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는 세상,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가 토요일 윤석열 퇴진 범시민대행진에 함께 한 시민들께 받은 질문의 벽의 메모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2017년 딱 이즈음. 그때도 광화문에는 매주 토요일 롱패딩을 입고 장갑을 낀 시민 수십만명이 모였습니다. 정당하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두고보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굳은 결의가 광장에 울려퍼졌습니다. 그 광장에서도 우리는 박근혜 다음의 세상을 그려보며 이 다음의 사회를 상상하며 그려보곤 하였습니다. 그때 시민들에게 차별금지법은 참 낯선 단어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7년의 시간이 흐른 광장에서는 매주 누군가의 발언에서 차별금지법이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세계는 코로나19팬데믹을 겪었습니다. 특히 이 시기 많은 사람들이 차별을 겪을 가능성에 대한 인지, 그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졌습니다. 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에 대한 시민의식은 넓고 깊어졌습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차별시정 정책으로 평등권 보장 위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8.5%를 기록하였습니다. 2년 후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시 한 번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차별 해소는 사회적 문제다’에 동의하는 응답이 75%라는 높은 동의율을 기록하였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아주 다양한 맥락에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주 언급되는 차별금지법이 “어떻게”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인지 문득 궁금한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차별금지법은 크게 총칙,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차별시정 의무, 차별금지 및 예방조치, 그리고 차별의 구제 이렇게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칙에서는 어떤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되는지를 나열한 차별금지사유, 무엇이 차별인지를 규정한 차별의 개념, 어떤 경우는 차별이라 보지 않는지를 명시한 차별의 예외 등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를 규정한 장에서는 차별을 예방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규정합니다. 차별금지 및 예방조치에서는 어떤 영역들에서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지를 규정합니다. 통상 고용, 재화와 용역, 교육, 행정서비스 이렇게 4개의 영역에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설교시간을 운운하는 일부 정보들은 거짓입니다. 종교의 설교시간에 사회적 구성원에 대한 차별적 언사는 명백히 부적절하지만 차별금지법이 그것을 금지한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고용 영역은 근로기준법이나 남녀고용평등법보다 넓은 범위까지의 노동자를 포괄하고 있고, 노동계약 체결이 되기 전인 모집과 채용과정까지를 포괄함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경우 초중고, 대학뿐 아니라 국가가 관할하는 다양한 직업훈련교육 등도 포함됨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아주 섬세하게 이 법이 적용되는 영역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별의 구제에서는 차별에 맞서기로 결심한 피해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규정합니다. 차별의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 절차를 통하거나 법원의 판결을 통한 구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차별임이 확인된다면 차별행위가 중지되고 피해의 원상복구를 위한 절차와 차별 행위자의 의무가 무엇인지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용기내어 차별을 말하고, 피해자를 돕는 이들이 징계, 퇴학, 해고 등의 불이익조치를 받지 않도록 ‘불이익조치금지’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차별금지법은 어떤 것이 차별인지에 대한 개념정의로 출발하여 차별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 차별을 예방할 국가의 책무 등을 규정한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차별의 피해자가 용기내 맞서 싸울 든든한 기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사실 한국만큼의 곡절을 겪은 나라는 유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필요성이 대두되고 국회와 정부는 그 나라에 적합한 법제를 마련하고 제정합니다. 지금 대만은 정부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안 마련을 진행중입니다. 지난 해 한국을 방문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만 NAP에서 계획을 세웠고 만들 때가 되었으니 정부는 그 작업을 하고 있는거라고 하더라구요. 그 과정에서 더 좋은 안을 만들기 위해 시민사회가 해야할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의 현실과 비교해보니 더 좋은 안을 위한 고민을 하는 대만의 활동가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은 많은 인권의제의,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 의제의 제일 앞 단에 있습니다. 사실 정치인들도 정부도 알고 있습니다. 13번의 UN 인권조약기구의 권고, 18년째 미뤄진 제정 과정 이 외면의 시간동안 차별금지법은 차별과 혐오와 단호한 선을 긋겠다는 상징과도 같은 법이 되었습니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은 차별금지법 제정의 시동이 걸리는 순간 누구보다도 눈에 불을 켜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 중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 다수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성경에 반하는 국가를 원치 않는다며 성소수자가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에 반대하며 이 법의 제정을 막아섭니다. 한국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마침내 이뤄낸다면, 그것은 이 사회가 혐오와 차별에 작별을 고하고 평등으로 전진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더는 성소수자가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길 원치 않는다는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평등을 위한 정책에 힘쓰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비상계엄 선포에서 발표된 포고령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존엄과 권리를 말살하려 들었습니다. 그에  동조할 수 없다는 시민들이 열어가는 이 퇴진의 광장으로 맞이하게 될 그 다음의 세상은 혐오와 차별, 폭력을 몰아내고 존엄과 평등의 자리가 되기를, 그 길에 차별금지법도 마침내 제정되기를 바라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깃발을 흩날려 봅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발간한 소책자를 읽어보세요! 배포도 대환영.

 

활동보고

[논평]윤석열과 극우정치를 탄핵하라 – 차별금지법 제정을 딛고 더 깊고 넓은 민주주의로 나아가자

 

윤석열과 극우정치를 탄핵하라
차별금지법 제정을 딛고 더 깊고 넓은 민주주의로 나아가자

 

 

윤석열의 계엄, 그 뒤에 소수자 차별과 혐오로 힘 키운 극우정치가 있다.

