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평등UP] 세계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는 혐오, 문제는 차별이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492991

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2016.5. 24. 일본 중의회 본의회는 ‘본국 외 출신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조치에 관한 법률, 통칭 헤이트스피치해소법’을 통과시켰다. 혐오표현과 관련해 일본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이 법률은, 그 동안 지속적으로 문제되었던 재일한국인과 조선인을 포함해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선동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가 선언하고, 외국인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법률이 시행된 지 약 1년 반이 지난 지금, 여전한 한계도 존재하지만 한편으로 극우 단체들의 차별선동 시위·집회가 감소하는 등 분명한 효과가 나타났으며, 시민들 역시 해당 법에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선동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올해 9월 인천퀴어문화축제의 경우와 같이 이것이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일본의 헤이트스피치해소법 제정을 비롯한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들은 어떠한 함의를 가질 수 있는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1. 17. 부산 동아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글로컬 구술유산과 담론윤리, 그리고 글로벌 시티즌십」에 참여하여, 일본에서 인종차별과 혐오에 대응하여 활동을 해온 모로오카 야스코(師岡康子), 나카무라 일성(中村一成) 두 활동가 분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모로오카 야스코 변호사

교토 조선학교 습격사건 혐오와 차별의 해악

 

일본 내에서 재일한국인과 조선인(이하 ‘재일코리안’)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형태로 뿌리깊게 존재하여 왔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이후 일부 정치인들의 공공연한 혐오선동,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계기로 혐한 정서가 확산되었다. 그리고 2006년 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모임(이하 ‘재특회’)가 결성되면서, 재일코리안에 대한 혐오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적인 집회·시위가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혐오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2009년 교토 조선학교 습격사건이다.

 

교토 조선학교 습격사건은 2009년 교토시 미나미구에 있는 구 교토조선제일초급학교에, 재특회 등 극우단체 회원들이 3차례 몰려와 학교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혐오 선동을 한 사건을 말한다. 이들은 학교가 그 동안 운동장 목적으로 시와 합의하여 시립공원을 사용해 온 사실을 문제 삼으며, “스파이 양성기관”, “밀입국 자손”, “불법점거”, “스파이의 자식” 등의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고 학교가 공원 내에 설치한 스피커를 부수고, 축구 골대를 쓰러뜨리기도 하였다. 학교 측에서는 이들의 행위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여 처벌까지 이루어졌지만, 재특회 등은 인터넷으로 참가자를 모집해 두차례 더 이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

 

재특회 등의 혐오집회 모습 ⓒ 경북도민일보

 

이러한 재특회 등의 혐오선동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위 혐오집회 이후 학교에는 말없이 끊는 전화나 호통전화가 다수 걸려왔고 교사들은 이러한 인종차별 행위에 대응하느라 과로에 시달려야 했다. 학부모들 역시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에 순찰을 보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느껴야 했다. 무엇보다 큰 트라우마와 상처를 받은 것은 학생들이었다. 특히 자신들이 재일코리안이지만 특별히 소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학생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소수자로서 사회 속에서 겪는 차별의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이 사건에 대해 르포를 한 나카무라 일성은 학생들이 받은 상처를 이렇게 정리했다.

 

“정리하면 이 범죄행위는 메이저리티라면 보통 가지고 있는/가지고 있는 것조차 자각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세 개의 ‘전제’를 파괴했다. 하나는 ‘자신이 함부로 공격받지 않고, 훼손당하지 않는다는 신념’, ‘세계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것’, ‘자기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세계에 대한 신뢰감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학교와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계속되는 혐오집회에 대응하는 것과 더불어 법정을 통해 투쟁을 결심했고, 재특회와 실행범 등을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교토 지방 법원은 2013년 10월 7일, 1,226만엔의 배상과 학교로 가두선전 금지를 명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피고측은 항소했지만 오사카 고등 법원, 대법원 모두 상소를 기각하여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 판결은 ‘재특회 등이 한 헤이트스피치는 인종차별철폐협약을 위반한 차별행위’라는 판단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일본 내 혐오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차별운동과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의 제정

 

