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UP] 2023-9월호 | 평등으로 잇는 길 : 우리의 축제가 평등해야만 하는 이유

 

연결하는 간담회 “평등으로 잇는 길”을 소개합니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전략조직팀에서 또 한 건 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가 자연스레 차별금지법 꼭 만든다고 결의하는 순간들이 너무 좋아서요. 이번에는 연결하는 간담회 “평등으로 잇는 길”, 그 첫 번째 만남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평등으로 잇는 길”은 지금 싸우고 있는 현장들을 평등 이슈로 연결하는 간담회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활동을 통해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인 것이지요. 차별에 맞서는 여러 지역과 삶의 싸움이 만나서 반차별운동을 함께해갈 고리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평등을 이슈로 싸우고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현장을 연결하고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가며, 더 다양한 얼굴들을 만나고 드러낼 예정이랍니다.

 

 

우리의 축제가 평등해야만 하는 이유

 

여러분, 윤석열 정부 이후 벌써(네, 아직 취임 16개월) 최소 14건의 문화예술 검열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아시나요? 문화예술계를 검열의 형태로 제한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지원금을 핑계로 압박하여 혐오를 조장하는 행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3 서울국제도서전은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 실행 세력의 핵심 인물이기도 한 소설가 오정희를 홍보대사로 선정하였습니다. 그는 아직까지 단 한 번의 사과도 하지 않았죠. 한편 2023 인천여성영화제의 상영작 중 한 작품에 대해 인천시는 “퀴어 영화는 인천 시민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다며 제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지난 대구퀴어문화축제는 대구시가 온몸으로 축제 개최를 막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배리어프리 등 평등한 영화제/축제를 만들어가기 위해 도전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갖가지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권력에 맞서 평등한 축제를 기획해 가는 문화예술활동가들의 고민을 연결하고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모색하고자 첫 번째 간담회는 “우리의 축제가 평등해야만 하는 이유”를 주제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의 배진교 활동가,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원장이자 인천여성회 활동가인 손보경님, 문화연대의 이두찬 활동가를 초대하여 전략조직팀의 고운, 기선, 넝쿨, 은박, 지오 활동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가량 “헉”, “정말?”, “세상에!” 등등의 감탄사(?)가 난무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함께해주실 거죠?

 

 

평등으로 가는 길 길동무 소개
두찬 문화연대
보경 인천여성회,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원회
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략조직팀 동료들(고운, 기선, 넝쿨, 은박, 지오)

 

 

각종 검열과 차별행정으로 울고 웃는 근황 토크

 

예를 들어, 70cm 폭의 작품이 실수로 파쇄기에 들어간 사연이랄까…

 

두찬 : 윤석열 정부 들어 14건의 검열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윤석열차 사건*이죠. 정부가 공모전 자체를 없애려고 문체부가 지원금을 전체 삭감하는 상태까지 갔었어요. 작년 부마항쟁 기념식에서는 뮤지션 이랑을 모셨는데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를 문제삼으면서 총연출을 자르는 일이 있었고요. 작년 6월 광주에서 열린 ‘굿, 바이展: 언론개혁을 위한 예술가들의 행동’의 서울 전시회가 올해 1월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모종의 힘으로 인해 철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지시한 적이 없는데 작품이 철수된 거죠. 최근에는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작품을 분쇄기에 갈아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큐레이터 개인의 실수였다고 주장했죠. 70cm 폭의 작품이라서 이게 들어가는 분쇄기가 별로 없어서대형 파쇄기가 필요한데, 기적적으로 비치되었나봅니다.

 

*윤석열차 사건 : 2022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차>라는 제목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 작가의 작품이 경기도지사상 금상을 수여받고 전시된 것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난다”며 엄중한 경고(!)를 했다.

 

김기춘, 조윤선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연루자들은 지난 달 공판이 시작되었는데 공판 전전날 김기춘이 세월호 관련 재판에서 무죄가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재판이 요식행위 정도가 된 거예요. 2020년 12월, 헌법재판소에서 블랙리스트는 위헌이라고 하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재판이 그렇게 진행된다는 게 정말 문제적이죠. 블랙리스트는 국가가 일으킨 범죄인데 치졸하게 예산과 다 연결시켜놓고 돈으로 문화예술인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고운 : 예산과 연결짓는 검열은 인천여성영화제에서도 겪으신 일이네요.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보경 : 지금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어놓은 상태입니다. 사실 인천시는 별다른 대응이 없었어요. 그리고 여성회에서 작은 도서관들을 부설로 운영하는 곳이 좀 있습니다. 최근 충남에서 도서관의 성평등 도서 검열 사건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도서관의 입장을 듣고 싶다고 해서 거기 다녀왔습니다. 충남에서 시작한 도서 검열이 각 지자체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혐오세력들이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서 주시하는 중입니다.

