 필요한 기준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징계를 넘어 배움과 공존으로: 배재고 ‘스타벅스’ 사건 해석하기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으로 촉발된 역사 왜곡 문제는,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사건으로 이어지며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직접 역사 비하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서자, 논쟁은 급격히 ‘엄벌해야 한다’는 입장과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정치적 대립으로 갈라졌다. 이 소란 속에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이 남는다. 혐오표현은 과연 처벌한다고 하여 근절되는가? 학생들에게 출전 정지 처분을 내리고 대학 입시나 프로 진출에 불이익을 준다고 해서, 당사자들과 또래 청소년들이 혐오표현의 본질적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인가?
약 3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성희롱이라는 행위가 실재했음에도 이를 명확히 명명하는 법적·사회적 개념이 부재했다. 그 결과 해당 행위는 ‘짖궂은 농담’이나 ‘추파’처럼 행위에 내재된 권력관계를 소거한 모호한 단어로 불리곤 했다. 성희롱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이후에야 우리는 이를 ‘성별 권력관계에 기반하여 당사자의 동의 없이 성적 불쾌감을 야기하는 언동’으로 명확히 정의할 수 있었다. 나아가 직장 내 성희롱 개념을 도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사건을 제대로 분석하며 일상의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체적 노력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었다.
혐오표현 문제 역시 이와 유사하다. 혐오표현은 현재 한국 사회에 분명히 실재하며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피해를 낳고 있다. 그러나 혐오표현이 정확히 무엇인지,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지에 대한 정리된 논의는 요원하다.
혐오표현은 성별, 인종, 장애, 성적 지향 등 특정 정체성 속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모욕·비하하거나 폭력을 선동함으로써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고 조장·강화하는 언동이다. 구조적으로 종속된 소수자를 겨냥하여 발휘되는 해악이라는 점에서 개인 간의 모욕이나 일반적인 역사 부정 발언과 구별되지만1, 이번 배재고 사건은 국가폭력의 직접적 피해를 겪은 광주 지역의 학생들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출신지역을 기반으로 한 혐오표현의 성격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혐오표현이 심각한 이유는 단순히 상대방이 개인적인 모멸감이나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다. 혐오표현은 소수자가 공론장에 동등한 시민으로 참여할 권리를 위축시키고 구조적·사회적 배제를 고착화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문제된 조전혁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동성애 교육 추방’ 공약 현수막은 학교 현장에서 성소수자 인권 논의를 위축시키고, 성소수자의 차별이나 권리의 문제를 공적 담론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처럼 혐오표현은 대등한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니라 집단과 집단, 나아가 ‘지배 권력집단과 구조적으로 억압받는 집단 사이의 문제’다. 사회 구조가 다층적이고 차별이 교차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혐오표현은 명백한 권력의 비대칭성 속에서 소수자를 향해 작동하는 폭력임을 규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말과 생각을 검열하기 위함이 아니다. 혐오의 폭력으로 인해 소수자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것을 방지하고, 누구나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평등한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 평등한 공론장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성숙과 직결된다.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자격으로 말하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며, 그 존재답게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혐오표현 규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오히려 헌법 가치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정치인들은 학생들을 옹호하며 화환 등을 보내며 지지행위를 보임으로써, 문제를 단순한 표현의 자유 보장 여부라는 피상적 찬반 논쟁으로 전락시켰다. 이는 혐오표현이 내포한 권력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지우고, ‘표현의 자유’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기계적으로 동등하게 배치하며 발생한 논리적 왜곡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혐오표현을 어떻게 규제하여야 하는가? 사건 직후 정치권과 언론은 출전 정지 수위와 대학 입시 및 프로 진출 불이익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학생들이 왜 그런 표현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외쳤는지, 진정성 있는 성찰을 이끌어낼 방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소수자 혐오가 하나의 장난 섞인 밈으로 놀이화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소거되고, 오직 엄벌주의의 잣대만이 난무했다.
청소년의 혐오표현은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공직자나 정치인의 발화, 혹은 대중들의 소비와 직결된 기업의 발화와는 분명히 구분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들의 혐오표현은 구조적 차별을 강화하고 시민들을 선동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혐오표현은 이미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정치를 흡수하여 유희 수단으로 소비한 결과에 가깝다. 발화의 맥락이 다른 만큼 접근과 해결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이 탑다운 방식의 일시적 처벌 중심 대응은 학생들에게 ‘왜 이것이 잘못되었는가’를 일깨우기보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운이 없어 걸렸다’는 식의 회피성 태도만을 남긴다. 정치권의 혐오 선동,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혐오 상업화, 학교 현장에서의 인권·민주시민교육 부재 등 학생들이 혐오를 습득하게 만든 사회적 배경을 함께 짚어야 한다. 눈앞에 드러난 발화와 표현의 싹을 잘라내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라나게 한 토양을 들여다보는 것이 이 시대에 요구된 과제이다.
배재고 학생들이 광주일고 학생들과 1대 1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했더라도 그런 구호를 외칠 수 있었을까? 학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인과응보적 단죄가 아니라, 자신이 내뱉은 말이 타인과 공동체에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체감하게 하는 교육적·회복적 시스템이다. 발화자의 입을 봉쇄하기보다는, 혐오의 언어가 빠져나간 자리에 평등과 존중의 언어를 채워 넣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동등한 시민을 공격하고 배제하는 혐오표현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기에 분명히 제어되어야 하지만, 그 제재는 궁극적으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 ‘평등’을 구현해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매우 이상적이고 좋은 말들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있을까? 애초에,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현행 정보통신망법, 집시법, 옥외광고물법 등의 개별 조항만으로 파편화된 혐오표현을 규율하는 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차별금지법은 혐오표현을 열거하여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 혐오표현의 근간이 되는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선명하게 규정하는 기본 규범이다. 차별금지법이라는 원칙이 확립될 때, 우리는 어떤 집단이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규범에서 벗어나있는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용인될 수 없는 차별인지를 공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이 명확해질 때 비로소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 역시 자의적이거나 과도한 검열로 흐르지 않고 구체적이고 정당한 기준을 갖출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야말로 표현의 자유가 부당하게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고, 혐오표현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발화자를 처벌하거나 제재하는 방식으로는 혐오의 재생산을 막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어떤 차별을 끝내 거부할 것인지 선언하는 사회적 대원칙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고도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 그 출발점에 차별금지법이 있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법률위원회 위원인 최새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님이 작성하였습니다.
1 「차별금지법 권고 20년 : 한국사회 현재적 쟁점과 차별금지법」토론회 자료집, 2026, 8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