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UP] 2023-8월호 | 평등, 삶의 현장! : 지역에서 촘촘하게 엮어가는 활동가들의 이야기

[평등UP] 2023-8월호 | 평등, 삶의 현장! : 지역에서 촘촘하게 엮어가는 활동가들의 이야기

 

평등, 삶의 현장! 차별에 맞서 크고 작은 승리의 경험들, 차별의 현장들을 드러내며 지금도 차별에 맞서 분투 중인 현장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생생한 이야기들 많이 기대해주세요!

 

우리, 서로를 궁금해하고 있지는 않았나요? 평등, 삶의 현장! 이번에는 대선을 앞둔 2022년 1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이하 차만세)에서 함께 했던 지역 활동가들과 만났습니다. 차제연에서 요청을 한 지역도 있고 참여를 자청한 지역도 있었는데요. 평등이라는 추상적인 감각을 지역 내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알려나갔던 차만세를 함께 하면서 우리도 서로 연결되었었죠. 그런데 차만세는 차제연 활동 중 역대급으로 가장 힘들었던 활동으로 회자되기도 합니다. 그 힘든 여정을 함께 했던 지역의 활동가들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했어요. 모름지기 고민이 많으실 것 같다는 예감은 빗나가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전략조직팀 지오, 진희, 은박이 지역에서 촘촘하게 평등을 엮어가는 활동가 세 분을 만나 차만세 이후 1년 동안의 안부와 변화를 들어보았습니다. 

 

 

# 1. 어느 지역, 어떤 분들이 함께 하셨을까요? 

 

공기 : 저는 공기라고 합니다.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마포구에서 차만세로 <평등길 1110> 상영회를 추진할 때 함께 했습니다.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은 10년이 넘었는데, 마포구에서 주민들과 네트워크해서 주민의 정치 참여나 문화, 노동 등 다양한 의제를 이야기하는 거점이 되는 공간이에요. 카페로 만들어졌다가 협동조합이 되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요.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물론 소외된 목소리, 지역에서 딱 내걸기 어려운 목소리를 과감하게 낼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퀴어한 공간, 협동하는 공간, 누구나 올 수 있는 차별 없는 환대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카페는 운영하지 않고 있고, 저녁 시간대에 커뮤니티를 운영할 할 수 있는 공간, 음료나 술을 파는 공간으로 운영하기 위해 1층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 공간의 오픈을 준비하고 있어요.

 

 

사진1.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공기님

 

 

진영 : 저는 ‘사단법인 양천마을’이라고 양천 지역 시민단체들이 모여서 네트워크 조직을 법인화 한 곳에서 이사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몇 년 전에 양천 지역 시민사회에 조금 더 큰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는데요, 시민단체와 사회적경제, 복지까지 다 아우른 ‘양천시민사회연대’입니다. 거기에서는 또 운영위원을 하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양천 지역의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진영입니다.  

 

 

사진2. 양천시민사회연대 진영님

 

 

느린 : 저는 동대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우리동네노동권찾기’라는 단체와 ‘도꼬마리’라는 마을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단체 이름에 나오듯이 약간 노동단체예요. 노동단체가 보통 중앙 단위로 많이 있는데 저희는 지역에서 사람들하고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들었고, 10년 동안 노동인권 관련된 활동들을 많이 했어요. 다른 지역에 비해 동대문구는 네트워크가 부족해요. 양천 같은 경우는 제가 알기로도 지역의 시민단체도 꽤 있고 완전히 하나는 아니더라도 시민단체들 간의 네트워크도 나름 이루어져 있는데, 동대문은 일단 시민단체 자체가 적고요. 시민사회 활동이 적다 보니 동네에서 저는 약간 이상한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최근에도 지하에 있는 이상한 조직(실제 단체가 지하에 있음)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쨌든 동대문구에서 노동인권, 성평등 교육 그리고 민주시민 교육 등을 지역 주민들하고 계속해서 하려고 애쓰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진3.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느린님

 

 

# 2. 지금 우리 지역에는 무슨일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인권과 민주주의를 훼손하던 정치와 정책이 시민들의 삶에 주는 영향을 보다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장애인, 노동조합, 여성, 소수자 대상의 차별과 혐오가 내 이웃의 입을 통해 나오기도 하고, 그 차별과 혐오를 겪는 사람도 바로 이웃인 상황… 이를 헤쳐나가기 위한 고민과 동시에 활동 공간을 지키내기 위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진희 : 작년에 국회 앞 단식 농성할 때 서울 지역 자치구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기자회견도 했었어요. 그때 양천구와 동대문구에서 오셔서 ‘지금 시민들이 지역과 마을에서 얼마나 인권이 후퇴하고 있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정치 뭐 하는 거냐’ 이런 발언을 하기도 하셨죠. 그 때도 그 지경이였는데… 어쨌든 우리가 계속 싸우고 힘을 모으려고 하지만, 또 계속 황폐화되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언제 체감하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진영 : 양천 지역 시민사회에는 오랫동안 장애인 단체들이 큰 주축으로 함께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요. 최근 장애인 권리 예산 삭감, 전장연 시위할 때 뉴스에 나오는 차별·혐오 발언 등 장애인권운동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어마어마 한데, 이게 뉴스에 있는 얘기가 아니라 결국 지역에 있는 내 친구가 겪는 일이더라구요! 당장 동료 장애인 활동가의 이야기고, 회의에서 만나는 활동지원사의 삶이고 그래요….