 

 

진교 : 지난 6월 17일 대구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혐오세력들이 피케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 법원 등 공권력에까지 위력을 펼치는 현상이 발생했어요. 퍼레이드를 앞두고 대구기독교 청년회, 동성로 상인회 네곳이 퀴어문화축제를 고소했습니다. 1억 5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퍼레이드 집회 금지 가처분을 냈고, 그 결과가 15일 지방법원에서 났는데, 다행히도 표현의 자유를 더 우선시 하는 판결이 났습니다. 그리고 상인회의 고발은 손해를 분명히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각됐고요. 그리고 홍준표시장의 연이은 혐오발언 끝에 결국 17일 당일 중구청 공무원 등 500명이 집회에 들어가는 부스 차량 등을 못 들어가게 막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이때 대구시는 도로점령에 대한 허가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했고, 경찰은 집회시위 신고를 했기 때문에 집회시위법에 의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경찰과 공무원이 충돌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죠.

 

퍼레이드가 끝나고 나선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던진 질문’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대구참여연대와 함께 공식적으로 홍준표와 대구시를 상대로 검찰 고발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0월에 첫 공판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대구에서는 더위를 느낄 새가 없습니다. 축제 관련해서 대구시와 저희의 법정다툼도 관심 가지고 지켜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고운 : 예산, 벌금, 고소 등 행정을 무기로 치졸하고 잔인하게 국가폭력이 이뤄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략조직팀 여러분께도 오늘 간담회 참여하신 계기와 함께 간단한 근황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은박 : 매년 3.8여성대회를 주관하는데 해마다 다음 축제는 어디서 할 것이냐, 고민합니다. 광장을 사용하려고 하면 “너네 그거 너무 정치적인 거 아니냐”고 하고… 그리고 여성 이슈로 집회할 때 큰 스피커로 굉장히 모욕적인 발언을 하며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경찰은 충돌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만 하죠. 무엇이 평등인지 고민이 없는 거예요. 국가권력이 제대로 역할을 안하면서 운동 현장이 혼탁하고 힘들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오 : 얼마 전 노동절 집회에서 신남성연대를 봤어요. 보통 여성집회에 오던 집회방해세력이자 혐오세력인데, 이들을 노동절 집회에서도 만난다고? 이게 굉장한 공포와 위기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정부는 이제 소수자성을 지우는 방식, 집회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탄압을 해요. 성소수자가 자기 권리를 외치느라 일반 시민의 교통을 방해한다는 식이죠. 이런식으로 모일 권리, 말할 권리 자체에 대한 혐오가 커지면서 위기감을 느꼈어요. 이제는 여기에 맞서서 싸워야 하는구나, 싶은 거죠. 그럴수록 집회를 하기 힘들어지고 말하기도 힘들어질 거예요.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의 심리가 있는데, 여론이 이런 행동은 민폐라고 계속 하니까 스스로 자기 행동에 제약을 걸게 되는 거죠. 그게 제일 나쁜 거고요.

 

진교 : 우리도 가장 많이 들었던게 버스 타는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면서 너네 좋으려고 축제를 왜 하느냐는 말이었어요.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권리와 시민들의 불편한 감정을 등치시키는 거죠. 국가가 선량한 시민과 불량한 시민으로 갈라치기 합니다. 국민이 국민을 혐오하게 하고, 시민과 시민의 싸움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그런데 사실 상인회가 이번에 축제를 고소한 내용을 보면 무엇 때문에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 진술은 없어요. 오히려 한 편의점은 축제 당일, 전 주 주말의 세 배가 넘는 물량이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누려야 하는 기본권을 가지고 시민을 불편하게 하는 나쁜 사람들로 만드니까 하도 답답해서 “집회는 원래 불편하게 하려고 하는거다”, “오늘은 성소수자 혐오, 내일은 장애인 혐오,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얘기하곤 하죠. 요즘 절실히 느끼는 것이, 예전에는 종교적인 기반으로 혐오세력이 있었다면 이젠 국가로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혐오가 국가폭력, 차별행정으로 넘어가서 발현돼요. 올해가 분수령이 될 듯합니다. 이번에 저희가 낸 소송에는 국가가 혐오해선 안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재판이 많은 것을 의미할 것 같아요.

 

지오 : 관점을 그렇게 이동시킨 것이 저쪽의 성공이기도 한데, 이것을 돌파하는 싸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운 : 국가 차원에서 기본권을 침해하고 혐오를 조장하면서 하면서 민원을 핑계로 들기도 하죠. 인천여성영화제 사건에서도 인천시가 민원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할수록 폭력의 주체가 어디인지 잘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진교 : 17개 시중에서 유일하게 인권위원회 폐지된 곳이 대구입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시민들과 싸우느라 바쁘고 페북하느라 바빠요. 대구시청 앞에선 1인시위나 집회를 못하게 막고 있고, 관련해서 고소가 진행 중이에요. 이외에도 정말 많은 방법으로 시민들이 정치적 의견을 모으고 표출하기 점점 어렵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무지개인권연대만 봐도 그래요.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하려고 어렵게 회원들 모으고 총회하고 신청서를 대구시에 제출해도, 계속 떨어집니다. 요구하는 내용들 다 넣어서 다 해줬는데도 계속 반려당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성소수자 인권단체라고 써서 갔더니 안해주려고 2년 동안 다섯 번을 돌려보내더니 마지막에는 통장을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회원들한테 다 전화해서 회원가입한 거 맞냐, 인천에서 왜 대구 단체에 가입했냐, 이런 식으로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고운 : 홍준표 한 사람도 문제적이지만, 시장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게 너무 충격적이에요. 혐오의 목소리에는 어떻게든 힘을 실어주면서, 평등의 목소리는 어떻게든 방해하려는 모습에 또 분노가 일어나네요.

