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위험을 피해 제주로 예멘 난민들은, 위험을 이유로 혐오가 정당화되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이미 많은 난민들이 함께 살고 있었음에도 인식하지 못했던 한국사회이기에, 난민들을 접했을 때 ‘낯섦’과 더불어 ‘두려움’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혐오가 아닌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난민혐오에 대한 세 차례의 기획연재를 통해 두려움의 선동에 맞서는 평등과 인권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한국이주인권센터 박정형
올해 2월 말, 인천 연수구에 ‘와하’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와하’는 아랍 여성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쉬고, 함께 어려움을 나눌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아랍 여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언제든 편하게 올 수 있는 곳, 그 곳에서 비슷한 ‘나’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꿈꾸며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아랍 여성으로서 한국에서의 삶
2~3년 전부터 인천지역에 아랍 거주민들의 숫자가 늘기 시작하면서, 인천에 근거지가 있던 센터에서 자연스럽게 아랍가정들에 대한 만남과 상담이 늘기 시작했다. 주로 고용허가제를 통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상담을 해왔던 활동가에게 아랍 가정들의 상담은 그 내용이 달랐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의 상담이 주로 사업주들의 갑질, 체불임금, 산재 등 노무관련 상담이 주였다면, 아랍 이주민들의 상담은 한국사회에서 사회복지체제 및 사회적 시스템에서 배제된 한 사람과 한 가족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상담이었다.
이들은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피해서 가족단위의 이주를 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당연하고 편안하게 생각했던 문화적 익숙함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특히 여성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국에서 난민 인정률은 4% 정도로, 대부분의 난민 신청자들은 난민이 불인정 되거나, 시리아 또는 예멘 같이 국가적 위기상황이 인정될 경우 (이마저도 선별하여) 인도적 체류 비자를 주고 있다. 와하에 모이는 대부분의 여성들도 인도적 체류비자로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인도적체류비자는 한국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의료보험, 양육지원, 취업알선, 직업능력개발, 저소득가정지원 등 모든 복지 지원에서 배제되어 있다. 센터에서 아랍어 통역을 했던 한 선주민 자원활동가는 이들의 상황을 경험하며 이렇게까지 말했다. “한국에서 숨만 쉴 수 있도록 허가한 거 같아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일반 국민이 내는 금액의 3배 가량의 의료비를 내야 한다. 아이 출산에 400만원이 들었다는 여성들도 있다. 아이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만 정부의 양육지원이 없으면 거의 45만원 가량의 교육비를 지불해야 한다. 특히 예멘 여성들의 경우 본국에서 직업 경험이 있는 여성들도 많고, 사회 활동에 대한 욕구들이 있다. 하지만 양육을 도와줄 친족들이 주변에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두고 사회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도 직업 훈련을 받을 수도, 직업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이를 유치원 또는 학교에 보낸 후에도 문제가 생긴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보내는 수많은 가정통신문들과 정보들을 소화하기 힘들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문제들을 선생님과 소통하기도 힘들다. 유치원과 학교 선생님들은 그들대로, 어머니들은 어머니들대로 오해와 불만이 쌓여있기도 했다.
국가의 사회적 시스템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그래도 여성들은 한국사회에도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애쓰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려고 애쓰고, 일자리를 찾으려고도 애쓰며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역할들로 자신들의 존재를 들어내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소비자, 학부모, 구직자, 노동자, 지역주민 등 여러 가지 역할들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안타까운 점은 현재 제주도 예멘 이슈가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있던 여성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존재를 의심하는 후퇴된 질문
난민들을 수용하지 말라는 청와대 청원이 급격하게 20만을 넘어갈 때 까지만 해도 와하에 모인 여성들은 언론이나 sns를 통해서 유통되는 난민들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잘 알지 못했다. 센터 활동가들이 사실을 얘기하면 굉장히 놀라워했다. 와하에 쉬러온 사람들인데 괜히 불안해져서 돌아가게 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센터 활동가들이 얘기하지 않아도 각자가 서울에서 열린 난민반대집회 영상들을 서로 보여주면서 걱정한다. 많은 여성들이 “한국사회가 예멘 난민들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이해하고 있다. 예전보다 부쩍 ‘어느나라에서 왔냐’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한다. 그 때마다 ‘예멘에서 왔다’다고 얘기하는 것이 고민스럽다고 한다. 예멘에서 왔다고 말한 후에 상대방의 눈빛을 살피게 된다고 한다. 본인이 자주 가던 슈퍼에서 이제 여기 오지 말라는 얘기를 들은 여성도 있다. 구직을 할 때도 예멘에서 왔다고 하면 노골적인 반감의 대답을 듣기도 한다. 혹시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예멘에서 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할까봐 걱정을 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다양한 사회적 역할과 권리들을 말해야 할 시점에, 갑자기 한국에서의 존재를 의심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 너무 안타깝다. 이들은 질문한다. “한국도 옛날에 전쟁이 있었지 않느냐”,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들은 괜찮은 것이냐”, “종교가 이슬람이기 때문이냐, 그렇다면 만약에 그 중에서 종교가 다른 사람들은 수용해 줄 수 있다는 이야기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낙인과 혐오에 맞서는 연대
정부가 이주민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편견적 시각은 이번 제주 난민 이슈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낳았다. 이를 기반으로 난민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목소리를 대중적으로 커졌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고, 합법과 불법을 가르고, 여성과 남성을 가른다. 이 모든 구분은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진짜, 합법, 여성’과 연대의 방법이라도 제시하고 있는가? 이런 구분은 난민, 아랍인들에 대한 집단적 낙인, 집단적 배제, 집단적 차별을 향하고 있다.
우리는 몇 달 사이 갑자기 후퇴되어 버린 논의들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난민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들은 문화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생존하기 위해 부던히도 애쓰고 있다.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난 난민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난민이라고 부를 때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난 사람으로서 살고 싶지 난민으로서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내야 할 다양한 목소리들이 묻혀지지 않도록, 낙인과 혐오에 숨지 않도록 함께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