 

느린 : 저는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계속 하는데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예전에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다 같이 평등하게 살아요!’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필요하지’ 하던 시절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 학교에 가면 청소년들이 조직된 시민을 강자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3~4년 전에는 저희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많이 경험했거든요. 노동인권을 이야기하면 성평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 “선생님 페미에요?” 한다던가. 그래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요새는 페미니즘을 껴주지도 않아요. 또 노동인권 교육에서는 노동조합도 중요하게 다루고, 혼자서는 싸우기 싸우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 해야 되는데요. 뭉쳐 있으면 무조건 강자고 나쁜 사람, 생떼 쓰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게 박혀 있더라구요. 그래서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청소년들과 어떻게 해야 되지?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약자들의 연대가 필요한데…. 지금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도 공격을 엄청나게 받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주로 보수개신교 진영이 성평등 교육을 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그런 교육을 하지 말라고 하는 방식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본인들이 아예 단체를 만들어서 교육을 하러 들어와요. 막 혼전순결, 남성과 여성의 성스러운 혼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전에는 장애 이슈를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그런 의제들을 다 뺏겼어요. 이야기하지 못했던 의제들은 이제 더 꺼내지도 못하게 되었고, 우선 순위에서도 밀렸고…. 지역에서는 혐오발언 좀 안 하고 대충 괜찮은 사람인 척 했던 존재들이었다고 하면, 이제 그냥 대놓고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장이 열렸어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걸 다시 쌓아올려서 이야기를 해야 되지? 너무 괴롭고. 오랫동안 우리가 차곡차곡 차별금지법을 통해 넓혀가고 다시 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모아오던 이야기들이 그냥 한순간에 쓸려 어딘가로 사라진 것 같은 그런 느낌. 활동가들이 느끼는 좌절감 같은 거 있잖아요. 차별금지법도 사실 저희가 지역에서 진짜 열심히 했는데, 그냥 결과만 보면 어쨌든 ‘제정이 안됐다’라고만 인식되고. 지역 같은 경우는 위탁받아서 운영했던 의미있는 곳들에 대한 지원이 쭉쭉 빠지고. 요즘 ‘뭘 해도 이제 안 되나’라는 생각들을 다시 ‘아니다,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과정들이 되게 좀 촘촘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진영 : 지역 활동과 별개로 저는 학생인권 활동도 하고 있는데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 사회가 약속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은 지목된 소수자들이 가장 먼저 직접적인 피해를 겪어요. 지금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있는 지역들에서 폐지의 움직임이 있는 걸 우리가 보잖아요. 사회적 약자는 뭘 하지도 않았는데, 어떤 원칙이 한 번 밀리고 나니까 약자가 가장 먼저 시비의 대상이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더 화가 나요. 국회 앞 단식농성과 차만세 활동 등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고 노력했었는데, 그 때 법이 제정 됐더라면…. ‘이게 우리가 서로 한 약속이야, 이렇게 하는 건 차별이라고 해, 저런 건 혐오라고 해’ 그 약속을 못하고 지금 이렇게 공격받고 후퇴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죠. 그러니까 누구는 차별이라고 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고, 심지어 표현의 자유라고 하고. 그러니까 사회가 더 혼란스러운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사이에 피해는 여전히 소수자들에게 가고 있죠.

공기 : 마포는 소각장 문제도 지역 현안으로 있긴 한데, 제가 느꼈던 건… 차만세 때 <평등길 1110>을 상영했던 ‘다리소극장’이 가톨릭 쪽에서 운영하는 공간인데, 이번에 동네 퀴어위크 행사에서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라는 영화 상영회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 직후에 퀴어댄스팀 ‘큐캔디’와 퀴어 관련한 행사는 ‘퀴어’가 들어갔다고 대관을 불허했더라고요. 차별금지법 관련해서도 어떤 때는 대관을 해주고, 어떤 때는 불허하고 그 기준이 도대체 뭔지…. 대관심사 통과를 운에 기대야 되나, 지역 차원에서 공론화해야 되는 건가 하는 고민도 많이 했던 것 같구요. 여전히 차별이 너무 대놓고 등장하고, 그런 차별들에 늘 대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또 저희가 협동조합인데, 사실 의미있는 활동들이나 가치있는 이야기들을 하는 공간들이 현실적으로 어렵잖아요. 어움들을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 협동조합 지원 예산이 다 삭감되거나 사라지고, 혁신센터도 사라지고, 다 사라져요. 그냥 자생해야 되고 생존 자체가 문제이자 주요한 과제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 3. 우리를 연결해준 차만세, 그 때의 기억들

