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세계인권선언 70년에 부쳐 – 차별금지법도 못 만드는 나라,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입니까 –

제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제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오늘, 유엔총회는 모든 인류가 함께 달성해야 할 하나의 공통기준으로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하였습니다. 총 30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세계인권선언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경험한, 인류가 타인을 자신과 동등하고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비극에 대한 반성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제1조와 제2조에서 볼 수 있듯이 ‘평등과 존엄’을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선언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오늘, 한국의 시민들은 과연 ‘평등과 존엄’을 누리고 있습니까? 미투운동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 뿌리 깊은 여성혐오, 성차별의 현실, 혐오세력에 의한 성평등 가치의 오염, 장애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장애등급제,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이주민, 난민 혐오, 공론장에서 존재를 부정당하는 성소수자와 HIV감염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제도적으로 차별과 혐오를 마주하는 이 현실에 대해, 세계인권선언과 헌법의 정신을 지켜야 할 정부와 국회는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지난 2016년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들의 열망은 소수자 인권이 보장되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민주주의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시민들의 열망을 외면한 채 사회적 논란을 핑계로 계속해서 인권을 나중으로 미루어왔습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에 대처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긴급히’ 요구된다는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권고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무엇이었습니까. 8월 시행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은 차별금지법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차별금지사유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고, 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허울 좋은 말만 반복할 것입니까.

 

세계인권선언은 결코 고정된 과거의 문장이 아닙니다. 선언 이후 70년은 차별받았던 소수자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인권을 넓혀나간 ‘투쟁’의 역사이며, 이를 통해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 앞에서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사회적 합의’를 빌미로 자신의 책무를 미루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는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지금 즉시 제정되어야 합니다.

 

2018. 12. 10.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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