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과 결을 같이 하는 여러 입법 이슈에 대해 쉽고, 재미있고, 알뜰한 내용을 꽉꽉 담아 소개합니다.
최근에는 어떤 입법 이슈가 궁금해유? 바로 바로 “여기 있슈~”
2024년 첫 번째 입법대응팀의 이슈는 “저출생”입니다.
2023년 4분기 출생률이 0.65명을 기록했다. 매해 4분기 기록으로 0.7이 깨진 것은 처음이다. 곧 0.5를 기록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BBC의 기자는 1년동안 한국에서 이 기록적인 저출생에 대한 심층 취재를 했다.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도 우리나라의 출생률을 보며 안도할 지경이다. 늘 자랑스러워하는 OECD 국가의 일원인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출생률 1.0명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수조원에서 수백조원까지 썼다는데 도대체 어디에 쓴 것이냐는 조소가 나올 법도 하다. 정부와 언론은 연일 쇼크를 받는 듯 하지만 시민들은 더 이상 1.0명을 넘지 못하는 출생률에 놀라지 않는다. ‘그럴 법도 하지’ 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버렸지만 대한민국의 출생률이 1.0명 밑으로 처음 떨어진 것은 2018년으로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현상은 아니다.
가임기 여성 출산지도를 그리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와 행정
2024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은 김현숙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의 사표를 5개월만에 수리하였다. 온 나라가 잼버리사태, 김행 전 여성가족부장관후보자의 청문회 등으로 시끄러웠던 지난 해를 생각해보면 김현숙 씨가 여전히 여성가족부 장관이었다는 사실도 놀랄 일이다. 김현숙 씨는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했던 여성가족부 폐지를 이뤄내지 못해 아쉬워하며 떠났다. 윤 대통령은 후임을 결정하지 않고 차관대행체제로 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선까지 일단 내버려두고 총선의 결과에 따라 정부조직법 통과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밀어부칠 속셈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이러한 꼼수로 2년째 여성가족부 폐지에 뜻을 굽히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태도는 시민들이, 특히 여성 시민들이 이 나라에서 다음 세대를 낳아 키울 의지를 꺾고 있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에게 여성가족부가 전담하고 있던 성폭력 피해자 지원의 문제는 부차적인 일일 것이다. 나쁜 가해자들이 벌이는 성폭력을 부처씩이나 두어서 피해자를 지원하고 성폭력 추방을 위한 일을 정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 리 만무하다. 장관직은 차관이 대행하고 부서를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에 복지부 인구정책실 사회서비스정책관이 임명됐다. 여가부 핵심 보직에 외부인사가 임명되는 것이 처음은 아니라 하지만 여가부 전체부서를 총괄하는 자리에 인구정책실을 담당하는 인물이 온 것은 정부가 여성이 해야 할 핵심 정책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반영한다.
정책이 여성들이 출산하도록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은 금방 들통이 난다. 그리고 그런 정책들을 보며 재생산을 결심하는 사람은 없다. 출산과 양육이 여전히 ‘여성의 일’인 분위기에 여성들은 마음을 닫는다. BBC의 취재에 응한 이도 그러한 답변을 하였다. 가사노동과 양육을 분담할 배우자는 찾기 어렵고 홀로 양육하는 여성에게 세상은 친절하지 않다고 말이다. 출산과 양육이 엄마의 영역으로 갇혀있는 제도 하에서 여성들의 재생산 거부는 심화될 것이다.
아이를 맡아주면 애를 낳을까
물론 당장의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맡아줄 곳이 절실한 양육자들이 매우 많다. 더 길기도 짧기도 하지만 직장에서 집까지 1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하자. 6시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도 벌써 저녁7시가 된다. 그마저도 양육자들이 직장에서도 어린이집, 돌봄교실 등에서도 쩔쩔 매게 된다. 자연히 아이 하나 키우다보면 둘째 낳고 다시 처음부터 이 돌봄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부 정책도 더 편하게 아이를 맡아줄게,로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여성가족부는 2024년 저출산대책 중 하나로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의 확대를 걸고 있다. 지원대상도 8.5만가구에서 11만 가구로 늘리고 최소 4시간 전 신청해야하던 요건을 최소2시간 전 신청으로 요건을 완화한다. 2024년 3월 6일, 윤대통령은 범부처지원본부 2차회의를 열고 초등방과후 돌봄프로그램인 ‘늘봄학교’의 성공을 위해 모든 부처가 자원을 총동원해 도와야한다고 강조했다. 지역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도 지역의 기업, 기관, 대학, 전문가들까지도 재능기부 등으로 힘을 합쳐달라 요청했다. 물론 그 이유는 국가차원의 돌봄체계 구축이 저출산을 타파할 아주 중요한 정책이기 떄문이다. 그런데 정말 국가가 긴 시간 아이를 맡아주면 더 많이 낳는 것일까. 육아가 아무리 힘들다지만 사실 양육자들은 아이와 시간을 직접 갖기를 원한다. 노동시간과 출퇴근시간, 맞벌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감당불가한 고물가 등의 조건이 아니라면 아이를 긴 시간 위탁하고 양육자 모두 긴 노동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필자는 얼마 전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가족이 살고 있어서 벌써 3번째 방문이다. 생후 70일부터 만난 조카는 뒤집기도 못하던 때부터 걸음마를 시작하고 이제는 말을 시작할만큼 쑥쑥 자랐다. 