 

차만세 활동은 ‘누구와 차만세라는 유세 활동을 함께 할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민에게 차별금지법을 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평등으로 연결되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차만세를 준비하는 과정과 차별금지법을 알리는 유세 현장에서 평등으로 연결된, 연결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얼굴들과 마주쳤습니다. 그 경험은 운동의 목표와 가능성을 재확인한 순간이었고, 동네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차별의 순간과 차별금지법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감각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사진4. 차만세(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이 차량에 올라서서 발언하는 모습.
주변에 3명의 ‘사람이 차별금지법있는 나라’ 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있다.

 

 

지오 : 차만세의 기억을 되짚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차만세에 함께할 지역 단위들을 조직할 때 저희가 어느 단위에서부터 누구랑 연락을 해야 될지 찾는 게 진짜 힘들었거든요. 지역 안에서 조직할 때는 어땠는지, 차만세를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진희 : 함께 할 지역 단위를 조직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었어요. 마포에 있는 몇십 개 단체에 다 연락할 수는 없고. 어떤 단위나 활동가와 시작해야 연결이 더 확장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연락드렸던 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계신데요. 실제 지역에서 참여 단위를 조직하는 게 수월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공기 : 마포구는 조직할 때 엄청 어렵지는 않았어요. 사실 마포구에 거점을 두고 있는 단체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미 차제연과 함께하고 있는 곳들이 많았기 때문에 되레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이미 차제연과 함께하고 있는 단체인데 차만세의 상영회를 또 공동주관 해달라고 하면 해줄까?’ 고민하기도 하고. 제안서를 쓰고 메일을 엄청 보내고 연락도 돌리고, 그렇게 되게 많은 단체들과 연락을 했어요. 그리고 마포구는 퀴어 친화적인 가게들이 많다 보니,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서 이런 가게들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연락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카페 여름’, ‘드렁큰 비건’,  ‘알맹 상점’ 이런 곳들에도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제안을 했을때 좀 당황스러워하시긴 했어요. 그 분들이 당연히 차별금지법을 모르시지는 않았는데, 이런 참여 제안을 처음 받아보시는 것 같았거든요. 저희도 이렇게 제안해보는 게 처음이었지만, 설명을 엄청 해드렸고요. 그런데 “이런 제안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흔쾌히 함께 하고싶다”고 해주셔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도 너무 힘이 났어요. 그리고 또 정당도 빼놓을 수가 없죠. 녹색당이나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들이 함께 했고요. 그 외에도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빠뜨릴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사진5. 동대문구 활동 사진. 2021년 <평등길 1110> 도보행진 당시 동대문구에서 별도로 마련해 진행한 행사다.
<평등길 1110> 손수건을 든 사람 옆에 ‘인권의 상식 평등의 약속 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 등의 피켓을 들고 함께 행진하고 있다.

 

느린 : 저희는 ‘차만세를 왜 했나’ 기억을 떠올려보면… 우리동네노동권찾기는 청소년들과 노동인권 교육을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노동인권 교육할 때 항상 마지막에 차별금지법 이야기를 했었어요. 약간 ‘기승전 차별금지법’이었는데, 저희 단체의 교육하는 활동가들도 차별금지법 공부를 좀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요. 매일 회기역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1인 시위를 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차제연에서 한참 열심히 제정 운동을 하고 있는데 동대문구는 차별금지법 이야기가 너무 안나와서 ‘지역에서 뭘 하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지역을 한 바퀴 돌자, 지역을 돌면서 동대문구 사람들에게 차별금지법을 알리자’ 이렇게 된 거죠. 그래서 차만세 하기 전인 2021년 11월 즈음에 제가 차제연에 연락해서 물품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활동가들이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며 국회를 향해 전국 도보행진을 하며 걷고 있으니, 우리는 동네에서 걷자는 기획을 한 거죠. 그 때 사람들이 한 30명 정도 모였는데, 이전에는 차별금지법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던 분들도 오셔서 같이 동네를 돌았어요. 저희가 걸으니까 사람들이 되게 이상하게 쳐다봤을 거 아니에요? 경찰이 와서 “뭐 하는 거예요?” 그래서 “뭐, 걸어요” 이러면서 걸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걷는 내내 기분이 되게 좋은 거 있잖아요. 약간 들썩들썩~ 하고. 맨날 지하 사무실에서 얘기를 하다가 해 나는 길 위에서 걷고 사람들이 쳐다보고 하니까. 다들 그 날의 기억이 되게 좋게 남아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동네에서 차별금지법으로 집회를 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 동네 한 바퀴를 같이 걷고 ‘나랑 같이 걷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마음을 확인하니 되게 좋았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그 과정을 통해서 차만세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동대문구는 할 역량이 진짜 없는데, 그냥 좀 욕심을 내서 했던 것 같아요. 차량이면 더 좋지 않을까? 걸어도 되게 신나는데, 차로 와서 방송을 하면 너무 좋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당일에는 진짜 너무 좋았어요. 저희도 지나가는 시민들하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평등길 1110> 상영회도 소수가 보긴 했지만 처음 오신 지역 주민들도 계셨고요. ‘그래, 동대문구에도 설마 그렇게 다 관심 없기야 하겠어? 좀 더 자주 많이 이야기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사진6. 양천구 차만세(차별금지법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활동 사진.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율동을 하고 있다.

