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평등Up ④] 레즈비언과 게이의 집

심미섭(페미당당)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한집에 산다. 이태원 어느 골목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집이다.

 

여자와 남자는 퇴근 후에 같이 장을 보고 밥을 먹는다. 담배를 한 대씩 피우면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집과 집 사이가 가까운 이 골목에선 창문을 열면 온 동네 거실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다른 집에서도 아마 이 집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갑자기 집주인이 찾아온다고 해도 아무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여자와 남자는 단란한 신혼부부로 보이기 때문이다.

 

골목의 평화는 여자의 여자친구나 남자의 남자친구가 집에 들어오는 순간 깨진다. 여자는 여자친구와 대문 앞에서 입맞춤하다 옆집 아저씨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마주한 적 있다. 남자의 남자친구는 군인이다. 이 집에 남자를 만나러 온다는 사실이 부대에 알려졌을 경우 그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여자는 사실 이 집에 남자와 함께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현관에 군화를 내놓거나 빨랫줄에 주인 없는 트렁크 팬티를 널어놓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입주를 준비하면서 여자는 곤란한 일을 제법 겪었다. 중년 남성인 집주인은 현관 도어락을 교체한 후 본인이 마스터키를 챙겨가겠다고 우겼다. 마침 남자가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집주인은 여자를 보고 “제가 저 윗집에 혼자 살아서요”라고 말하며 흐흐 웃었다. 전등을 달러 온 설치기사는 여자에게 “남편분과 함께 쓰시는 침실이 여긴가요?”라고 물었다. 여자는 기사가 떠나고 난 후 침대 위 전등을 고정한 나사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중 하나가 모양이 조금 달랐다. 인터넷에 “나사형 몰래카메라”를 검색하고 비교해 보았다.

 

남자가 이사 당시 작성한 가전제품 구매 목록에는 텔레비전이 빠져 있었다. 그는 텔레비전에 정을 붙여본 적이 없다. 거기엔 그와 비슷한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화면 속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를 둘씩 짝짓고 사랑이라고 부르기 바빠 보였다.

 

남자는 한국에서 넷플릭스가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거실에 빔프로젝터를 설치했다. 그는 이제 퇴근하자마자 집에 돌아와 빔프로젝터를 틀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튼다. 화면 속 등장인물은 남자끼리 사랑하기도 하고 본인 성별을 바꾸기도 한다. 회사 동료들은 텔레비전이 공짜인데 왜 굳이 돈을 내고 넷플릭스를 보느냐고 물어보았다. 남자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거기선 나 같은 사람도 주인공이거든.

 

여자는 월세를 한 달 밀린 적이 있다. 일하던 가게 근처로 여자친구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여자친구는 퇴근하는 여자에게 다가와 가볍게 뽀뽀를 하고 팔짱을 꼈다. 다음날 출근한 여자는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제까지 웃으며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여자를 모르는 척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가게 사장이 다가와 말했다. “너처럼 숏컷한 애들은 다 레즈비언이니?”

 

여자는 쫓겨나듯 가게를 그만두었다. 다음 일자리를 구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머리가 짧고 화장도 안 하는 여자를 고용하려는 가게는 많지 않았다. 단발머리일 때 찍은 증명사진을 이력서에 첨부해 제출하면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 장소에 나가면 당황한 눈빛을 마주쳐야 했다. “머리는 왜 잘랐어요? 사진하고 너무 달라 못 알아볼 뻔했네요.” 여자는 한 달을 꼬박 쉬어야 했다. 자기 몫의 월세를 당장 낼 수 없어서 남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자의 여자친구는 페미니스트 활동가이다. 그는 요즘 ‘낙태죄’ 폐지를 위해 자주 거리에 나간다. 하루는 여자친구가 시위에서 가져온 손피켓을 거실 벽에 붙였다.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낙태죄를 폐지하라”라고 쓰여 있었다. 여자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낙태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사는 집 벽에 이걸 붙이네.” 여자는 대답했다. “글쎄. 인생엔 어떤 나쁜 일이 생길지 모르니깐.”

 

여자는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위협받으면서 살아왔다. “너 진짜 레즈비언 맞아? 좋은 남자를 못 만나서 그런 게 아니고?” 여자는 자신이 “진짜 레즈비언”임을 확신하려면 일단 남자를 만나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 여자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한 남동기는 “너랑 네 여자친구랑 나랑 쓰리썸 하자”고 했다. 여자는 “낙태죄 폐지”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회사 동료들은 때때로 남자에게 여자친구 안부를 묻는다. “여자친구 있어요? 없으면 소개해 줄까?”라는 질문에 시달리던 남자가 결국은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남자친구를 생각하며 가짜 여자친구의 특성을 꾸며냈다. 여자친구는 성격이 예민하고 심리학을 전공했다. 지금 부산에 있는 상담소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동료들은 여자친구가 멀리 살아서 외롭지 않냐고 걱정한다. 남자는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지를 떠올려본다.

 

남자는 의경으로 복무하다 전역했다.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본인이 다녔던 대학교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을 시위대 반대편에서 쳐다보았다. 이제 익숙해졌나 싶을 때쯤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 안전유지를 위해 동원됐다. 혐오세력은 춤을 추고 북을 치며 참가자를 향해 소리 질렀다.

