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집회는 집회 금지로 막을 수 없다.
– 손솔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 철회에 부쳐 –
인종, 민족, 국적, 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을 향해 편견과 증오를 조장하는 이른바 ‘혐오집회’는 그 대상이 되는 이들에게 심각한 고통과 위협을 안긴다. 우리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지지한다. 그러나 혐오집회에 대응하는 방식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상의 사전 금지 사유를 확대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집회 내용에 대한 사전 심사와 금지 권한을 경찰에게 부여하는 것은 혐오집회를 막는 수단이 되기는커녕 집회의 자유 전반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우리는 손솔 의원이 대표발의한 집시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5379)의 철회를 환영한다. 동시에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위성곤 의원(의안번호 2214079) 등 관련 법률안 발의 의원 모두에게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한다.
손솔 의원 개정안 철회를 환영한다
손솔 의원이 대표발의한 집시법 개정안(의안번호 2215379)은 집시법 제5조 제1항에 제3호를 신설하여 “인종, 국가, 민족, 지역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이나 그 구성원에 대하여 편견·증오·차별·적대심을 조장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 대상으로 추가하는 내용이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경찰은 집회 신고 단계에서 집회의 목적과 내용을 사전에 심사하여 금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집시법으로 ‘혐오집회’를 금지하려는 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으며, 손솔 의원이 이를 수용하여 철회한 결정을 환영한다.
위성곤 의원 등 유사 법률안 발의 의원들은 즉각 철회하라
그러나 사안이 여기서 종결된 것은 아니다. 위성곤 의원 대표발의안(의안번호 2214079) 역시 집시법 제5조 제1항 제3호를 신설하여 “인종, 국적, 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증오를 조장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를 제한 대상으로 삼는다. 표현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집회 내용에 대한 경찰의 사전 심사 권한을 부여한다는 본질적 구조는 동일하다. 위성곤 의원을 비롯해 유사한 법률안을 발의한 의원들 모두 즉각 철회해야 한다.
혐오집회를 명목으로 한 집시법상 사전 금지 확대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집시법상 집회 사전 금지 사유의 확대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접근이다.
헌법 제21조 제2항은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집회의 내용을 경찰이 사전에 심사하여 ‘혐오 조장’ 여부를 판단하고 금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집회에 대한 사전 허가제를 헌법이 금지하는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혐오’, ‘증오’, ‘편견의 조장’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불명확하고 가치판단을 수반한다. 어떤 집회가 혐오를 조장하는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판단될 수 있으며, 이처럼 불명확한 기준으로 경찰이 집회 허용 여부를 사전에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집회 내용에 대한 사전 검열이다.
또한 사전 금지 조항은 실효성도 없다. 금지될 것을 알면서 사전에 혐오 집회를 할 것이라고 공개하고 집회 신고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조항이 전반적인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공공질서’나 ‘안보’를 이유로 한 집회 금지 권한이 실제로는 권력에 비판적인 집회를 탄압하는 데 활용되어 왔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혐오 조장’이라는 모호한 사유의 추가는 그 남용의 여지를 더 넓힐 뿐이다. 이주민 권리를 주장하는 집회, 종교적 소수자의 집회 등이 ‘혐오 조장’으로 낙인찍혀 사전 금지될 수 있다는 우려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근본적 해법은 차별금지법의 제정이다
혐오집회 문제는 집시법을 개악함으로써 해결될 수 없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인권기구들은 수차례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권고해 왔다. 그러나 한국은 20년이 넘도록 이를 미루어 왔다. 혐오집회 문제를 집시법 개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본질적 과제를 회피하면서 집회의 자유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마련된다면, 집회 현장의 혐오발언과 차별 선동은 그 법률에 근거해 사후적으로 규율될 수 있다. 이것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혐오와 차별에 실질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국회가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의지를 집시법 개악이 아닌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보여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6년 4월 6일
공권력감시대응팀 · 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