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UP] 2024-1월호 | 평등, 삶의 현장! 축복과 환대의 길을 여는 사람들: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는 170여 개의 인권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평등이 차오르는 전국방방곡곡>이 지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 싸우는 지역네트워크를 소개한다면, <평등이 차오르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제연에 함께 하고 있는 단위들의 반차별 이슈와 활동을 소개합니다!

 

차별금지법을 알리기 위한 교육이나 간담회를 가면 흔하게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차별금지법 운동에 함께 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긴 역사 안에서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큰 걸림돌이었음에 틀림없고 현재까지도 가장 극렬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넘겨졌던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동환 목사가 끝내 출교 징계를 당하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성소수자를 배척하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이 기독교 전체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욱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우리 곁에 있으니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차별과 불평등, 소외와 혐오에 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2024년을 열어보려 합니다. 함께 만나보실까요?

 

 

  • 함께 이야기 나눈 사람들:

 

  1. 정경일 (평등세상 집행위원장)
  2. 오수경 (청어람 ARMC 대표)
  3. 손주환 (느헤미야 교회협의회)
  4. 정다빈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5. 자캐오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6. 장예정 (천주교인권위원회)
  7. 고운(서울인권영화제), 지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왼쪽부터: 고운, 오수경, 장예정, 정경일, 정다빈, 자캐오, 손주환)

 

Q.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오수경 : 저는 청어람ARMC라는 단체에서 대표를 맡고 있고요. 개신교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고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이하: 평등세상)에 결합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개신교 내 퀴어 관련된 활동들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청어람은 개신교 내에서 고민하면서 질문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강좌와 모임을 진행하는 곳이고요. 신앙의 이름으로 사회적인 연대가 필요한 곳에 연대활동도 같이 하고 있는 곳입니다. 회원조직은 아니고요 주로 강좌, 교육, 아카데미 운동을 하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장예정 :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예전에 민주화운동 시기  주교회의 산하에서 인권에 관심 있는 평신도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어요.  당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가 1987년부터 체계가 개편되면서 천주교 1세대 인권변호사들이 주교회의에서 나와서 만든 위원회가 천주교 인권위입니다. 그 당시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산하에 있었고 그 기준으로 보면 35년 됐고 천주교 인권위로 독립해서 독자적 단체가 된 건 30년 됐어요. 그렇게 오래된 단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함께하고 있고 지금은 가톨릭 LGBTQ 앨라이 모임 아르쿠스가 생겼지만 그 이전부터 성소수자 인권관련 하여  일관되게 입장을 내던 단체입니다. 그리고 현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함께하고 있고요.

 

정경일 : 안녕하세요?  저는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평화와신학, 한국민중신학회,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로서  사회적 영성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리가 고통의 자리여야 하고, 거기서 어떻게 영성이 기여할 수 있나 고민하다보니, 현장과 연결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평등세상에서는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다빈: 저는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정다빈이고요. 저희 센터는 천주교 안에 예수회라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인권이나 사회정의와 관련한 운동하는 단체입니다. 정의, 평화, 생태환경을 위한 연구, 활동, 연대, 조직 활동과 강좌, 세미나, 컨퍼런스 준비해서 열기도 하고 현장 연대 활동도 하고 있고요. 천주교 안에서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단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캐오 : 저는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회장과, 나눔의집협의회 소속인 용산나눔의집 원장이고요. 정의평화사제단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영향으로 몇 년 뒤에 성공회에서 시작되었고요. 나눔의집협의회는 86년 9월에 도시빈민운동의 맥락에서 시작했어요. 둘 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우선적 선택’이란 해방 신학 관점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요. 9개 나눔의집 모두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특히 나눔의집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자리 잡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는 등, 사회 복지라는 영역이 자리 잡은 과정에서도 나름 역할을 하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저희는 전통적인 지역 교회의 형태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속의 교회’라는 맥락과 모습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경계 영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저를 소개할 때에 성공회 사제이자 사회 활동가로 소개해요.