위 교토 조선학교 사건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는 일본의 시민사회 운동의 역할도 컸다. 재일코리안에 대한 혐오선동에 대해 인종차별 철폐 NGO 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국회 의원에 대한 앙케이트, 집회 등을 통해 이들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관련 법 제정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혐오집회에 대항하여 직접행동을 벌인 ‘카운터스’의 존재들 역시 일본 사회 내 재일코리안에 대한 혐오와 차별 문제에 맞서는 큰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시민사회에서 주목한 것은 재일코리안에 대한 혐오표현, 집회 등이 역사적이고 구조화된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모로오카 야스코는 자신의 저서 ‘증오하는 입’에서 “역사적·구조적으로 차별받아 온 피지배 위치에 놓인 소수자에 대한 차별, 폭력, 박해에서 비롯된 언행이라는 점이 혐오발언의 본질”이라고 진단하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시민단체들은 재특회 등의 혐오집회가 단지 표현의 문제를 넘어 국제적으로 승인된 인종차별철폐협약 위반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 전만에 있는 재일코리안을 비롯해 외국인에 대한 차별 전반을 해소하기 위한 법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였다. 그 결과 시민사회와 연대한 야당의원들을 중심으로 2015년 ‘인종차별 철폐 시책 추진법안’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여당인 자민당은 혐오표현에 한정하지 않고 인종차별 전반을 다루는 것은 범위가 너무 넓고,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법을 통한 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결국 몇 차례의 논의와 수정 끝에 당초의 인종차별철폐법안이 아닌, 외국인에 대한 혐오표현, 집회 등에만 한정된 지금의 헤이트스피치해소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다만 국회는 법안 설립 후인 26일 “헤이트 스피치 해소에 관한 결의”를 모든 정당에서 채택하고,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헤이트 스피치 해소 및 피해자를 진정으로 구제하기 위해, 차별 없는 사회를 목표로 해서 부단한 노력을 거듭해간다”는 점 등을 선언하여, 법안의 미비점을 다소 보완하는 결의를 하였다.

 

이처럼 헤이트스피치해소법은 당초 시민사회가 원했던 인종차별 전반을 다루는 법보다는 범위가 좁은, 혐오표현, 집회 등에 한정된 내용으로 제정되었고, 또한 실효적인 구제수단을 갖지 못한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법이 존재함으로서 가져오는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법이 제정된 후 그 동안 혐오집회를 수수방관하던 경찰의 태도가 달라졌으며, 지자체, 법원 등에서 혐오집회를 이유로 한 공원 사용을 불허가하는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법을 통해 국가가 더 이상 인종차별과 혐오선동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게 된 것이다. 일례로 일본 법무성은 해당 법안과 관련된 별도 페이지를 개설하여 혐오선동에 대한 다양한 캠페인들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 법무성 홈페이지에 게시된 혐오표현 계발활동 안내 (한국어버전)

 

점점 노골적이고 조직화되는 혐오와 차별선동에 맞서

 

지금까지 일본의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재일코리안에 대한 혐오의 해악과 이에 맞서는 시민사회의 논의 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일본의 상황과 논의들은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난민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선동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에 있어 어떤 함의를 주는가.

 

최근의 여러 사례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선동이 점차 노골화되면서 집회 또는 조직적인 의견표명 형태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4년부터 격해진 극우개신교 등의 퀴어문화축제 반대집회, 2016년 선거과정에서 기독자유당의 성소수자와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담긴 선거공보물, 여러 차례 신문지상에 실린 혐오선동 광고들, 2018년의 난민반대집회 등이 그러하다. 특히 올해 9. 3. 이루어진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는 반대집회 참가자들에 의해 피켓팅, 언어적 폭력을 넘어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이루어지는 등 증오범죄의 양상을 띠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직화된 혐오와 차별선동은 교토조선학교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소수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실제로 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극우개신교단체 등에 의해 인권침해를 겪은 축제 참가자의 약 30%가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고 응답하였다. 나카무라 일성의 이야기처럼 세계에 대한 신뢰감을 읽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혐오와 차별선동에 맞서서 가장 손쉽게 떠오르는 대책은 혐오를 목적으로 한 집회, 표현 등을 금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법무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소위 ‘가짜뉴스’ 대책 역시 기본 방향은 엄중처벌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재일코리안에 대한 혐오가 역사적이고 구조화된 인종차별에 기반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역시 소수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뿌리깊은 차별의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기에 특정 표현, 집회만에 초점을 두고 이를 규제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 될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사회 전체에 만연한 차별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해소하는 것만이 보다 근본적으로 더 이상의 혐오선동을 막는 방법이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가 누구도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헤이트스피치해소법이 많은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법이라는 형식을 통해 외국인에 대한 혐오표현, 집회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청소년, 난민, 이주민, HIV감염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차별과 혐오를 마주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 역시 더 이상의 유예 없이 차별금지와 평등에 대한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 방법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결정적 방법이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