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차별금지법 연속 쟁점토론회 “평등을 토론하라”
2차_차별금지사유로서 ‘성별정체성’의 의미
다양한 성별정체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지오(차별금지법제정연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1년의 시작에 트랜스젠더 3명은 삶을 끝내었다. 이 소식은 거의 매년 동료를 떠나보내온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전 사회에 크나큰 슬픔과 충격을 안겼다.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트랜스젠더 차별의 현실을 보도하고 평소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 없어 보이던 정치인들도 애도를 표하며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을 드러내었다. 이들의 삶을 앗아간 차별과 혐오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차별금지법의 필요성과 연결되었다. 차별금지법 연속 쟁점토론회 [평등을 토론하라] 2회차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에서 트랜스젠더들이 마주한 차별의 문제를 살펴보고 차별금지사유로서 ‘성별정체성’이 드러내는 의미를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먼저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진행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조사 연구진으로 함께 참여한 이호림(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수료) 활동가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트랜스젠더가 전생애의 과정에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을 설명했다. 발표에 따르면, 트랜스젠더가 정체성으로 인해 받는 폭력과 부당한 대우는 중고등학교(92.3%),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수나 강사로부터 (14.9%) 동료 학생으로부터 (32.1%), 군대( 45.7%), 구직 채용 과정(71.5%) 직장(43.6%) 등 생을 살아가는 과정 내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뿐만아니라, 의료기관 이용, 성인인증 시, 은행 방문, 선거 투표 참여, 증명서 발급 등 일상적인 업무조차 포기하는 경험이 34.8%에 달했다. 이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일들에서 베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영위하는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매우 버거운 일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조건은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쳐 트랜스젠더는 일반인구에 비해 우울증상 약 6~10배, 자살 생각 약 7~19배, 자살시도 약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치에 더해 임푸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활동가는 사례를 통해 트랜스젠더가 노동현장에서 겪는 차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초희씨는 정체화한 이후 구직하는 과정에서 우린 그런 사람 안 받아요 가세요 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한 면접관으로부터 주민번호가 남성이고 목소리가 좀 굵기 때문에 들어가시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치시는 게 많을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초희씨는 소개를 통해 안산의 공장에 취직을 했다. 간신히 구한 일터에서도 초희씨의 불안은 여전했다 아웃팅이 되어 그만두게 되면 다시 그 끔찍한 구직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트랜스젠더 미셀은 필리핀에서 온 이주노동자이자 또한 FTM 트랜스젠더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에서 구직할 때 서류에 여성으로 표기되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나를 남자로 봤다가 서류를 보고선 다시 나를 보고 이거 정말 당신이냐고 해요” “힘들긴 해요 왜냐하면 남성 여성 두가지 밖에 없으니까 엘지비티를 위한 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또한 직장 내에서 언어적 성적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용인에서 일할 때 저보고 비정상이라거나 한 적이 있어요” “아줌마가 너 남자야 여자야 이러면서 만져요 매우 성적인 폭력이지요”
사례에서처럼 트랜스젠더들은 생존과 직결된 노동의 현장에서 심각한 차별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비정규적이고 위험하고 음성적인 일자리로 내몰림과 동시에 심각한 생활고를 겪는다.
그럼에도 트랜스젠더의 차별은 왜 죽음에 이르러서야 드러나는가. 이는 트랜스젠더들이 차별을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3.9%가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트랜스젠더임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대응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한희(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활동가는 차별금지사유에 성별정체성을 명시한다는 것의 의미를 세 가지로 정리하여 설명하면서 첫 번째로 차별의 문제를 가시화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차별금지법에 성별정체성을 명시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가 이러한 차별경험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때문에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를 비롯해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차별이 개인의 경험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할 것이다.
더불어 박한희 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실효성 있는 구제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성별이분법을 허무는 더 많은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이 사회는 성별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함에도 외부성기만으로 단 두 가지의 지정된 성별을 부여해왔다. 그로인해 삭제되고 배제되어온 이들이 겪는 고통의 문제는 성별이분법이라는 체계와 법질서로 인한 문제이지 성별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다. 법의 역할이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삭제되어야 할 것은 성별정체성이 아니라 성별이분법의 질서여야 하는 것이다.
한편 김보명(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차별금지법은 평등과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짚으면서 동시에 그로부터 차별이 무엇인지 왜 금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사회가 다변화함에 따라 필요한 논의들을 이 사회는 너무도 미루어왔다. 성별이분법에 대해, 평등과 차별에 대해, 다양한 성원들의 존엄한 삶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더 나은 논의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꼭 필요한 일이다.
앞선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96.4%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차별의 조건을 바꾸기 위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 중 향후 5년 이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57.6%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다른 제도적 차별에 비해 개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차별의 현실에서 희망을 틔우는 이들에게 이 사회는 과연 어떤 응답을 주어야 마땅할까. 차별금지법 제정이 주는 다른 많은 의미에 앞서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을 덜기 위해 필요한 제도가 이미 나와 있다면 답은 너무도 명확하지 않은가. 법 제정을 통해 성별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선언만으로 차별받는 이들에게는 살아갈 용기가 될 수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살아가기 위한 용기다. 차별금지법이 모든 차별을 없앨 수 없고 당장 차별금지법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나, 그에 앞서 차별금지 선언이 주는 상징적 효과는 인간 존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에 닿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