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UP] 2023-5월호 | 평등, 삶의 현장! : 퀴어여성네트워크
차별에 맞서 크고 작은 승리의 경험들, 차별의 현장들을 드러내며 지금도 차별에 맞서 분투 중인 현장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생생한 이야기들 많이 기대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2017년, ‘제1회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가 동대문구체육관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퀴어여성게임즈의 역사적인 시작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죠. 그런데 동대문구체육관은 돌연 대관허가를 취소합니다. 난데없는 천장공사가 잡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2년 5월, 법원은 동대문구의 대관취소에 대해 이렇게 판결합니다.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특정인을 배제하는 행위는 평등의 원칙에 반하여 위법하다.”
한국에서 최초로 공공시설 이용 성소수자 차별 인정과 그에 따른 손해배상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그 자체로 한편의 스포츠 드라마 같은 ‘퀴어여성네트워크’의 이야기인데요! 정말 궁금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어떻게 싸웠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래서 만났습니다. 이야기보따리를 싸안고 온 퀴어여성네트워크의 박한희 활동가를요. 하늘은 흐려도 따스하게 설레는 봄날, 저희가 나눈 이야기 함께 보실래요?
▲ 사진: 연분홍치마 회의실에서 인터뷰중인 박한희 활동가
몸으로 말해요, 성소수자 인권
Q. 반갑습니다! 화제의 퀴어여성게임즈를 꼭 ‘평등! 삶의 현장’에 모시고 싶었습니다. 먼저 퀴어여성게임즈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시작할까요?
A. 먼저 퀴어여성네트워크(이하 퀴여네)의 소개를 해드려야겠네요. 퀴여네는 2015년 10월에 열린 ‘여성가족부의 성소수자 차별에 분노하는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기획단의 후속 네트워크인데요, 이렇게 여성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모아보니 한번의 행사로 끝내는 것이 아까웠어요. 이런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하겠다 싶었죠.
퀴여네는 여성인권과 성소수자인권이 따로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왔는데,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배제와 차별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2017년 언니네트워크 페미니즘 캠프에서 나눴죠. 몸을 쓰고 만나는 일이 참 중요한데, 여성성소수자들이 배제되고 소외받았던 경험들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성마라톤에서 ‘성소수자 인권 없이 성평등 없다’는 등팻말을 붙이고 달린 적이 있어요.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 기획한 여성성소수자 생활체육네트워크가 퀴어여성게임즈입니다. 왁자지껄하게 놀고 가는 봄소품 명랑운동회가 아니라, 아마추어 대회처럼 규칙, 우승자, 순위, 상금도 있는 생활체육대회죠. 여성들이 체육대회에서 스포츠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지금까지 총 3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사진: 무지개깃발이 나부끼는 체육관 (퀴어여성네트워크 제공)
퀴어여성게임즈 참가자들이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 관중석에서는 응원하는 이들이 손을 흔든다.
성소수자가 계주한다니까 빗물공사를 하는 체육관이 있다?
Q. 이렇게 훌륭한 체육대회의 대관을 동대문구체육관은 왜 취소한 거죠?
A.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요. 처음에 우리는 체육대회인데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신청해서 대관승인도 되었어요. 전혀 문제가 없었죠.
그때 대회를 홍보할 겸, 펀딩할 겸 카카오 같이가치에서 모금을 하고 있었어요. 금요일에 홍보뉴스를 띄웠는데 월요일에 동대문구에서 연락이 왔어요. 민원이 쏟아져서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퀴어행사라고 했으면 검토했을 건데 왜 말 안했냐면서 미풍양속에 어긋난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저희가 배드민턴하고 풋살하고 계주하는 게 미풍양속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도 있다?” 이렇게 물었더니 “네네” 그러데요. 그러면서 반대하는 단체들이 부수고 하면 시설위험이 있는데 책임을 어떻게 질 거냐는 식으로 취소를 계속 유도했어요.
▲ 이미지: 퀴어여성네트워크에서 제작한 ‘동대문구 명언집’ 중 일부 (퀴어여성네트워크 제공)
“우리가 생각한 체육대회” 아래 열정적인 테니스 경기 사진이,
“그들이 생각한??? 전통 (미풍양속)” 아래 그네타기, 굿, 널뛰기 등의 클립아트가 있다.
