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혐오대응과 차별금지법

 


안녕하세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법률위원회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는 헌법상 평등이념을 실현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목표로 하는 전국 17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연대체입니다. 차제연의 기획과 실행의 역할을 수임하는 집행위원회를 비롯하여 캠페인팀, 조직팀 등의 팀과 법률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법률위원회는 법학자, 변호사, 노무사 등 차별금지법에 애정과 관심을 가진 법률전문가들이 함께 하고 있고, 20명 내외의 위원들이 꾸준히 차별금지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자체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법률위원회는 국내, 해외의 차별과 관련된 사안(판결 등 포함)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고, 법적 시각을 담은 논평을 발행합니다. 이번 칼럼은 2026. 6. 19. 열린 <차별금지법 권고 20년 : 한국사회 현재적 쟁점과 차별금지법> 학술대회 중 ‘혐오대응과 차별금지법’ 발제문을 요약한 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혐오대응 법정책과 맺는 관계를 살펴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법률위원회 칼럼

[혐오X차별금지] 혐오대응과 차별금지법

 

혐오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마주한 가장 첨예한 문제 중 하나다.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퍼지는 여성·성소수자 혐오, ‘혐중’으로 다시 주목받은 이주민 혐오, 그리고 이런 정서를 발판 삼은 극우 세력의 부상까지, 심각한 혐오 문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안들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혐오 대응의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분절적 대응책을 넘어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혐오 대응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차별금지법이 그 뼈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이 혐오표현 규제와 맺는 다층적 관계를 정리하고 차별금지법을 회피한 채 혐오표현만 규율하려는 시도가 빚어내는 구조적 모순들을 살핀 뒤 그 딜레마를 넘어설 출발점을 찾고자 한다.

 

차별금지법과 혐오표현, 그 다층적 관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혐오표현 리포트(2019)>는 혐오표현을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인종,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집단에게 모욕, 비하, 멸시, 위협 또는 차별·폭력의 선전과 선동을 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이라고 정의하였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법으로 혐오표현 일반을 규율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지만 혐오표현 규제와 여러 층위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① 직접적 규율: 차별금지영역(고용, 교육, 재화·용역 등)에서 발생하는 혐오표현을 차별금지법은 괴롭힘(harassment)과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으로 정의하면서 차별의 한 유형으로 직접 규율한다. 일터, 학교, 상점, 공공기관 등에서 발생하는 괴롭힘과 성적괴롭힘은 주요한 생활영역에서 피해자를 고립·배제시키는 행위로 차별행위와 마찬가지의 의미와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② 간접적 규율: 혐오표현은 개념과 규제 정당성 양 측면에서 차별금지원칙에 의존한다. 혐오표현을 이루는 보호속성(인종·성별·성적지향 등)은 차별금지사유에서 빌려온 것이고, 혐오표현 규제의 근거 또한 기존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③ 근본적 규율: 차별금지법은 차별적 행위와 제도를 시정·예방함으로써 혐오표현의 원인이 되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어나간다.

 

 

한국사회의 딜레마: 차별금지법을 회피하면서 혐오표현을 규율하기

혐오 대응은 어느 사회에서나 까다로운 과제다.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와 정면으로 부딪히고, 그 해악이 한 번에 드러나기보다 누적적·구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 문제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 있다. 바로 ‘차별금지법을 회피하면서 혐오표현을 규율하려는 시도’를 고수하는 데서 비롯되는 어려움이다. 혐오표현의 개념과 규제의 정당성이 차별금지법 체계에 기대고 있는 만큼 혐오표현 대응 법정책은 차별금지법제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국제인권기준들도 국가가 혐오 선동에 효과적으로 맞설 예방적·제재적 조치를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2007년 이래 19년간 차별금지법 제정이 의도적으로 미뤄지면서 차별금지원칙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일 자체를 피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강해졌고 그 결과 차별을 사실상 방치하거나 승인하는 토대 위에서 혐오대응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특수한 조건은 다음과 같은 모순들을 낳는다.

 

 

혐오 대응의 우선순위 전도

 

‘혐오의 피라미드(pyramid of hate)’ 모델은 편견이 방치되면 혐오표현으로, 혐오표현이 방치되면 고용·교육 등 생활영역의 차별로, 나아가 혐오범죄와 집단학살로까지 고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목적은 이 연쇄고리를 끊는 데 있다. 그런데 정작 규제의 목적인 상층부의 차별행위는 방치하면서 하층부의 혐오표현 규제만 논의하는 지금의 상황은 우선순위가 뒤집힌 것이다. 혐오표현이 위험한 것은 그것이 생활영역에서 실제 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차별금지영역의 차별을 효과적으로 규율해 그 고리를 끊는 일은 혐오표현 규제에 앞서는 긴급한 과제다. 또 차별금지법이 직접 규율하는 괴롭힘은 해악성이 가장 높은 혐오표현에 해당하므로 혐오표현 중에서도 최우선으로 규제해야할 대상이다. 2016년경부터 반복된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은 이 문제를 잘 보여준다. ‘페미니스트’를 색출해 압박하면 고용상 실제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효능감은 지난 수년 동안 온라인상에서 혐오표현이 확산되는 동력이 되었고, 이제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채용에서 해고까지 노동의 전 단계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차별·괴롭힘 문제로 자리잡았다. 일터의 차별과 괴롭힘을 효과적으로 규제해야만 온라인 혐오표현과의 연쇄 고리도 끊을 수 있다.

