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서관의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검열해 2,517권을 폐기시키고, 3,340권을 열람제한 한 경기도교육청! 여전히 사과도, 재발방지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을 규탄하는 <평등낭독회>와 <성평등 권리 선언대회>을 진행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
– 민원을 핑계 삼는 차별적인 행정을 중단하라!
– 성평등·성교육 도서 검열 사태 즉각 사과하라!
– 성평등·성교육 도서 검열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성평등도서를 모두의 자리로! 평등낭독회
📖 일정 : 2024년 11월 19일, 11월 26일, 12월 3일 (매주 화요일)
⏰ 시간 : 오전 11시 30분부터~ 약 1시간 진행
🏫 장소 :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앞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도청로 28)
*** 11.19(화)부터 진행하는 <평등낭독회>는 현장 낭독 신청도 가능하니, 함께 읽고 싶은 도서가 있다면 미리 낭독 문장을 뽑아서 참석해주시면 됩니다. 다만 진행에 따라 현장 낭독을 모두 다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12.10 세계인권의날 맞이 성평등 권리 선언대회
👊 일정 : 2024년 12월 10일(화) 오후 3시 00분
⛺️ 장소 :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지하1층 광장
공주책읽는여성행동,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비롯한 50개 단체(전체 단체명 별첨 참조)는 지난 10월 29일 입법 예고한 「충청남도 도서관 및 독서문화 진흥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하 개정안)에 신설된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 반대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충청남도의회는 지난 8월에 이어 또다시 「충청남도 도서관 및 독서문화 진흥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이에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서는 도서관의 도서 검열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할 위험을 내포한 조례 개정안으로 판단하며 우려를 표합니다. 지방 정치권이 보수개신교 세력의 차별적인 입장을 그대로 받아 성평등, 성교육 도서를 유해성 도서로 지목하는 사태는 이 사회의 평등의 가치를 추락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조례 개정안 이전에 이미 2023년 김태흠 충청남도 도지사의 지시로 시작된 성평등, 성교육 도서 열람제한 사태는 이후 전국으로 퍼져 공공 도서관의 자유로운 운영을 침해하고 성평등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충남의 도서 검열의 사태의 연장선 속에서 최근에는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폐기되었던 사건이 재조명되며 책과 도서관을 둘러싼 검열과 공공성 침해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충청남도 도서관 및 독서문화 진흥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의 개정의 이유로 밝히고 있는 ‘유해성 논란’ 이전에 검열의 위험과 지적 권리의 침해를 먼저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용자의 나이와 발달 단계를 고려’한다는 이유는 자칫 시민들의 지적 권리를 자의적으로 등급화할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기도에서 일어난 채식주의자 폐기 사태로 도서 검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습니다. 이는 이번 조례 개정안이 충청남도만의 문제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충청남도에서 촉발된 열람제한 사태의 피해를 겪고 있는 전국의 많은 시민단체, 유관 단체 역시 충청남도의회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충청남도 시민사회 단체를 비롯한 시민들은 이번 조례 개정안의 심각성에 공감하며 반대 의견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이에 반대의견서를 첨부하니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첨부문서>
보도자료 전문과「충청남도 도서관 및 독서문화 진흥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 대한 반대의견서(명단 제외)
차별금지법과 결을 같이 하는 여러 입법 이슈에 대해 쉽고, 재미있고, 알뜰한 내용을 꽉꽉 담아 소개합니다. 최근에는 어떤 입법 이슈가 궁금해유? 바로 바로 “여기 있슈~”
2024년 첫 번째 입법대응팀의 이슈는 “저출생”입니다.
2023년 4분기 출생률이 0.65명을 기록했다. 매해 4분기 기록으로 0.7이 깨진 것은 처음이다. 곧 0.5를 기록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BBC의 기자는 1년동안 한국에서 이 기록적인 저출생에 대한 심층 취재를 했다.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도 우리나라의 출생률을 보며 안도할 지경이다. 늘 자랑스러워하는 OECD 국가의 일원인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출생률 1.0명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수조원에서 수백조원까지 썼다는데 도대체 어디에 쓴 것이냐는 조소가 나올 법도 하다. 정부와 언론은 연일 쇼크를 받는 듯 하지만 시민들은 더 이상 1.0명을 넘지 못하는 출생률에 놀라지 않는다. ‘그럴 법도 하지’ 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버렸지만 대한민국의 출생률이 1.0명 밑으로 처음 떨어진 것은 2018년으로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현상은 아니다.
가임기 여성 출산지도를 그리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와 행정
2024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은 김현숙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의 사표를 5개월만에 수리하였다. 온 나라가 잼버리사태, 김행 전 여성가족부장관후보자의 청문회 등으로 시끄러웠던 지난 해를 생각해보면 김현숙 씨가 여전히 여성가족부 장관이었다는 사실도 놀랄 일이다. 김현숙 씨는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했던 여성가족부 폐지를 이뤄내지 못해 아쉬워하며 떠났다. 윤 대통령은 후임을 결정하지 않고 차관대행체제로 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선까지 일단 내버려두고 총선의 결과에 따라 정부조직법 통과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밀어부칠 속셈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이러한 꼼수로 2년째 여성가족부 폐지에 뜻을 굽히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태도는 시민들이, 특히 여성 시민들이 이 나라에서 다음 세대를 낳아 키울 의지를 꺾고 있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에게 여성가족부가 전담하고 있던 성폭력 피해자 지원의 문제는 부차적인 일일 것이다. 나쁜 가해자들이 벌이는 성폭력을 부처씩이나 두어서 피해자를 지원하고 성폭력 추방을 위한 일을 정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 리 만무하다. 장관직은 차관이 대행하고 부서를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에 복지부 인구정책실 사회서비스정책관이 임명됐다. 여가부 핵심 보직에 외부인사가 임명되는 것이 처음은 아니라 하지만 여가부 전체부서를 총괄하는 자리에 인구정책실을 담당하는 인물이 온 것은 정부가 여성이 해야 할 핵심 정책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반영한다.
정책이 여성들이 출산하도록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은 금방 들통이 난다. 그리고 그런 정책들을 보며 재생산을 결심하는 사람은 없다. 출산과 양육이 여전히 ‘여성의 일’인 분위기에 여성들은 마음을 닫는다. BBC의 취재에 응한 이도 그러한 답변을 하였다. 가사노동과 양육을 분담할 배우자는 찾기 어렵고 홀로 양육하는 여성에게 세상은 친절하지 않다고 말이다. 출산과 양육이 엄마의 영역으로 갇혀있는 제도 하에서 여성들의 재생산 거부는 심화될 것이다.