 

넝쿨 : 연분홍치마도 여러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연분홍치마는 인권운동단체이기도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집단이기도 해서, 공적영역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 지원을 받는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이 있어요. 저희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영진위 예산 자체도 많이 축소가 되었고, 또 블랙리스트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예술 예산이 축소된다는 것, ‘윤석열차’ 사건처럼 검열을 반복하며 표현을 위축시키는 것이 반복되면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예산이 축소되는 것 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상상을 제약 받는 상황까지 온다고 생각해요.

 

두찬 : 영진위 정말 지금 문제예요. 요즘은 아예 감사원 직원이 상주한다고 합니다. 작년에 영화 블랙리스트 피해연구조사 요청이 있어서 진행했는데, 우리의 사업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블랙리스트 피해를 축소화하고 있고요. 정부에서는 좌파들의 온상이 영화계라고 생각해서 내년 예산도 엄청나게 삭감될거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문체부 예산은 5% 이상이 삭감된다는 이야기도 들리는 상황입니다.

 

무력하고 우울할 때 우리에게 힘을 주는 건?

 

시민끼리 싸움을 붙이며 혐오를 조장하는 차별행정. 점점 더 교묘해지고 거대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혐오와 차별 앞에서 힘이 빠질 때, 결국 우리에게 힘을 주는 건 평등을 향해 함께 나아갈 당신인 것 같습니다.

 

진교 : 실은 거대한 조직과 나약한 한 사람의 싸움으로 느껴질 만큼, 대항하기가 버겁습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도 하나하나 맞서고 수정해가며 15년을 왔는데 차곡차곡 쌓아온 평등에 대한 공든탑이 이 정권과 홍준표 시장이 들어온 지 1년만에 무너진 느낌이에요. 활동가로서 힘이 빠지지만, 널브러져 있으면 주변 사람들도 너무 힘들지 않겠습니까? 일어나서 싸우고 저항하고 있어요. 원래 축제 평가회의 끝나면 일주일 정도 휴대폰 끄고 살거든요.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시간개념 없이 본능에 충실하게 일주일 살아요. 그런데 올해는 끝나도 너무 바쁘고 국가폭력이 연이어 터지고 고소고발이 계속되니까 정말… 어떤때는 없어지고 싶은 느낌이에요. 최악의 경우 탄압이 심하면 내가 어디 시청 탑이라도 올라가서 농성이라도 하고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 하나, 그러면 세상이 좀 들어줄까, 그런 정도의 우울감도 있었습니다.

 

기선 : 인천여성영화제의 싸움을 보면서도 느꼈는데 사람들이 에너지가 고갈될 정도로, 전방위적 공격을 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동료들을 만나는게 너무 중요하고요. 진교님은 늘 만나면 제일 먼저 활짝 웃어주는 사람인데 그런 생각까지 했다니 내가 이 사람을 너무 외롭게 뒀나? 이런 생각까지 드네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에 정말 공감해요. 블랙리스트처럼 클래식한 방법으로 사상검열하는 것, 예산을 휘두르며 검열하는 것, 더 심하게는 우리의 동료시민에게 우리를 혐오스러운 그 무엇, 적출해내도 되는 대상으로 낙인 찍는 것, 이것들이 먹히기 시작하니까 이제 너무 노골적이죠. 예전에는 정부한테 이거 사전검열이라고 하면 화들짝 놀라면서 부정했는데 지금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잖아요. 시민들이 다양성을 맘껏 향유하게하는 것이 사실 문화예술 지원의 목적이죠. 영진위가 갖고 있는 예산도 이에 기여하는 이들의 활동이 지속가능하도록 조성한 기금인데, 이게 문화나 우리 삶의 본질은 물론이고 그 예산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디서 시작됐는지 내팽개쳐버려요.

 

