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승리하고 있는가 – 차별금지법에 대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입장에 부쳐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승리하고 있는가
– 차별금지법에 대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입장에 부쳐

 

어제인 17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민석 후보자는 “두 가지 본질적인 헌법적” 목소리가 경합하고 있으므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보다 많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본인과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의 공통된 입장이라 밝혔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 각부를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국무총리 후보자의 현실 인식이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새정부와 집권 여당의 공통된 입장을 밝힌 만큼, 김민석 후보자는 그동안 수 많은 시민들이 제기해 온 문제제기와 의문에 대해 정확하게 답할 책임이 있다.

 

첫째, 차별금지법 제정이 18년째 가로막혀 있는 현실에 기여한 정치의 구태를 혁신할 방안은 무엇인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 본질적인 헌법적 요구’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외면하고 ‘특정한 사회구성원을 차별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보수개신교계의 실력 행사를 정치가 방치·용인·편승해왔기 때문이다. 18년 동안 시민들이 이루어 낸 민주주의 진전이라면 성소수자의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주장하는 보수개신교계의 ‘반민주적 요구’가 더 이상 ‘종교의 자유’나 ‘합리적 의견’로 포장되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폭넓게 형성해 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차별·혐오 선동을 방치·용인·편승해 온 정치, 때로는 그 누구보다 공공연하게 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를 드러냈던 정치의 현실은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가?

 

둘째,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면 사회적 대화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 사회적 대화에 ‘사회적 소수자’의 자리가 있는가? 김민석 후보자는 “앞으로 얼마나 사회적 대화를 더 진지하게 할 것인가”를 새정부의 숙제라 말했다.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추상적인 입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해 나갈 것인가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후보도 강조하는 “어떠한 차별도 사회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 평등권 실현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해 역사적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18년 동안 정권과 정당을 막론하고 보수개신교와 ‘진지한 사회적 대화’를 지속해 온 정치인들을 수 없이 봐왔다. 차별 해소와 평등권 실현이라는 목표를 지운 사회적 합의, 사회적 공론화, 사회적 대화는 얼마나 공허한가. 지난 18년 동안 ‘만납시다’를 외쳐온 시민사회 및 소수자 집단을 배제한 대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 다수를 묵살하는 공론화, 정치와 종교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하는 합의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김민석 후보자는 이번 21대 대선이 “독재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이고, 극우 이데올로기에 대한 실용주의의 승리이고, 엘리트 기득권에 대한 집단지성의 승리”라고 평했다. 민주주의의 승리를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떠한 차별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 정치 공통의 생각”을 실현시킬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실용주의의 승리를 말할 수 있으려면 차별과 불평등이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핵심 구조라는 역사적 검증을 인정하고 민주주의의 ‘성과’를 만들기 위한 계획과 로드맵이 필요하다. 집단지성의 승리를 말할 수 있으려면 ‘평등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요구에서 한참 뒤떨어진 제도정치의 변화를 약속해야 한다.

 

어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0,729명 시민들의 서명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시민들의 요구는 이재명 정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국정과제로 채택해 구체적인 계획과 로드맵을 세우고, 입법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역할에 나서라는 것이다. 김민석 총리 후보자 역시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5년 6월 18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