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들어본 말 중에 하나는 무엇일까요?
‘냄새나’ ,‘ 더러워’ , ‘가까이 가기 싫어’ …
누군가에 대한 차별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냄새의 자리에는 ‘진짜’ 냄새가 아닌 차별적인 시선이 있음을,
그 시선이 변화할 때 누군가들의 삶에도 향기가 깃들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냄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네 번째 이야기손님
분홍 매니큐어를 하는, 준우
3년 전에 겪었던 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경험했던 에피소드인데요. 당시엔 스마트폰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전인 시절이라서 지하철 안에서도 옆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액정 화면만 보고 있는 요즘과는 달리, 주변 낯선 사람의 행동이나 차림새를 두고서 시간 떼우기 용으로 괜시리 사람 구경하고 수근거리고, 나아가 간섭하기까지 하는 사례가 꽤 있던 때지요.
당시 저는 지하철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제 손가락엔 2센티미터 정도 길이로 기른 후 끝을 동그랗게 다듬은 손톱이 달려(?) 있었고, 그 위에는 분홍색에 빤짝이가 살짝 첨가된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지요. 그때 문득 옆자리에서 저에게로 어떤 시선이 쏟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옆을 돌아보았습니다. 50대 중후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 분이 저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더랬죠. 그러다가 저와 눈이 마주친 후에는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이) 저와 눈을 빤히 마주치려 하더군요. 몇 초 후 갑자기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역시 그분은 저의 일상에 개입하기로 나름 결심을 한 거 같았어요.) “남자가 그렇게 손톱 칠하고 다니면 안 되는 거 아뇨?” 이렇게 한번 물꼬가 트이고 나니 그분은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더군요. 손톱 물들이고 다니는 건 어린 여자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느니, 남자가 손톱이 길면 위생에 안 좋다느니, 아들 같아서 하는 얘기인데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깔본다느니… 저는 귀찮으니 피하자 싶어 일어나며 “남의 일에 신경 끄세요'” 한 마디 했을 뿐입니다.
이런 황당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일들은 매니큐어를 하고 다니는 때면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재밌게도, 저에게 맞다고 여겨지는 성별과 걸맞지 않은(혹은 걸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매니큐어는 그 색감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눈에 띄나 봅니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들이 저에게 참견할 권리를 가져도 된다고 간주되나 봅니다. 건너편에 앉아서 노골적으로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던 일군의 중년 여성들이 있었고, 그 외에도 비웃는 듯 힐끗거리던 시선들도 여러 차례 경험하곤 했지요. 앞서의 남자 분과 같이 제가 남자답게 살기를 충고하는(그들 입장에서 볼 때)/간섭하는(제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을 반 년에 한 명씩 꼬박꼬박 만나곤 한다는 건 흥미로운 일상입니다.
“어머, 난 여자 분인 줄 알았네.” 이 말은 제가 머리를 어깨 아래로 기르고서 보라색 매니큐어를 한 손으로 돈을 건낼 때 식당 주인께서 던진 친근함(?)의 사과였습니다. 이 소소한 사건 역시도 지하철의 경우와 같은 맥락을 지니는 에피소드일 겁니다. 즉, “상대방은 나의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으로 판단한 것일까? 그렇게 알아낸/짐작한 성별에 따라 나를 대하는 방식은 달라지는 건가? 사람들 간의 관계맺음에게 있어서, 왜 이리도 차림새로 성별을 알아채는 게 중요한 건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소한 해프닝일 수 있는 이 에피소드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성별과 연관된 차림새에 대해서 얘기를 풀어보기 위해서입니다.
‘패싱(passing)’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통과하기’라고도 번역되곤 하는 이 단어의 용래는 이렇습니다: 원래 산업화 시기에 유태인들이 유럽 사회 안에서 유태인임을 덮어둔 채 사회에 녹아드는 것을 뜻하는 단어에서, 20세기 중반 미국의 흑인해방운동 내에서는 유색인종이 백인 사회에 진입하는 통과 과정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였습니다. 그리고 동성애자가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에 (동성애자임이 가려진 채) 지내는 것을 패싱으로 일컬어지기도 했고, 트랜스젠더가 특정한 성별로 인지됨을 ‘패싱된다’란 말로 표현하곤 하지요. “남자로/여자로 패싱되었어”라는 식으로요.