아이를 맡아주면 애를 낳을까
물론 당장의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맡아줄 곳이 절실한 양육자들이 매우 많다. 더 길기도 짧기도 하지만 직장에서 집까지 1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하자. 6시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도 벌써 저녁7시가 된다. 그마저도 양육자들이 직장에서도 어린이집, 돌봄교실 등에서도 쩔쩔 매게 된다. 자연히 아이 하나 키우다보면 둘째 낳고 다시 처음부터 이 돌봄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부 정책도 더 편하게 아이를 맡아줄게,로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여성가족부는 2024년 저출산대책 중 하나로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의 확대를 걸고 있다. 지원대상도 8.5만가구에서 11만 가구로 늘리고 최소 4시간 전 신청해야하던 요건을 최소2시간 전 신청으로 요건을 완화한다. 2024년 3월 6일, 윤대통령은 범부처지원본부 2차회의를 열고 초등방과후 돌봄프로그램인 ‘늘봄학교’의 성공을 위해 모든 부처가 자원을 총동원해 도와야한다고 강조했다. 지역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도 지역의 기업, 기관, 대학, 전문가들까지도 재능기부 등으로 힘을 합쳐달라 요청했다. 물론 그 이유는 국가차원의 돌봄체계 구축이 저출산을 타파할 아주 중요한 정책이기 떄문이다. 그런데 정말 국가가 긴 시간 아이를 맡아주면 더 많이 낳는 것일까. 육아가 아무리 힘들다지만 사실 양육자들은 아이와 시간을 직접 갖기를 원한다. 노동시간과 출퇴근시간, 맞벌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감당불가한 고물가 등의 조건이 아니라면 아이를 긴 시간 위탁하고 양육자 모두 긴 노동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필자는 얼마 전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가족이 살고 있어서 벌써 3번째 방문이다. 생후 70일부터 만난 조카는 뒤집기도 못하던 때부터 걸음마를 시작하고 이제는 말을 시작할만큼 쑥쑥 자랐다. 양육자인 언니와 조카를 돌보며 이 나라는 어쩌고 사는지 궁금했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출산율이 1.5명대로 떨어졌다가 2000년대 들어서 다시 1.6~1.7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2001년 네덜란드가 전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것이 비단 우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의 대도시에 살고 있는 언니를 통해 본 네덜란드 사회는 이러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양육자 둘 모두 넉 달 정도 완전한 육아휴직을 쓴다. 두 사람(양육자가 두 사람인 경우) 모두 종일 아이를 함께 본다. 넉 달이면 아이는 이제 통잠도 자고 스스로 뒤집기도 하고 생활의 패턴이 잡혀간다. 한국에서도 ‘100일의 기적’이 있듯 말이다. 이후 양육자들은 선택을 한다. 보통 이 즈음부터 각각 요일을 정해서 쉰다. 한 명은 화요일, 한 명은 수요일 이런 식으로 정한다. 주4일처럼 근무하는 육아휴직이 몇 년 간 이어진다. 주3일은 돌봄센터에 아이를 맡기고 엄마가 아이를 보는 날은 마마스데이, 아빠가 아이를 보는 날은 파파스데이라 부른다. 물론 마마스데이만 이틀이거나 파파스데이만 이틀인 부부도 많다. 공공도서관의 어린이실이나 박물관, 미술관 체험 프로그램 부스에는 마마스데이, 파파스데이를 맞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양육자들의 성별이 고루 보인다. 대부분 유연근무제로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는 한 명은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고 한 명은 아이를 등원 혹은 등교 시키고 늦게 출근한 후 다른 양육자가 하원, 하교 시킨 이후 조금 늦게 퇴근한다. 그래봤자 5시즈음이면 둘 모두 퇴근한다. 기본적으로 양육자들이 자아실현을 할 직업을 갖고, 가족을 부양할만큼의 임금을 버는 노동의 시간이 과도하지 않아야, 노동시간이 짧아야 가능한 일이다. 주 69시간이라도 노동하고 싶은 이들에게 일하게 해야 된다는 발상의 정부에서, 밥 벌어먹고 살려면 일상을 노동으로 보내고, 그 시간 동안 애는 최대한 국가가 봐주겠다는 것이 이 나라의 기본 골격인 이상, 그런 가족을 꾸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양육자들의 당장의 필요는 맡길 곳이지만, 근본적인 욕구는 적당한 노동시간과 그로 인해 늘어나는 가족과의 시간이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대한 현저히 낮은 수용도
여성들이 지금의 상황에서 반드시 출산과 양육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방송인 사유리씨의 비혼출산 소식이 들려오고 한참 여론조사가 진행되던 때의 결과를 보면 여성들은 비혼여성도 정자기증 등으로 자녀를 가질 수 있다면 낳을 생각이 응답이 26%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혼출산을 선택하기에 망설여지는 이유 중 첫 번째는 ** 한부모 가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었다. 제도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한국에서 정자기증 등으로 자녀를 직접 출산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그보다도 높은 장벽으로 느껴진 것이 한부모가정에 대한 편견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이니 아직 동성커플, 동성부부에 대한 제도적 권리보장이 아무것도 되지 않은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라는 것은 상상되기도 어렵다. 제도안에서의 구현도 꿈도 꿀 수 없다. 세계적인 여론조사기관 IPSOS가 2023년 조사한 결과, ‘동성커플도 다른 부모들처럼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할 것이다’라는 질문에 한국인은 50%가 동의하지 않는다 답변하였고 38%만이 동의한다고 답변하였다. 조사국가 기준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의 평균치는 27%로 한국은 2배 가까이 반대비율이 높았다.
한부모가족을 받아들이는 것도, 동성커플과 그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은 사회. 비단 이러한 ‘정상가족’의 틀에서 벗어난 가족 당사자뿐 아니라 그러한 가족들을 향한 시선을 지켜보는 시민들 모두 영향을 받는다.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구태여 나의 다음 세대를 이어가야할지 의문인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서, 시민들은 더 이상 출생률의 수치를 두고 놀라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재생산을 거부하고 있다. 자녀를 원하는 사람들도 여러가지 사회적인 이유로 재생산을 포기하고 있다. 저출생은 문제인가. 그에 대한 생각은 각자가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생산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흐름은 심상치 않다.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로 나아가려 하는가. 여전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머니’인 여성만이 국가정책에서 여성의 필요이며 정상가족 밖의 출산은 문제의 영역인가, 정상가족 안으로 편입시키려 안간힘을 쓰는가. 생계를 위한 장시간의 노동에 지친 시민들의 아이를 대신 맡아주며 일을 하고 출산을 하라고 등을 떠밀 것인가. 인간적인 노동시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 성평등한 노동환경과 일상에서의 지위야말로 우리가 다음 세대를 그려보게 할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단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알고 있다. 범부처가 힘을 모아 이뤄낼 것은 늘봄학교의 성공이 아니라 성평등한 국가를 향한 전면적인 개편이다. 당장 여성가족부를 정상화하여 성평등한 체계를 구축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며 동성결혼을 법제화하는데서 시작하자.
*기본적으로 출생률, 저출생으로 적고 인용하는 정책명이나 지표에 따라 출산율, 저출산으로 표기도 되기도 하였음.
[평등UP] 2023-11월호 | 이 달의 이슈, 여기 있슈 : 외국인 가사노동자 차별에 앞장서는 대한민국, 어이가 없습니다!
차별금지법과 결을 같이 하는 여러 입법 이슈에 대해 쉽고, 재미있고, 알뜰한 내용을 꽉꽉 담아 소개합니다. 최근에는 어떤 입법 이슈가 궁금해유? 바로 바로 “여기 있슈~”
11월의 입법대응팀의 이슈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차별 법안”입니다.
2023년 3월, 조정훈 의원은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의안번호 2120819)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합니다. 2021년 6월 제정되고 그 다음해 6월에 시행된 이 법률을, 시행 1년차도 되지 않았던 이 법률을 개정한다고 했습니다. 주된 내용은 외국과 같이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정책을 실험하되,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겠다는 것입니다.