제가 일하는 용산나눔의집은 20년 전에 미등록 이주민과 동행하며 시작했고, 시작부터 함께한 길찾는교회는 성소수자와 동행하는 교회로 시작했어요. 이처럼 저희한테는 ‘경계, 동행, 당사자와 함께 만드는 이야기’ 등이 중요합니다.

 

손주환 : 저는 느헤미야 교회협의회 소속 걷는교회 목사입니다. 느헤미야 교회협의회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라는  대안신학교 같은 성격의 신학교의 가르침과 방향에 동의하는 교회 40여개 정도가 모여서 만들었습니다. 제가 오늘은 개인으로 와서 대표성을 가지고 온 건 아니고요, 느헤미야 교회협의회에서 임원, 서기입니다.  

 

Q. 평등세상  출범 계기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경일 : 2019년에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센터에서 임보라 목사님 등과 함께 몇 분이 교회적, 신학적 언어로 성소수자 운동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앞으로 전망을 만들어보자 얘기를 나누며 모임을 가졌어요. 그러다 2020년에 국가인권위에서 개신교 반발이 심하니까 개신교의 다른 목소리를 듣고 싶다 해서 서로 추천해가면서 열 몇 명이 모였어요. 그렇게 인권위원장 및 활동가들과 간담회를 했고, 그 다음 국회 장혜영, 박주민, 권인숙 의원 등과도 몇 차례 대화를 추진했어요. 그렇게 계속 인연과 활동이 이어지다가, 2020년에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을 하면서 개신교인들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위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지지합니다’라는 성명 공동작업을 했었고요. 그 과정에서 개신교 복음주의 그룹, 가톨릭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제안들이 있어서 천주교에선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가 참여했고, 복음주의 그룹에서는 유일하게 청어람이 참여했어요. 이때 110개 교회 및 단체가 서명했고 1384명 그리스도인이 서명을 했어요. . 사실 그때도 저희는 아주 소수였지만 사회적 상식과 걸음을 같이했기에 언론에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던 것 같아요.. 체계적 조직도 없이 선언을 준비했는데, 선언문 작성부터 발표, 후속활동가지 모두 자발적으로 기꺼이 역할을 나눠 맡았어요. 선언 이후에 제정 투쟁이 진전되지 못하고 민주당이 책임 방기를 하면서 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평등세상 네트워크 구상을 하게 되었어요.

평등세상을 준비하면서 대안적 교회 문화를 만드는 것과 교회 안에서 통용될 수 있는 평등 언어 만들기를 장기적 비전으로 삼았어요.  반동성애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만들고 모두를 환대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저희가 선택한 방식은 조직부터 만드는 게 아니라 먼저 공동 실천부터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2021년 6월에서 8월까지 8주 연속으로 ‘세상을 바꾸는 여름’ 포럼을 통해 한국사회의 차별과 반차별 주제를 모두 다뤘어요. 그러고 나서 2021년 9월 6일 27개 단체가 참여해서 평등세상을 공식 출범했습니다. 지금은 가톨릭과 개신교 30여 단체 및 교회가 함께하고 있어요. 

 

자캐오: ‘퀴어성서주석’ 만들면서 출판 하기도 전에 번역 과정에서 보수적인 몇몇 교단이 대표적으로 임보라 목사님을 괴롭혔죠. 책도 안 보고 퀴어신학이라는 이름만으로 괴롭혀서 많은 분들이 분노했어요. 그런 흐름 속에서 대안/대항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었어요. 더불어 사회적 소수자 운동이 성소수자 운동만 언급되는 것보다 반차별/평등 지향으로 확산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어요. 차별을 강화하고 평등을 불편해하는 한국 주류 교회 문화와 언어, 담론을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모인 거죠. NCCK인권센터가 허브 역할을 해서 개신교, 천주교 안에 공감대를 갖고 있던 분들이 공동 제안 형태로 모였어요.