2024년 12월 3일, 혐오로 힘과 세력을 키우던 정치는 마침내 극우 정치를 완성했다. 윤석열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우며 안티페미니즘 정부를 출범했다. 임기의 절반밖에 안되는 2년 반 동안 이 사회 시민들의 존엄을 지속적으로 훼손하며 혐오의 지지를 키워나갔다. 아직도 일터는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는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 위험한 현장에 내몰린다. 그는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가 녹록치 않자 아예 장관도 임명하지 않고 부처의 기능을 위축시켰다. 노조법 개정안에 수차례 거부권을 행사하고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건강과 목숨을 잃어가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돌봄 노동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환경은 그대로 둔 채 이주노동자들을 최저임금제도에서 배제하려는 시도를 한다. 극심한 성차별의 현실은 외면한 채 선주민의 저출생 대책이라는 핑계로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려 든다. 10.29 이태원참사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반성도 없이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만 회피하였다. 폭주하던 그의 행보는 기어코 대의민주주의 기관인 국회를 군홧발로 짓밟았다. 그 누구도 감히 떠올려보지 않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훼손이라는 만행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인권과 존엄을 경시하던 정권이 완전한 극우 정치를 선언하던 그날 현장의 증인들이다. 윤석열과 그 정권을 비호하는 이들은 더 이상 ‘보수 정치’가 아니다. 그들은 파시스트, 극우 세력이다. 

 

17년, 차별금지법 수난의 시간이자 혐오 정치가 힘을 키운 시간

극우 정치는 윤석열 정권부터 시작되었나. 결단코 그렇지 않다. 누적되어 온 차별과 혐오의 역사가 만든 결과가 바로 지금의 극우 정치이다. 차별금지법이 겪어온 수난의 시간을 살펴보자.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정부에 권고하고 시안을 발표했다. 법무부는 ‘성적지향, 학력, 고용형태’ 등 7개 사유를 삭제하며 이른바 “차별조장법”을 발의했다. 그 배경에 보수기독교의 반동성애 혐오정치가 있었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17년 동안 정권은 계속 바뀌어왔지만 차별금지법은 제정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차별금지법을 막아선 보수기독교, 보수기독교의 혐오선동을 막기는 커녕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단 주장으로 힘을 실어준 정치는 모두 헌법의 정신을 가로막아온 공범이다. 정치는 정권을 막론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을 하였고 시민들과 약속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평등의 약속은 언제나 나중으로 내팽개쳐졌다. 

헌법 제 11조에 명시되어 있는 평등권, 국제사회의 끊임없는 제정 권고 등으로 그간의 정치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무에 있어 면피하는 척이라도 해왔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마저도 국정과제로 꼽거나 NAP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런 시늉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국정과제는 커녕 제4차 NAP에서 차별금지법은 아예 삭제되었다. 심지어 국가기관 중 유일하게 차별시정을 권한을 가진, 2차례나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인물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돌이켜보면 안창호의 국가인권위원장 청문회 답변들은 지금 윤석열이 쏟아내는 극우 유튜브 차별선동의 언어들과 동일하다. 윤석열 같은 극우 정치가 대통령실뿐만 아니라 이 사회 전반을 잠식하고 있다. 지난 열흘간 윤석열의 행보는 스스로가 내란의 우두머리이자 극우 정치의 우두머리임을 자백한 것과 같다. 광장에 모이고 외치는 우리는 윤석열을 끌어내리면서 극우 정치를 함께 끝장내기를 선언한다. 

 

헌법의 약속은 민주주의와 평등이다.

한국사회의 모든 시민들이 ‘헌법’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시대다.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모두가 헌법 정신을 훼손한 윤석열의 횡포에 분노하고 있다. 헌법은 군사정권에 맞서 광장에 뛰쳐나온 시민들이 만든 우리 사회의 약속이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전제 하에서 성립되는 정치체제이다.  그렇기에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은 차별을 배제하고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존엄과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헌법의 가장 핵심적인 약속이다. 그러나 평등은 아직 선언에 머물러 있고, 포괄적인 입법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헌법이 평등을 선언하는 이유는 차별이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고 있는 이들이 민주주의 진전 또한 가로막아 왔다. 성소수자가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마땅한 권리를 갖는 것조차 결사반대하는 보수기독교 세력이 그 중심에 있다. 정치는 때로 보수기독교 세력이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 뒤에 숨었고, 때로는 그들과 결탁하여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 반대했다. 이런 정치 권력을 넘어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한없이 지연되어 온 민주주의의 과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다.

 

극우 정치 이제 여기서 우리가 끝내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17년 3월, 탄핵의 봄에 재출범하였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요구는 불평등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열자는 그 해 광장의 열망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함께 그리던 새로운 사회의 미래를 차별금지법 제정에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중에’로 시작하던 광장의 새정치는 끝내 차별금지법을 나중, 그 나중으로 미뤘다. 우리는 경험했다. 그 나중으로 밀려난 것은 단지 차별금지법이나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시민들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줄줄이 폐지되거나 폐지 위기에 놓였고,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고 선주민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려는 제도적 시도가 이어지고,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폭행당했으며, 갈라치기 정치의 중심에 소환된 장애인들은 하루도 투쟁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12월 3일 밤, 거리로 뛰쳐나가 맨몸으로 군대를 막아낸 시민들은 매일 전국의 광장에 모이고 있다. 그 자리에서 시민들은 정치가 나중으로 미뤄둔 우리 삶을 다시 세우는 평등의 선언을 하고 있다. 계엄이라는 무도한 폭력이 짓밟으려던 민주주의의 자리에서 이 선언들을 바탕으로 헌법정신을 다시 세워내야한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나중으로 미루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혐오를 등에 업고 완성된 극우정치에 영원한 안녕을 고한다. 차별과 배제의 시대를 뒤로 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딛고 더 깊고 넓은 민주주의로 나아가자. 

 

2024년 12월 13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