그래도 인천여성영화제 사례를 볼 때 여러 곳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진교 동지가 울컥했던 것처럼 인천여성영화제 개막식 때 사회자가 울컥 하는 것을 보며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그러면서 사람들한테 평등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두찬 : 사실 큐레이터가 작품을 스스로 파쇄하고, 광주에서 음식점에서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식당 주인이 안된다고 하는 것들은 이미 국가가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도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정부에 대한 풍자, 비판의 메시지는 불이익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가진다는 건데, 정말 큰 위험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가 그 상황까지 왔고 이런 것들은 확대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경 : 인천여성영화제 같은 경우 처음에는 공무원 한 사람의 일탈이라고 볼 수도 있었어요. 그 공무원이 이미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시청 안에서 신우회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고 개인적으로 이건 안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인 거였죠. 여성정책과 전체 의견은 여성영화제가 하던대로 하면되지 왜 그걸 막아, 그런 정도였는데 그 사람이 집행권자였어요. 그래서 밑에 직원들도 너무 힘들어했는데 이 사람이 시장 부인과 같이 교회를 다니고 스스로 혐오세력을 먼저 움직이면서 ‘공무원 책임이다!’ 이런 식으로 나왔어요. 우리가 기사도 내 지않고 여성정책과와 협의만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목사들에게서 시민의 의견이 이렇다는 식으로 전화가 걸려습니다. 시는 빠지고 혐오세력과 우리를 붙이려고 한 거죠. 우리는 혐오세력과 맞붙지 말자, 책임 있는 시와 담당자에게 문제제기를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시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았어요. 여성정책과장은 끝까지 다음 인사발령 때까지 기다려 달라면서 확답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협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시민과 시민을 싸움 붙이는 거예요. 도서검열도 보면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 소속이란 것을 밝히지 않고 학부모, 일반시민이라고 하면서 의견을 내고 있어요. 일반시민 이런 말 쓰면 안되는데…(웃음) 여하튼 너네는 표현의 자유라고 하면서 왜 우리의 말은 혐오라고 하느냐 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이상하게 활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화가 나죠. 지자체, 정부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헉헉거리는데 시민들을 계속 설득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인천여성영화제 검열은 당장은 성소수자 혐오로 드러났지만 이전부터 시에서는 계속해서 여성을 지우려 하고 있어요. 여성정책과에서도 성평등, 페미니즘, 여성주의 관련한 것을 하려고 하면 미리 엄청 간섭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점점 계속 될 거예요. 지금은 성소수자에서 시작하지만 악성 민원이라는 것으로 인해 교권과 청소년 인권을 대치되는 것으로 보이게 하고, 정부와 학교 현장의 문제를 가지고 학생인권이 문제인 것처럼 말합니다. 정말 세세하게 갈라서 설 수 없을 자리를 만드는구나……

 

시민단체는 감사 준비를 하고 있어요. 여성회 같은 경우 제일 먼저 타겟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사실 없는 문제라도 찾아내고 만들어낼 인간들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대응할 수 없다는 걸 느낍니다. 영화제 하면서 하루는 화내고 하루는 감동해서 울고 미친년 널뛴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매일 제재받고 탄압받는 반면에 많은 분들이 연결되어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이젠 당연히 가야 하는구나, 모든 걸 다 같이 해야 하는구나, 전국적으로 같이 움직여야 하는구나, 하고 느껴요. 그래서 이번 인천여성영화제 슬로건 “환란의 시대: 무너뜨리고 연결하기”가 신의 한수라고 했습니다. 연결된다는 것이 감동이기도 하고, 계속된 싸움을 끊지 않고 투쟁을 해야 하는구나, 전면적으로 싸워야지, 다짐하게도 돼요.

 

우리의 짝꿍, 평등! 표현의 자유와도 떼어놓을 수 없지

 

고운 : 반복되는 경험으로 우울감이 쌓이지만 그러면서 힘을 얻는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저는 사실 서울인권영화제 활동 목표 중에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라고 되어있지만서도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었어요.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뭘까? 이걸 활동으로 풀어간다는 건 뭘까? 그러던 중 이번 인천여성영화제를 보면서 국가나 행정이나 혐오세력의 검열이 결국 소수자나 약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까지도 앗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등의 감각과 표현의 자유는 따로 떼어놓고서 절대 이야기할 수 없고, 그러다보니 이번 간담회를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각자의 현장에서 이렇게 표현의 자유와 평등은 떼어놓을 수 없다는 걸 느낀 경험이 있을까요?

 

지오 : 기관이 아무 기준이 없어요. 혐오차별을 민원이라고 받아 안는 기관에 무슨 기준이 있겠어요. 폭주하는 홍준표처럼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도 대한민국이 아무 기준없이 폭주하고 있다고 느껴요. 성평등 도서관 사태도 도서관에 민원이 몰리니까 사서들은 어쩔 수 없이 도서를 빼게 되고 힘들어 해요. 그런데 이렇게 민원에 시달리는 개인을 부각하는 게 아니라, 평등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거죠.

 

진교 : 대구경찰의 경우 중구청에 혐오세력이 항의를 많이 했는데 담당 정보과장이 성명을 냈어요. 우리는 경찰로서 누가 주최하든 집회를 보호할 의무가 있고 이미 신고한 집회니까 철회를 하라거나 반려하라고 하지 말라고. 예전에 선거 시기에 아침 6시부터 어머니들 투표 못하게 어디 보내드리자 이런게 있었어요. 우리는 사전투표 하고 당일에는 엄마 모시고 여행가자, 이런 게 굉장히 많았어요. 한편 투표하는 노인들한테 뭐라 하지 마라, 자기 주권 지키는데, 그렇지 않은 우리에 대해서 반성하자는 목소리도 있었고요. 민원도 교회나 혐오세력에서는 막 올라가지만 우리는 그만큼의 실행력이 없어서 안타깝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어요.