 

입대 전에 참여했던 축제에선 친구들과 함께 혐오세력을 놀려주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행사장 밖에서 그들을 보고 미동 없이 서 있어야 했다. 혐오세력은 제복 입은 의경들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교회에서 나누어준 단체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남자에게 다가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아이고 젊은이는 이래야지. 이렇게 건장한 나라의 일꾼이 있어 마음이 아주 든든합니다!”

 

남자가 배치된 자리는 “Homosexuality is Sin! (동성애는 죄다!)”라는 글귀를 크게 써 붙인 트럭을 마주 보는 위치였다. 트럭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목사는 외쳤다. “항문성교하는 동성연애자는 에이즈라는 벌을 받아 후회 속에 죽게 됩니다!” 목사와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남자는 트럭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여덟 시간 동안 꼿꼿이 서 있었다.

 

명절이 되어도 여자와 남자는 부모님 댁에 가지 않는다. 대신 퀴어 동아리에서 사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한다. 거실에 둘러앉은 친구들은 주전부리와 와인을 꺼내놓는다. 그중 한 명이 묻는다. “이번 명절엔 집에 안 가?” 가족 얘기가 나오면 곧장 따라 나올 말은 정해져 있다. “너 부모님한테 커밍 했어?”

(커밍: ‘커밍아웃’의 준말,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이나 세상에 알리는 일)

 

여자와 남자의 퀴어 친구 중 가족에게 “커밍”한 사람은 거의 없다. 딸이나 아들이 끝내 방문하지 않은 명절 상에 앉은 부모님은 왜 우리 자식은 남들처럼 결혼 상대를 데려와 인사시키지 않느냐고 한탄할 것이다.

 

여자와 남자 역시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는 그들이 이 집에서 함께 산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부모와의 관계가 특별히 나쁜 편도 아니다. 가끔 만나 외식을 하고 카카오톡으로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는 그들이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침묵한 지 오래되었다. 부모도 이제는 더 물어보지 않는다. 어느 정도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별난 자식이다 싶어 포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딸이 외간 남자랑 동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엄마가 뭐라고 하실 것 같아?” “엄청 화내시겠지.” “차라리 레즈비언이라고 커밍하고 게이 친구랑 같이 산다고 말하는 건?” “그럼 뒤로 쓰러져서 못 일어나실걸.”

 

남자의 남자친구가 휴가를 나오면 네 가족은 식탁에 모두 모여 저녁을 먹는다. 이 집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를 이야기한다. 이태원 집값은 감당할 수 없게 오른다. 언젠가는 이 골목에서도 쫓겨날 것이다. 국가가 청년에게 지원하는 임대주택 정책을 찾아본 이들은 이내 실망한다. 결혼한 부부에게 입주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으면 순위는 더욱 높아진다.

 

두 명의 레즈비언과 두 명의 게이는 작당을 시작한다. 제비뽑기해서 여남 두 쌍을 만들어 각각 결혼하면 되지 않겠는가? 당장 용산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 두 장을 내고 임대주택 두 채를 구하자. 우리 커플과 너희 커플이 집 하나씩 차지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겠다.

주거정책과 결혼제도를 동시에 엿 먹이는 좋은 계획이 되겠다며 깔깔 웃는다. 우리의 결혼 계획을 지지해 달라는 국민청원을 올려 청첩장을 대신하고, 화려한 합동결혼식을 열자고 했다. “신랑 신부 입장!” 하면 네 명이 동시에 걸어 나와 신부끼리 신랑끼리 키스하는 결혼식. 국가의 뒤통수를 칠 원대한 계획을 세운 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오마이뉴스에 연재중인 평등UP의 한 꼭지로 기고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하였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개인 경험을 토대로 주장하는 것이 연재의 목적이라 했다.

  청탁을 받고 친구들과 오래 대화하였다.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할까”라는 모호한 질문에 친구들은 본인이 겪은 일을 하나둘 꺼내 주었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지만 그 내용과 맥락이 미묘하여 바로 대응하기는커녕 시간을 두고 설명하기도 힘든 차별이었다. 차별은 차별이라고 이름붙이기 전까지 일상이다. 일상을 그대로 적으니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보이는 글이 되었다.

  완성된 글을 보내니 오마이뉴스로부터 기사로 채택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뉴스에 픽션을 실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친구들은 말했다. “이게 왜 픽션이야?”

 

  글을 송고할 때 앞머리에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글에 등장하는 여자와 남자는 실재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 그들이 누군지를 찾아낸다면 그들은 또 다른 차별에 직면하게 된다. 여자와 남자를 “용산구에 사는 26세 김 모 씨”로 바꾸고 사실관계가 분명하게 고치면 기사로 실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이 글은 “커밍”을 하지 못한 글로 남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기 위해 쓴 글이 처한 현실이 바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 근거가 되어 버렸다. 언젠가는 글에 등장하는 여자와 남자들이 부모님에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논픽션”으로 털어놓을 수 있을 날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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