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해소를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제9차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최종견해에 부쳐-
지난 6월 3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이하 ‘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제9차 정기 보고서를 심의한 후 한국의 전반적인 성차별 실태에 대한 긍정적인 면과 우려사항, 개선 방안에 대한 최종견해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최종견해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해 여성가족부 폐지 계획의 철회 및 부처 강화, 비동의 강간죄 도입, 안전한 임신중지 및 관련 서비스에 관한 포괄적인 정책체계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배상 및 피해자/생존자의 구제 등을 주요 권고로 제시하였다.
특히 위원회는 지난 2018년 제8차 최종견해에 이어 이번에도 평등을 보장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부재에 대해 재차 우려를 표명하며 “모든 곳에서 모든 여성과 소녀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해 협약 제1조 및 제2조에 따라 빈곤 여성,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및 인터섹스 여성, 장애 여성, 망명 신청 및 난민 여성, 무국적자 및 이주 여성, 농촌 여성, 비혼 여성, 청소년 및 고령 여성 등 여성과 소녀의 취약한 집단이 직면하는 교차된 형태의 차별뿐만 아니라 공공 및 민간 영역에서의 직접 및 간접 차별을 모두 다루는 법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형식적이고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는 차별금지법 채택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설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최종견해 권고에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여성들의 다층적인 사회적 지위와 조건에 따라 교차적이고 복합적으로 발행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는 차별이 형성되는 과정과 사회구조적 원인에 실질적으로 접근하면서 차별을 판단하고 구제·시정·예방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성차별 해소를 위한 국가 정책이 교차적이고 복합적인 차별의 구조와 권력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정부의 교차적이고 다층적인 정체성을 지닌 모든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을 철폐하고, 삶을 개선할 의무에는 성소수자 여성의 삶도 포함된다. 위원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뿐만 아니라, “비혼 여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이 체외 수정을 포함한 보조생식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과 “사실상의 결합 관계(de facto unions)에 있는 여성에 대한 경제적 보호를 강화”할 것 등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들 권고는 “정상 가족” 바깥에서 임신과 출산, 자녀 양육을 원하는 여성들의 재생산권을 보장하고, 현재 동성 부부를 배제하고 있는 혼인 제도 이외의 “사실 상의 결합 관계”에도 경제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셋째, 정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 설정과 계획 수립, 실질적인 추진에 나서야 한다. 이미 2017년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차별금지 사유를 둘러싸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를 충분하게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제5차 자유권위원회 최종견해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부재를 우려하며 2026년까지 제정에 대한 이행 정보를 제출할 것을 주문하였다. 이번 위원회도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 채택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설정할 것을 권고함과 동시에 2년 이내 이행 정보를 제출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가 국제사회에 대답 해야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부처, 국회는 도대체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위원회는 ‘왜’ 못만드는지 묻지 않았다. ‘어떻게’ 만들 것인지 질문하였다. 한국 정부는 ‘사회적 합의’ 혹은 ‘사회적 공론화’를 핑계삼으면서 더 이상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핵심 과제를 우회할 수 없다.
국회와 정부는 교차적이고 다층적인 지위에 있는 모든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를 다하라. 비혼 여성의 보조생식술 접근권, “사실 상의 결합 관계”에 있는 배우자의 경제적 보호 강화를 포함하여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해 나서라. 그리고, 무엇보다 더는 책임을 미루지말고 지금 당장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포함하여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놓인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2024년 6월 5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X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