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차별, 차별을 두텁게 보호하고 평등을 재구성하기” 후기
복합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교차적 관점들
장길완(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책담론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단 한가지의 정체성으로 본인을 설명하고 삶에서 겪는 불편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장애, 인종,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국적 등의 다양한 위치에 중첩되어 배치 되기에, 교차적인 범주로 자신을 설명하고 차별이 여러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차별금지 원칙을 개별법에서 담아내고 있는 현 상황으로는 차별을 경험한 당사자의 말하기가 사회에 들리고, 차별이 구조화되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며, 공동체가 개입하고 해결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동반 될 수밖에 없다.
평등사회를 앞당기기 위한 사회적 과제 중 하나는 구조화된 차별의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차별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복합차별’이 규율되어야 한다. 이번 “평등을 토론하라 – 쟁점토론회 3회차”에서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논의를 통해 법률혼과 혈연 중심의 가족 제도가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차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위치의 차별을 발생시키는 구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장애여성, 결혼이주여성 등 구체적인 현장 사례를 통해 차별금지법을 포함한 제도와 정책에서 교차적 관점이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먼저 가족구성권연구소의 김순남 대표는 한국사회가 ‘가족화 된 사회’임을 지적하며 정상 가족 제도가 어떻게 존재를 부존재화시킴으로서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차별을 만들어냈는지 드러냈다. 또한 가족상황 차별의 전반적인 변화 만들기 위해서는 차별이 가족제도 및 다른 차별적 구조와 어떻게 밀접하게 연결되는지 세밀하게 이해하고, 방향성을 제시해나갈 필요성에 대해서도 발제했다.
생애주기 동안 가족 단위로만 돌봄과 생존을 상상하는 정상 가족 제도는 가족의 정상성 유지를 위해 성별화 된 역할을 강요하는 가족 내 불평등을 정당화 할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로도 이어지는 등 복합적인 차별구조와 함께 작동한다. 장애인과 노인은 가족이 부양하거나 지역사회와 격리된 시설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든다. 또한 ‘가족’을 삶의 재생산 공간이 아닌 인구 재생산의 거점으로 인식하는 가족화 된 사회에선 국가가 계속해서 가족을 구성하면 안 되는 시민을 분류하고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하도록 만든다. 비혼 동거, 성소수자 커플, 불임수술을 강요받는 트랜스젠더, 미등록 체류자 신분에 놓인 이주민, 청소년이 바로 이러한 복합적인 차별을 경험하는 이들이다.
혈연-이성애 가족을 중심으로 노동, 교육, 주택, 장래 등 삶의 모든 부분을 상상하고, 가족이 사회의 공공성을 대신하여 정상성을 독점하는 질서 내에선 가정폭력이나 빈곤과 같은 삶의 취약성이 강화될 수 밖에 없다. 정상성의 외부에 놓이는 소수자는 가족을 중심으로한 지원체계에 배제되기에 더욱 삶의 불안정성이 심화된다. 이렇게 복합적으로 등장하는 가족 형태 및 상황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선 노동권, 주거권(‘떠날 수 있는 권리’), 재생산권을 연결적으로 사유하는 교차적인 관점을 통해 정상가족의 독점성과 특권을 해소해나갈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기존의 가족계획에서 내포하고 있던 ‘정상가족’과 ‘위기가정’이란 이분법적 틀 대신, ’가족’의 의미가 “관계망 속에서 돌봄과 상호의지를 이어가는 실천적” 인 것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선 민법과 건강가족기본법에서 가족의 의미가 재정의 되고, 차별 금지 규정이 명문화될 필요성이 있으며, 차별금지법의 제정 역시 필요하다. “결혼하기 위해 일 하지 않고, 다양한 관계가 일터에 공존”하는 변화의 상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선 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교차적인 위치에 놓인 이들의 비가시화된 돌봄과 상호의존의 관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다음 발제자였던 인권운동사랑방의 몽 활동가는 반차별 운동이 복합차별-교차차별-다중차별의 개념을 특히 장애여성운동으로부터 영향 받았음을 밝히며, 복합차별이 어떻게 구조화된 차별을 드러내고 소수자집단에게 있어서 중요한 개념인지에 대해 논의하며 차별금지법 내의 차별행위로 규정될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차별의 구조이자 시스템’으로서 차별작용에 대한 담론이 법률 적용의 영역에서만 한정되어선 안된다”는 측면을 제시하며 ‘차별금지법 이후’를 상상하는 단초를 제시하였다.
