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차별금지법 연속 쟁점토론회 “평등을 토론하라”
1차 <성희롱과 차별의 구제, 여성노동자의 권리로 정의하기> 후기
임유경(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책담론팀)
‘영웅’ 뒤 그림자 노동,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일터 내 성차별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지난 4월 7일 여러 선거구에서 재보궐선거가 있었다. 그 중 서울과 부산에서 광역단체장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배경에는 모두 전 시장들의 위력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두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핵심에는 그것이 권력관계에 기반한 성폭력인 동시에 일터 내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 번의 ‘사건’이나 ‘실수’가 아니라 서울시청과 부산시청이라는 누군가의 일터에 새겨져 있는 성차별적 구조로 인해 가능했던 일이라는 점이다. 여느 때보다 참여율이 높았던 사전투표 기간(4/2~3)과 본투표(4/7) 사이, 6일 화요일 오후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2021 차별금지법 연속 쟁점토론회 “평등을 토론하라”의 1차 토론회 <성희롱과 차별의 구제, 여성노동자의 권리로 정의하기>는 바로 이 점을 꼬집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러한 성차별적 정치 및 노동 현장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토론하는 자리였다.
먼저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에도 연대하고 있는 배진경 활동가는 제한적이나마 일터 내 성차별을 규율하고 있는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 안팎의 다양한 한계로 인해 실제로 성차별과 성차별적 괴롭힘을 겪는 노동자들이 실제 현장에서 성차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도모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한 기존의 법제에서 정확한 구제 절차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법률 내적인 문제가 있거나, 근로감독관, 법원, 인권위 등 다양한 구제기관이 각각 법 집행 문화 및 실무 구조 상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발제자는 앞으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 노동위원회도 구제기관으로 추가하면 어떨지 제안하였다.)
특히 중요한 문제는 배진경 활동가가 발제에서 말했듯 “성차별은 늘 성폭력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직무를 배치하고 그것을 ‘사적’ 업무로 간주함으로써 해당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성희롱(성차별적 괴롭힘)인 동시에, 그 일터에서 성폭력이 쉽게 일어날 수 있게 하는 토대를 만든다. 서울시청은 물론이고 다양한 공공기관과 공기업, 사기업의 비서실이 젊은 여성 노동자들로 채워져 있는 현실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특정한 발언 하나 또는 행동 하나가 성폭력인지 아닌지 각자의 재판장에서 판결을 내리고 개별적 ‘사건’으로만 처리하려는 해결방식은 기필코 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붙잡고 싸워야 하는 것은 그보다 큰 구조와 조직문화의 문제이다.
한편, 일터 내 성차별이 조직문화의 문제라고 했을 때 쉽게 접하게 되는 오해 중 하나는 조직문화는 인식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일터 내 차별적 분위기와 문화는 단순히 인식 개선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반드시 업무 구조에 대한 시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과 소수자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며, 고위직에 앉아있기보다는 상사의 요구를 듣고 수행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비율이 높다. 남성 가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사 평가에서 아름다운 양보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그 자체로도 이미 문제적인) 성과주의는 핑계로도 쓰이기 어려울 만큼 무색해진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욕구 및 요구가 그 어느때보다 높은 지금, 앞으로 제정될 차별금지법은 복잡한 성차별적 괴롭힘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떤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을까? 두번째 발제자였던 희망을만드는법의 조혜인 변호사는 현재 21대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 규정된 “고용상 차별, 괴롭힘, 성희롱, 불이익 조치” 개념에 주목한다. 차별금지법안은 고용 차별을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조항을 포함하며, 남녀고용평등법의 모델을 참고하였지만 기존 법제보다 더 세세하게 일터 내 성차별을 다루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는 업무 배치와 관련된 차별을 규제하는 조항이다. 이에 더해, 구체적이고 독립된 차별 행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노동환경이 전반적으로 차별적으로 구성되어있는 상태도 성차별적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내용 역시 앞으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을 때 일터에서 성을 기반으로 차별 받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법제적 자원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반성폭력 운동의 조직화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한 통념, 즉 성희롱(성차별적 괴롭힘)은 형사법상 성폭력에는 못 미치는 비교적 사소한 행위라는 통념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가장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일터 중에는 기존의 법률이나 사회적 논의에서 전통적으로 ‘노동 현장’으로 포함되지 않았던 곳들도 있다. 마지막 토론자였던 성평등작업실 이로의 이산 활동가·배우는 문화예술계 반성폭력운동과 연극계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풍부한 사례와 문제의식을 나누었다. 이산 활동가는 나이가 지긋한 비장애인 이성애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예술계 ‘거장’의 이미지를 지켜주는 그림자 같은 끝없는 재생산노동에는 젊은, 여성, 소수자 예술인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분은 예술밖에 몰라” 라는 말 뒤에 숨은 착취의 구조와 작업현장 내 성폭력은 너무나도 가깝게 맞닿아있다.
사실 오늘 후기의 제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뽑아낸 것이다. 서울과 부산 시정이든, 문화예술 작업 현장이든, 또는 교육/연구노동자들이 모인 학계이든, 한국 사회 수많은 일터에는 ‘영웅’들이 있다. 일터 내 만연한 성차별은 그러한 영웅에게 나쁜 동기는 없었을 것이라며 선해하고 부당행위를 ‘실수’로 포장한다. 차별이 일상이 된 현장일수록 역설적으로 노동자에게 폭력적인 현장은 “원래 그런 업계”가 되고 만다. 이러한 노동환경에 오래 노출된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그것을 차별로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런 업계일수록 차별 피해를 당한 이들을 고립시키고 침묵하게 만든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개인에게 삶을 건 용기를 필요로 할 때가 많다. 차별금지영역으로서의 고용을 기존 법제보다 넓게 정의하고 ‘차별’ 역시 기존 개별법제들보다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앞으로 제정되고 잘 시행된다면,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일터 내 성차별의 무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일’은 필연적으로 견디고 참는 순간을 동반한다. 견디고 참기 위해 노동자들은 다양한 전술을 개발한다. 소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도 있고, 월급날을 생각하며 참기도 있고,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내리거나 괴롭힘성 발언을 할 때 마음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한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와 문화도 분명히 있다. 이산 활동가가 이야기 했듯 “내 노동의 조건을 합의할 수 없고 그 노동이 내 모든 영역을 사용하는 것일 때” 차별을 견디는 일도, 문제제기를 하는 일도 너무나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사회에는 그러한 일터가 너무도 많다.
이날 유튜브로 생중계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1차 쟁점토론회에는 약 100 여명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자리를 지켰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토론회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것은, 실시간 댓글창에 올라온 몇몇 소감이 말해주듯, 차별금지법이 ‘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 가장 가까운 법안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차별의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자고 부끄럼 없이 이야기하는 정치인에게는 공고한 성차별이 삶의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한국 사회의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차별은 삶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차별금지법이 주장하는 ‘평등’이라는 사회적 과제는 속이 비어있는 입바른 소리나 어설픈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하염없이 미뤄도 되는 곁다리 공약이 아니며 지금 당장 치열하게 한국 정치가 붙잡아야 하는 키워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