2022년 12월 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와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에는 출생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983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합계출생율은 2.06명 이었고, 2024년이 되면 합계출생율은 0.7명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출생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정책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입니다.
방향과 핵심 모두 틀렸습니다. 2인가구(맞벌이) 기준 중위소득 기준으로 100만원 정도는 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겨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요람부터 무덤까지 가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육아와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결국, 공공의 영역에서 공공이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정책 실험을 통해 제도 도입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조정훈 의원과 정부에서는 마치 짜고친듯 그럴듯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육아와 동시에 맞벌이하는 가정이 꾸준하게 증가하는 추세에 있고, 그에 따라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는데에 어려움이 있어 결국 일과 가정의 양립이 위협을 받게되어 정책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2022년 6월에 시행된 가사노동자법은 해당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 최저임금을 적용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저임금 적용이 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가사노동도 노동의 한 영역으로서 인정하고, 공공의 영역에서 부족함이 없는지 챙겨보겠다는 국가의 선언이 가사노동자법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법을 만들어두었더니, 이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도록 배제해도 괜찮다” 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에는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차별금지법안 제3조(금지대상 차별의 범위)에 따라서도 차별할 수 없습니다.
가사노동은 오랫동안 ‘그림자 노동’으로 불려왔습니다. 70여년 동안 노동으로 인정받지도 못했으며, 노동3권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사노동은 마치 여성들이나 하는 것, 여성들이 원래 하는 일로 치부하며 폄훼해 온 것입니다. 청소와 빨래, 식사준비 뿐만 아니라 육아와 교육까지 모든 일을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해 왔고, 그러한 일들을 하는데 최저임금씩이나 주느냐고 하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노동을 했으면 그에 따르는 최소한의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에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가입했습니다. 이 규약 제2조에 따라 어떠한 차별도 없이 규약이 행사되도록 해야하며, 제7조에 따서 최소한 노동자에게 공정한 임금과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지급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남성에 비해 열등하지 않은 근로조건을 보장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이 국제협약을 위반하지 않지만 이를 우회하여 이 사업을 실시할까 매우 두렵기도 합니다.
이처럼 가사노동자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을 확대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홍콩 , 싱가포르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 정책은 국제사회가 이미 개선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언어소통, 인적 네트워크의 취약성으로 인해 노동착취, 노동3권 보장에서 배제되기 쉽고, 이는 심각한 심각한 인권침해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미 과로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들여다보지 않고 단순히 외국인 가사노동자 사업을 통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올바르지도 못할 뿐더러 잘못된 진단입니다. 꼼수를 부리고 싶은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세금으로 장난 좀 쳐보겠다는 것이지요. 정책을 촘촘하게 설계해서 시범사업을 통해 경험해보자 한다면 모두가 환영할 것입니다. 결국, 공공 영역부터의 돌봄을 강화해야 합니다. 국가는 육아와 돌봄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아닌 그 누가 돌봄노동을 하더라도 차별없는 성평등 노동이 되어야 차별없는 노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충남과 충북 지역을 중심으로 보수 학부모단체들이 공공도서관을 향해 성평등·성교육 책들에 대한 폐기와 열람 제한을 요구하는 민원을 넣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유해도서’라고 규정한 책들은 2019년 나다움 어린이책 선정도서 134권을 포함하고 있고, 도지사·시의원 등이 이에 호응하면서 실제로 충남교육청 소속 도서관들이 ‘나다움책’ 10권의 열람을 제한을 하는 등 ‘금서’ 지정 요구가 관철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평등과 섹슈얼리티, 재생산권, 성소수자 표현을 삭제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을 근거로 근거로 들며 성교육에 대한 거부,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 공공도서관을 향한 ‘금서’ 요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료집은 이와 같은 상황이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학문·사상의 자유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활동가와 책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상황진단과 대응 방향을 고민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조기성애화’ 프레임은 성이 즐거움과 권리임을 은폐하며, 누군가를 배제하고 금지하는 것임. 누구나 성에 대해 배우고 알고 누리는 것이 필요함 ”
“…이는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를 주장하는 반동성애-반페미니즘 보수 개신교 세력에 의해 ‘성평등 도서’가 불온시되고 ‘성평등’을 부정하고 공격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공공도서관에서 삭제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는 현실이다. 양성평등기본법이 여성정책, 평등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양성평등’이 성소수자라는 특정한 시민의 존엄과 권리를 삭제하기 위해서 혐오선동세력과 정치인에 의해 호출되는 한, 그 현실에 맞서기 위한 정치로서 ‘양성평등’과 단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서관은 ‘정보와 사상을 위한 광장’입니다. (중략)민주주의는 우리의 민주적 과정에 대한 비판정신을 새롭게 불어넣는 사상의 자유로운 전파에 의존합니다. 시민들은 독자로서 온갖 지식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견해를 형성할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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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도서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자료집 목차
발제 1.경과보고 : 충남지역 성평등 고서 관련 현황 – 유내영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 2. 발제(1) : 퇴행하는 성평등과 민주주의 – 몽 (차별금지법제정연대) 3. 발제(2) : 책에 대한 독자의 권리 – 안찬수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
[평등UP] 2023-6월호 | 평등, 삶의 현장! : 3.8 여성대회를 함께 만든 사람들
차별에 맞서 크고 작은 승리의 경험들, 차별의 현장들을 드러내며 지금도 차별에 맞서 분투 중인 현장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생생한 이야기들 많이 기대해주세요!
지난 3월 4일 기억하시나요? 바로 3.8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었던 날이랍니다. 올해로 38회째를 맞는 이번 대회에는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의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모여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는 요구를 외쳤습니다. 정부가 앞장서 여성인권을 후퇴시키는 이 퇴행의 시대에 맞서 제대로 기세를 보여준 날이었지요. 그 뜨거웠던 현장에 함께 했던 10명의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총괄 담당을 비롯하여 부스, 사회자, 자원활동가 등 다양한 자리에서 3.8여성대회를 채웠던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3.8여성대회의 가슴 벅찬 감동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이야기 나눈 사람들:
1) 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처장 : 한국여성대회 사회자 중 1인, 부스참여단체
2) 르다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 부스참여단체
3) 남지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 다국어포스터 제작 및 전시존 기획
4) 김채윤 다시함께상담센터 활동가: 2019년부터 3.8 여성대회 자원활동가로 참여 중.
5)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기획소통국장: 한국여성대회 기획 및 총괄 담당
6) 김미란 한국여성단체연합 기획소통국 활동가 : 한국여성대회 기획 및 총괄 담당
7) 신필규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 사전무대사회, 부스참여단체
8) 은박, 은숙,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략조직팀
1부. 환대의장소, 페미대명절
2023년제 38회한국여성대회는이렇게달랐다.
르다: 저는 시민단체 활동이 처음이고 그 이전에 완전 다른 영역에 있었어서 대회라는 말 자체가 좀 낯설다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여성대회라는 건 뭘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참여했었는데 일단 참여하면서 받았던 제일 큰 느낌은 오신 분들이 엄청난 호의와 환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저희가 비건 짜이를 팔면서 부족한 점들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을 다 참아주고 오시는 분들마다 조금이라도 더 후원하려고 조금이라도 더 뭔가 내어주려고 오신것 같다는 느낌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김채윤: 저도 약간 비슷한데 19년도에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에 내가 세상을 바꿔야지, 내가 뭐라도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찾다가 여성대회를 알게 되었어요. 그 당시 3.8여성대회는 웅장하게 느껴졌고 대회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 참여할때는 그냥 스태프로 참여했던 거라 모든 게 좀 새로웠고 뭔가 에너지가 가득하다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19년에는 정치인도 좀 많이 왔었는데 이번에는 다 같이 즐겨보자 이런 페스티벌 느낌이어서 19년과는 엄청 달랐던 것 같아요.