차별금지법이 평등을 재구성하기 위한 흐름이 되기 위해선 “한 사람의 정체성이나 경험이 분리되거나 분절되지 않은 채 통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고착화 된 성차별적 구조가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적대적 노동환경과 경제적 착취의 구조가 돌봄 수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례는 대표적인 가족상황과 돌봄의 책임이 연결된 복합차별의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차별의 판단에 있어서 교차적 관점이 없다면 정책이 특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들에게만 자원을 배분하거나 돌봄의 성역할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어 차별을 더욱 고착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성차별과 장애차별을 중첩적으로 경험하는 장애여성의 경험이 남성중심적 장애 범주와 비장애인중심적 여성 범주 모두에 포섭되지 않아 ‘차별’로 인정되지 않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돌봄과 가족형태 상황의 차별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장애와 여성의 교차적 관점이 없다면 차별을 ‘인식’하고, 차별로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복합차별의 인정은 결국 앞선 김순남의 발제에서처럼 정상 가족을 정당화 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 다층적인 관점을 통해 차별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단일한 정체성에 기반하지 않아도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공유할 수 있는 권리의 내용을 정당화하고 강화해나가는 연대성의 강화가 구조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물론 인과관계를 따져야하는 실제 제도의 작동 과정에서 어떻게 복합차별이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고민이 요청된다. 영국의 평등법에서처럼, 현재 법조항이 유보 되었지만, 복합차별의 사건에서는 “특정한 속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 인정받지 못한 것을 계기로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참고 삼을 필요가 있다. 또한 차별금지법상 판단의 주체로 설정된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에서 다층적인 차별의 경험과 구조를 복잡하게 인지하게 만들기 위해선 반차별 운동이 복합차별 사례들을 언어화 해나가고 차별의 의미를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국가의 책임을 상기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다.
복합적인 차별을 경험하고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 참여하며 이후 제도를 이용할 소수자(이자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에게 있어서 교차성의 관점은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은 소수자 범주를 ‘자연화’하지 않고, 범주 내부의 서로 다른 경험과 차이를 가시화함으로써 차별의 인정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경험의 인정은 차별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데 까지 이어질 것이며, 연대의 지평을 넓혀가는 기반이 될 것이다.
발제에 이어서 ‘가족은 ‘국민’으로만 구성되는가?’를 주제로 토론자로 나선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님과, ‘가족과 시설을 넘어,시설화된 사회를 해체하는 차별금지법제정을 바란다.’는 주제로 토론자로 나선 김다정 (장애여성공감) 님은 한국 사회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논의하는 과정의 ‘비어있는 부분’을 짚었다.
이주여성의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했던 허오영숙님의 토론을 들으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주여성을 ‘국민’과의 결혼 상대, ‘국민’을 출산하는 존재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주민 간의 혼인 상태에 있는 이들, 이혼한 상태에 있는 이주여성, 한부모의 가족형태, 아이를 잃어버려도 아동지원체계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미등록 이주민의 여러 사례들은 단적으로 차별의 문제가 ‘가족상황 및 형태’와 ‘성차별’ 뿐만 아닌, ’국적’의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시 지자체 25개구의 다문화정책을 다루는 부서의 이름이 “출산 (장려) 다문화 팀” 이라는 점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여전히 이주여성은 결혼과 (정상) 가족의 구성을 위해 동원되는 시각이 전제하고 있으며 차별이 구조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오영숙님 역시 이러한 상황의 해결을 위해선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차별과 모욕으로 인한 일상화 된 배제를 경험하는 상황을 너머 포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와 ‘국민’ 범주를 넘어서는 교차적 관점을 통한 정책의 실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다정님의 토론에서는 가족제도가 ‘시설사회’와 어떤 연결고리 가지는지, 정상인구-정상가족의 가치가 어떻게 소수자들의 삶을 시설화하는지 지적하고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국가가 가족을 통해 돌봄과 지원을 개인에게 전달하는 체계 속에서 정작 자원이 필요한 장애인 당사자에겐 도달하지 못 하고 고립되는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하며, “가족 아니면 시설”이라는 이분법 체계 속에서 시설의 존재가 정당화되는 모순을 이야기해주었다. 신아원과 탈시설증언대회의 경험을 통해 가족과 시설에서 발생하는 폭력 역시 교육, 보호, 돌봄, 지원, 관리 등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이는 장애여성 뿐만 아니라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들이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기에 교차적인 차별의 구조가 분석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사회 바깥을 시설화 하는 사회에선 장애인, 미혼모, 요보호여성, 고아를 시설로 선별해왔고, 이를 통해 정상가족의 신화가 유지되어 왔다. 그렇기에 차별금지법이 “시민과 시민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생성함으로써 자유로운 가족구성과 가족실천이 개인들의 시민적 권리 보장으로서 가능해진다는 인식을 사회에 심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탈가정, 탈가족화, 탈빈곤 등의 의제들과 교차적으로 만날 것을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번 토론회에 참여하며, 나의 가족상황은 정주해 있지 않고, 생애주기에서 가족 형태와 상황의 변동은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위치와 그로 인한 경험, 그리고 정체성 역시 유동적일 수 밖에 없기에 누구든 복합적인 차별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 구성원들 중 누구든 삶의 어느 시점에서 문제를 겪었을 때 분명 해소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며, 그것은 복합차별을 포함한 차별의 실효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차별금지법이 도움이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교차적 관점을 토대로 복합차별이 규율되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통해 평등한 삶, 그래서 안전하고 존엄할 수 있는 삶이 보장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