 

진영 : 양천 지역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일을 하다 보니 처음 저한테 차만세 참여 요청이 왔는데, 사실 그 전에 지역에 차별금지법이나 인권 의제만으로 단위들을 모아본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도전이었고요. 이 도전이 특별했던 이유는 지역에 여러 의제들, 예를 들어 장애, 환경, 노동, 진보정치 등 영역/의제가 흩어져 있었는데,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는 인권의 문제를 누구랑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지를 떠올리면서 만난 사람들이 묶이게 되었어요. 결국 그 힘으로 양천 차만세를 했고, 그 이후에 ‘이런 이야기를 이 사람들이랑 하면 되겠구나…’ 하는 고리가 지역에 생긴 것 같아요. 마포는 기존에 있는 단체도 조직하고 차별금지법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던 분들까지 찾아냈잖아요. 저희는 거기까지는 못 했지만, 우리가 있는 지역안에서 주체들을 찾긴 했어요. 차별금지법과 인권으로 누가 모일 수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되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장애인들에게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외에 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여성에게,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면서요.

그리고 일단 홍보가 딱 되니까 다른 지역에서도 오셨던 그런 경험이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차만세 차량이 지나가면 시끄럽잖아요? 양천구 기관들이 있는 건물을 지나갈 때 시끄럽다 보니까 양천문화재단에 있는 분들이 ‘뭐 하나?’ 이렇게 내려다 봤다고 해요. 그런데 같은 건물에 사무실이 있고 양천 차만세에도 함께한 양천구장애인권교육센터가 오늘 양천에서 차만세 한다고 알려주니 막 응원한다고 했다더라고요. 

 

공기 : 저는 차만세가 홍대 어디에서 유세를 해야 하는게 좋은지 포인트 거점을 안내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평등길 1110> 상영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상영회 사회 준비를 위해 차제연 홈페이지에 올라온 FAQ도 엄청 많이 읽고, <평등길 1110> 다큐도 두 번을 봤어요. 사회자를 맡다보니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고. 좀 부담을 느꼈나 봐요. 암튼 자료를 많이 봤어요. 근데 잘 모르겠는 거예요.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게 아니라, 차별금지법이 나한테, 그리고 사람들한테 와 닿는 포인트가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와 닿는 포인트가 뭘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때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결국에는 자신이 받았던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차별의 경험을 구체화하는 게 되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평등할 수 있기 위해서 이런 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어떤 상황이 불평등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저는 훨씬 더 와닿았던 것 것 같거든요.

 

저는 어쨌든 무엇이 불평등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많이 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가난, 몸, 여성 등 제가 느꼈던 차별과 불평등이 너무 많잖아요. 차별금지법이 지금 왜 제정되지 못했는지, 국회에서 왜 제정을 미루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내가 어떤 불평등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좀 더 끌어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뒤늦게서야 좀 해 보네요.

 

진영 : 저는 지역에서 준비한 마을인권강의에서 장혜영 의원 강의를 들으면서 차별금지법이 ‘구체적으로 이런 게 차별이야’를  나열해 주는 목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법안 이름 자체에 ‘차별 금지’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야기하면 개개인에게는 ‘이렇게 차별하면 안돼. 그 차별을 우리가 하면 처벌 돼!’라고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어요. 처벌을 규정한 법인 줄로 알고, 만약에 시선 처리만 잘못해도 처벌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차별금지법이 공공의 영역에서 차별을 규정하고 큰 틀에서 하면 안 되는 것들을 담은 가이드이지, 차별한 사람을 처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해 줄 수 있었어요.

사람들에게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할 때 차제연에서 연속기고 글을 요청했는데, 그때 제가 주민자치회에서 청소년에겐 자원봉사만 시키고 주민자치 위원으로는 자격을 주지 않는 게 차별이라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실제 동네에서는 굉장히 구체적인 차별의 순간들이 있는데, 그 순간들이 불평등과 차별금지법과 연결이 돼야 해요.

