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혐오와 차별을 드러낸 군형법 제92조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 헌법 정신 실현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
헌법재판소(아래 헌재)는 3월 31일 군대 내 동성 간 성적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군형법 제92조에 대한 위헌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결국 동성애를 형법으로써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국내 유일한 법률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모든 국민들의 평등권을 명시하고 있는 헌법을 전제로 판단한다고 하는 헌재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법조항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군형법 제92조는 군인으로 한정하여 적용되는 법이긴 하지만 동성애를 이유로 형사적 처벌을 하는 유일한 법조항을 담고 있다. 현재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를 명시적으로 처벌하는 나라는 일부 이슬람국가에 한정되어 있다.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과 법·제도적 처벌을 금지하는 원칙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고, 일부 이슬람국가의 동성애 처벌 법안은 대표적인 차별법으로서 국제적인 규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헌재는 군대라는 특수성을 들어서 계간과 기타 추행을 처벌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먼저 우리는 군형법에 명시된 계간과 기타 추행이라는 규정 자체가 차별이라는 것부터 지적한다.
‘계간(鷄姦)’은 ‘닭의 성교 행위’라는 한자어로 동성 간의 성행위 자체를 비하하는 용어이다. 또한 ‘기타 추행’은 대법원과 헌재의 해석에 따르면 ‘계간에 이르지 않은 동성애 성행위 등’을 의미한다. 동성 간의 모든 성적 행위를 ‘추행(醜行)’ 즉, 추한 행위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용어도 아닐 뿐더러, 용어 자체에 차별과 혐오가 담겨 있다.
헌재는 군형법 제92조 5항을 합헌이라고 결정한 이유로 주로 ‘동성 간의 성적 행위가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로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혀 합리적인 이유라고 할 수 없다. 동성 간의 성적 행위를 미리 차별적으로 판단하고, 그것 때문에 군기가 침해된다고 하는 것은 동성애를 차별적으로 보고 있는 헌법재판관들의 편견일 따름이다. 또한 ‘이성 간의 성적 행위에 반해 동성 간의 성적 행위는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아니’라고 하는 평등권에 대한 차별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이성 간의 성적 행위와 동성 간의 성적 행위에 대한 차별적인 해석을 내놓은 헌재 자체가 헌법의 평등권을 위반하고 있다. 헌법을 위반한 ‘헌법재판’소는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
군대에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고도로 위계화된 관계 속에서 성관계를 강요받는, 바로 성폭력에 대한 것이다.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려면 바로 성폭력이 발생되고 은폐될 위험이 있는 조건이라는 점이다. 군대 내 성폭력은 당연히 근절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런데 2009년 군형법이 개정되면서 군대 내 성폭력을 처벌하는 조항들을 군형법 안에 별도로 신설되었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92조 ‘계간’ 조항은 더 명확하게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관계만을 처벌하는 조항이 되었다. 군대 내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징계와 같은 행정적 제재를 통해 충분히 규제가능하며, 적발된 당사자가 이성(異性)인 경우에는 지금도 그처럼 규율되고 있다. 반면 동성 간의 합의된 성관계나 성적인 행위가 적발된 경우에는 위 계간 조항에 따라 징역 2년(2009년 개정법) 이하라는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러한 계간 조항은 명백하게 차별적인 조항이며 헌재는 당연히 위헌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헌재의 결정에 당혹스러움과 심각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군형법 제92조와 이번 헌재의 결정 자체가 차별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장하고 있고,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차별금지법은 일부 세력이 ‘동성애 차별금지법’이라고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반대해 법 제정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동시에 그들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노력을 벌여 오며 차별을 조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2007년 차별금지법이 법무부에 의해 국회에 발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정되지 못했고, 2011년 법무부는 1년 이상 추진해온 차별금지법 제정을 또다시 중단하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을 없애고 평등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법무부와 헌재가 차별을 방치하고 나아가 승인하는 모습은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준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어떤 사유로든 불합리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다시 확인될 필요가 있으며,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차별을 없애기 위한 인권기본법으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현재 인권사회단체들은 이를 위하여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 중이다. 우리 사회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모두를 위한 평등을 위해, 우리에게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2011년 4월 1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가족구성권연구모임,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다문화가족협회,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반차별공동행동,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인종차별반대공동행동,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연분홍치마, 언니네트워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웹진 TQueer.com,유엔인권정책센터,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문화실천모임 맥놀이,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여성공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진보신당,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연구집단 카이로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향린교회 여성인권소모임
[사진출처-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