주변의 트랜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패싱의 성패 여부가 복잡미묘한 문제지점으로 떠오르는 장소로 공중 화장실과 병원, 탈의실 등 성별로 구성/구획된 공간을 자주 말하곤 합니다. 이를테면, 트랜스 여성이 공중 화장실 앞에서 어느 쪽으로 들어갈지를 망설이는 상황.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몸으로 여자 화장실과 여자 탈의실에 들어갈 경우 성폭력적 상황에 대한 우려를 야기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성인 자신이 그 공간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사실. 이처럼 자신의 성별과 자신의 차림새와 공간 간 걸맞음 여부를 일상적으로 타협해야 하고, 스스로의 행위와 욕망이 제약되고 검열되어야 한다는 사실.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시시때때로 포기하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체념하고서 지낸다는 이야기들 말이지요.
저는 이 상황 속에서 느낄 감정들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어떤 트랜스 남성은 남성으로 패싱되지 않는 조건들 – 소위, 제 아무리 꾸며도 차림새가 도저히 남성스럽지 않다든지, 덩치가 작다든지 등 – 때문에 협상을 하며 지낸다는 이 감정은 어떤 것일지요. 협상의 대상은 사회 전반에 퍼진 성별이분법적 사고관이기도 하고, 그것을 뿌리 깊게 내재화하고 있는 옆 사람의 간섭이기도 하고, 나아가 그러한 관점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합니다. 부당한 거 같고, 이유 없이 차별 당한 거 같은데도… 그게 차별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호할만큼 복잡하기도 하고, 이렇게 태어나버린 자기 탓 같기도 하고, 남자/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사고는 너무 당연한 거 같아서 그로 인한 차별은 사실 차별이 아닌 거 같아 보이고, 남에게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짐에 화가 나면서도, 자기가 봐도 스스로가 사회적 규범을 일탈한 혐오스러운 존재 같기도 하고…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에 주목해 봅니다. 당사자만이 느낄 이런 느낌 외에는 어디가 어떻게 차별적인지 잘 설명하기도 힘든 미묘한 지점에서 차별을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차별을 감지한다는 건 대단한 게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매니큐어, 바지, 치마, 정장 셔츠, 압박 붕대, 귀걸이, 목걸이, 가방의 형태, 손목시계의 크기, 긴 생머리, 짦은 머리, 염색, 흉터, 수염, 근육, 덩치, 키… 이러저러한 게 버무러져서 0.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직관적으로 전해지는 차림새라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타인의 시선을 체감하고, 배제당함을 수용하게 되고, 차별당함을 인지하고, 자기검열을 행하고, 자괴감과 자긍심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고, 자타 모두를 대상으로 인정투쟁을 벌여야 하는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이야기를 다른 소재로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편한 옷과 꾸민 옷, 바지와 치마, 귀걸이와 팔찌에 대해서도 매니큐어와 같은 맥락으로 차림새 이야기를 풀 수 있겠습니다. 나아가서 연령, 직업, 계급 등에 관련하여서도 그렇고요.
나이에 맞는 차림새?
직업에 맞는 차림새?
소득에 맞는 차림새?
이처럼, 규율에서 어긋나지 않으려는 자발적(?)일 수 있는 차림새에 관한 일상적인 노력들, 또는 규율에 어긋난 채 생존해가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공간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너무 순식간이라서 그리고 너무 일상적이라서 망각한 채 혹은 적응해버린 채 지내는 ‘찰나의 차별적 시선들’은, 사람들의 옷 차림새와 악세사리 위를 그물망처럼 얼기설기 엉켜 오가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의 차별사유 중 성별정체성이 들어가야만 한다고 말할 때, 그 사유로 인해 발생하는 일상적 차별경험은 어떤 것일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란 (의외로!) 힘듭니다. 그러한 차별경험의 일례로서 차림새에 관한 경험들과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차별이 무엇인지는 어쩌면 법 조문 안에 절대 다 담지 못 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니, 차별은 자신이 받은 느낌으로 실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차림새를 볼 때 무엇을 보는 걸까요? 거기서 무엇을 판별하고 무엇을 인지하는 걸까요? 우리는 거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남의/나의 옷차림에서 무엇을 읽는가는 어쩌면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미묘하게 드러내는 척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네 번째 이어말하기 | 냄새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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