 

느린 : 제가 들어가 있는 어떤 단톡방에 저랑 같이 활동하시는 분이 차별금지법 활동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셨는데, 이어서 누군가 혐오선동세력이 만든 영상을 올렸어요. 동성애 혐오 발언이 쏟아지는 영상을 보고 깜짝 놀라서 ‘어떡하지’ 하다가, 제가 조심스럽게 정확하게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지역에서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꺼냈어요. 처음에 영상을 올리셨던 그 분이 그러면 제가 와서 같이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신 거예요. 학부모 단체였는데 공부하는 날을 잡고 제가 설명을 하게 된 거죠. 잠이 안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무슨 얘기를 해야되지? 나름 강의할 때 ‘차별금지법도 만들어요!’ 이런 얘기를 하고 다녔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 때 차제연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를 다운 받아서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어요. FAQ 형태로 된 자료가 있었는데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해야지~’ 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갔던 기억이 나요. 그 날 주로 양육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영상을 올리신 분은 안 오시긴 했는데 참여하신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하시기도 했어요. 저도 어떻게 하다 보니 차별금지법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사람들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혐오선동세력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를 굉장히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또 자극적으로 만들고 스피커도 크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좀 그냥 좋은 이야기, 너무 당연한 이야기, 큰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저 스스로 들더라고요. 스스로 ‘나도 잘 모르면서 차별금지법 제정하자고 했었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민들을 만날 때는 구체적인 이야기들로 차별금지법을 설명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아요. 

 

 

# 4. 차만세 이후 변화를 말하다.

 

차만세가 가져다준 변화는 결코 소소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얼굴들을 만나고 지지받을 수 있는 마을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차별과 혐오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하고, 그 용기는 동네 친구와 함께 ‘동네 퀴어위크’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평등한 세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평등의 실천이었습니다. 

 

지오 : 앞에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도 했지만, 차만세 활동 이후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느린 : 저는 지역에서 엄청 큰 변화가 있었다기보다 제가 용기를 얻었던 것 같아요. 동대문에서 10년 활동하면서 계속 뭔가를 만들었다 갈등이 생기면서 깨지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왜 뭐가 안 되지?’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도 ‘이제 누가 뭘 만들려고 해도 잘 안할 것 같다’는 마음도 좀 있었어요. 근런데 <평등길 1110> 도보행진도 하고 차만세도 하면서 사람들과 그냥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가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과 시작하는 게 맞구나, 그게 동대문의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마포는 이미 짱짱한 단체들이 많고 양천은 양천시민네트워크라는 또 굉장히 짱짱한 네트워크가 있는 곳인데, 동대문은 동대문대로 우리 식으로 만들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건 좀 포장해서 하는 얘기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 되겠다’ 그런 마인드로 전환이 됐던 것 같아요. 덧붙이면 동대문에서 올해 5월에 윤석열 촛불행동을 했어요. 하기 전에 ‘우리 동네가 할 수 있을까’부터 여러 고민이 있었는데 당일에 많은 시민들이 지나가면서 참여하시고 또 언제하는지, 매달 하는지 묻기도 하셨어요. 끝나고 저희끼리 평가하면서 우리가 너무 세상에 우리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크거나 작거나, 혹은 좀 방향이 다르더라도 시민들이 표현하고 싶은 분노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게 많구나, 우리가 자신이 없다고 느끼거나 좌절을 느낄 때 사람들이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과대표 한 걸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공기 : 차만세 하고 나서 마포구가 어떻다 이야기하는 건 어렵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동네에서 ‘동네 퀴어위크’를 했었어요. 올해 두 번째로 했는데, 준비하면서 차만세 생각이 참 많이 나더라고요. 준비라는 건 참 비슷하구나 생각도 들고. 동네에서 나를 환대할 수 있도록 내 존재를 알리고 드러낼 수 있는 게 필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조금 더 나아간 것 같기도 해요. 내가 사는 지역의 가게들이 무지개 깃발을 달거나 내 존재를 지지해주고 있다는 것들을 아는 기회가 되니까요. 차만세 이후에 ‘동네 퀴어위크’라는 기획을 할 수 있어서 되게 좋았고, 연장선으로 그런 활동이 이어져서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지오 :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년이 조금 넘었는데, 성소수자가 한 주간에만 기사회되는 게 끝이 아니려면 광장 바깥에서 어떻게 함께 그 공간과 관계를 넓혀갈 것인지 같이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동네 퀴어위크’는 그 방식을 보여주는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지나치는 공간들에서 지지와 환대가 배칠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길을 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런 방식으로 커져야 되는 것 같거든요.

진영사실 양천은 차만세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같이 추억을 나눌 사람은 있지만, 그 이후에 뭔가 진행된 건 없어요. 지역에서 같이 뭘 하지는 못했고, 그 즈음 각 분야에서 인권을 주제로 모였던 그룹이 계속 영화로 읽는 세계인권선언 모임을 띄엄띄엄 하긴 했어요. 차제연 페이스북을 팔로잉 하면서 지역에서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보긴 했는데 찾기는 어려웠어요. 오늘 차만세 인터뷰 하자는 제안을 듣고는 내년이 총선이니까 다시 뭔가를 시작하려나보다 하는 느낌이 왔죠. 아, 그런 건 있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해도 결국 법 제정이 안 되고,  지금 차별과 혐오, 백래시와 선동이 판을 치는 것을 보니 더 이가 갈리는 거예요. 아니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그렇게 다 무르익었고, 지역 곳곳으로 차별금지법을 알리는 차량이 돌 정도로 했으면 차별금지법을 제정 했으면 되는데, 왜 제정을 안 해가지고 지금 왜 이런 사달을 보게 하냐고요.

