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자 이제 시작이야~!
⚡️일시 : 2026년 6월 21일 (일) 오후3시-5시
⚡️장소 : 홍대 걷고싶은 거리 근처
⚡️액션 : 차별금지법 노래와 춤, 차별 경험 스티커 붙이기, 홍보물 배포, 자유발언, 차별 뿌수기 등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의 1조는 지난 4월부터 이어진 강의와 워크숍을 마치고 직접 행동에 나서기 위해 지난 6월 거리에 모였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알려내기 위해 직접 거리 캠페인을 기획하고 프로그램과 퍼포먼스를 구상했는데요.

자그마한 부스를 만들고, 차별금지법제정송에 맞춰 춤을 추며,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알려내는 홍보물을 배포했습니다.

각자가 기억하는 차별의 경험과 차별금지법의 의미가 잘 기록된 액션크루의 발언물을 소개합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 거리 캠페인 발언문
_ 액션크루 선이
안녕하세요? 홍대 일대에서 살사 댄스를 추고 있는 선이입니다. 살사댄스는 살사라는 라틴 음악에 맞춰 둘이서 추는 춤인데, 한 사람이 신호를 줘서 춤을 이끌고 상대방이 그 신호에 따라 함께 추는 춤입니다. 춤을 이끄는 사람을 리더라고 하고 따라서 추는 사람을 팔로어라고 하는데 저는 여자라서 살사 리더가 되기 위해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살사는 남자와 여자가 추는 거고 남자는 리딩을 하고 여자는 팔로잉을 한다는 문화가 있더라고요. 여러 동호회에 리더로 들어가고 싶다고 문의했다가 모두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친분을 쌓아서 떼를 써보려고 한 동호회에 팔로어로 들어갔습니다. 8개월 동안 제가 듣는 수업의 선생님에게 무척 잘 보여서 선생님의 도움으로 다른 동호회에 리더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제가 겪은 일에 차별금지법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제가 여자라서 리더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별에 의한 차별 사유에 속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동호회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영역이 아니에요. 그러면 차별금지법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제가 왜 살사 동호회 경험을 얘기하고 있을까요? 저는 누구나 언제든지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저는 어린 시절에도 할머니께서 가장 귀애하셨던 손주라서 차별받은 적이 없고 남자든 여자든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게 쿨했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고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도 운이 좋게도 딱히 불편한 일이 없었어요. 살면서 제가 소수자라고 느낄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살사 리딩을 하면서 소수자가 겪는 어려움을 간접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자인 제가 리딩을 하고 싶어하는 게 이해되지 않아서 여자를 좋아해서 여자랑 추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많은 분들이 저를 레즈비언이라고 오해하고 있으시더라고요. 심지어 “그러면 너는 트랜스젠더야, 레즈비언이야?”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또 제가 리더라서 팔로잉을 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시더라고요.
결국 앞면에 크게 상남자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있고 저를 남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리딩을 하는 것을 바로 앞에서 봤는데도 “남자 역할을 한다고? 그럼 누구랑 춰?”라며 무척 헛갈려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제가 아주 즐겁게 리딩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왜 그렇게 제가 리더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어쨋든 이렇게 6개월 정도를 버티니까 분위기가 많이 바뀌기는 했어요. 지금은 팔로잉을 해보겠다고 오는 남자분들도 있고 리딩을 배우고 싶다고 하는 여자분들도 생겼어요.
제가 살사 동호회에서 겪은 일은 법적으로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사례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경험 덕분에 저는 소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악의가 없더라도 자신이 익숙하게 생각해 온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배제하거나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저 역시 단지 여자 리더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해야 했고, 오해를 받아야 했고, 제가 누구인지 증명해야 했습니다.
물론 저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살사를 포기하면 그만이었고, 다른 영역에서는 여전히 다수자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성별, 장애, 나이, 성정체성, 성적 지향, 출신 지역과 같은 이유로 겪는 차별이 삶 전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저는 살사를 통해 아주 작은 형태로 그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 덕분에, 제가 겪지 않은 차별에 대해서도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법이 아니라, 누구나 어느 순간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것은 모두가 똑같아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다름 때문에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약속입니다.
여자가 리더를 하고 싶으면 리더를 하고, 남자가 팔로잉을 배우고 싶으면 팔로잉을 배울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싶다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 차별금지법은 바로 그런 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차별금지법은 누군가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약속입니다. 저는 우리가 그런 약속을 만들고 지켜 나가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 거리 캠페인 발언문
_ 액션크루 송이
안녕하세요 여러분, 차별금지법 액션크루 1기 송이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억울했던 적 있으신가요?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이 떨어진 서류전형.
능력보다 성별이나 나이로 평가받았던 순간.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괜히 위축됐던 경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당연한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던 상황.
혹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웠던 순간.