 

두찬 : 주말에 토론회 했는데, 사서분들이 오셨는데 양쪽에서 민원을 받으면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분들이 ‘우리도 근거가 있어야 막을 수 있는 게 있으니 넣으라’고,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기선 :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국가에서 양성평등이라는 말을 쓰게 강요하니까 인천여성민우회가 사업을 포기했죠. 민원 대 민원으로, 양적인 것으로 이슈화 시키게끔 만드는 이런 때 정부의 신호는 인권에 있어서 분명해야 합니다. 보편적 권리들이 각각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선에 모든 존재들이 끌어올려져 한다고요. 예를 들어 학생인권은 지금 상황에서 보편인권에 못 미치기 때문에 우선인 거죠. 인권에 가까운 것을 해야 하는 의무가 국가/행정에 있습니다. 이것이 적극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경 : 양심의 자유라는 것이 딱 와 닿았던 경험이 있어요. 우리도 그렇지만 공무원은 공공성을 지키며 일해야 합니다. 민원 대 민원은 공공성이 아니에요. 표현의 자유도 있지만 양심의 자유도 있지 않습니까. 시민단체, 여성영화제 집행단위로서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의 이익에 맞춰야 하는데 그것을 침해받은 거예요. 성평등도서 검열 사태에서 보더라도 사서들은 검열을 단호히 거부하고 윤리에 맞게 해야 한다는 윤리선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민원 때문에 도서관 사서가 이를 못하게끔 하죠. 공무원은 문서와 근거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뭔가 혐오차별적 민원이 올라오면 우리도 우리의 민원을 넣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혐오세력은 성평등 책 금서 요구로 민원을 많이 넣는데,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민원까지 넣어야할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민원을 조직하기 어려워요. 공공기관도 원칙이 없이 민원의 양적비교만 가지고 이를 기준 삼는 행정 집행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계속 문제제기 해야 합니다. 이번에 인천여성영화제에서 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했는데 공무원도 “요즘 시대에 사전검열이라니 말이 되냐” 이런 말을 하면서 지나갑니다. 공무원 다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밥그릇 때문에 맞는 걸 맞다고, 틀린 걸 틀리다고 표현이 어렵다고 합니다. 밖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해요. 홍준표처럼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하는 인간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기도 하죠. 공무원도 직업윤리 없이 일을 하는 게 아닌데, 기준과 원칙이 중요합니다.

 

지오 : 그 기준이 평등이 원칙이죠. 차별금지법이 그걸 다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원칙을 세우는 데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선 : 인권이 뭘 양보하지 않느냐를 보여주는 면에서 차별금지법이 큰 신호가 될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 싸울 때 내가 생각하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그게 동료시민들이 역할이기도 해요. 전교조에서 투쟁할 때 인권운동 영역에서는 노조탄압 뿐 아니라 동시에 정치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 말하기도 했어요. 노동자 개인의 정치사상의 자유를 지지하고, 보편적 권리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거죠. 뜬구름잡고 추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에게는 혐오가 그냥 혐오가 아니에요. ‘내가 저기 동요하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낙인 찍힐 수 있겠다’는 공포가 있죠. 동료시민이 나의 싸움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그래서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로 연결되는 것 뿐 아니라 계속해서 이 싸움과 권리의 이름을 덧붙여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평등의 감각이라는 것은 이렇게 더 많이, 더 다양하게 이야기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은박 : 자녀 중 한 명이 얼마 전 훈련소에 입소했어요. 제 직업을 묻는데 회사원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 양심이나 정체성을 지킬 수 없을 때 거짓말을 하게 되죠. 내놓을 것과 내놓지 않을 것을 계속 고민하고 그렇게 사실과는 다른 정보를 주고 받으며 서로 관계를 맺는 거죠. 일상에서 스스로 검열하는 행위를 매 순간 하고 그런 경험들이 우리 ‘관계’를 어떤 것으로 만들지 상상하면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리고 얼핏 노년세대에 비해 젊은세대들이 잘 조직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노년세대의 결집은 주로 교회나 종교단체를 통한 경우가 많은데 사실 교회는 얼핏 공유지(?)같은 경험을 제공하면서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 같아요. 국가가 방기한 사회안전망을 지역에서 제공하는 방식으로요. 반면에 젊은 세대는 그런 이상한 공유지도 경험하기 어렵고 각자도생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더 영향을 받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더 많은 사람들과 평등을 외치고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함께 할 수 없게 하는 삶의 조건들,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도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활동을 할수록 더 강하게 하게 됩니다.

 

평등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
평등한 축제란 무엇일까?

 

고운 :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연결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도들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고, 어떤 동료가 필요한가 이야기 해봐도 좋을 듯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장애인접근권을 실현하는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다가 작년부터 더 고민을 확장해서 사회적으로 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영화제, 인권영화제에 올 수 있게끔 하는 평등한 접근권이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활동이 무엇지, 평등한 축제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보고 싶어요. 그리고 사실, 돈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죠. 인천여성영화제는 예산을 걸고 싸워본 경험이 있고 그래서 내년에 대한 걱정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보경 : 사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하다가 있어서 하면 그 다음이 쉽지 않아요. 이번에 예산 받아서 상영료, 초청료를 그에 맞춰서 드리려고 했는데, 검열 사건 있고 나서 원래대로 드리기가 어렵게 됐었어요. 교통비 드리면 다시 저희에게 후원해주시기도 하고. 이런 과정을 보면서 내년에 어떻게 하나 고민도 들었습니다. 올해 영화제 목표는 상영작을 다 지켜보자는 것이었어요. 작품측 사정이 있어서 못한 한 편 말고는 다 상영했는데, 내년은 예산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테니 당연히 다 못하겠죠. 시에서는 문화예술과로 옮기면 예산배정 해줄테니 정리하자고 하더라고요. 시에는 그런 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문제제기 했지만 이후 다시 논의할 것 같지는 않아요.