 

 

 

 

Q. 종교인으로서 사회운동을 함께 하는 목표와 소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손주환 :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 부끄러운 수준이에요. 활동가로 전임을 하거나 주도적인 활동을 하고 있진 못해요. 목회 현장에서 교회 안에 있는 소수자, 약자들이 혐오와 차별을 당하고 있을 때 그 안에서 저는 당신들이 잘못하거나 잘못된 게 아니다 편 드는 것 정도에요. 저희 교회 이름이 ‘걷는 교회’인 이유가 성공회 걷는 교회 이름을 빌려서 교회도 고난받는 사람들의 현장으로 들어가자는 뜻이에요. 제 개인이 운동가라는 느낌보다 저희 교회가 그런 현장을 찾아가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표와 소명이  목회적인 지향과 어느 정도 맞닿아있기 때문에 그렇게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다빈: 제가 활동가라고 할 수 있을까 조심스러워요.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종교인인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남성 수도사들과 일하는 평신도 여성으로서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일종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고 믿어요. 저희 세미나에 오시는 분은 주로 천주교 신자들이지만,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여러 다른 목소리들을 알리는 것이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장과 교회 사이를 잇고, 사회의 언어와 교회의 언어를 번역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정경일: 저도 활동가라고 하기엔 활동가들에게 미안해요.  저의 본업은 신학자고, 제 연구 영역은 종교 간 대화에요. 주로 불교-그리스도교 대화를 중심으로 여러 종교 전통과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늘 깨닫는 것은,  기독교의 빛나는 독특성은 예언자적 실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이라는 사실이에요. 고통받는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가장 민감하게 듣고 책임있게 실천으로 응답하는 게 그리스도인다운 우리의 목표와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장예정:  천주교는 사회교리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천주교인의 사명 같은 걸로 중요시 여기고 있고요.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천주교는 인권주간, 사회교리 주간을 같이 지내요. 대림2주 시작하는 시기죠. 개신교도 인권주간 그때 지내는 곳들이 있어요. 사회교리라는 건 천주교에서 중요한 활동이고 그걸 기반으로 천주교 인권위도 출발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다니는 성당을 이십 몇 년째 다니는데 거의 학교 다니듯 살았어요. 개인사에서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 성당 사람들, 동생, 언니, 아는 지역 주민들입니다. 저한테는  내가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가르침이 성경은 아니지만 종교에요. 성당 다니는데 착하게 살아야지가 청소년기 삶의 중심이였어요. 지금도 활동가로 살게 되는 계기가 종교인데 그만 두는 계기도 종교가 될 거 같긴 해요.  저한테는 인권운동이 종교와 떨어질 수 없는 문제였는데 내가 배척당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그렇게 된다면 나는 이 활동을 왜 시작했나 근본적 어려움이 생겨요. 저한테는 둘이 다른 언어가 아니었고 지금도 활동하는 중심 가치에는 여전히 종교가 있어요.

 

수경: 보수적인 신앙 영역에서 자랐어요. 사회문제, 특히 동성애 관련해선 보수적인 신학을 배우면서 자랐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고 반대하는 쪽에 오히려 가까웠어요.  분기점은 2014년 신촌 퀴어퍼레이드에요. 당시 우리 사무실이 신촌에 있어서 우연히 방문했다가 굉장히 충격적인 혐오 움직임을 보고 첫 번째 들었던 생각이 ‘이렇게까지?’란 당혹스러움이였고 두 번째는 부끄러움이였어요. 그리고 일종의 무력감도 있었고요. 왜 저 안에서 저 사람들을 막아내지 못했나. 그날 밤에 돌아와서 그간 배웠던 동성애 반대 근거로 볼 수 있는 성경 구절 다 찾아서 읽어보고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 다음부터 계속 관심 가지고 청어람에서도 관련 강좌를  진행했어요. 

제 신앙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는데 이런 변화된 모습을 되도록 널리 알리고 싶어요. 신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 속에서 배우면서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고, 그렇게 드러냄을 통해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는 분들, 중립지대에 계신 분들과도 연결되고 싶어요. 밖에서 보기에 개신교는 양극단으로 갈려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그 안에 무수한 생각들과 역동이 있는데요. 그런 분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고, 혐오 그리스도인이 과잉대표된 곳에서 개신교인으로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저는 사회 운동을 거창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제 신앙의 실천이라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데 자기 신앙을 실천하지만, 저는 세상을 더 궁금해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제 변화 가능성을 그 안에서 발견하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저에게는 신앙 실천이고 사회 운동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저는 되게 보수적인 신앙인이에요. 신앙의 언어, 신앙의 힘을 여전히 믿거든요. 신앙의 기본은 사랑인데 그게 너무 오염되었어요. 그걸 다시 되찾고 싶어요. 제가 속한 단체는 그런 신앙의 언어를 발견하게 하고 신앙적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아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의 틀거리와 언어를 제공하고 있어요.

