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곳에서는… 

 길거리에서는 팔짱 낀 남남, 여여 커플이 데이트를 하며 지나갑니다. 웨딩홀에선 더 이상 남녀만의 결혼만 이루어지지 않고 동성간의 결혼도 법적으로 가능해집니다. 아니, 결혼식을 했냐 안했냐 자체는 무의미하지만요. 혼인 및 혈연관계로 구축된 현재의 친족상속법은 모두 비혼가족과 가족형 공동체를 포괄하는 내용으로 개정되었습니다. 학벌서열은 사라져서 대학입시체계와 의무교육 체계는 오늘날의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더 이상 입사원서에 성별, 출신지와 출신학교, 얼굴사진첨부 등이 허용되지 않으며, 이주노동자를 싸게 부리는 일이나 파견근로 및 비정규직 제도가 없어지고 노동 유연성이란 개념이 없어져서, 현재와 같은 경제체제는 더이상 굴러갈 수 없게 됩니다. 미디어는 시각, 청각을 비롯한 모든 신체장애와 기타 신체적 상태에 대한 배려 없이는 유통되기 힘듭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북한에서 건너왔다고 해서 무시와 모욕을 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미숙한 이로 무시당하지도 않고요. 노숙자는 척결 혹은 호혜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차이가 차별이 아닌 다양함일 수 있는 사회, 다양함이 서로 어우러지는 사회, 낙인찍히거나 폭력을 당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 그대로 인정받고 사는 세상.” 이런 표현은 비록 상투적이지만 차별없는 세상을 얘기할 때면 원론적으로 쓰는 말입니다. 아름답고 천국 같으며 어찌 보면 너무 유토피아 같아서 비현실적으로 느끼지기까지 하지요. 그런데 차별없는 세상은 이런 이상적인 모습일까요?

어쩌면 차별없는 세상은 누군가의 눈에는 이상향 같은 아름답고 찬란한 세상이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지금의 ‘상식’을 기준으로 삼아 보면 그저 혼돈과 무질서, 모순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이겠지요. 특히나 그 세상을 “비정규직이 사라져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이 있다”고 보고 “며느리가 남자라니, 군대에 동성애를 방임하면 내 아들 에이즈 걸린다”고 말하고“ 노령, 빈곤, 여성, 장애 등 취약계층 복지비용 증가는 비효율적인 국고낭비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차별없는 세상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디스토피아로 보이겠지요.

그럼에도 여전히,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차별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다른 색깔의 물감을 버무려 뒤섞어버리면 한 가지 색, 탁한 진회색이겠지만, 차이가 공존하며 어우러지면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되는 꿈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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