지오: 올해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 혼인 평등을 이슈로 부스를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여성대회에서 우리의 혼인 평등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한 고무감이랄까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신나게 사람들이 참여했던 것 같고 무엇보다 퀴어문화축제는 펜스가 쳐져 있었는데 이번 3.8 여성대회는 펜스가 없어서 광장이 열려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어요.
신필규: 저는 08년에 서울에 올라왔을 때부터 여성대회를 가긴 했었어요. 08년에는 구경하는 사람으로 참가를 했는데 신기했던 것은 무대 중심의 행사였는데 페니스트들이 되게 많았어요. 제일 놀랐던 것은 성평등 디딤돌상은 괜찮은데 걸림돌상 실명을 막 얘기하면서 ‘너는 걸림돌이다!’ 이렇게 광장에서 쩌렁쩌렁하게 외치는데 되게 신기했어요.
부스로 참여한 건 사실 올해가 처음이었는데 저도 광장이 열려 있고 축제 분위기여서 너무 좋았었고 부스 안에서 사람들을 만난 건 또 처음이었는데 되게 뭐랄까. 그러니까 성소수자 부스 자체는 낯설지 않은데 예를 들면 저희가 트랜스 프라이드 플래그라든가 이런 것들 을 처음 보신 분들도 꽤 있으신 거예요. “이게 트랜스젠더 상징하는 거예요”이렇게 말했을 때 호기심이나 호의를 가진 분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남지은: 19년 초에 처음 알았고 그때 함께하면서 콘서트도 아닌데 광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에 좀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광장에 성평등한 워딩들이 막 흩날리면서 성차별적인 상징물을 시민들이 올라와서 막 때려 부수는 무대 구성이 있었어요. 그때 내가 일상에서 경험한 장면이나 나의 언어들이 아닌데도 너무 막 울컥하는 거예요. 그게 엄청 기억에 남았고. 올해는 특히나 작년이랑 또 달랐던 게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했구나 이런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다양한 몸을 가지고 있거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그렇게 되도록 세팅을 잘했던 축제가 아니었나 이렇게 느꼈어요.
이효린: 언제부터 3.8 여성대회에 참여했지? 생각해 보면 아마 18년일 것 같아요. 한사성 활동을 17년도에 시작하고 그다음 해부터 부스를 했던 것 같거든요. 해마다 부스가 열릴 때에는 참여를 했었던 것 같은데 3.8 여성대회 내지는 이 여성의날 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해마다 깊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솔직히 뭔지 몰랐어요. 부스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뭔가 이렇게 직접 경험을 하면서 해마다 이 대회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첫 번째로 여성대회하면 떠올리는 큰 키워드는 페미 대명절이에요. 이번에도 얼마만의 감각인지 굉장히 흥분되었어요. 작년에는 다소 분위기가 달랐잖아요. 작년에는 종각에서 차분하게 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막 생기 넘치고 활기차고 사람들이랑 막 너무너무 반갑게 마주치는 이런 식의 감각을 느껴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굉장히 고양되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진짜 많이 왔죠
페미대명절, 3.8 여성대회
김미란: 저희가 몇 년 사이에 고민의 지점이 되게 바뀌었어요. 여성 운동 이슈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여성대회 자체를 고민할 때,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이 대회가 우리 활동가와 회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행사같다 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대중들을 많이 참여할 수 있게 할까 그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런데 2019년 정도부터 대중들의 참여가 늘었고 올해는 역대 3.8 여성대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했습니다. 연인원으로 한 1만 5천 명 정도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한 3천에서 5천 정도면 많이 온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시청 광장이 비어 보이지 않게 많이 참여할 것이라는 상상을 못해서 그 많은 사람들을 보고 가슴이 정말 벅차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이날만큼은 굉장히 안전함을 느끼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아까 효린님도 말씀하셨지만 페미명절이 맞구나 여성대회는 이제 페미니스트의 명절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게 제게는 상당히 고무적이었습니다.
또 저희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문턱을 좀 많이 낮출 수 있을까와 함께 사람들이 투쟁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서로 즐겁기도 한 공간을 어떻게 하면 만들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부스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를 했고 장소를 서울 광장으로 한 거고요.
부스, 다양한마주침의자리
은박: 이번 여성대회는 부스,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슈의 만남과 교차가 또 주요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뭔가 편한 마주침도 있었겠지만 조금은 신선하거나 낯선 마주침들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부스 얘기를 좀 더 나눠볼까요.
권은숙: 정치하는 엄마들이 창립 이후 처음 참여해 보는 부스 행사였거든요. 일단은 준비하는 데 품이 좀 많이 들었고 처음 하다 보니까 스스로 너무 부족했다 라는 느낌도 있었어요. 저희 부스 바로 옆에 미혼모 가족 관련 부스가 있었거든요. 거기서는 보드를 준비해서 스티커 붙이기를 했어요. 근데 내용이 뭐냐면 나나 내 가족이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을 했다면 낙태를 할 것인가 낳을 것인가 이걸 딱 정말 이분법적으로 질문한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저희는 키우기도 힘든데 낳으라고? 이런 피켓을 부스에 걸어놨는데 옆 부스에서는 낙태냐 출산을 할 거냐 이런 걸 스티커로 붙이기를 해서 우리가 피켓을 바꾸자고 너무 상충된다고.
단체 이름이 정치하는엄마들이니까 보통 양육의 주체가 엄마들이잖아요. 생물학적 엄마들이 많으니까 부스를 이렇게 붙여놨나 저희끼리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근데 주최측에 확인한 결과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해당 단체에 보드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거든요. 임신 중단도 아니고 낙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결정은 당사자가 알아서 하는 것인데 왜 이분법적으로 이렇게 해놨냐 라고 설명하고 비고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런 의견을 가지고 계시냐고 하고 마무리가 되긴 했는데 모두가 이 안에서 다름이 조금씩 있구나라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르다: 여성환경연대에서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오기도 했고 대회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면 음료가 필요할 것도 같아서 그 틈새를 노리고 약간 문턱을 낮춰서 비건과 우리 단체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고 비건짜이를 판매하게 되었어요. 생각보다 너무 잘 되어서 계속 부스에서 정말 열심히 짜이를 만들었어요. 만들다 보니까 바깥이 되게 좋아 보이더라고요.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을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요. 요새 뭔가 무력한 시위가 이어져오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감정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스가 너무 잘 되긴 했는데 단가 계산을 잘못해가지고 역시 이윤을 남기는 게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었지만 저희는 즐거웠습니다.
이효린: 이태원 유가족 분들 초대하신 게 정말 좋았어요.