아마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원래 사회가 그런 거야.”
“그 정도는 참아야지.”
“예민하게 굴지 마.”
우리 부모님 세대는 실제로 그렇게 버티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왜 우리 세대도 똑같이 참아야 합니까?
왜 부당한 일을 겪고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합니까?
현재 우리 사회에는 여러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합니다.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도 있고, 성별이나 연령에 따른 차별을 다루는 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차별이 같은 수준으로 보호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차별은 법이 보호하지만, 어떤 차별은 여전히 법의 빈틈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이 법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권리를 주기 위한 법이 아닙니다.
단지 누구든 부당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차별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원칙을 사회 전체의 약속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학벌 때문에 기회가 줄어든 사람도,
출신 지역 때문에 편견을 겪은 사람도,
장애 때문에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도,
성별 때문에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사람도,
결국 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우리 부모님 세대가 참고 견뎌야 했던 문제를, 우리 세대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원래 그런 거야.”
그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
사람을 편견이 아니라 능력과 인격으로 평가하는 사회.
저는 그런 대한민국을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찬성합니다.
감사합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 거리 캠페인 발언문
_ 액션크루 루니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천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루니 활동가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저마다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우리 중 누구도 살면서 단 한 번의 차별이나 억울함도 겪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소외시키기도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 그 이야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직 우리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 일상 속에, 그리고 우리 법전 속에 단단히 자리 잡기를 바라는 법입니다. 누군가는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 뒤에 무시무시하고 왜곡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도 억울하게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법은 결코 반대할 수 없는 법입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앞장서서 환영해야 할 법입니다.
몇년 전 제가 한 때 다녔던 직장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저는 그 당시 영어학원 강사였습니다. 어느 날 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저는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습니다. 그후 누군가는 저에게 멋지다고 해주었지만, 숏컷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는 저에 대해 ‘북한 사람이냐’, ‘탈북민이냐’라는 황당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제가 화가 났던 건, 그들이 ‘북한 사람’이라는 말을 누군가를 낙인찍고 배제하는 언어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헤어스타일 하나 때문에 그런 시선을 받아야 했습니다.
헤어스타일이 짧아진데다가 굳이 이전부터 성소수자임을 숨기지 않았던 저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실의 방범용 CCTV가 저를 비롯한 강사들을 감시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학원은 이를 바탕으로 말도 안 되는 강사평가서를 내밀며 저를 압박했습니다.
방범용 CCTV를 강사 수업 평가에 이용한 것도 기가막힐 노릇인데 심지어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평가점수를 낮게 깎아내리며 수시로 면담을 하겠다고 저를 불러내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성소수자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저의 헤어스타일이 짧아지기 전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던 일입니다.
저와 수업하는 아이들의 성적은 제법 좋은 편이었고, 학부모들과의 상담전화에서도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직장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파티를 할 정도로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CCTV 평가서로 인해 공황장애를 겪었고, 근무 11개월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를 향했던 차별이 헤어스타일로 인한 차별이었는지, 성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이었는지 저는 지금도 혼란스럽습니다.
바로 이런 복합적이고 얽혀 있는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법으로는, 이 촘촘하고 복잡한 차별의 사각지대를 결코 메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일하시다가 ‘아, 나 지금 차별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고 가슴이 답답했던 적 없으셨나요? 분명히 부당하고 억울한 일인데, 이것이 나이 때문인지, 비정규직이라서 그런지, 성별 때문인지 명확하게 선을 긋기 애매해서 혼자 삭혀야 했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차별금지법은 물론 성소수자들의 삶을 더 안전하고 나아지게 만드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비록 이 법 하나가 세상의 모든 혐오를 사라지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단지 성소수자 한 집단만을 위한 법이 아닙니다.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직장인, 여성, 노인, 장애인,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시민 여러분 모두를 지키는 든든한 법입니다. 그렇기에 이 법은 반드시 우리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적당한 거리에서 존중하고, 배려하며,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성숙한 사회적 기준을 정의하는 것. 그 첫 번째 디딤돌이 바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입니다.
시민 여러분, 가시는 길에 저희가 정성껏 준비한 유인물을 꼭 한 번만 읽어주십시오. 우리가 더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 제정에 여러분의 귀한 마음과 힘을 보태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 거리 캠페인 발언문
_ 액션크루 나나
안녕하십니까! 동료 시민 여러분!