 

자캐오: 제가 속해있는 성공회는 사회 속의 교회를 강조해요. 교회가 세상의 알파와 오메가, 즉 시작과 끝으로 보지 않죠. 한국인권학회 학술대회에서 정교 분리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는데, 정치와 종교의 관계도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고 각 나라마다 맥락이 있어요.  한국의 경우, 정교 분리가 필요한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는 사회의 한 부분으로 작동하는 게 필요해요. 예를 들어, 미국과 한국 사회의 성공회는 많이 다르죠. 교회가 그 사회 변화의 역동 안에 영향을 받는 거에요. 물론 교회도 사회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요. 그러므로 사회와 교회 안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가 교회가 강조하는 사랑과 환대, 은총과 동행에 걸림돌이 된다는 관점에서, 사회와 교회는 좋은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죠. 특히 교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게 신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모든 존재가 동등하고 독특하게 사는 세상이 만드는 일이라는 고백 가운데 살아야 하죠.  

 

 

 

Q.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수경: 오히려 굉장히 보수적으로 나오시는 분들한테는 별로 타격감이 많진 않아요. 앞에서 막 큰소리 치는 분들이야 정치적인 목적이든 뭐든 있을 수 있지만 거기서 너무 눈물 흘리면서 신실하게 기도하시는 분들이 마음에 걸려요.  저분들과 내가 같은 신앙을 공유하고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분들을 너무 쉽게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어요. 본인들 나름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분들인데 그걸 어떤 목적으로든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쁜 거지 순수한 신앙의 열정으로 혐오를 하는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심적으로 괴롭죠. 제가 속한 영역이 복음주의 사회운동 영역인데 동성애 문제에 대해선 사실 관심이 별로 없어요. 여기 패러다임은 과거 민주화운동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거지만 그 이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이나 퀴어, 페미니즘 등에 관해서 생기는 사회적인 문제나 개신교가 끼치는 해악에 대해서 말을 아끼세요. 워낙 신학적으로 정리가 안 된 부분이기 때문에 생각을 달리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말을 아끼고 방관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분들을 마주할 때마다 많이 난감해요. 

운동이라는 게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뭐든 될텐데 잘 안 넘어가지네요. 이런 면에서는 개신교 운동은 일반 영역 사회운동과도 비슷해요. 민주화운동 다음 챕터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아득한 마음, 중간에 낀 세대로서 이 분들과 심정적 대립을 할 때가 괴롭고요. 또 이쪽저쪽 욕하면서 냉소하면서 방관하는 분들을 보는 것도 참 괴로워요. 냉소가 결코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맥이 빠지죠. 저도 맥이 빠지는데 앞서서 운동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맥 빠지지실지 민망하고 죄송하고 그런 때가 좀 괴롭습니다.

 