일단 우리는 신청한 대로 하겠다고 했고 우리끼리 긴급회의를 하려고 모였죠. 회의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또 연락이 온 거예요. 공사가 있었는데 깜빡했다, 그러면서 대관을 취소해버렸어요.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으면서 동시에 면담 신청을 했죠. 그주 금요일에 동대문구 관계자를 만났는데 똑같은 이야기를 해요. 체육관 팀장이 하는 말이 “내가 출장 간 사이에 담당자가 공사가 있었는데 모르고 대관 해줬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시설담당자가 갑자기 끼어들더니 빗물이 새서 바닥에 물 고인다고, “조그마한 빗물이 큰 빗물 된”대요. 그래서 우리는 그러면 공사를 지금 해라, 지금 9월이고 우리 대관은 10월 아니냐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래서 그다음주에 분노의 궐기대회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궐기대회를 좋아하더라고요. 송판 부수기 이런거 하니까 다음에 궐기대회 언제하냐고(웃음).
“떼인 인권 받으러 왔습니다”
Q. 정말 분기탱천할 노릇이네요. 그래도 인권위 진정, 소송 제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인권위 진정은 2017년에 넣었는데 2019년에 차별이라고 결과가 나왔어요. 그 상황에서 여러가지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죠. 인권위 결정문을 보면 25일 대관취소한 날, 팀장이 인권위에 전화해서 면담을 했다고 해요. 성소수자 행사라서 민원이 들어오는데 취소해도 되냐고 물었고, 상담사가 차별이라고 말했는데 알겠다고 하고 끊었대요. 취소 통보를 하기 전에 이게 차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대관 신청하기 전에 공사가 잡혔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어요. 명백히 취소를 위해 한 말이었던 거죠.
그런데 권고는 권고일 뿐이잖아요. 재발방지 요구해봤자 동대문구 또 신청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그 이후 다른 지자체에서 차별 안했냐? 똑같이 또 했어요. 성소수자 관련 사업이라고 하면 취소하는 거죠. 그래서 희망을만드는법에서도 같이 고민했는데, 최소한 ‘차별하면 돈 내야 된다’라도 되게 하자고 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던 거예요. 언니네트워크와 기획단 개개인을 원고로요.
▲ 사진: 동대문구청 정문에 “성소수자에 체육관을 열어라”라고 적힌 피켓이 가득 붙어있다. (퀴어여성네트워크 제공)
‘2017 여성 성소수자 궐기대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작품이다.
Q. 정말로 작은 빗물이 큰 빗물이 되었네요. 소송 과정은 어땠나요?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을 것 같아요.
A. 2020년 1월 16일, 동대문구 퀴어여성체육대회 대관차별 손해배상 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진행했어요. 슬로건은 ‘떼인 인권 받으러 왔습니다’. 소송은 2022년까지 총 2년이 넘게 걸렸죠. 그사이 2018, 2019년에 퀴어여성게임즈를 진행했고요.
소송과정은 참… 재판 전에 조정이라는 것을 해요. 우리는 차별을 인정하고 공개사과 하라고 요구했어요. 동대문구는 차별한 거 없다고 그러니 조정이 될 수 없었죠. 재판 과정에서 공사가 미리 잡혀있었다는 증거를 못 내 더라고요. 공사대장을 내라고 하는데 대장을 연필로 썼다가 지웠기 때문에 기록이 없다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1심에서는 지금까지 선례가 없다면서 판사가 미적지근하더라고요. 우리가 외국 판례를 가지고 왔더니 국내 사건은 없냐고 묻데요. 법원이 차별 사건을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거죠. 1심 판결은 결국 기각이었어요. 취소는 위법하나 차별은 아니라고 했죠. 그리고 기획단이 전부 성소수자 당사자인 게 아니면 차별이 아니라는 논리도 있었어요. 언니네트워크는 단체인데 단체는 정신적 손해를 느낄 수 없으니 배상할 게 없다고 했고요.
연필로 쓴 차별, 평등으로 지우다
Q. 정말 황당하네요. 그러면 1심 이후 항소를 결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A. 항소했다가 지면 소송비용까지 물어내야 해서 고민이 됐죠. 그래도 어쨌든 동대문구의 대관 취소는 잘못이라는 게 분명히 나왔으니까 항소하기로 했어요. 1심 결과가 불리하게 나왔기 때문에 전문가 의견서 등을 받아서 제출하고, 꼼꼼히 준비했어요. 그리고 저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더 열받아서 한소리 하기도 했죠.
