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도서관의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검열하여 2,517권을 폐기, 3,340권을 열람제한했습니다. 성평등·성교육 도서 검열에 대한 여러 현장과 시민들의 규탄에도 불구하고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경기도 교육청은 제대로된 사과나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고 몸과 섹슈얼리티를 중요한 주제로 토론하기 위해 ‘성평등 권리 선언대회’를 진행했습니다.
성평등·성교육 도서 폐기는 교육의 기회를 침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평등을 배우고 정치적으로 토론할 수 없게 만드는 명백한 차별입니다! 난다(청소년인권운동연대지음), 은숙(정치하는엄마들), 선영(전교조 경기지부)님과 도서 폐기의 문제와 추천할 책을 함께 보는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 선영 : 도서 심의 과정의 절차를 지켜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도서관에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을 재심의하라고 했을때 ‘아, 이건 검열이다’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 난다 : 이렇게 다종 다양한 책의 정보들을 어디서 알고 모았을까? ‘그렇다면 우린 이 목록들을 읽으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 은숙 : 제가 추천하는 책은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입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인가요?라는 질문에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내가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입니다.
지난 11월 19일부터 경기도 교육청이 폐기한 성평등, 성교육 도서를 함께 읽는 평등 낭독회를 진행했습니다. 박유현(오현초등학교), 박효진(전국교육노동조합 경기지부 여성위원장)님이 책<스파이더맨 가방을 맨 아이>를 낭독해주셨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가방은 샀니? 나는 가방들을 찬찬히 살펴본 다음 스파이더맨 가방을 골랐어”
“내 오빠에게 줄 거니?”
“내가 남자 애들 가방을 사는 거니 스파이더맨은 남자 애들 게 아니에요. 스파이더맨은 모두의 거예요.”
“오늘은 또 다른 애가 나를 놀렸어. 모두 내 스파이더 맨 가방이 싫은가 봐.”
“난 엄마 아빠에게 물었지. 왜 모두 스파이더맨이 남자애들 거라고 생각하는지 말이야. 엄마는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자라서 그런다고 말씀하셨어.”
“아빠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들고 우리가 입고 싶은 것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어.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래.”
“오늘 난 스파이더맨 가방을 메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
검열과 억압이 아닌, 성적 권리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배우고 성평등 정치를 펼치기 위해 장예정(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유내영(어린이책시민연대), 이호림(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정혜실(차별금지법제정연대)님이 발언해주셨습니다.
“세상에 많은 죄를 짓고 있는 기독교인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기독교인 장예정(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가톨릭교회는 낙태를 살인과 동일시하며 그 어떤 순간에도 낙태는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문제는 가톨릭교회의 신자들이 낙태죄폐지 반대를 넘어 미프진과 같은 임신중지 약물의 도입에 반대하도록 호도합니다… 콘돔과 피임약을 포함한 모든 인공적 피임의 반대, 자연주기법을 통한 피임의 권장, 쾌락을 좇는 성관계, 자위의 유해함,낙태반대 특히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생명을 생각하여 낳은 사례를 소개하며 임신중지만이 해법은 아니라는 식으로 청소년에게 가르치도록 하고 있습니다…정치가 성평등no 양성평등 yes. 포괄적 성교육반대, 조기성애화반대, 섹스교육반대, 동성애반대따위에 휘둘리며 성교육을, 성평등을 선언하지않고 방치하는동안 이런 교육들은 때론 큰소리로 때론 조용히 시민들의 삶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저는 바랍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고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며 나와 타인을 존중하는 성의 즐거움을 죄책감없이 배우며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요구합니다. 경기도교육청은 잘못을 인정하고 시민들이 특히 청소년 시민들이 자유롭게 양질의 독서할 권리를 보장하십시오. 또한 학교현장에 포괄적인 성교육을 적극 도입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저희 네트워크에 부합하는 기도로 마치겠습니다. 주님. 하느님은 오직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였으니 트랜스젠더, 젠더퀴어를 잘못되었다고 가르치거나 수많은 성경의 중요한 계명은 모두 제치고 성경을 시대적 맥락에서 읽어내는 노력도 없이 오독하고 동성애 반대만을 부르짖는 이들이 당신께서 주신 인류의 최우선 계명은 사랑임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소서.”