신필규: 우리는 흔히 축제에서 잘 마주치지 않는 고령의 연령층을 만날 때 어쩔 수 없이 긴장하게 되는 게 있었어요. 근데 이번에 부스를 하면서 되게 재밌었던 건 어쨌든 그래도 여성 운동은 80년대부터 단체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면서 역사는 좀 더 길잖아요. 그러니까 뭐랄까 원로 선배라고 하실만한 분들도 좀 많이 보이셨어요. 참가자들 중 백발의 중년분들이 오실 때 처음에는 약간 얼어 있다가 그분들이 정말 호의적인 호기심을 보이니까 부스가 끝날 때쯤에는 그분들이 와도 그렇게 긴장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김수희: 그러면 올해 여성대회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작년 퀴퍼나 이런 데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일까요? 대회가 우리들만의 잔치일까봐 고민이 많고 어떻게 대중이 오는 잔치를 만들까를 고민하면서 여성대회의 모습이 매년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신필규: 교집합이 아예 없진 않죠. 왜냐면 퀴퍼 가는 사람들 중에도 고령층이 있고 페미니스트들도 있으니까. 근데 안 겹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생겼던 에피소드 중에 하나가 저희가 비대면 시대에 QR 코드 사용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여성대회 때도 QR 코드만 가져가고 오프라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도구는 아예 안 가져간 거예요. 근데 비교적 퀴퍼보다는 참가자 연령대가 높고 아니면 참여자별 모바일 환경 이런 게 다 다르다 보니까 QR을 보고 당황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이게 버스에서 현금 없는 거랑 똑같은 것이로구나 생각했어요. 이번에 안 했으면 아마 몰랐을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건 퀴퍼 나름의 어떤 참가자의 다양성이 있지만 여성대회는 여성대회 나름의 참가자들의 다양성이 많아요. 연령대나 지역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여성대회에서 조금 더 다양하게 만났던 기억이 있어요. 또 부스에 외국인들이 올 때마다 어떻게 왔는지 물어보았는데 거의 대부분이 지나가다가 여기 시끄럽길래 왔는데 패미니스트들이 모여 있어서 좋았다 이런 반응이어서 흥미로웠어요.
르다: 오시는 분들의 다양성 관련해서 저도 생각나는 게 있어요. 생각보다 가족 단위가 좀 있어서 저는 깜짝 놀랐거든요. 저는 어쨌든 첫 참여자로서 상상하기에 퀴퍼랑 비슷하려나 생각을 했는데 연령대가 생각보다 높은 것도 되게 좋았던 부분이었어요. 사실 평소에 일상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이 좋기도 했고, 또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도 의외이기도 했고 좋기도 했던 부분이었어요.
은박: 저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안내부스를 담당했었는데 그 자리는 이 행사를 알고 오신 분과 모르고 오신 분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예요. 제가 이제 여연에서 활동한 지 7년 차인데 처음에 안내부스를 했을 때는 그런 분들이 오는 게 사실 귀찮았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제공하는 음료라든지 홍보물 이런 거를 자꾸 여러 개 가져가려고 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계셔서 제발 빨리 가줬으면 좋겠다는 민원의 대상이었는데 해가 거듭하면서 여기가 어딘지 알고 오셨는지 되게 궁금하고 말을 걸어보고 싶고 무슨 행사를 하는지 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거에요. 3.8 여성대회를 계속 치르면서 제게 생겨난 변화죠.
남지은: 저희는 부스에서 광장에 있는 시민들의 이동성을 세계 지도에 그리는 활동들을 했거든요. 다양한 색의 펜으로 그려보는 것인데 노동으로 왔다 갔다 했는지, 유학이었는지, 여행이었는지 아니면 가족 이슈로 왔다 갔다 했는지 등등 이동하는 경험을 쭉 이렇게 그려봤어요. 아무래도 광장에는 한국 국적으로 추정되는 시민들이 대다수였잖아요. 그중에 해외에서의 체류 경험이 좀 긴 편인 장기 이주의 형태를 그리시는 분들한테 여쭤봤어요. “거기서 이주여성이셨네요” 이런 질문들을 그냥 툭툭 계속 던졌거든요. 근데 그런 질문에 대해서 경계를 하는 시민들이 많더라고요. “이주여성까지는 아니고 그냥 이민자였어요.” 이런 식으로 다른 용어로 표현하는 그런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성’ ‘이주성’이라는 것, 광장에 모인 여성 페미니스트들이든 시민들이든 이주 여성이라는 언어에 대한 프레임이 여전히 작동을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또 이주여성 활동가는 처음에 이런 질문들을 했을 때 사람들이 ‘이주 여성은 아니고~’ 이렇게 답변할 때 너무 화난다면서 뒤에서 진정하고 그랬던 기억도 있어요.
김수희: 이번에 처음으로 여러 언어로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그것도 여성대회에서 처음이라면 처음이라 되게 기록에 남을 만한 일이었어요.
김채윤: 부스 관련 정말 소소한 일인데 제가 다시함께상담센터라고 반성매매 기관에서 지금 일을 하고 있는데 성매매라고 하면 뭔가 문란하고 비도덕적이라고 많이 인식이 되지 이게 여성 인권의 문제이고 여성이 착취당하는 문제이다 라고 인식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느껴왔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여성 인권 의제로 가져갈 수 있는지가 항상 활동하면서 고민인데 이번에 반성매매 단체가 부스에 참여해서 이렇게 할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고, 저는 되게 신선했던 것 같아요
또 어린이(수유) 부스가 있는 것도 되게 좋았고 가족분들이 되게 많았잖아요. 만약에 제가 그냥 참여자로 왔으면 여성 대회인데 되게 많은 다양한 부스들이 있네 좀 신선하네라고 느꼈을 것 같아요. 여기서 비건을 왜 다루지? 생각하지만 맛있다고 하고, 또 외국 단체가 왜 이렇게 많지? 이런 것들이 세상에 되게 여러 단체가 여성이랑 연관이 있다라고 느꼈을 것 같아요.
2부. 시대가깃발을부른다.
축제의외피를입은투쟁의현장!
김채윤: 매번 자원활동을 해왔는데 할까 말까 이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매번 하고 오면 그 페미 대명절이라 하셨는데 약간 뽕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아요.처음에 참여했을 때는 아예 제가 페미니즘 관련한 활동이 처음이었어서 이게 페미니즘 세상인가 보다 이렇게 느끼고 엄청 뽕이 차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뭔가 그 기억으로 계속 다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장소에 있으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을 다 볼 수 있다고 느끼거든요. 근데 저희가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사실 서로 잘 안 보이잖아요. 그 공간에 있으면 그때만큼은 되게 다양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서 계속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뭔가 뽕이 차오르는데 행진이 굉장한 역할을 한다는 걸 매번 느꼈습니다.
은박: 특히 이번에 깃발 퍼포먼스 할 때 마음이 좀 뜨거워지긴 하더라고요.
김미란: ‘투쟁이지만 축제’ 같은 행사를 기획했어요. 내용은 투쟁이나 외피는 축제인, 축제의 외피를 입은 투쟁의 현장이 저희의 기획 의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여성 운동을 하다보면 우리안에서는 이 투쟁의 가슴이 끓어올라서 여기에 거의 의무적으로 되게 당연하게 오게 되지만 마음은 있으나 막 끓어오르는 투쟁까지는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약간 그 문턱을 낮춰야 함께 와서 그 축제의 외피를 입은 투쟁을 함께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축제를 만든 거고 또 말씀드렸다시피 페미대명절! 이제 저도 이 여성의 날은 페미니스트 명절이야. 명절은 즐거운 거야. 투쟁은 즐거우면 안 돼? 투쟁도 즐거울 수 있다! 라는 생각으로 기획을 했어요.