 

 

혐오표현 개념에 대한 혼란 

 

혐오표현과 차별금지원칙과의 연결고리가 정면으로 논의되지 않으면서 혐오표현의 개념에 대한 대중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여성혐오’만큼 ‘남성혐오’도 심각하므로 똑같이 규제해야 한다는 담론이 대표적이다. 혐오표현의 해악은 역사적·구조적으로 종속되어 차별받아온 소수자 집단을 겨냥할 때 생기므로, 혐오표현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이다. 차별과 연계된 이 비대칭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혐오표현 규제가 형식적 중립성을 내세운 “욕설·나쁜 말에 대한 규제”로 잘못 운용되거나 소수자의 대항표현이 오히려 규제대상이 되어 위축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2018년 한 연구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2014-2017년 심의에서 남성에 대한 혐오표현 규제(16.1%)가 여성에 대한 규제(14.1%)보다 더 빈번하게 이루어졌다고 분석되기도 하였다. 1

 

혐오표현의 보호특성을 자의적으로 선별하는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 202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65.4%가 직장 내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고 청소년 성소수자의 71.1%가 교사로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들었다고 응답하는 등2 한국의 성소수자 혐오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비교법적으로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문제는 혐오표현 규제 법정책의 핵심 의제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는 혐오표현에 대한 법정책들은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보호특성으로 명시하기를 피하고 있다. 이는 차별금지법상 차별금지사유를 둘러싼 논쟁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려는 데서 반복되는 문제다.

 

 

사라지는 국가의 책임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을 증진할 국가의 의무는 곧 혐오에 대응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적극적 의무로 이어진다. 국가는 사후적 제재만이 아니라 예방·교육·피해구제·환경개선을 아우르는 다층적 조치와 체계적인 법제도 설계를 통해 혐오표현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의 혐오 대응 법정책 논의가 개별 행위자에 대한 형사처벌 또는 행정적 규제를 중심으로만 전개되면서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체계적·다층적 적극적 의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가의 제도적 차별이 혐오 확산에서 어떻게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가 지워지는 것이다. ‘혐중’으로 관심이 집중된 이주민 혐오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은 거듭하여 ‘불법체류자’ 용어의 철폐·삭제를 권고해왔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여전히 ‘불법체류외국인’ 용어를 고수하며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등 단속 중심 대응을 지속하고 있다. 국가 스스로 이주민을 ‘불법’으로 호명하고 단속·배제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한 이주민 혐오는 해소될 수 없다. 성소수자 혐오도 다르지 않다. 한국정부는 성소수자를 명시적 정책대상으로 다루기를 거부하고 국가 인권 정책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오히려 후퇴시켜 왔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견해들을 경청해야할 정당한 의견으로 취급함으로써 공적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 이처럼 국가가 평등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는 것은 단순한 부작위가 아니라 기존의 차별구조를 추인하고 혐오 세력에 정당성의 공간을 열어주는 적극적 효과를 발휘한다. 

 

 

딜레마를 넘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까

 

포괄적 차별금지법 추진으로 차별금지원칙을 공적으로 확인하기

 

지금 문제는 차별금지법의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차별금지법에 대한 의도적인 ‘회피’가 만드는 공적 담론의 지형이다. 차별금지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정부 입장이 19년간 반복되었고 이는 혐오표현이 정당화되고 극우세력이 조직화되는 토대가 되었다. 한국의 혐오 대응은 차별금지원칙에 대한 공적 확인을 회복하는 데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며, 이때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추진은 차별과 혐오에 단호하게 맞서겠다는 국가의 입장을 사회 전체에 알리는 상징적 무게를 지닌다.

 

 

혐오표현의 해악성에 따라 규제의 우선순위와 수단 판별하기

 

혐오표현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해악성에 따라 규제의 우선순위와 정도를 판별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포함한 여러 법제 정비를 통해 차별금지영역의 차별·괴롭힘부터 실효성 있게 규율하는 일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차별적 환경 조성의 문제로 보는 인식 전환과 ILO 제190호「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에 관한 협약」비준 또한 필요하다. 차별금지영역이 아닌 일반 공론장에서의 혐오표현 규제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가장 해악성이 높은 고위공직자들의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등과 같이 혐오표현 규제 제도들이 먼저 도입되는 경우[각주: 2025. 12. 24. 개정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 2의2호는 혐오표현을 ‘불법정보’로 규정하였다.] 자의적 집행 우려 없이 국제인권법상 혐오표현 법리에 따라 운용될 수 있도록 시행령·매뉴얼·지침을 정비하여야 한다. 

 

 

예방, 교육, 대항표현 증진 등 혐오 대응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의무

 

혐오에 대한 대응은 무조건적인 표현의 금지보다 ‘더 많은 표현’, 즉, 예방·교육·대항서사의 촉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이다. 국가는 혐오의 구조적 조건에 대한 분석, 교육·모니터링 체계의 구축, 피해자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차별적 언어와 제도를 바로잡을 적극적 의무를 진다. 지난 지방선거의 혐오 현수막을 시민들이 신고하고 ‘댓글 현수막’을 만들어 대응했던 사례처럼 시민들의 자율적 대항표현 역량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 국가는 이러한 시민들의 대항표현들이 더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대항표현이 촉진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법률위원회 위원인 조혜인(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님이 작성하였습니다.

 


1 전창영,나은희,최철호,김민정(2018),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혐오표현 통신심의에 대한 탐색적 고찰, 방송통신연구 2018 가을호, 86-87면

2 홍성수 외(2021),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 166, 167, 24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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