 

시에 예산 요구하는 것도 권리라고 생각해요. 인천시민들과 성평등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시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준다고 하면 ‘더러워서 안 받겠다!’ 이렇게만 해야 하냐, 그것도 고민이에요. “문화를 향유할 우리의 권리다”라고 이야기 해야 하는데 우리 단체가 이야기하면 “단체 이권이다”라고 말해요. 그래서 시민들과 고민을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성영화제에 오면 다른 여성들, 특히 청년여성들이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 좋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는데요, 그러한 여성시민들이 그 자리에 와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지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예산상 문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게 사실 영화제만의 문제는 아니죠. 여성회도 지속적으로 가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작년, 올해 워크숍을 하는 중이에요. 생존의 문제와 운동의 방향이 같이 가기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는데, 어려운 시절 중 우리는 과연 어떻게 가야 하냐 계속 고민해야 하는 거죠. 나이는 나이대로 들어가고(웃음) 지부별로 돌아가면서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기선 : 인천인권영화제의 경우 1세대는 시의 행정부서에서 했어요. 그런데 2세대인 우리는 검열 이슈가 있었던 이후로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검열이나 형식적인 서류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금(영상위)이 조성됐어요. 인천여성영화제는 거기서 더 어려운 주민자치예산으로 가셨는데 정말 응원합니다.

 

두찬 : 축제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게 또 있어요. 작년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지역 축제들이 다 취소됐습니다.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놀 수 있느냐는 논리로 정부가 원하는 애도의 방식을 강요받기도 했고요. 우리는 축제에서 우리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시민들과 애도의 마음을 나누려고 했는데 국가와 지자체는 ‘노래부르고 놀고 춤추는게 무슨 애도냐’라는 식이죠. 이게 문제가 되는 게, 축제를 준비한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기획한 시간도 있잖아요. 그런데 축제가 일방적으로 취소되면서 그렇게 같이 준비한 사람들도, 함께 준비한 과정도 그냥 혐오의 시선으로 돌아오는 거죠.

 

그리고 축제들이 전임 시장, 구청장 등과 연결되고, 축제를 정치적인 걸로만 바라보니까 정권 바뀌면 축제의 내용이 변경되거나, 축소되거나, 취소되기도 해요. 원주에 댄싱카니발이라는 축제가 있는데 시장이 바뀌면서 댄싱카니발에 대해 한마디 해서 내년에 없어지게 됐어요. 축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다보니 예산 문제가 발생하고, 지원이 시혜적으로 진행되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도 닫혀있어요. ‘와서 보세요’만 정도만 하고. 기획하는 위원회에도 공무원이 들어와서 일방적으로 하는 거예요. 축제를 단순하게 만들고 내용도 삭제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준비하는 분들과 시민들이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제일 중요할 텐데 그게 어렵고 언론에서도 돈 문제로만 치부하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시각이 강해요. 지역축제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지만 쉽지 않아요. 축제감독들을 바라볼 때 이벤트 회사 직원들처럼 생각하기도 하니 그분들 스스로도 자존감이 낮아지죠. 이걸 어떻게 하면 축제 자체를 평등한 문화로 인식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도 연결되고요.

 

은박 : 저도 대구 지역에서 이주했는데요, 대구에서 서울로 이주한 사람이 세대를 떠나서 많아요. 젊은 세대들 보면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아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다른 지역을 가는 경우가 많고요. 사실 차별행정이 그냥 행정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 전반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많은 거죠. 드러내고 저항할 수 없는 몸들은 소극적 저항으로써 떠나는 것밖에 못하는 거예요. 다들 오랫동안 운동하고 계신데 저항하는 구성원들의 변화나 이런 것들을 체감하시는지 궁금해요.

 

진교 : 축제만 보더라도 체감을 많이 합니다. 대구에서 1회 퀴어문화축제를 할 때는 서울에서 활동가들이 내려와서 활동가 중심으로 퍼레이드를 했었어요. 그때 지역에 따로 커뮤니티가 없어서 게이바에서 저를 키웠는데요,(웃음) 그래서 축제할 때 제가 홍보물 인쇄해서 게이바 다니면서 붙이고 그랬어요. 그런데 축제 끝나고 영상을 보니 게이바에서 나온 오빠들이 행인처럼 서있더라고요. 그래서 가게에 가서 왜 구경꾼처럼 그렇게 서있었냐고 물으니 진짜 동성로에서 내놓고 하는지 보고 싶어서 와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점점 안으로 들어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오히려 경험 있는 분들이 논의 테이블에서 떠나며 지금은 밖에 퍼레이드를 할 정도의 분위기가 아니니 하고 싶으면 영화제 정도로 하자고 했어요.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러면 이 사람들이 바깥에 나올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면 되지 않느냐, 1회에 한 명 2회에 두 명 이렇게만 늘어도 축제 성공 아니냐,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날이 갈수록 당사자들, 엘라이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을 체감합니다.