 

아까 제가 양천문화재단에서 일하는 선생님들도 응원했다고 했잖아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왠지 친밀하게 느껴졌는데, 다른 일로 만나 협력하게 되어서도 케미 좋게 일하다가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도 함께 가게 되었어요. 차만세 이후 나비 효과처럼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동네 활동가 친구들과 가게 된 거죠. 지역 활동하고는 상관없는 청소년 인권운동단체 활동가들과는 이전에 같이 간 적은 있어도, 동네에서 알게 된 동네 친구들과 퀴퍼를 이렇게 같이 간다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게 된!  

 

느린 : 저도 사실 올해 처음 퀴어문화축제에 동네 친구들과 같이 갔었거든요. 제가 페이스북에 썼는데, 처음에는 가자고 얘기를 하기가 좀 그랬었어요. 굉장히 친하고 같이 오래 활동했어도 ‘퀴퍼를 같이 가자고 해도 괜찮을까?’ 싶고. 혼자 가거나 멀리 사는  활동하는 친구랑 가거나 했었는데, 올해는 제가 웹자보를 만들어서 퀴퍼가자고 해서 다른 단체에 있는 분들 5명이 함께 갔어요. 그래, 꼭 많은 숫자가 함께 하지 않아도 지역에서 내가 계속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 하다 보면, 여기 한 명 듣고 저기 한 명 듣고 하다 보면 또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제가 용기를 좀 얻게 됐던 것 같아요.

 

 

# 5. 다시 힘을 모아

 

진희 : 그러면 차기 총선 얘기도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어떠세요? 그러니까 총선에 딱 선거만 타겟 해가지고 어느 사람을 지지할 건지 이런 문제 말고 지금 중요한 사실은 정치적 변화나 이런 것들이 이루어져야 되는 시기일 텐데요.


공기 : 느낌이 왔어요. 저희를 조직하시려고 

 

(다같이 크게 웃음)


공기 :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어쨌든 지역구에 출마하는 유력 국회의원들 있잖아요. 선출이 되면 뭘 하겠습니다~ 이런 얘기는 많이 하잖아요 공약으로. 근데 진짜 되면 뭘 하겠다 해서 공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실효성이 있는 좀 빡센  제재 그런걸 만들 수는 없나요?


진영 : 제도적으로는 있잖아요. 약속을 했는데 안하면 주민 소환 할 수 있잖아요 근데 너무 어렵긴 하죠. 주민소환제라는 제도가 있긴 있더라고요.

 

느린 : 이게 좀 맞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 그리고 차만세가 이렇게 지역에 뿌려온 씨앗들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각 지역에 어떤 형태로든지 네트워크가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차별금지법뿐만 아니라 그냥 올해 들어서 뭔가 활동을 계속하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왜 이렇게 방어만 계속 하지? 계속 밀리는 거 같은. 차별금지법은 있는데 폐지하는 게 아니니까. 없는 걸 만드는 거니까. 민주당이 받든 말든 그냥 우리 다시 지역에서 차별금지법 얘기를 하는 뭔가 그런 생활 정치를 다시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좀 들어요. 걔네들 받으라고 얘기하는 순간 저는 피로도가 엄청 높아질 것 같고 똑같아.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똑같을 것 같아요. 그렇게 했을 때 총선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차별금지법 정말 될 줄 알았다가 되지 못했던 그 시기에 가졌던, 그러니까 제정되면 물론 너무 좋지만 그럼 제정 안 되면 끝인가? 그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좀 저희가 먼저 던지는 싸움도 해봤으면 좋겠다!!


진희 : 총선이 끝이 아니니까


지오 : 그랬을 때 지금 이런 말씀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다리를 놓는 작업. 그래서 시민들이 총선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냥 우리 힘으로 가게 할 수 있는 어떤 동력들이 좀 생기게 하는 거.

 

진희 : 두 개 정당 중에 어느 정당인가가 아니라 시민들이 어떤 걸 원하고 있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다 라는 얘기들을 할 수 있는 자리와 힘있는 움직임들 그걸 얘기할 수 있는 흐름 같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거 그게 되게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 6. 지역활동이란

 

3명의 활동가들은 지역활동을 스며듬, 젖어듬, 다름의 시간을 견뎌 내는것 그리고 자신을 접고 접는 과정, 스위치를 껐다가 켜는 것, 바다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도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명들에서 지역에서 평등의 감각으로 관계 맺기를 실천중인 활동가들의 힘듬과 멋짐이 느껴집니다. 