경일: 한국에 신학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몇 천 명 될 거예요.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목소리를 내는 신학자가 너무 적은 것 같아요. 특히 기독교인들로부터 상처받은 분들을 보면 부끄럽고 죄송해요. 세월호 그리스도인 가족과의 연대도 죄인의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세월호 참사 초기에 기독교가 세월호 가족들에게 엄청 상처를 주어서, 많은 기독인 가족이 교회를 떠나기도 했어요. 교회 가면 ‘세월호 참사엔 우리가 모르는 하느님 뜻이 있을 거다’, ‘당신 아이는 이제 하느님 품에 안겨 있으니 그만 슬퍼하라’고 하거나, 투쟁하느라 삭발을 하고도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가족에게 ‘선생님이 삭발하고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냐’고 하면서 상처를 주었거든요. 이런 잘못된 신학에 맞서는 대안적 신학의 노력이 너무 부족했어요. 그런 교회의 현실이 너무 죄송해서 처음 2~3년은 조용히 연대하며 다녔어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동성애에 대해서는 보수교단, 진보교단 모두에서   반대와 찬성이 있어요.복음주의 교회 안에서도 급진적인 성평등, 동성애 지지 운동을 하는 그룹도 많고요. 중요한 것은 같은 교단이나 교회 안에서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거죠. 특히 신학교에서는 자유로운 토론과 활동이 가능하고요. 그에 반해 한국은 교단이 신학교를 너무 강력하게 통제하고 지배해요. 그래서 신학자, 신학생 모두 공포의 문화 속에 갇혀 있어요. 반동성애 담론이 힘을 잃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기독교 활동가들과 함께하면서 맘이 무거운 것은 활동가들이 너무 지쳐있다는 거예요. 번아웃 상태면 일을 못하고 안 해야 하는데, 번아웃 상태에서도 계속 일을 해요. 심한 경우는 쉬어야 하는 데 ‘쉴 힘’도 없어 보이기도 해요.. 자기를 돌보고, 서로를 돌보는, 상호 지지 방식을 만들어 가야 할 것 같아요.

 

다빈: 복합적으로 왔던 감정은 무력감이에요. 천주교 교리 안에서는 반박하기 어려운생명윤리, 성윤리를 토대로 아무렇지 않게 상처주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안에서 더 많은 존재를 향해 우리를 확장해가는 신학의 언어가 부족하다 보니 여러 군데 걸쳐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죄책감과 부채감이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평신도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제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느낄 때도 많아요. 아무래도 성직자 중심으로 활동이 조직되고, 일이 진행될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평등세상이 제게는 힘이 많이 됐어요. 평등세상이 지향하는 가치 뿐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방식 또한 수평적이고 평등하고자 여러 방식으로 애쓰고 있거든요.

 

주환: 저는 되게 보수적인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시청에 동성애 반대 집회 나가라고 주보 올리는 교회에 있었어요. 그 안에서 내가 비겁해지는 걸 느끼며 더 크게 소리내고 싶은데 내 안위 때문에, 개인적인 불이익을 당할까봐 머뭇거리는 자신이 너무 괴로울 때가 있어서 나왔어요. 나와서 지금 속한 곳이 복음주의 그룹에서는 진보적인 편에 있는 곳인데 여전히  여기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때 힘들었던 것도 있어요. 개인적인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한데 차별금지법 해야지, 동성애 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입장문 냅시다 할 때는 침묵하고요. 좀 천천히 갑시다, 하시는 분들과 얘기해보면 대부분은 다 생각이 동일한데 교회 내 반대 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씀하시는 거죠.  이런 현실에 부딪힐 때 제가 가고 싶은 속도와 제가 속한 곳에서 가는 속도가 달라서느끼는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 올 때 항상 약간 죄인처럼 부채감 같은 게 있어요.

 

자캐오: 제가 활동하는 나눔의집 운동은 오랜 시간 지역 사회에서 주민 운동과 반빈곤 운동의 맥락에서 활동했어요. 때로 적극 앞장서서 활동하기도 했죠. 그런데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의 필요성이 제기되거나 시민사회 영역과 함께해야 할 때에는 늘 일할 사람이 부족했어요. 사회와 종교 영역의 경계에서 활동할 때, 이런 부분이 가장 큰 어려움이죠. 종교인으로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함께할 때도 비슷했어요. 임보라 목사님과도 자주 얘기했지만 ‘우리 외로우면 지는 거다’라며 눈에 띄는 소수가 되어 싸우는 문제를 많이 고민해 왔어요. 최근 이동환 목사님 사례처럼 못처럼 튀어 나와 보이는 사람만 못 박아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물론 어느 운동이든 앞장 선 한두 사람이 버틸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어요. 운동에서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그런데 눈에 띄는 한두 사람에게 너무 많은 걸 거는 방식은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죠. 그래서 저도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세계를 계속 이야기하고 실천하며 경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이게 너무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적인 이야기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저도 버겁고 자주 자기 검열을 하다 보니 지칠 때도 많고요. 무엇보다 한국 사회와 교회가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고, 특히 한국 주류 교회는 보수가 기본값이다 보니 어려움이 크죠.