 

사실 대구가 광역시이긴 하지만 도시의 익명성이 없어요. 1회 때 사회 본 분이 얼굴 전체 마스크를 하고 원피스를 입었어요. 그렇게 철저하게 분장을 하고 사회를 보는 중에 누군가에게 등짝을 팍 맞았어요. “누구야!” 하니까 “저희 누나예요” 하더라고요. 아니 이렇게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 사람인걸 알았지, 싶었죠. 여하튼 대구에서는 축제에 오면 회사 사람, 동문, 집안사람 등 누군가에게는 알려져요. 그래서 서울과 다르게 지역에서는 용기가 천 배, 만 배 필요한 일인데도 참여자, 당사자들이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차별을 넘어 더욱 단단해지는 우리의 연결

 

“그러니까 불평등, 차별이 심화할수록 차별금지법이 더 호명되어야 하고 조금씩 더 곳곳에서 터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을 상상하고 꿈꿔보고 행동하는 그런 것이 중요한 해입니다.”

 

진교 : 저는 이번에 정말 거대하게 뭔가에 막혀있는 느낌을 경험했어요. 저한테도 고소고발이 들어왔는데 당면한 과제가 많아서 큰그림을 그릴 시간 여유가 없었죠. 당면한 것들을 풀어나가다보면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지금 저희가 주력하는 것은 국가손해배상 청구입니다. 대법원까지 가려면 홍준표 임기와 같이 갈 것 같은데 이것이 갖는 의미, 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국가가 국가폭력으로 이웃을 갈라치기하고 시민간 갈등을 조장하는데 이럴수록 연결되어야 해요. 사실 영남권은 정치적으로 혜택을 봐온 곳이라 지역 차원의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 대구에서 왔다고 하면 숙박거부 당하고 이런 식의 차별을 처음 받아본 거예요. 국가폭력이나 차별의 경험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거죠. 그렇게 다져지는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를 계기 삼아 연결되는 단합이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좀 더 성소수 내부를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거대한 벽을 한순간에 폭파시키거나 무너뜨릴 수 없다면 서로 연결되어 타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게 되기도 해요.

 

그러니까 불평등, 차별이 심화할수록 차별금지법이 더 호명되어야 하고 조금씩 더 곳곳에서 터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대구시가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겠죠. 곳곳에서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을 상상하고 꿈꿔보고 행동하는 그런 것이 중요한 해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분투하고, 나설 수 있다면 나서고 못 나서면 후원이라도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할 수 있는 만큼 자기의 자리, 역할을 해보는 거예요. 당면한 것들을 하나하나 잘 풀면 풀리고 엮이고 사례가 되고 근거가 되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해 한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홍준표가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차별행정으로 일시에 후퇴 시킨 것 처럼 보이지만 개구리가 움츠렸다 뛰는 것처럼, 활동가들이 더 힘을 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고운 : 정말 공감합니다. 차별금지법 원칙은 평등이죠. 우리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평등이라는 원칙으로,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원칙으로, 인천여성영화제 슬로건처럼 연결되었으면 좋겠어요.

 

두찬 : 저도 덧붙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 법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지금도 블랙리스트 피해자 중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에게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사실 별로 체감되지 않죠. 안전한 창작환경 조성을 위해 만들었던 법이 결국 이런 식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정부는 이를 몇몇 특정 가수들의 저작권 문제 정도로 가져가려고 해요. 결국은 안전한 창작환경을 위해서도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넘어서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거예요. 폭력적 차별행정, 혐오,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 거대한 힘으로 다가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중 하나는, 이태원에서 다시 퍼레이드를 준비 중인데, 이태원 지역주민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아직도 그 기억을 갖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멈췄던 축제를 다시하도록 준비하고 싶습니다.

 

고운 : 마음이 무거운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지만, 그만큼 힘이 되는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오늘 만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무리 소감 짧게 한마디씩 나누고 마치면 어떨까요? 저는 오늘 많이 긴장이 됐었는데 모이기 힘든분들을 이렇게 모아두고…? 아! 모시고!(웃음)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것들 많이 힘내서 하면 좋겠습니다.

 

은박 : 저는 사람 만나는게 좋아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요즘 좀 무기력하고 막막해 하고 있었는데 서로의 현장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서 즐겁고 힘이 되었습니다.

 

지오 : 대구퀴퍼를 앞두고 쓸데없이 행성인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전화해서 왜 교통을 막으며 퀴어축제를 하냐, 그래서 우리 단체가 한 건 아니지만(웃음) 성소수자들이 나와서 하루 가시화하는 날이라고 답해드렸어요. 왜 정부에 반대해서 하냐는 거냐고 하길래 문재인 때도 했고 그 전에도 했다고 했죠. 한마디로 이 분이 보기에는 윤석열 정부를 반대하는 집단 같았나 봐요. “그래서 계속 하겠다는 거예요?”라고 하갈래 “네! 하겠다는 거예요”하고 씩씩하게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참나” 이러면서 전화를 끊더라고요.