그리고 이 축제로 가자라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고요. 계속 그런 고민들을 해왔고 그런 기획들을 계속 시도해왔어요. 2019년에는 저녁에 행사를 했잖아요. 엄숙한 느낌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저녁에 막 조명 때리고 춤도 추고 이런 것들을 하면서 축제 같은 분위기를 내고자 했던 부분도 있었어요. 그것을 가장 극대화시킨 게 올해였던 거죠.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문턱을 낮추고 더 쉽게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게 해야 된다, 와야 알잖아요. 와야 듣고 와야 함께 말하고 와야 이걸 나눌 수 있으니까 사람들을 오게 하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김수희: 저희는 실제 당일이 되기 전까지는 계속 조마조마한 것이 저도 15년부터 계속 실무자로만 참여를 해서 언제나 오는 사람이 우리 사람들, 정말 시민단체까지 확장하더라도 이 운동하는 사람들끼리만의 모임이지 않나 이런 내부 평가도 계속 있었어요. 현장에서도 그런 것이 보이는 것 때문에 그게 늘 고민이었거든요. 왜 우리는 퀴퍼가 될 수 없는가. 7만명 오는 여성대회 왜 못하는 거야? 이런 고민들이 있었어요.
19년은 미투의 열기가 있었고 이후에는 코로나로 온라인으로 했다가 한 해 못 하고 이제 올해가 된 거잖아요. 그래서 올해도 긴가민가 했어요. 작년에 종각역에서는 인원 제한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인원 제한 없이 처음 하는 건데 사람들이 온라인에 너무 익숙해진 터라 다시 광장으로 얼마나 나올지. 일반 사람들이 여가부 이슈에 그렇게 우리처럼 뜨거운가? 물음표였거든요. 저희가 그나마 생각을 했던 것은 축제도 마찬가지고 부스를 최대한 많이 해야 부스가 끌고 올 수 있는 인원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적극적으로 부스를 늘렸던 것도 있고요. 축제를 늘 저희는 염두에 두죠. 축제 같은 장소가 돼야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남지은: 19년이 엄숙하기보다 뭔가 되게 정해진 행사 같다는 느낌이 많았어요. 귀빈석이 마련되어 있었고 이거 끝나면 다음 그런 식이었는데 이번에는 일단 공간도 열려 있었고 그래서 무대는 무대대로 진행하고 아니면 돌아다니면서 먹고 뭐하고 이럴 수 있어서 훨씬 더 개방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지오: 양가적인 감정들때가 있거든요. 저는 여성대회가 봄에 열리는 축제같은 분위기를 보면서 기분이 되게 좋고 이제 투쟁 시작이네, 이런 느낌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2023년에 여성 인권이라는 것이 이 공간에서 해방감을 여성들이 느껴야 하는 실정이라는 것에 있어서 좀 씁쓸하기도 했어요. 그건 퀴어들로 족하고 이때만이 아니라 넓혀나가야 할 판인데 왜 여기 이렇게? 이런 느낌이라 어떤 씁쓸함과 그래서 더 투쟁적이어야 한다는 느낌도 있기는 했었어요. 더 투쟁적으로 나가야 한다, 그걸 여성들이 해야 한다.
김미란: 사실 저희는 이번에 하면서 되게 놀랐던 게 뭐냐면 세상도 사람들도 많이 변했다는 거에요. 지금 저희가 축제였다고 얘기하지만 요소 요소들을 보면 깃발 막 나왔죠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 굉장히 투쟁적인 요소들이 많았고 약간 투쟁가 불러야 될 것 같은 그런 느낌들이 있었는데요.
저희가 오래전에는 전국의 회원 단체들이 다 같이 깃발을 들고 막 무대 위로 올라가고 이런 것들을 했었어요. 한동안 그걸 하다가 그것이 너무 올드하고 너무 운동권 이라고 비판을 받고 행사장에 깃발을 들고 오는 것조차도 막 질색팔색을 하던 또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근데 다시 깃발인 거예요. 다시 지금 시대가. 물론 또 그 깃발에 대한 의미 부여를 저희가 새롭게 한 것도 있죠. 뭐 하나의 깃발 아래 다 같이 우르르가 아니라 각자가 주체가 되고 깃발이 되어서 함께 연대하자라는 의미를 담았지만 정말 되게 새로운 거예요. 깃발이 우르르르 나갔는데 사람들이 이거를 올드 하다고 하지 않고 되게 벅차오르고 감동적이라고 얘기해 주는 것이 저는 또 새로웠거든요.
이효린: 깃발 퍼포먼스 진짜 너무 좋았고 이 행사가 확장하고 확대되는 느낌을 다양한 깃발들이 세워질 때 느꼈어요. 저희 어머니가 놀러 오셨는데 다리가 안 좋으셔서 부스에 앉아서 구경만 하시다가 깃발이 나오는 걸 보시더니 갑자기 뛰쳐나가시는 거에요. 페미니즘도 전혀 모르시고 그냥 딸이 왔다고 해서 오셨는데 아무튼 멋있으니까 나가고 싶으셨나 봐요. 너무 멋있으니까. 그 장면이 되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어떤 장면이었던 것 같고. 마지막에 깃발이 막 들어올 때 석양이 진하게 기우는데 눈물이 막 뻐렁 치는 거예요. 진짜 너무너무 아름답고 그 장면이 엄청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을 만큼 좋았고 제게도 굉장한 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 유행이 돌고 도는 것인지, 시대가 깃발을 부르는 것인지
모두에게열린광장, 누구도배제하지않는성평등, 그게페미니즘이지.
이효린: 모든 조직에서 그러 하듯이 좀 중요하게 남은 의미는 지금 저희 단체가 제 생각엔 창립 이후 처음으로 이 부스를 왜 우리가 왜 참여해야 되는가 라는 본질적 질문부터 시작한 것 같아요. 한사성도 여연 소속단위이거든요. 우리는 여연 소속 단위로서 왜 참여하고 싶은데? 광장의 의미가 무엇인데?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본질적인 질문들을 나눴어요.
부스에 참여한 모든 활동가들이 다들 각자의 개성이 있잖아요. 내성적이고 말도 잘 하기 어려워하고 낯선 거 힘들어하는 동료들도 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막 버선 발로 나가서 시민 한 명 한 명을 붙잡아서 저희는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 조직이다. 이 운동에 함께 해 주시라 이 운동이 지속될 수 있게끔 함께 해 주시라. 3.8 여성대회 의미를 저희 단체 활동가들 개개인들이 좀 다시 새기게 된 점에서 의미가 엄청 크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좀 조심스러운데 18년도 정도부터 길지 않은 시간이긴 합니다만 보아 왔을 때 명확하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는 거예요. 이번에 사회 준비하는데 국회의원들을 호명하며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옛날만큼 그들을 귀빈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저는 느껴져서 되게 좋더라고요. 이 행사에 어떤 주인공의 역할을 그들에게 귀빈이라는 이름으로 주지 않는 것도 저는 되게 큰 변화라고 느껴졌던 것 같고요.