양육자인 언니와 조카를 돌보며 이 나라는 어쩌고 사는지 궁금했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출산율이 1.5명대로 떨어졌다가 2000년대 들어서 다시 1.6~1.7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2001년 네덜란드가 전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것이 비단 우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의 대도시에 살고 있는 언니를 통해 본 네덜란드 사회는 이러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양육자 둘 모두 넉 달 정도 완전한 육아휴직을 쓴다. 두 사람(양육자가 두 사람인 경우) 모두 종일 아이를 함께 본다. 넉 달이면 아이는 이제 통잠도 자고 스스로 뒤집기도 하고 생활의 패턴이 잡혀간다. 한국에서도 ‘100일의 기적’이 있듯 말이다. 이후 양육자들은 선택을 한다. 보통 이 즈음부터 각각 요일을 정해서 쉰다. 한 명은 화요일, 한 명은 수요일 이런 식으로 정한다. 주4일처럼 근무하는 육아휴직이 몇 년 간 이어진다. 주3일은 돌봄센터에 아이를 맡기고 엄마가 아이를 보는 날은 마마스데이, 아빠가 아이를 보는 날은 파파스데이라 부른다. 물론 마마스데이만 이틀이거나 파파스데이만 이틀인 부부도 많다. 공공도서관의 어린이실이나 박물관, 미술관 체험 프로그램 부스에는 마마스데이, 파파스데이를 맞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양육자들의 성별이 고루 보인다. 대부분 유연근무제로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는 한 명은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고 한 명은 아이를 등원 혹은 등교 시키고 늦게 출근한 후 다른 양육자가 하원, 하교 시킨 이후 조금 늦게 퇴근한다. 그래봤자 5시즈음이면 둘 모두 퇴근한다. 기본적으로 양육자들이 자아실현을 할 직업을 갖고, 가족을 부양할만큼의 임금을 버는 노동의 시간이 과도하지 않아야, 노동시간이 짧아야 가능한 일이다. 주 69시간이라도 노동하고 싶은 이들에게 일하게 해야 된다는 발상의 정부에서, 밥 벌어먹고 살려면 일상을 노동으로 보내고, 그 시간 동안 애는 최대한 국가가 봐주겠다는 것이 이 나라의 기본 골격인 이상, 그런 가족을 꾸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양육자들의 당장의 필요는 맡길 곳이지만, 근본적인 욕구는 적당한 노동시간과 그로 인해 늘어나는 가족과의 시간이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대한 현저히 낮은 수용도
여성들이 지금의 상황에서 반드시 출산과 양육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방송인 사유리씨의 비혼출산 소식이 들려오고 한참 여론조사가 진행되던 때의 결과를 보면 여성들은 비혼여성도 정자기증 등으로 자녀를 가질 수 있다면 낳을 생각이 응답이 26%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혼출산을 선택하기에 망설여지는 이유 중 첫 번째는 ** 한부모 가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었다. 제도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한국에서 정자기증 등으로 자녀를 직접 출산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그보다도 높은 장벽으로 느껴진 것이 한부모가정에 대한 편견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이니 아직 동성커플, 동성부부에 대한 제도적 권리보장이 아무것도 되지 않은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라는 것은 상상되기도 어렵다. 제도안에서의 구현도 꿈도 꿀 수 없다. 세계적인 여론조사기관 IPSOS가 2023년 조사한 결과, ‘동성커플도 다른 부모들처럼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할 것이다’라는 질문에 한국인은 50%가 동의하지 않는다 답변하였고 38%만이 동의한다고 답변하였다. 조사국가 기준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의 평균치는 27%로 한국은 2배 가까이 반대비율이 높았다.
한부모가족을 받아들이는 것도, 동성커플과 그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은 사회. 비단 이러한 ‘정상가족’의 틀에서 벗어난 가족 당사자뿐 아니라 그러한 가족들을 향한 시선을 지켜보는 시민들 모두 영향을 받는다.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구태여 나의 다음 세대를 이어가야할지 의문인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서, 시민들은 더 이상 출생률의 수치를 두고 놀라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재생산을 거부하고 있다. 자녀를 원하는 사람들도 여러가지 사회적인 이유로 재생산을 포기하고 있다. 저출생은 문제인가. 그에 대한 생각은 각자가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생산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흐름은 심상치 않다.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로 나아가려 하는가. 여전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머니’인 여성만이 국가정책에서 여성의 필요이며 정상가족 밖의 출산은 문제의 영역인가, 정상가족 안으로 편입시키려 안간힘을 쓰는가. 생계를 위한 장시간의 노동에 지친 시민들의 아이를 대신 맡아주며 일을 하고 출산을 하라고 등을 떠밀 것인가. 인간적인 노동시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 성평등한 노동환경과 일상에서의 지위야말로 우리가 다음 세대를 그려보게 할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단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알고 있다. 범부처가 힘을 모아 이뤄낼 것은 늘봄학교의 성공이 아니라 성평등한 국가를 향한 전면적인 개편이다. 당장 여성가족부를 정상화하여 성평등한 체계를 구축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며 동성결혼을 법제화하는데서 시작하자.
*기본적으로 출생률, 저출생으로 적고 인용하는 정책명이나 지표에 따라 출산율, 저출산으로 표기도 되기도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