 

사실 블랙리스트, 국제도서전 등 사건들이 각각 흩어진 소식처럼 보일 때가 많아요. 이런 때 한편으로 오늘의 자리가 각각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이 문제의식을, 그 다음 장을 사람들에게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되겠구나 싶기도 해요. 대구, 인천은 서로 먼 소식 같지만, ‘내가 이렇게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생각이 들 때 힘을 주는 자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같이 이야기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생각이 들다가도 이렇게 이야기 나누면 연결을 확인하고 또다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하고 싶은 말, 말을 할 수 있게 열어내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역시 사람을 만나면 힘이 솟는군요!

 

넝쿨 : 저도 역시 모이면 힘이 나는구나 싶었어요.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과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연대의 힘을 어떻게 증폭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는데, 이런 만남의 자리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선 : 저는 요즘 슬럼프 아닌 슬럼프였어요. 주력하는 인권영역의 첫자음도 보고 싶지 않은 방전상태랄까요. 관성을 거부하고 싶은데 관성에 젖은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오늘 듣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되고 뭔지 모르겠지만 가슴이 웅장해졌습니다.(웃음)

 

그리고 이태원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싶은 사람(두찬)을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이태원 상인들은 그곳의 다양함들을 애정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인데 행정은 이들을 단지 돈벌이 하는 사람으로 전락시켰죠. ‘논다’, ‘즐긴다’, ‘쉰다’ 는 것을 나쁘게 매도하고, 다양함을 확인하러 온 사람들을 그저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가치 없는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것이에요. 애도에 있어서는, 오로지 엄숙한 것, 대단한 사람으로 치켜세우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애도, 기억하기도 필요한데 말이죠.

 

진교 : 말하면서 개인적인 감정도 이야기하게 되고 울컥했는데 저도 제가 그럴 줄 생각 못했어요. 늘 개인 배진교가 없고 활동가 배진교로 살게 되고, 축제를 위해 개인적인 생활은 그저 버텨야 했어요. 그러다가 국가폭력을, 거대한 산을 마주한 기분, 해일 앞에 서 있는 기분이 최근에 들더라고요. 나 자신을 개인으로서도 돌아봐야 하는데 그런 기회나 시간 없이 흘러오다보니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을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면 생각이 극단적으로 가요. 내가 대구의 상징이라면 내 몸에 불이라도 질러야 하나, 그래야 사람들이 각성하고 성소수자차별에 대해 동의하고 일어날까? 이런 상상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력감, 우울감, 그럼에도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 이런 것들이 혼재되어있던 상태에서 같이 활동하고 같은 정체성으로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있으니 탁 풀어진 것 같아요. 이런 걸 느끼면서 이야기 했다는 것이 놀랍고, 이것으로 위안이 됩니다. 말하면서 앞으로가 정리되는 계기도 되고 그래서 의미있는 자리였어요. 사실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이런 계기로 머리를 비우고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지개인권연대 10년만에 이젠 정말 상임활동가를 만들어야 한다 결의하고 하반기에 여러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CMS도 준비하고 있고요. 텔레그램방에 올라오면 좋아요라도…! (나도 해야지, 웅성웅성) 동의해주는 분들 많구나. (웃음) 힘을 실어주면 좋겠습니다.

 

보경 : 저는 오늘의 가장 큰 수확은 무지개인권연대 CMS가 생기면 해야겠다는 것이고요.(웃음) 그리고 말씀 들으면서 울컥했습니다. 사실 영화제는 우리 단체의 일부이고 영역이 나눠져 있어요. 제가 대표 하기 전에는 영화제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거나 이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번에 이런 일을 겪으면서 대표 맡고 2년째인데 상근자가 없으니 외부 활동이 어렵더라고요. 상근자들과 이야기했던 것이 외부에서 하는 모든 연대는 내가 다 하겠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이러면서 일을 시작했는데 내부를 봐야지 맨날 외부를 돌고 있네요. 오늘도 서울에 오는 이런거, 이렇게 하는게 맞나 하면서 왔거든요. 그런데 연대의 모든 활동들이 여성으로서, 여성운동하면서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더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대할 수 있는 것, 최대한 연대하는 것, 함께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십시일반 나누는 것에 대해 생각했어요. 오늘 오면서 사실은 굉장히 부담스러웠거든요. 내가 이런 판에 앉아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 됐었는데, 이야기 듣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확인할 수 있구나 알게 됐네요.

 

두찬 : 저도 사실 오늘 새벽에 원주를 가야할지 엄청 고민했거든요. 물리적 폭력이 일어나는 현장을 당장 휴대폰으로만 보고 있는게 너무 어려워서요.* 실은 거기서 몸으로 보탤 수도 있는데 어쩌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간담회에 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문화예술계에서 말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지 작년부터 고민해왔거든요. 오늘 온 덕분에 그 고민이 좀 풀렸네요.

 

*간담회가 있던 8월 8일 새벽,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위한 용역과 경찰이 들이닥쳤다. 1963년 개관한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2022년 원강수 원주 시장의 취임 이후 일방적인 철거 추진 중이다.

 

고운 : 오늘 이렇게 고민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각자의 현장 곳곳에서 정말 다양한 이유로 평등의 원칙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더욱 연결되고 서로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 함께 사진 찍고 맛있는 밥 먹으러 가요!

 

 

추신) 월간 평등UP! 독자님들도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힘나는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