 

 

Q.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덧붙여 차별금지법있는 나라가 되었을때 기대되는 교회의 변화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경일:  한 번은 인도에서 달릿(불가촉천민) 신학자들이 왔는데, 이분들이 세월호 가족을 만나고 싶어했어요. 인도와 한국의 문화적 차이도 있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달릿과 세월호 가족이 만나자마자 서로 마음이 통해버리는 거예요. 배제된 사람들이 서로의 고통을 바로 알아차린 거죠. 서로 끌어 안고 아픔을 나누고, 나중엔 손편지까지 써서 전해달라고 하셔서 번역해서 전해드렸어요. 또 한번은 세월호 가족들이 광화문에서 농성할 때 퀴어문화축제가  있었어요. 사실  염려가 되기도 했어요. 세월호 가족은 계속 초상집이나 마찬가진데, 성소수자와 앨라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축제를 가시화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부모님들이 차별받고 혐오당하고 배제당하는 성소수자의 고통에 바로 공감하시더라고요. 지금 세월호 가족과 이태원 가족이 연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고통받는 사람들이 서로 알아보고 끌어안고 동행하는 것, 아픔과 아픔의 연대, 그것이 하느님 나라인 것 같아요. 

최근 NCCK 기독교 사회운동 100년사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데, 1970년대에서 90년대초까지의 역사를 보면 너무 가슴이 벅차요. 노동자든 도시빈민이든, 힘없는 사람들이 갈 곳 없고 호소할 곳 없을 때 찾아간 곳이 기독교회관이고 명동성당이었거든요. 고통받는 사람들이 종교를 신뢰하며 의지한 것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죠.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고통받는 성소수자를 가장 배제하는 곳도 교회고요. 그럴수록  평등세상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애써서 소수자와 연대하며 환대하고, 그래서 미래 사회의 소수자들이 교회를 찾아와 기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오늘의 교회 현실을 보면 그런 바람에 대해 낙관하기 어려워요. 희망과 비관 사이에서 비틀비틀대는 거죠.

 

예정: 저는 어쨌든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지만 천주교도 청년 세대가 안 와서 고민이 깊어요. 천주교 문제점 중 하나가 완전 정상가족의 관점이라는 것인데 교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성당 운영도 그 중심으로 돌아가요. 비혼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청년, 장년, 중년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요. 청년회는 미혼인 청년들만 활동하고 결혼하면 나이와 무관하게 청년회 못 들어가요. 청년회는 결혼하지 않은 20~30대 중심이고 마흔이 된 비혼 1인가구는 성당에서 갈 곳이 없는 거예요. 예수님, 성모님 ,성요셉 정상가족이 천주교 핵심인데 그래서 떠나가는 사람들 많을 거 같아요. 그걸 벗어나도 괜찮다는 상상력, 틀에 갇혀있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전체사회 프레임 전환이 필요해요. 교회 안에서도 차별금지법이 어쨌거나 몰래 통과될 수 있는 법이 아니잖아요. 통과되는 시점이  한국사회 전반이 그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하면 교회가 원하든 원치 않든 발 맞춰서 바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져올 변화에 발 맞출 줄 알았으면 합니다.

 

수경: 저는 두 가지 소소한 건데요. 저희가 모임을 되게 많이 하는데 되게 다양한 분들이 오세요. 제일 뭉클했던 건 모임에 오시던 분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커밍아웃을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같이 모임하던 사람들이 그냥 ‘응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고. 저는 그게 되게 고마웠던 게 저희 모임을 안전하게 여겨준 것, 그분은 계속 일상 같이 나누고 가끔 ‘너네 너무 이성애 중심적이야’ 쓴소리도 하시고. 그게 계속 고맙고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아있고요. 그리고 제가 신문에 칼럼을 쓰는데 칼럼 목록을 쭉 봤더니 교회 비판하는 거랑 차별금지법 관련 주제를 꽤 썼더라고요. 어느때 댓글에 악플이 달렸는데 ‘누가 퀴어 아니랄까봐.’ 이렇게 달린 거예요. 그게 고마운 거예요. 나는 늘 동떨어진 이방인 같이 서성이는 사람처럼 빚진 마음으로 있었는데 (내 칼럼을 보고 나를 퀴어로 알았다는 점이 오히려~) 그렇게 봐주고 여겨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를 상상했을 때 사실 망할 교회는 망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신앙이 교회보다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때는 제도화된 교회가 굉장히 쓰임을 받았겠지만 이 교회가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의 제도 교회가 빠르게 보다 보편적인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고 환대하는 공동체로 재편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상상하는 공동체는 오히려 특별하지 않은 공동체였으면 좋겠어요. 나이, 직업, 성별, 성정체성 몰라도 안전하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상상을 해요. 