“저는 어린이책을 읽는 단체의 활동가이자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 책을 읽는 독자인 유내영(어린이책시민연대)입니다. 작년에 보수학부모단체의 민원과 도의원 도지사의 적극적인 동조로 제가 살고 있는 충남지역 공공도서관에서 어린이 성평등⦁성교육 책들이 서가에서 빠졌습니다. 그들이 문제라고 하는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했습니다. 낯설어서 잠깐 멈칫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어릴 때 이런 책이 있었더라면 질문하는 아이의 입을 막거나 ‘나중에 크면 알게돼’ 가 아니라 여기 있는 책을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눴을텐데.. 하는 아쉬움 내가 청소년 때 이런 책이 있어서 미리 알았더라면 50이 넘도록 내 몸에 대해 궁금한 것, 자위나 성적욕망 등에 대해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에 대한 죄책감 수치심때문에 힘들었던 고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넘겨줘야될까요? 금서로 지정하려는 책은 읽는 나에게 우리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어린이·청소년들은 매일 수많은 영상이 쏟아져 나오는 유튜브, 성적인 콘텐츠를 보여주는 SNS를 통해서 성과 관련한 정보를 접하고 있습니다. 왜곡된 정보들이 난무합니다. 몇 년전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해서 수많은 여성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지금은 지인능욕 성범죄인 딥페이크성범죄가 휩쓸고 있습니다. 특히 n번방사태때 피해자들인 여성들에게 너의 부모에게 알린다 학교에 알린다가 협박이었습니다. 이런 사태는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성평등·성교육 책을 도서관에서 제외하라는 검열, ‘금서’를 만들고자 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맞서는것은 우리의 권리이고 역할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섰고 충남이든 경기도이든 어떤 지역이든 독자들의 권리를 누구도 그 어떤 누구도 침범할수 없습니다.”
“저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과 모두의결혼 집행위원장을 하고 있는 이호림입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오늘, 국회가 있는 여의도를 포함한 전국 곳곳의 거리에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수 많은 시민들이 있습니다. <엠 아이 블루?>라는 단편 소설집은 갑자기 모든 성소수자가 파랗게 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을 다룬 작품부터 성소수자 청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며 마주치는 우정과 사랑, 가족 관계, 커밍아웃, 미래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들이 담겨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며 제가 느낀 감정은 아쉬움이었습니다. ‘내가 청소년일 때 왜 이런 책을 접하지 못했을까? 나와 내 친구들이 청소년이었을 때 이런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경기도교육청의 성평등 도서 검열 사태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성평등과 다양한 소수자 인권을 다루는 도서들이 사라진다면,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주인공을 만나고, 그의 여정에 따라가며 삶의 용기를 얻고, 나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모든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이 세상을 더욱 평등하고 존엄한 사회로 만들어 갈 역량을 길러나갈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도서 검열을 통해 사라지는 것은 단지 책이라는 물질만이 아니라, 나를 마주할 기회,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공감과 연대의 마음,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감지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으로서의 용기입니다. 이 모든 것은 모든 사람들의 기본권이 보호받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중요한 가치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질로서의 책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함께 이 모든 가치들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정혜실입니다. 세계인권선언문에 있는 1조의 문항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라는 말이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왜 지켜지지 않는가 의문을 가지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차별의 문제가 모든 차별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단초가 되었고, 동력이 되었고, 연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나 자신이 여성이고, 페미니스트이며,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인권활동가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선언문의 조항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선언문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도록 세계의 여성들은 오랫동안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그 싸움의 기록들이 책이 되어 지금 우리들 손에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글을 쓰며 또 다음 책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읽고, 각성하고,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주장하며, 요구하며 싸우는 중입니다. 성차별에 맞서는 글들이 있기에 우리는 소수자와 연대하는 법을 배우고, 평등한 세상으로 나가는 길에 길을 내는 법을 만듭니다. 그것이 두려운 자들은 누구입니까? 차별적인 사회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가부장제적 권력을 포기하지 못하고, 심지어 제왕적 권력을 누리고자 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국민을 우롱하는 자들 아닙니까? 군대를 동원하고, 폭력을 동원하고, 사람을 억압하며, 이 세상을 단일하고 납작하게 만들려는 자 누구입니까? 우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다름을 차별할 이유로 만드는 자 누구입니까? 바로 성평등한 도서를 읽지 못하게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자들 아닙니까? 구시대적 분서갱유라 할 수 있는 초유의 사태인 성평등 도서 폐기를 주도한 교육감은 반드시 사죄하고, 사퇴해야 하며, 앞으로 다시 이러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투쟁합시다.
소수와 함께 하는, 투쟁 펑크 듀오 ‘소수윗’의 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인권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경기도 교육청의 행태를 비판하고자 첫 번째 곡 ‘시기상조’에 이어, 곡 ‘상자’, ‘우리 동네 나무 그늘’을 불렀습니다. 다양한 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곡의 의미만큼 추운 날이었지만 현장에서 모두가 흥겹게 연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권달주(차별금지법 제정연대), 김희경(수원여성회)님이 성평등 권리 선언문을 읽으며 선언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성평등 정치로 성차별 정치를 몰아내자. 평등 정치의 기회와 공간을 넓히는 시도를 더 가열차게 해가자. 성평등 없이 모든 시민의 평등한 삶이 가능하지 않기에 우리는 성평등 도서를 계속 펼치고 읽을 것이다. 오늘 모인 우리들은 서로 다른 삶에서, 나다운 말과 행동으로, 모두의 삶을 지키는 더 단단하고 너른 성평등을 펼쳐갈 것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