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연속토론회 <차별의 구조에 맞서는 도전, 평등을 향한 연대>
📌 [후기] 2회차 “빈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벗어나라?” – 사회경제적 지위 및 상태로 인한 차별을 가시화하기
전은경 (참여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책담론팀)
2022년 7월, 유엔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 : 빈곤철폐를 위한 핵심수단 (A/77/157)’ 보고서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불법화해야 할 사회의 오점이라고 강조하고, ‘파버티즘’(povertysim) 즉,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차별금지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연령, 성, 장애, 인종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인데요. 특별보고관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고정관념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고, 그런 것들이 거의 신분화되고 있기 때문에 빈곤 차별도 금지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프랑스가 가난에 대한 차별을 범죄로 규정하고, 캐나다 퀘벡주에서도 ‘사회적 조건’을 차별금지사유로 포함하는 등 진전이 있었다고 강조하면서요.
한국 사회에서도 빈부 차별은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차별금지법 연속토론회 <차별의 구조에 맞서는 도전, 평등을 향한 연대>의 두 번째 시간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사회경제적 지위 및 상태로 인한 차별을 가시화하기’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이주영 님은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갤럽이 실시한 조사 결과를 통해 빈곤과 차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보여주셨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2022년 인권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권침해와 차별을 많이 받는 계층으로 ‘경제적 빈곤층’이라는 응답이 38.2%로 가장 높았습니다. 성(性), 나이, 장애, 빈부(貧富), 성소수자, 학력⋅학벌, 비정규직, 국적⋅인종 등 8개 항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 정도를 묻는 한국 갤럽의 조사에서도 빈부(貧富) 차별이 81%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빈곤층, 즉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인권 문제를 경험하게 될까요? 빈곤층은 일자리, 교육, 주거, 건강, 과학기술 및 문화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사회경제적 박탈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편견, 낙인, 무시, 조롱, 경멸, 괴롭힘을 당하거나 이로 인해 폭력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사회적 편견이나 낙인은 빈곤층이 사회경제적인 자원이나 기회에 접근하려고 할 때 그것들을 차단하고 배제하는 환경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는 정치과정에서 제대로 대변되지 않고, 넓은 의미의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주영 님은 이 과정에서 인권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사회권, 세계인권선언과 자유권 및 사회권 규약에서 다루고 있는 법의 평등한 보호와 비차별 및 평등, 동등대우의 원칙 등 연관된 개념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이유로 한 차별금지를 추가한다고 할 때 어떤 어려움이나 한계가 있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주셨습니다. 실제로 사회경제적 지위나 빈곤에 대한 차별에는 능력주의가 작동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성별, 인종, 민족, 피부색, 장애 등과 달리 사회경제적 지위나 빈곤은 “자신의 선택이지”, “그 사람의 탓이지”, “더 노력하지 않아서지”라고 간주하는 관념들이 굉장히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차별금지사유에 사회경제적 지위나 빈곤이 포함되어 논의되는 것에 대한 경계도 존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빈곤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박탈이나 부당한 대우, 불평등의 문제 대부분은 사실상 (법을 통해) 해소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주영님은 실질적 평등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이 고용, 교육, 소득, 사회보장 등 사회경제적 자원과 기회에 접근하는데 존재하는 불리한 상황을 개선하고, 사회적 낙인이나 고정관념, 괴롭힘 및 폭력을 시정해 동등한 지위와 존엄을 인정하고, 차이를 수용해 동등한 권리의 향유를 보장하고,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정치적 참여나 사회적 포용을 증진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조치’ 또는 ‘적극적 조치’의 설계와 실행도 필요합니다. 차별 및 불평등의 구체적 현황에 근거한 조치들의 설계와 효과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 당사자들에 대한 잠재적⋅실질적 영향 평가와 사전 협의, 적극적 참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낙인이나 편견이 강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고려되어야 할 지점입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홈리스행동의 형진 님은 인권 현장에서 본 빈곤과 차별의 사례, 쟁점, 그리고 반빈곤활동가로서의 고민에 대해 나눠주셨습니다. 형진 님이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바로 코로나19의 확산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노골적인 차별의 형태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홈리스들은 노숙인 지원기관 등 공적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일주일마다 PCR 검사결과지를 제출해야 했고, 의료급여 1종 수급자로 지정된 국공립병원에만 다닐 수 있었던 제한적 상황조차도 코로나로 인해 환자들을 받지 않으면서 병원조차 갈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감염병 시기 집중된 차별과 적대가 홈리스를 비롯한 빈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 상황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중립적인 외양을 갖춘 제도적 차별이 성행하지만, 빈곤 당사자의 차별 경험을 상징화할 ‘언어’가 부재하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형진 님은 빈곤층이 경험하는 제도화된 차별에 대해 여러 사례를 통해 이야기 나눠주셨습니다. 빈곤층을 부정직하며 자기결정(자기관리)에 취약한 사람들로 간주하고, 정책 자체가 이런 특성을 교정하는 방향으로 짜여져 있다는 겁니다. 차별적인 시선과 낙인은 공적 지원의 불충분함 혹은 사회적 권리 등 구조적 요인을 은폐하고, 결국 빈곤한 당사자가 공공부문을 통해 필요한 지원을 구하거나 사회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 주저하게 만듭니다. 형진 님은 공공역사 내 홈리스 혹은 홈리스로 보이는 사람들을 표적 삼아 주기적으로 퇴거조치하거나 물품을 압수⋅폐기하는 사례, 엘리베이터에서 대소변을 보는 노숙인 발견 시 역무실로 신고하라는 등의 배타적인 통제와 망신주기 사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여러 공적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신청할 때 발생하는 편견과 혐오에 기초한 낙인, 부정수급을 의심하도록 만든 제도설계, 다른 정책 대상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정보와 절차를 요구하는 사례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차별의 구체적 사례와 특징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입주신청서에는 알코올 의존, 장애, 질환 정보를 요구하고 있고, 서울시 임시주거지원 입주자 서약서에는 “하지 않겠습니다”, “지키지 않을 경우 지원을 중단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와 같은 문구들이 등장합니다. 쪽방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동행식당’ 안내문에는 ‘개인 청결 신경’, ‘2인 이상 식당 이용’ 등 행정이 복지 이용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문구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형진 님은 빈곤과 차별 혹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차별을 다루면서 고민되는 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주셨습니다. 빈곤 당사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위한 명징한 언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른 차별의 개념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차별과 평등을 둘러싼 논의 지형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다른 유형의 차별에 비해 덜 규범적이며 논의의 역사가 짧아서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빈곤과 차별의 복합성과 다면성을 각각 고려해가며 구체적인 요구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의 논리체계를 어떻게 갖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는데요. 토론회를 함께 하면서 저 역시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토론회 이후 살펴본 유엔 극빈과 인권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는 사회경제적 취약성에 따른 차별의 금지가 보건의료의 권리, 주거와 노동의 권리에 있어 최소한의 필수적인 수준을 보장하고, 이러한 권리들을 효과적으로 향유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계 각국의 사례를 담고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빈곤층이 직면한 구조적 차별에서 비롯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적극적 조치가 필수적이라는 제안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제목처럼 사회경제적 지위 및 상태로 인한 차별, 즉 빈곤과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였습니다.
👉 연속토론회 자료집 다운로드 받기 : https://equalityact.kr/structure-challeng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