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UP] 2023-9월호 | 이 달의 이슈, 여기 있슈 : 이상동기 범죄와 차별금지법

 [평등UP] 2023-9월호 | 이 달의 이슈, 여기 있슈 : 이상동기 범죄와 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과 결을 같이 하는 여러 입법 이슈에 대해 쉽고, 재미있고, 알뜰한 내용을 꽉꽉 담아 소개합니다.
최근에는 어떤 입법 이슈가 궁금해유? 바로 바로 “여기 있슈~”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수도권 지하철 행동
2020년 11월 19일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수도권 지하철 행동 – 이번 역은 평등역 출구는 차별금지법’ 캠페인 중 2호선 강남역 앞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9월의 입법대응팀의 이슈는 바로 “이상동기 범죄와 차별금지법”입니다.

 

일명 ‘묻지마 범죄’로 불리던 ‘이상동기 범죄’ 사건들과 이후 이어진 범죄 예고 게시글로 인해 지난 8월은 여러모로 불안한 달이었습니다. 법무부는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과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 질환자를 입원하게 하는 ‘사법입원제’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흉기난동법죄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며 관련 범죄에 대해서 경찰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합니다. 8월 23일 한덕수 총리의 담화문은 앞서 발표된 부처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양극화로 드러난 불평등과 경쟁 위주의 사회구조가 수면 아래 있다는 언론과 전문가의 진단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발표하지 않은 채,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과 논의하겠다는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응책을 보면 관련한 범죄에 대한 대책은 ‘처벌’과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책은 현재 시민들의 불안감을 달래는 처방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경찰이 검문 등의 방식으로 특정한 나쁜 사람들을 찾아내고 이들을 사회와 격리하여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것은 착시 효과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법입원제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제도를 추가하려는 정책은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더 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이 이 범죄의 주원인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근본적인 대응책이 될 수 없습니다. 뚜렷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동기로 무차별하게 이뤄지는 이상동기 범죄에 대해 현재 정부 차원에서 명확한 정의나 통계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경찰이 지난해 일명 ‘묻지마 범죄’에서 ‘이상동기 범죄’로 공식 용어를 바꾸고 대응에 나선다고는 했지만 진척은 없습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당시 정부의 대책을 보더라도 사건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 보다는 엄벌 위주로 접근한 바 있습니다. 치안을 위한 권한을 확대하고, 정신질환자 일반은 범죄와 관련이 없음에도 종합대책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 문제를 포함시켰습니다. 피해가 발생하는 구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국가가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의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응 마련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권운동은 그동안 안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토론해왔습니다. 구조적 차별에 놓여 있는 여성, 소수 인종,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작동하면서 이상동기 범죄의 피해자로 발생하는 사건 등에도 주목해왔습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여성 혐오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에 사회가 성평등해야 안전할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과 안전에 대해 토론하며 “안전한 삶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선언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지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권리를 가집니다. 공권력의 보호에 기대는 것만으로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무기력해지지 않을 수 있는 조건,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계속 제기하고 요구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와 역량이 필요합니다. 이는 범죄나 재난참사 등에서 시민들이 안전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위험 자체가 아니라, 그 위험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다루고 대응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 것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가 겪은 사건·사고를 해석하고 평가하며 스스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정부는 이상동기 범죄에 대해 엄벌 중심의 대응이나 정신질환자에 대한 병리화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관련 범죄 사건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 범죄의 가장 큰 동기는 처지에 대한 비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비관의 주요 배경에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일본은 고독·고립 대책 담당 부서를 별도로 설치하는 대책을 수립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한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이 필요합니다. 반차별 운동, 인권운동의 관점에서 덧붙인다면 지금의 현실의 구체적인 진단을 위해서는 불평등한 사회 현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등의 원칙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는 정치 현실 속에서 지금의 사회 현실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인 진단이 가능할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동기 범죄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애도하고 남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정부 차원의 피해자 지원 만이 아니라 이 사회에 현실의 문제로부터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사람과 자원이 있다는 것, 연결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불평등한 사회 현실에 대한 구조적 차별의 문제를 지금 더욱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