신필규: 19년 즈음부터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트랜스젠더 배제하는 그 흐름 속에서 많은 여성 단체들이 같이 목소리를 내주고 연대의 이름으로 함께 하는 것들이 있어서 힘을 얻었는데 2022년에 특별상 고 변희수 하사가 책자에 있는 걸 딱 봤을 때 약간 좀 한이 풀리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늘 여기는 페미니스트로서 성소수자로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행사라는 그 생각이 있었는데 그걸 딱 보는 순간에 그 생각이 되게 들었던 것 같아요. 우리 행사 맞다! 그게 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왜냐하면 그때 되게 정말 인터넷에서 완전 엄청난 공방이 오가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그룹화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 상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가 너무 알고 있으니까 그 생각이 그때 들었던 기억이 많이 나요.
김미란: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우리가 이번에 부스를 홍보하면서 얘기했던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성평등이라는 가치, 이 슬로건이 저희한테는 가장 중요했던 것 같고. 올해 부스를 운영하는 데도 3.8 여성대회 전체를 준비하는 데도 그리고 앞으로도 저희는 그럴 거예요. 그게 페미니즘이니까요.
올해 어쨌건 행사들을 다 준비해 보셔서 알겠지만 행사에 가장 중요한 건 예산이에요. 여성대회는 굉장히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올해는 역대급으로 예산이 많이 들어간 행사였습니다. 여성대회는 그래도 여가부에서 지원을 받아온 부분이 있어요. 어떤 때는 조금, 어떤 때는 조금 늘려서 받았었는데 올해는 아시다시피 아예 저희가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지 않았어요. 못했나?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조직위 단위로 들어와 계시는 단체들에 분담금을 요청을 드렸어요. 다들 어려우신데도 너무나 흔쾌히 이 분담금을 내주시고 또 개인적인 후원도 많이 해주셔서 이번에 저희가 큰 어려움 없이 여성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를 했잖아요. 그 부분이 저한테는 되게 너무 감사하고 또 너무 감동적이에요. 그렇게 예산까지도 다 같이 책임을 지고 만들어주신 여성대회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남지은: 저도 그렇고 저희 단체도 ‘우리’라는 단어를 되게 경계하거든요. 저는 원주민 활동가이기도 하고 해서 스스로도 굉장히 계속 성찰을 하려고 하고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특권을 그냥 자연스럽게 가지는가 이런 것을 많은 활동가들이 계속 느끼려고 하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는 상상, 누가 누구를 어디까지를 우리라고 상상하는가, 그게 이번 광장에 펜스가 없었던 것도 되게 흥미로웠고 구체적으로 준비했던 프로그램들이라든지 뉴스에 참여하는 단위들이라든지 혹은 메인으로 했던 전시라든지 그런 부분에서도 과거의 운동 경험들까지 저희가 전시를 하고 이랬던 것도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을 했고 사전에 기고 릴레이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뭔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직접 본인의 경험이라든지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여성대회였으면 그런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몇 번 3.8 여성대회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행진차량에서 사회를 맡았는데요. 저도 행진할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이렇게 걷고 행진에 참여하는 과정이 늘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각으로 완전히 채워지는 뭔가가 있었는데요. 이전에는 전진하는 사람들에 속해서 머릿수를 채우다가 이번에는 사람들이 제 쪽으로 이렇게 계속 걸어오는 것을 경험했잖아요. 저는 1번 차량에 있었는데 광화문에서 우회전을 해서 이제 종각까지 걸어가는 그 포스가 딱, 광화문 쪽에 석양이 지고 앞에 깃발들이 흩날리고 끝없이 이렇게 도열되어 있는 걸 보면서 이 트럭에 함께 있었던 다른 활동가와 저에게 엄청나게 에너지가 되는 거예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3.8 여성대회에 참여를 하고 싶고 또 더 많은 활동가들을 초대하고 싶다, 이 장을 만들어 가는 주체로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은박: 2019년 미투 이후에 3.8 여성대회를 하면서 그때 제가 느낀 바로는 여성들의 말하기 공간, 열린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커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 준비하면서는 여성들 안에서도 다양한 여성들이 마주치고 서로를 보면서 힘을 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쓰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한편으로 고민이 드는 것은 서울의 광장에서는 이런 뜨거운 느낌을 받는데 지역에서도 행사를 하긴 하지만 거기의 분위기는 좀 어떨까 이런 궁금증과 동시에 아쉬움도 드는 거에요. 왜냐하면 제가 다른 일을 계기로 지역에 계시는 젊은 여성분을 인터뷰했을 때 그냥 오프라인에서는 만남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자기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을 때 굉장히 피곤하다는 거죠. 다 설명해 줘야 되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냥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아가서 사람들이 쓴 글 읽고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네 공감하고. 그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봤을 때 개인적으로 한국 여성대회를 보면서 그런 고민이 있기는 합니다.
김채윤: 3.8이 저한테는 이제 좀 익숙한 날인데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다고 저는 생각하고 약간 한국에서 3.8 하면 공유되는 어떤 것이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3.8 하면 여성대회가 떠오르는 그런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되게 무례한 시민들이 올 수도 있죠. 근데 그런 것들을 감수하면서도 할 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지나가다가 들려서 왔는데 그게 계기가 돼서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그런 기회가 좀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원활동가로서 느끼는 것은 항상 여연 활동가분들이 엄청 편하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무슨 업무를 저한테 주실 때 제가 이런 거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되게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같이 하는 거다 이거 잘 못해도 된다. 그냥 있는 것만으로 된다. 약간 이렇게 해 주시는 게 자원활동이지만 크게 부담 없이 참여할 수도 있고 자원활동가인데 되게 그냥 참여자처럼 할 수 있어서 그런 부분이 항상 좋은 것 같아요. 너무 큰 부담 없이 즐겁지만 무언가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르다: 저한테만 새삼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저한테 그 행사에 참여하고 남은 의미는 그냥 이렇게 꿋꿋이 가면 되겠구나 그런 느낌을 되게 많이 받았거든요. 어쨌든 언론에서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과잉 대표되고 또 온라인에서도 혐오 발언들이 넘칠 때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나?라는 생각을 사실 하게 되잖아요. 근데 부스 안에서 이렇게 나를 웃으면서 환대해 주고 서로가 이렇게 즐거운 광장에서 서로 얼굴 맞대고 웃는 얼굴 하는 현장에 있으니까, 그래 이 사람들이면 되지 약간 이런 감각이 생기고 그래서 지금의 시대에서 백래시를 견딜 수 있는 동력을 얻고 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좀 많이 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운동권의 언어라고 막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서 새로웠어요. 사실 저한테는. 그래서 기존 운동권이 아닌 사람이라고 해야 될까? 그런 입장에서는 그래서 축제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너무 투쟁이어서 더 좋았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서 그 기획 의도가 충분히 실현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미란: 다 끝나고 정리하고 있을 때 젊은 한 2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여성 세 분이 저한테 막 걸어오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저희는 일반인인데요 라고 하시면서 저한테 뭐라고 하셨냐면 “이런 행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셨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이게 아니라 이런 행사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얘기를 하시는데 3만보의 피로가 확 사라지는 거예요.그래서 이 분들만 아니라 내가 생각했던 대중분들이 많이 오셨겠구나 이런 생각 그리고 여기서 그런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고 가셨으면 나는 이것으로 족하다라는 생각을 딱 그 순간에 했던 것 같습니다. (우셨어요?) 울지는 않았고요. 일반인이라는 말이 좀 웃겨가지고 울 뻔했으나 그 일반인인데요가 너무 웃겼어요. ‘저도 일반인입니다만.’