 

지오 :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한데요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게 어떤 걸까요?


진영 : 최근에 저희가 어떤 경험을 했냐면, 우리 네트워크 안에 장애인 단체가 오래도록 같이 활동해 왔는데,  모두의 감수성이 활동하면서 의제로 말했던 것만큼 왔냐라고 했을 때 그건 또 다른 이야기였던거죠. 예전에 활동가 워크숍은 비장애인 활동가들만 가는 거예요. 장애인들에게는 전세버스를 함께 타기도 어렵도, 숙소 구하기도 어렵고 하니까. 그리고 어떻게 잘 해가지고 장애인 활동가가 함께 갔는데, 워크숍 일정에 등산을 짜버리니 그분은 혼자 밑에 계시고.  그런 일도 있었던 거예요. 계속 그런 방식으로 장애인권은 의제로만 이야기 하고, 회의때나 이야기가 되고 그랬는데, 그런 한계도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서서히 변해서 그랬는지, 올해 저희가 워크숍을 가면서 구체적으로 함께 할 방법을 찾아갔어요. 서울시설관리공단에 전동휠체어가 들어가는 버스를 대여해주는 사업이 있더라구요? 서울시 지원을 받아서 워크숍 장소로 이동하는 것부터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니 그 다음 숙소, 식사 장소 찾는 데도, 보치아 경기 등 워크숍 순서도 장애인 활동가들이 함께 할 수 있는지 살펴서 준비하고 다녀왔어요. 이게 감각으로 그냥 일상으로 이렇게 들어오도록 해야 하는 게 지역 활동인데, 중앙에서 하듯이 이렇게 입법하고, 정책하고, 의제 만들고, 앉아서만 한 것 같아요. 지역에서 한다는 거는 일상이 그냥 그거에 젖어야 되고, 친구랑 의견이 달라지는 걸 견뎌야 되고, 싸우는 거를 좀 견뎌야 되고, 그런 거 같아요.

 

< 사진7. 카페 나무그늘 오픈식 사진 10여명의 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거나 브이 표시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공기 : 저는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거를 되게 좀 많이 생각을 해봤던 것 같은데…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굳이 따지자면 청년에 속하고 그런데 제 주변의 동료들 또래들은 아직 정주할 권리가 없고. 지역이라는 건 어쨌든 2년마다 한 번씩 (임대 계약에 따라) 우리는 그 지역을 옮겨 다닐 수밖에 없어요. 더 값싼 곳으로, 내가 살 수 있는 곳으로 계속 이동을 해야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 선택지밖에 없는 삶을 살면서 마을이라는 건 지역이라는 건 참 어떤 의미인가 우리한테. 이런 고민을 되게 많이 해요. 그런 청년들에게 지역은 무엇이 되어줄 수 있는가 그래서 지역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가. 그리고 이거는 청년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고 당연히 집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의 문제인 거죠.
결국엔 그런 사람들이 떠안고 있는 지역에 대한 감수성과 문제들이 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게 저는 제일 큰 고민인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주택의 문제고 부동산의 문제고 이런 거라기보다는 작게 가져 와서 지역 활동이라는 거는 결국에는 서로 뭔가 이 지역에서 남아 있고자 하는, 여기서 조금 더 살아보고자 하는, 그러니까 뭔가 내가 이곳에서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곳에서의 이웃. 그리고 뭔가 그런 친구 집 이런 것들을 늘려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 것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게 있으면 사실 떠나고 싶지 않잖아요. 결국엔 연결되는 거. 그게 지역이 가장 해결해야 될, 가장 좀 중요하게 여겨야 될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느린 : 저한테 지역은 진영님이 얘기했던 거랑 비슷할 수도 있는데. 저는 노동이나 페미니즘이나 이런 의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활동하는 사람이라서 중앙에서 하는 내가 살고 싶은 어떤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지역에 가지고 와서 그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어떤 언어로 다시 풀어내는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이러면 사람들이 그래서 나랑 무슨 상관이지? 하며 와닿지 않을 수도 있어요. 장애인 문제도 마찬가지로  장애인 인권 너무 중요하지 근데 우리 집 앞에 지하철 막히는 건 너무 싫어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지역에서 계속해서 지역의 언어로 다시 풀어나가는 작업들을 하는 게 저는 지역 운동인 것 같아요. 페미니즘 운동하는 사람들도  가부장적인 가족들한테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는 것처럼 지역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퀴퍼 같은 데 가면 너무 신나는 거죠. 다 내편이고~.

 

공기 : 저 그게 뭔지 알 거 같아요! 뭔가 퀴퍼나 이런 데 가면 세상 당당하고 내가 할 얘기 다 하는데 지역 사람들 만나면 그 사람이 좀 뭔가 어긋나는 얘기를 해도 그냥 약간 좀 수용해줘야 하는. 애매하게 언피시 한 얘기는 넘어가게 되는 그런거.