저는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함께 하고있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하는 나나입니다. 저는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성단체는 왜 한국사회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할까요? 온라인상에서는 한국사회에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여성이 지워진다는 이야기가 떠돌곤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한국사회에서 나고 자랐거나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양한 차별을 마주하고 살아갑니다. 길거리를 걷거나 대중교통을 탈 때, 학교, 아르바이트, 직장 생활 등 여성들은 일상에서 수많은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이 만연해 있음을 방증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여성으로 살아가며 성차별만 경험하며 살아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생활할 때 비정규직으로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비정규직이기에 정규직과 다른 사무실을 썼었고, 정규직 직원들이 귀찮아 하는 모든 ‘잡무’를 도맡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갓 대학을 졸업한 나이가 어린 여성이었기에 ‘남자친구’ 유무에 대한 질문, 성적 고정관념에 입각한 발언들을 수시로 들었습니다. 저의 첫 직장생활에서의 경험은 여성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성차별임과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을 대우하는 문제와도 결부되어있습니다.
여성은, 살아가면서 여성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여성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교 안팎 청소년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이주민이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제 발언에서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이고 다양한 정체성으로 존재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다양한 차별을 마주하게 됩니다. 차별과 혐오는 일삼는 존재들은 아무 책임감 없이 그저 마음껏 발산할 대상을 찾기에 차별은 하나의 얼굴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무지, 혹은 의도가 담긴 차별로 의해 우리의 삶은 어딘가 묘하게 어긋나고 해석하기 어려운 경험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인 제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의 경험에서 해석하기 어려웠던 차별에 차별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우리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차별이 무엇인지 분명한 선언을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차별금지법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을 없애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나인 것이 차별과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는 세상,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일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그리고 모두의 일상을 지킬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 연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 거리 캠페인 발언문
_ 액션크루 자유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고, 어떤 사람은 어립니다. 어떤 사람은 장애가 있고, 어떤 사람은 장애가 없습니다. 출신 지역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기회를 얻지 못하고, 누군가는 출신 국가나 외모 때문에 편견 어린 시선을 받습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차별은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특정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법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법입니다. 지금은 내가 차별을 겪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살아가면서 나이, 성별, 장애, 출신 지역, 가족 형태 등 다양한 이유로 차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결국 우리 모두를 지키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함부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게에서, 그리고 공공에서 누군가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그건 잘못된 일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무시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와 다른 사람 역시 존중받아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특별한 권리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지켜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는 사회보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일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은 그런 사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작은 약속입니다. 누군가를 배제하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혐오보다 존중을 선택하며, 차별보다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약속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차별 때문에 상처받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차별 없는 사회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연대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 시작에 차별금지법이 있습니다. 함께 더 따뜻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 거리 캠페인 발언문
_ 액션크루 라비
저는 남성 무성애자입니다. 여러분,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무성애자는 뭔가 낯설죠? 그런 의미에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무성애자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성애자 중에는 연애적 감정, 쉬운 말로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저처럼 설렘을 경험했지만 아직 연애를 경험하지 못한 무성애자도 많습니다. 반드시 성적 접촉이 없어도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무성애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연애를 못 하면서 현실도피하려고 말을 지어낸 것이다. 성욕이 없는 사람도 있느냐? 이 밖에도 무성애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언은 많습니다. 하지만 무성애자는 성욕에서 벗어난 도인이나 금욕주의자가 아닙니다. 성욕을 해결하는 데 타인을 끌어들이는 성적 끌림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것만 빼면 남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입니다.
더불어 저는 남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성욕을 부정하거나 억압했다는 오해에 시달렸습니다. 가끔은 그런 날도 있을 지 모르겠으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무성애라는 지향성은 넓은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100명의 무성애자가 있다면 100가지 라벨이 있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무성애자는 성적인 것에 큰 관심이 없지만, 어떤 무성애자는 성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욕이 작용하는 방식이 남들과 전혀 다르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지금도 무성애자들은 어디선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굳이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구, 동료 중에 무성애자가 있을 지 모릅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이러한 동료 시민들도 어딘가 ‘망가진’이들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마음과 제도가 더욱 활기찬 사회를 만듭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 거리 캠페인 발언문
_ 액션크루 햄이
안녕하세요, 차별금지법 액션크루 1기 최유현입니다.
오늘 제 이야기는 성적 괴롭힘을 받던 장애학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 장애가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매일,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단순한 괴롭힘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성기를 만지는 성희롱과, 장애 행동을 따라하는 모욕적인 괴롭힘이었습니다.
어른들도 알았지만 “애들 장난”이라며 방관했습니다. 가해자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고, 상처받은 아이만 점점 학교에서 지워졌습니다.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을까요? 그 일이 ‘장애 차별’이자 동시에 ‘성적 괴롭힘’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칼날이 동시에 들이닥친 상황, 우리는 이를 **’복합차별’**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의 법 체계는 장애와 성희롱이 쪼개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 때문이냐, 성희롱 때문이냐”를 따지며 책임을 떠넘기기 바쁩니다. 결국 피해자가 “내가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는지”를 스스로 쪼개서 증명해야 하는 잔인한 구조입니다. 초등학생이자 장애아동이었던 그 아이가 대체 어떻게 그걸 입증할 수 있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바로 이 지점을 바꿉니다. 여러 사유가 얽힌 복합차별을 있는 그대로 ‘차별’이라 인정하는 법입니다. 피해자가 차별의 이유를 일일이 가려내고 입증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법이 있다면 학교는 더 이상 ‘애들 장난’이라는 말 뒤로 숨을 수 없습니다. 고통받는 아이를 지켜줄 확실한 울타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다음 세대에게는 안전한 울타리를 꼭 만들어주겠다는 우리 사회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에 함께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 거리 캠페인 발언문
_ 액션크루 난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차제연 액션크루 활동에 함께하는 난다 라고 합니다.
