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복지동향 2월호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출발, 차별금지법 제정!

진경(장애여성공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명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의견은 어떠할까? 차별이 무엇이고,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어떤 법을 만들어야 차별을 금지할 수 있을 것인지 등등의 질문을 한번쯤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인 지난 1월 5일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기자회견을 갖고 정식으로 출범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헌법의 평등이념을 실현하는 인권기본법이자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실체법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40여개의 다양한 인권․시민사회 단체 및 개인들이 연대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이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그러한 차별금지법 중에서 개별법의 성격을 지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한국에서는 장애계의 오랜 투쟁과 노력으로 인하여 제정되었음에도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향후 개정을 위한 투쟁도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차별로 인식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으며, 차별 상담을 통해서 다양한 차별 사례들이 축적되고 있다. 장애인 보험차별, 방송사 웹 접근성 차별 등에 대한 집단 진정도 계속 되고 있으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올해 1월에도 발달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서울 공공근린시설 170곳을 집단 진정했다. 집단 진정을 통해서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이 그 한 사람의 개인적인 불편함이 아니라 많은 장애인들에게 그러한 차별을 겪게 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는 점을 알릴 수 있게 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로서 작동한다.

한국에는 고용 상의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몇 개의 차별 관련법이 존재하고 있지만,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제외하고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이 거의 없으며 모든 차별을 포괄할 수 있는 일반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함께하고 있는 여러 단위들은 포괄적인 일반법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는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사회적 신분 등의 차별 사유를 차별금지법에 담고자 한다. 또한, 차별유형도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복합차별, 광고행위 등으로 보다 세분화하면서 동시에 현실의 차별 사례에 더 적합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낮은 차별 감수성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차별을 받거나 다른 사람을 차별하면서 살고 있음에도 그것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학력 차별, 나이 차별, 가족상황 차별처럼 한국에서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차별조차도 한국의 사회문화적인 특수성으로 이해되거나 개인이 가진 하나의 조건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이 사회에서 인식조차 되지 않았던 다양한 차별현실을 드러내고,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독일, 캐나다,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 이미 일반법으로서의 차별금지 법을 시행하고 있거나 차별 관련 법들을 계속 발전시켜나가고 있으며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도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분위기로 인해 2008년 UN 국가별 정기검토제도의 국가보고서와 2009년 UN 사회권 위원회 정부보고서 등에서 한국 정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보고서에서 밝히는 입장과 실제로 드러나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지난 2007년에 법무부의 입법 예고로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능성이 보이는 듯 했다. 그렇지만 당시 경총을 비롯한 재계와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압력으로 인하여 법무부는 7개의 차별사유(성적지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를 삭제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어떤’ 차별은 안 되지만, 또 ‘어떤’ 차별은 허용된다는 정부의 입장은 차별금지법의 기본 취지와 의미마저 왜곡시킨 것이었다. 많은 인권단체들의 비판과 저지 운동이 일어났으며 결국 17대 국회의 회기만료로 법안은 폐기되었다.

그 후 정권이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한국 사회의 차별 현실은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권장’한 덕분에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2010년에 또다시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반차별이나 인권 관련 단체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는 막아버린 채 법 제정의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 법안의 내용들을 모두 ‘비공개’로 일관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드러나자마자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차별금지법을 ‘동성애차별금지법’으로 왜곡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 제정을 막고자 했다. ‘동성애를 막기 위한 기도모임’을 온갖 교회에서 조직하고, 조선일보에 동성애 혐오 광고를 내고, 법무부의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로 사이버 테러를 지속하고, 민원 전화를 끊임없이 걸어대고, 집요하고 조직적인 ‘동성애 확산 저지 1인 시위’를 청와대, 과천정부청사, 국가인권위원회 등 곳곳에서 진행했다. 이것은 2007년도보다도 더 빠르고, 과격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반차별 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행정부처간의 권력다툼과 눈치 보기로 차별금지법 발의 여부를 결정하려는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차별을 확산시키고 있는 보수 기독교 세력의 움직임에 대응해왔지만 ‘비판과 대응’을 넘어서는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자신들의 기준으로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규정하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너무도 당당하게 드러내는 세력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믿음을 전도하고, 허위 수치를 바탕으로 한 잘못된 정보를 유포시키고, 자세히 보면 빈틈이 빤히 보이는 이상한 논리들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목소리들이 최근에 자꾸 드러나는 것에 비해 상식적이고 인권과 평등의 이념에 기반 한 목소리들은 가려져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가치들이 선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사례들로 드러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하여,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월의 출범 이후 활발하게 움직이며 다양한 활동들을 기획하고 있다. 단체와 단위별, 혹은 부산, 대구, 전주 등 지역별 간담회를 통해서 차별 사례들을 좀 더 많이 발굴하고자 한다. 1월에 발행한 책자<올바른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길라잡이>를 활용하여 차별금지법의 취지와 의미, 우리가 지향하는 차별금지법의 내용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다.

2월 1일에 서울역 광장에서 명절캠페인인 <가는 곳은 달라도 차별금지법으로 통해요>를 진행했으며 앞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전전과 캠페인, 대중강연 등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 상반기에 다가오는 3.8 여성의 날과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5.1 노동절을 기점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슈화시키려고 한다. 현재 차별금지법안의 초안을 완성한 후에 내부적으로 검토 중에 있으며 법안 해설서도 준비하고 있다. 사회적인 여론 형성과 더불어 차별금지법을 발의, 상정하기 위한 국회 대응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인권, 차별 관련한 많은 연대활동들이 지속되어 왔다. 그렇지만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단체와 개인들의 연대감이 강력한 에너지를 표출하고 있는 듯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활동은 단지 법 제정만을 목표로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 양상과 실체를 드러내며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즐겁고 힘차고 지치지 않게,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드러낼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낯설지 않도록, 나에게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차별금지법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계속 이야기하고 활동해 갈 것이다. 그리고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지지해줄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지기를 기대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블로그: www.ad-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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