 

주환: 제가 있었던 보수적인 교회에서 특강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희는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동성애에 대한 성경 해석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어요. 비판을 엄청 당했는데 교회 안에 성소수자 청년들이 몰래 저를 찾아오거나, 저한테만 커밍아웃하기도 하고요. 인상깊었던 여성 청년이 있는데 다른 예배에서 어떤 목사님이 예배 인도 하면서 ‘이땅에 동성애가 발붙이지 못하게 해주시고’라고 말해서 너무 괴롭고 정죄감이 어마어마 했다고 했어요. 내가 진짜 그렇게 죄인이고 저주 받을 존재인가. 그 친구를 지지해주고 죄의식 느낄 필요 전혀 없다고 했을 때 저를 찾아왔다가 편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길 잘했구나 싶었어요. 인구 대비 성소수자 비율이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그정도 있다, 숨기고 있다가 이들이 나와서 위로를 받고 하는 것에 용기도 얻었어요. 그동안 욕 먹은 게 그런 사건 하나둘로 다 괜찮아져요.

교회는 태세전환을 잘하고 생각보다 주류 지향적이라 대세가 바뀌면 변하는 게 교회에요. 차별금지법 제정되고 대세가 그렇게 가면 성경에 동성애 이야기는 죄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하고 가르칠 거예요. 반대하던 사람들이 바뀌는 걸 볼 때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이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젠더 갈등이 청소년까지 내려가면 엄청 심하죠. 애가 타지만. 어쨌든 그런 카타르시스를 더 늦기 전에 느껴보고 싶어요.

 

다빈: 저희 센터랑 교류하는 일본 조선학교가 있어요. 서강대 학생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재일 조선인은 일본과 한국 사회로 부터 받은 차별로부터 민족 공동체를 지켜오면서,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면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 대학생들은 문화적으로 진보적이고 성평등에 관한 의식이 높은 편이어서  두 공동체가 굉장히 부딪혔어요. 재일조선인 공동체 특유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오늘날 20대 친구들에게는 불편하게 다가간 지점이 있었죠. 양쪽 공동체 사이에 낀 입장이자, 프로그램의 기획자로서 저는 각자의 입장이 이해가 가면서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어요. 한편으로는 천주교가 왜 조선학교를 지원하느냐는 비판을 받으면서, 현타가 좀 쎄게 왔어요. 런데 그래도 그 프로그램이 의미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프로그램 후속 모임에서 한 청년이 자신은 한국 사회의 여성으로서 늘 여성이 받는 차별에 관해서만 민감했는데, 이 경험을 통해 재일조선인의 고유한 차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고 말하더라고요.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가치와 문화에서 기인한 갈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차별 받는 사람들이 서로를 더 이해하는 기회였다고 믿어요. 