저는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특히 어린이·청소년인권에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차별을 일상적으로 경험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분홍색은 여자색’, ‘파랑색은 남자색’이라며 성별 고정관념을 배우기도 합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의견을 무시당하고,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사회적 목소리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조금만 기준에서 벗어나도 누군가를 배제하는 데 익숙합니다. 학교에서는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고, 획일적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문제아, 문제학생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그런 학교의 풍경은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장애인, 이주민, 난민, 노인, 어린이와 청소년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배제하는 데 더 익숙해져 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노키즈존 문제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이 나이에 따른, 특히 아동에 대한 차별이라고 지적한 바 있으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또한 한국 사회의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혐오와 배제 현상을 우려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들은 오랫동안 외면당했습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어떤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남들과 다른 꿈을 꾼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다고 해서 그런 차별과 폭력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합니다. 어린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지금, 여기, 우리 모두를 위한 법입니다. 나이, 성별, 장애, 출신, 성적 지향, 학력, 가정환경 등 어떤 이유로도 누구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약속입니다.
어린이·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하지 않고, 학교에서 차별과 억압을 강요받지 않으며, 다양한 정체성과 삶의 방식이 존중받는, 어린 시절부터 존엄한 삶을 살며 꿈꿀 수 있는 사회를 원합니다.
1920년대, 어린이날을 처음 선포하던 시기의 선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장가 시집 보낼 생각 말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 오늘의 말로 바꾼다면, “쫓아내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같은 사람으로 대해 달라”일 것입니다.
어린이·청소년도 오늘을 사는 시민입니다. 나이는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해,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그 어느 시기에서도 인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감사합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 거리 캠페인 발언문
_ 액션크루 영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서라고 합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니 차별을 금지하자는 이 단순한 말이 왜 이렇게 어렵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며칠 전 서울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있던 날, 그 반대편에서는 ‘거룩한 방파제’라는 이름의 반대 집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예, 그럴 수 있죠. 그리고 그날 밤 SNS에서 글 하나를 봤는데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나왔다’는 글이었습니다. 딱히 특별한 문구는 아닌데도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게시글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문구 아래로 첨부되어있는 사진이 거룩한 방파제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존재와 정체성을 부정하고, 정상과 비정상으로 우리를 나누는 이들이 ‘차별 없는 사회’, ‘존중받는 세상’을 들먹이다니 화도 안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별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차별에 대해 잘 알고 계십니까? 저는 인터넷에 찾아봤 는데요. 집단, 계층, 사회적 범주에 따라 불공정한 차이를 두어 구별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나와 타인을 어떤 기준으로 분리하고 그 사이에서 위계를 만드는 것, 그 위계에서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고, 그 불이익 자체가 마땅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차별입니다.
차별은 지금 행해지는 행위 그 자체에도 굉장한 문제점이 있지만, 그 행위를 당하는 집단의 특성에 대한 혐오, 편견을 강화하고 부추깁니다. 이러한 일은 특정 집단에서만, 특별히 나쁜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의도치 않게 차별을 학습합니다.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대우에 대해, 여성 직원에게 강요되는 꾸밈, 이주노동자의 값싼 임금과 노동 착취에 대해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숱한 차별적인 사회 구조에서 살아오며 계속해서 분리되어왔습니다. 성별, 국적, 학력, 장애 등 속한 특성에 따라 구분짓고 어쩔 수 없는 일. 이라고 생각해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모두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어떤 특성과 집단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당신과 여기 모두와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현 세태가 “대혐오의 시대”라고 칭하는 것들을 들었습니다. 그럼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 분열과 혐오의 시대를 종식되는 것일까요? 그러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를 비롯하여 여기 함께 하고 있는 분들은 여기에 나와 이 더운 날 마이크를 잡고 있냐고요? 차별금지법은 ‘혐오’와 그에 기반한 ‘차별’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금지하자는 말이 어려워진 건, 저도 언제 어디선가 어떤 차별의 가해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차별? 이라는 질문 속에 숨지 않고 이것도 차별이라는 것을 함께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배제의 기준이 아닌 함께의 기준 속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이 차별받지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차별을 마주했을 때 당신과 함께 싸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싸움에서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평등한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이게 제가 차별금지법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의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