 

느린 : 저는 여전히 지역활동이 되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재미있는 게 계속해서 나 자신도 재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디까지 착해질 수 있을까? (나의 한계는 어딘가 ㅋ) 농담이구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은 생활인인 거잖아요. 시민들도 사실 막 이렇게 훌륭하거나 되게 나쁜 사람 이런게 아니라 어떨 때는 이렇고 어떨 때는 이런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지역에서 저희가 막 이런 서명 같은 거 하면 다 얼굴 막 찡그리고 바빠 죽겠는데 여기는 뭐야? 약간 이런 표정으로만 지나가실 것 같지만 또 그 순간순간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질문도 하고 이런걸 할 때 그때 약간씩 그래 분명히 누군가가 듣고 있을 거야 약간 이렇게 발견하게 되는 그런 재미들.

 

진영 : 일희일비 잘해야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작은 거에 기뻐하고 작은 거에 분노하고 또 다시 작은 거에 기뻐하고…

 

<사진8. 양천구 활동사진 20명의 사람들이 양천 기후정의행동 현수막 뒤에 서서 기후위기 행동 지금 즉시, 팍팍한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등의 피켓을 들고 주먹을 쥔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지오 : 저는 지역 활동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아까 공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한 번도 어느 지역에서 5년 이상을 머물러본 적이 없는데 이런 활동은 뭘까? 되게 항상 궁금했거든요.
근데 제가 정작 이 차제연 활동이든 제가 활동을 하면서는 우리한테 구체적인 언어가 필요하고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만나야 되는데…이건 지역 활동이라는데 이걸 어떻게 연결하는 거지? 이게 한 재작년부터 계속되는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역에 활동하시는 분들을 계속 만나고 싶고 이걸 연결하는 일을 좀 하고 싶고 그랬습니다.  

 


진희 : 아까 공기님이 불평등을 얘기하고 발견 하는 것 이걸 말씀해 주셨잖아요. 사람들의 자기 경험, 자기 이야기, 또 자기의 언어들을 통해서 많이 많이 얘기되는 것들 속에서 결국은 세력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힘들이 생겨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하향식이 아니라 정말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는 힘들은 작은 어떤 커뮤니티들의 흐름이 잘 만들어져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생각해 보면 저부터도 약간 큰 이야기들 속에 막 갇히다 보면은 내가 경험한 것들을 내어놓을 기회가 정작 많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진영 : 그거는 차별이야 라는 거라는 감각이 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너무 그렇게 다 당연해지는… 구조적으로 차별을 오래 받으면 그게 그냥 그런 줄 알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차별이야 이런게 필요해요.

공기 : 근데, 차별이라고 말하는 거는 좀 어렵죠. 그러니까 그게 왜 차별인지를 설명해야 될 것 같으니까. 근데 그거는 평등하지 않고 그건 불평등한 일이야 라고 얘기했을 때는 그거를 되게 감각하게 되잖아요. 이게 불평등한 거야? 그러니까 약간 평등에 대한 기준은 어찌 보면 차별보다 되게 명확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느끼기에 이게 평등, 이게 불평등 그러니까 너와 내가 평등하고 평등하지 않다는 건 어떤 건지 되게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차별이라는 그 기준보다 불평등에 대해 좀 더 노골적으로 집요하게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지오 : 더 하실 말씀 없으신지…(없어요) 그럼 오늘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우리 그럼 하반기에 지도를 만들기 위해 만납시다~

 

 

지역활동은 평등 세상을 향한 연대의 놓쳐서는 안될 놓치고 싶지 않은  가장  찐득한 부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던 인터뷰였습니다. 우리들의 삶, 그 현장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언어와 연결을 고민하는 활동들은 결코 녹록치 않은 이야기였어요. 그래도 바쁘다 바빠 지역활동가들을 불러내어  간담회를 진행하고 이 글을 정리하는 시간 동안 전략조직팀 구성원들은 쿵짝 맞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거웠습니다. 아마도 눈에 띄는 이슈들에 비해 고요해 보이긴 하지만, 마을에서 평등을 향해가기 위해 매일, 꾸준히 만나고 실천하고 갈등하는 여러 현장의 치열한  모습들이 그려져서 아닐까요. 차별을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답답함을 이야기하면서도 반차별과 평등으로 해석하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변화 시키기 위한 토론을 구체화 시키면서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과 연대를 놓지않는 활동력이 담긴 이야기에 함께한 저희도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른 거 보니까 곧 또 차제연이 뭐 할 거잖아요” 라고 화답해 주는언제든 움직이며 싸울 든든한 동료들이 곳곳에 이렇게 많구나 절로 배부른 시간들이었습니다. 곧 또  힘차게 액션 개시! 연락하자며 헤어진 3명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우리의 활동에 울림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사진9. 인터뷰를 마치고 다함께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며!! 왼쪽부터 지오, 느린, 공기, 진영, 은박, 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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