“민간이 운영하는 체육시설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거짓말까지 하며 대관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피고들은 지자체에게 위탁을 받은 공공기관이며 동대문구체육관은 시민들 누구나 차별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입니다. 그럼에도 성소수자들이 농구를 하고 배드민턴을 한다는 이유로 체육관 이용조차 거부당한 것이 차별이 아니라면 무엇이 차별입니까?”
– 2심 재판에서 박한희 활동가의 발언
주요하게는, 성소수자 행사이기 때문에 취소한 것 자체가 차별임을 주장했어요. 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니면 차별이 아니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요. 그리고 평등권을 침해당한 것 자체가 손해라고 했죠. 헌법의 기본권을 침해당한 게 손해가 아니라면 뭐가 손해일까요?
Q. 반박할 수 없는 주장이네요.
A. 그래서 2심에서는 동대문구체육관 대관 취소는 성소수자 차별이 맞고, 언니네트워크와 기획단 개개인 모두 대회를 같이 준비했으니 차별의 피해자가 맞다고 손해배상을 인정했어요. 1심 판결을 뒤집은 거죠. 동대문구는 판결이 나온 날에는 배상액을 줄 것처럼 말하더니 다음 날 전화로 상고를 통보했어요. 대법원에서는 재판을 하지 않고 심리불속행이 나왔죠. 2심 판결이 이미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더 볼 게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2심 결과가 최종 판결이 되면서 우리의 승리로 끝난 거죠.
Q. 퀴여네가 가장 기뻤겠지만, 정말 많은 이들이 함께 기뻐했어요. 재판 결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혹시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어땠을지도 궁금하네요.
A.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공공시설 차별과 관련된 판례가 없었어요. 소송 자체가 처음이었습니다. 공공시설에서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고 이야기한 것이 처음이라는 거죠.
그리고 일반 민사소송에서는 모든 것을 원고가 증명해야 해요. 우리는 증거를 다 갖고 있었어요. 대관 취소 통보를 받자마자 바로 정보공개청구해서 공사 일정이 없었다는 것도 받아놓았고, 증거로치면 우리가 질 수 없는 소송이었죠. 그러니까 연필로 썼다 이런 소리밖에 못했을 거고요. 그런데 만약 다른 사건이었다면? 만약 피고쪽에서 처음부터 소송 대비해서 자료 짜놓고 조작해놓으면? 사실 이번 것도 사전에 공사일정 잡혔던 것처럼 하나만 꾸며놔도 우리가 이길 수 없었겠죠. 회사나 이런 부분은 더 그럴 거고요.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기승전 차별금지법(웃음). 사실 차별금지법이 있어도 소송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손해배상은 달랐을 겁니다. 악의적 차별, 증거 조작이 있었으니까요. 대관취소를 통보한 날 공사공문을 급조했는데, 차별금지법에 ‘징벌적 손해보상’에 딱 맞는 사례예요. 그리고 차별금지법이 있었으면 차별이 곧 손해이기 때문에 구구절절 손해를 입증했던 구차한 과정이 없지 않았을까 해요.
차별은 차별이니까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이 웃었습니다. 차별이 차별임을 말하고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는 싸움은 지금도 다양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였습니다. 퀴어의 물결이 가득차올라야 하는 그날 그자리에서는 ‘청소년 청년 회복 콘서트’라는 것이 열립니다. 서울시는 청소년 행사를 우선하여 결정한 것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회복 콘서트는 2020년 성소수자 혐오를 전파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의 법정제재를 받은 적 있고 지금까지도 차별 방송을 서슴지 않으며 성소수자 혐오 선동을 해온 방송사 CTS가 주최하는 행사이죠.
그러나 퀴여네가 동대문구에 맞서 “차별은 차별”이라는 것을 증명했듯, 하늘이 두쪽 나도 “차별은 차별”입니다. 그리고 차별은 너무나도 많은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투명인간이 될 것을 압박합니다. 차별이 차별임을 증명하는 것조차 지난한 현실이지만, 우리의 싸움은 이 현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평등한 미래, 모두가 존엄한 내일, 광장이든 체육관이든 무지갯빛 물결로 채울 수 있는 시간으로요.
다음 ‘평등! 삶의 현장’에서는 3.8 여성대회를 함께 만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차별에 맞서는 힘찬 이야기, 기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