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천주교인권위 <교회와 인권>

 

[차별과 인권]

모든 차별을 없애기 위해 인권단체들이 나섰다

모두를 위한 평등! 차별금지법 제정!

박석진(인권운동사랑방, 차별금지법제정연대)

2009년 30대의 한 한국인 남성은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인도인에게 무작정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더러워.”, “이 냄새나는 새끼야.”, “You Arab!” 등과 같은 말을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씨에게 반복했다. 그리고 후세인 씨와 함께 있던 한국인 여성이 그 남성의 욕설을 제지하자 그 여성에게도 “조선*이 새까만 자식이랑 다니니까 좋냐?”고 욕을 했다. 결국 후세인 씨와 한국인 여성은 자신들에게 욕설을 퍼부은 남성을 경찰서에 가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서에서도 경찰은 “한국에 인종차별은 없다”고 하며 처음에는 사건의 혐의를 부인했고, 심지어는 후세인 씨에게 반말로 말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물리적인 폭력 행위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후세인 씨는 차별적인 말을 통해 모욕을 당했고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결국 법원도 “외국인을 혐오하는 듯한 발언을 해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욕설을 퍼부은 한국인 남성에게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차별금지법이 없는 상황에서 법원은 이 사건을 사회적인 ‘차별’이 아니라 개인적인 ‘모욕’으로 해석했는데,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에 인종차별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은 잘 드러나지 않아 심각하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차별적인 상황은 실상 그리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은 2010년 7월 사법연수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사회도 이제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깜둥이도 같이 산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인권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심각한 발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종차별적인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이주민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다양한 모임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모임들은 대체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적대시하고, 이슬람 문화를 배척하며, ‘다문화’에 반대한다. 이들 중 일부는 ‘불법체류자들’을 강제추방하기 위해 자신들이 직접 ‘인간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어디에 있는 공장에 몇 명이 있는지 제보를 해달라며, 이주노동자들을 강제로 잡아들일 봉고차도 대기 중이라고 알리기도 한다. 실제로 게시판에는 한 회원의 제보로 60여명의 ‘불법체류자’들을 잡았다는 자축의 글도 보인다. 뿐만 아니라 한 중앙 일간지 인터넷 기사 댓글에는 “한국여자나 노략질하는 바퀴스탄 놈들은 싫다”와 같은 글들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인종차별을 없애려 노력하기는커녕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에만 열을 올리고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데에만 힘을 쏟고 있다. 물론 한 편으로는 ‘다문화, 다문화’ 외치고 있지만, 이 둘 사이의 모순을 메우진 못해 결국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철학이 없는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 한국 정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한국의 법에 인종차별의 정의가 없다”고 지적하며 유엔의 차별금지규정에 부합하는 인종차별의 정의를 법안에 포함시킬 것을 권고했다. 또 모든 이주노동자와 외국인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고 철폐할 것과 인종적으로 유발된 범죄의 금지 및 처벌을 위한 법률적 조치를 채택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차별금지법을 신속히 제정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또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적극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올바른 차별금지법을 위한 세 가지 원칙

한국 정부와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고 있는 사이, 최근 인권사회단체들이 나서서 차별금지법을 직접 제정하겠다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발족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안을 공동의 토론을 통해 만들어가면서 차별의 정의에 대한 인식을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의 차별 현실을 고려해 세 가지 차별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첫 번째는, ‘괴롭힘’도 차별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괴롭힘’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하여 존엄성을 해치거나,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을 야기하거나 적대적·위협적·모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일체의 행위’로 정의된다. ‘차별당했다’는 경험은 인간적인 모욕이나 무시와 같은 감정을 통해 가장 많이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욕감과 무시는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는 것’에 대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실패와 굴욕의 경험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사회적 관계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차별은 매우 복잡하게 복합적으로 일어난다는 ‘복합차별’의 문제의식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장애여성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겪는 차별은 그 원인을 어느 하나로만 한정해서 생각할 수 없다. 차별의 원인을 장애인이기 때문이냐, 여성이기 때문이냐 등과 같이 분리하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정체성과 경험을 분리하려는 것으로서 그 경우 복잡한 차별 경험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복합차별을 고민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복합차별의 문제의식은 일반법인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비로소 풀릴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모든 차별이 차별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차별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07년 당시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면서 몇 가지 차별사유가 논란이 되자 법무부는 성적지향, 학력, 출신국가 등 7개 차별사유를 삭제한 채 법안을 발의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보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차별금지법의 ‘성적지향’을 문제 삼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서 반대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보수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차별금지법’이라고 왜곡하며 법 제정을 막고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가장 중요한 입법 취지 중 하나는 ‘모든 차별에 대한 금지’라는 점이다. 차별금지법이 일부의 차별을 의도적으로 누락하면서 특정 차별을 또다시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면 이는 차별금지법의 기본 취지와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에는 우리 사회의 차별사유로 인식되고 있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에 ‘성적지향’이 포함된다는 의미는 동성애에 대한 찬성/반대라기보다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금지할 것인지 용인할 것인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동성애는 찬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며 동성애 혐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고, 이를 내세워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보수 기독교가 중심이 된 이들은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왠말이냐”,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등과 같은 동성애 혐오적인 내용으로 수차례 신문 광고를 냈다. 또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던 법무부와 동성애를 처벌하도록 한 군형법 92조가 동성애 차별적이라고 의견을 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매일 진행했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진보정당 의원들에게 항의 전화를 조직적으로 걸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과 함께 활동하던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당시 국가인권위와 현병철 위원장의 파행에 항의하고 있던 인권활동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공격하기도 했다. 사회적 편견에 기반한 차별이 쉽게 혐오 범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차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이들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차별금지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

국가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의무를 갖고 있으므로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을 지향할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오히려 서두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고 있다. 일부에서는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법무부가 자신의 책임을 망각하고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을 금지하자고 하는 것이 어떻게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나. 이는 결국 법무부가 차별금지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고, 차별과 인권, 사회정의에 대한 법무부의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법무부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었나 싶기도 하지만, 현 정부의 수준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이 나섰다. 우리 사회의 차별 현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사회적으로 논의하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기 위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로 모였다. 돈과 권력을 가진 저쪽의 힘이 여전히 매우 크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한 모두를 위한 평등!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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