또 저희를 도와주신 선생님이 재일조선인이면서 천주교 신자였어요. 종교인이라는 게 자이니치 공동체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인데,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면서 재일조선인이라는 두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냐고 여쭤본 적이 있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그리스도인이 소수인 일본에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는 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본인에게는 전혀 충돌하지 않았고 오히려 소수자이자 배제된 사람으로서 자신을 더 큰 사랑과 더 넓은 포용으로 열어주는 길이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차별 받는 사람들끼리의 연대가 쉽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이 갈 수 있고, 가야하는 길이라고 믿어요. 실제로 조선학교도 천주교도 모두 조금씩 더 열린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요.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교회가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연결하고 이어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캐오: 이 질문 받고 여러 장면이 떠올랐는데, 2014년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퍼레이드 직전 임보라 목사님이랑 함께 축복식했던 자리로 가게 되네요. 그 자리는 제가 공개적으로 적극 환대받은 자리이었어요. 제가 축복하러 갔지만, 실상은 축제에 함께한 많은 분들이 저희를 환대해줬죠. 저한테 그 경험이 정말 특별했어요.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고 환대하는 자리이었거든요. 페스티벌이 일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 이유가 그런 것 같아요.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익숙함에 사로 잡혀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이야기들을 적극 꺼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만들죠. 그런 점에서 그날 그 자리는 제게 굉장히 중요한 자리이었어요. 또한 그날 함께한 임보라 목사님이 계셨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처럼, 여기에 계신 평등세상 분들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걸음이든 반 걸음이든 어떻게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다음 사람이 있는 거죠.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때 임보라 목사님이 제게 많이 고마워하셔서 당황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워낙 자주 말씀드린 거지만, 차별금지법 만들어져도 아무 교회도 망하지 않을 거에요. 교회는 차별금지법 있는 세상에서 빠르게 변할 거에요. 90년대 중반 주류 교회 안에서 여성 목사 안수 등 얘기할 때에 어떤 분들은 목숨 걸고 순교의 정신으로 막겠다며 어마어마하게 반대했죠. 한두 해 뒤에 호주제 폐지 운동이 본격화되었을 때에 어떤 분들은 작두를 들고 나오는 등 정말 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아무도 안 죽고 아무도 안 망했어요. ‘사회 속의 교회’라는 말처럼, 종교 영역은 사회를 넘어선 부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회 안에 존재하죠. 차별금지법 제정은 교회에 훈풍이 될 거에요. 이미 다양한 가족 구성 등으로 존재하는 교회 안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교회가 좀 더 다양하고 안전한 공간이 되는데 일조할 겁니다. 여기 있는 분들은 그 다음을 위해 또 뭔가 할 것 같지만요.

 

수경: 전 안 할 건데요. 전 예정쌤과 함께 떠나겠습니다!!^^

 

자캐오: 차별금지법 있는 교회에선 그 다음을 위해 달려가는 분들이 있을 거고 그런 힘들을 기대하죠.

 

 

 

Q. 덧붙여 꼭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나요.

 

수경: 저희 단체가 지금 모인 분들 중에서는 보수적인 영역에 속할 수도 있겠는데요. 예전에 저희가 페미니즘 퀴어 이슈로 인해 공격 아닌 공격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유튜브에서도 그러고 교단에서는 상종 못할 곳으로 지목되기도 했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핍박을 받을 때마다 오히려 후원이나 지지 목소리가 많아져요. 그만큼, 사회적 소수자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이 조용히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죠. 교회가 비록 사회 변화를 막아서는 것 같고 가장 앞장서서 핍박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 굉장히 다양한 역동이 있고 이 교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차별금지법 제정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용기를 얻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 평등세상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한 편의 고해성사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 인터뷰였어요.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분들인데 이토록 많은 괴로움과 부끄러움, 죄책감을 품은 채 ‘나의 편’에 함께 한다는 사실이 먹먹해지는 시간이었고, 종교인으로서의 사명과 책임의 무게가 깊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안에서는 지난 투쟁의 성과 중 하나로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약칭: 평등세상)’의 결성을 꼽고는 합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 투쟁을 통해 만나고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이루고 이를 계기로 서로를 의지하며 다음의 길을 만들어 갑니다. 어찌 이롭지 아니할 수 있을까요. 이 분들이 있기에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습니다. ‘희망과 비관 사이를 비틀대며’ ‘한 걸음이든 반 걸음이든’ 우리의 움직임이 다음 사람에게 환대의 장소가 되도록 ‘퀴어하게’ 연대하며 나아가기를 또한 소망합니다. 더불어 부디 이 글이 교회 안에서 차별에 고통 받는 분들, 평등의 언어들을 고민하는 분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많은 분들께 가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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