남지은: 너무 활동가스러운 아이디어인데 3.8이 너무 소중하고 너무 잘 기록되고 그랬으면 좋겠는 거예요. 물론 그 크기는 다 다르겠지만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3.8을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도록 온라인이든 어디든, 모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아카이빙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해봤습니다.
차별을 개인적 문제로 만들고 차별의 역사를 부정하는 현 정권. 여성할당제로 대표되는 적극적 조치에 대한 반대 의견을 지닌 온라인 커뮤니티의 언어를 적극 활용하는 정치권. 성차별을 지우고 차별을 능력의 문제로 환원하는 현 상황들에 대해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잡고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책담론팀이 준비한 것은? 페미니즘 운동에서 제도적 개입을 통해 차별을 시정하고 권력구조를 재구성하고자 시도한 적극적 조치를 제대로 살펴보고, 차별금지법이 있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적극적 조치가 기능할 수 있을지를 톺아보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첫 번째 발제로 함께해주신 성공회대 외래교수 김경희 님은 적극적 조치란 무엇인지, 어떤 오해들이 있는지, 한국사회에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먼저 ‘여성할당제와 적극적 조치는 다르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으실까요? 할당제는 적극적 조치의 여러 방편 중 한가지 방법으로, 채용, 승진, 신입생 선발 등에서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 집단의 수나 비율을 정하여 소수 집단에게 적극적으로 고용 기회를 부여하는 수단입니다. 적극적 조치는 어떤 직업이나 직종에 여성, 소수 집단의 비율이 적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드러났을 경우 과거로부터 누적되어온 차별 혹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음을 가정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이행계획을 바탕으로 목표 비율을 조정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채용한 여성 비율이 너무 적을 경우 목표 비율을 30%로 정하고 난 후, 바로 달성 할 수 없으니 기업은 이를 차츰 실행할 수 있는 이행계획서를 제출하고 점진적으로 비율을 늘려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 조치 제도를 설명하기 위해선 이 제도가 시작된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면 유용한데요. 흑인 민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운동과 함께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 문제를 드러냈고, 그 힘으로 쟁취해 낸 제도가 적극적 조치였습니다. 1972년 미국의 고용평등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이후 연방정부는 정부와 계약을 맺은 기업의 사업주에게 소수 집단의 과소대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표 비율’과 ‘이행계획서’를 제출하고 이행하도록 요구합니다. 미국사회에 누적되어온 차별과 구조적 차별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통념을 교정하고자 하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한국사회도 2006년부터 적극적 조치를 시행하고 대상을 확대했지만 사실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장과 같은 곳에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적극적 조치)는 대기업/공공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제외되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 조치는 특정 조직과 직종 안에서 여성을 포함한 소수 집단의 과소대표된 상황에 집중해 차별을 의심하고, 통계적 불균형을 차별의 지표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교정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적극적 조치가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지혜들이 나누어지기도 했는데요.
평등한 일터를 만들고자 할 때 목표 비율과 같은 양적인 목표 뿐만 아니라 질적 지표들에도 집중할 필요성을 제기해 주었습니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얼마나 전환 되었는지,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 정규직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고용만이 아니라 노동환경에서 성평등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 세부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들을 나눠주었습니다. 또,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제대로 된 모니터링이 안되고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제안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적극적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차별의 기준을 무엇으로 둘 것이고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적극적 조치를 바라봐야 할까요? 우리 사회는 모두에게 기회가 제공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오랜 기간동안 누적되어 온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차별을 마주합니다. 누군가는 적극적 조치로 인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진입한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여전히 차별이자 낙인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죠. 기존에 사회가 어떤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여성과 소수집단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적극적 조치라는 수단으로 어떻게 낙인과 편견을 부숴낼 수 있을지를 상상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님은 차별금지법이 적극적 조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과 평등법안 모두 적극적 조치와 같이 누적되어온 차별을 시정하고자 하는 조치를 차별행위로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차별 예외’ 조항에 담겨있고, 이러한 내용은 영국의 평등법, 호주의 차별금지법, 독일의 일반동등대우법 등에서도 명시하고 있습니다.
UN OHCHR에서 발간한 소수자 권리 보호 가이드(protecting minority rights)에 따르면 차별금지법에서 적극적 조치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두 번째로 잠정적이고 한시적인 수단으로써 불평등을 시정하는데 필요한 기간 동안만 임시적으로 시행해야 하는데요. 임시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이 ‘단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별 시정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비례적인 수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적극적 조치는 명백하게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적극적 조치를 ‘역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을 넣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에 진정된 사례들을 살펴본다면 적극적 조치가 왜 역’차별’이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모 기업에서 20년이 넘도록 고졸 여성 직원을 대리로 승진시키지 않아서 성차별과 학력차별 진정이 접수된 사안이 있었습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인권위의 결과에 따르면 고졸 남성과 고졸 여성 간의 승진차별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드러습니다. 또한 고졸 여성 직원의 담당 업무를 보조업무로 인식하고 평가절하 하여 여성직원들이 승진에서 배제되거나 후순위로 배치되는 등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이에 누적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승진 대상에서 일정 비율을 고졸 여성 직원으로 할당하고, 고졸 여성이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의 기회를 배치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시행해야한다는 의견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온 차별을 무시하고 능력주의 담론과 결부시켜 구조를 지우고 문제를 개별화 하는 담론에 둘러쌓인 우리는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요? 한희님의 발제를 통해 ‘능력’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오롯이 개인이 쌓아온 것인지, 어떤 구조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능력주의가 과연 정당한것인지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적극적 조치를 ‘회복적 조치’라고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10년 간의 인종분리정책과 같은 극심한 차별이 있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붕괴 후 ‘성적지향’을 헌법에 넣을 만큼, 국가는 남아공을 재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판단해 적극적 조치 실행에 최대한 개입하였다고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적 맥락 상 차별 문제를 개별적으로 해소 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인데요. 평등한 공간을 구성하고 평등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 불평등했던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기 위해 치유와 회복이 필요하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회복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를 통해 적극적 조치가 관점과 방향성에 따라 얼마만큼 차별을 시정 할 수있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언어를 활용하고 구성해 개입하고자 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뉴질랜드의 한 단체에서 실행한 젠더쿼터제 캠페인을 살펴보았습니다. 뉴질랜드는 논바이너리를 성별로 인정하고 있는 국가이기에 여성 40%, 남성 40%, 논바이너리 20% 비율로 채용을 하라는 캠페인을 시행 할 수 있었는데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고 적극적 조치와 같은 제도가 실질적으로 실행되게 하기 위해서 성별 할당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 고민하고 논의하는 장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나아가 현실의 차별을 가리려는 역차별과 능력주의 담론에 함께 맞서며 다양한 소수자들이 포괄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더 확장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1회차 토론회를 준비하고 참여하면서 적극적 조치를 찬찬히 뜯어보았습니다. 능력주의 담론이 팽배하고 차별을 개인화 하는 현실 속에 반차별 운동은 어떤 방식으로 차별을 시정하는 제도와 만나 제도를 확장시키고 개입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정책담론팀은 발제자 두분이 나눠주신 내용들을 놓지 않고 확장시켜나가며 차별금지법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이어지는 다른 후기들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