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2)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Ⅰ: 김명희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두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Ⅰ


 


차별은 사람들을 특정한 자리로 몰아넣고 가두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리를 빼앗고 내 쫓습니다.
공장과 학교의 담벼락, 공공장소, 국경, 병원 문턱, 화단과 농사짓는 땅이 누군가에는 넘지못할 벽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


 






 


 




두 번째 이야기손님 


외톨이 점심시간이 아픈, 김명희


 


 


 



외톨이 점심시간의 기억은 그만의 것일까?


 


비영리, 독립 민간 연구소인 시민건강증진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김명희입니다. 저는 예방의학을 공부했고 주로 건강불평등,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분들 대부분 스스로 경험하신 삶의 이야기를 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주제로, 그것도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잘 알고 지내던 후배의 이야기입니다.


 


후배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친구였습니다. 학생 운동에 열심이었던, 소위 단순 무식한  공대 남자이자 여자 후배들에게는 나름 다정다감한 ‘총학 오빠’였습니다. 저로서는 같은 과 후배가 아닌지라 저희 과에서 학생 운동에 열심히던 후배들을 통해 그냥 이름만 아는 정도의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공의로 일하던 시절, 농촌 지역에서 대규모 주민 조사를 해야 하는데 일손이 달려서 아르바이트를 모집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 친구가 다른 후배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습니다. 몇 년 동안 이름만 알고 있다가, 저도 얼굴은 그 때 처음 보았습니다. 저도 그렇고 저희 주임교수도 약간 당황했습니다. 아니 이 건장한 청년이, 왜 멀쩡한 직장에 다니지 않고 여기에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온 거지? 그리고 함께 일을 한지 하루 만에 더 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친구가 어찌나 눈치 빠르게 일을 잘 하고 싹싹한지, 도대체 왜 취직을 못한 건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나름 양식 있는 시민인지라, 실례가 될까봐 직접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는데, 하루는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어릴 적에 편도선 수술하면서인 거 같아요. 수혈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그 후에 B형 간염을 진단 받았어요. 활동성 간염이면 취직을 못해요. 그래서 e항원이 음성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아, 그랬구나… 그런데 이렇게 건장하고 멀쩡해 보이는데? 어차피 간염이란 게 사람들을 무차별로 감염시키는 것도 아닌데? 같이 밥 먹는다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옳는 것도 아닌데, 취직이랑 무슨 상관? 부끄럽게도, 저는 예방의학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간염이 취업금지 사유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른 건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간염 때문에 겪어야 했을 생활의 고통과 상처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후배는 낄낄대면서 남 일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들어오기 전까지, 밥을 계속 혼자 먹었어요. 담임선생님들이 간염 옮는다고 애들한테 이야기해서”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야, 그런 박해를 받고도 삐뚤어지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무식이 죄는 아니라지만, 근거 없는 행동, 배려 없는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 선생님들은 반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그런 일을 한 거였겠죠. 위로가 필요했던 아이, 이제 겨우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아이의 마음은 고려해줄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그 아이가 마음이 건강한 어른이 되어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씁쓸한 과거를 웃으며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에 전염병 예방법이 개정되면서 B형 간염 보균자에 대한 취업 제한은 금지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B형 간염 보균자가 약 380만 명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공무원이나 일반 기업의 채용신체검사에 여전히 간염검사가 포함되어 있고, 또 암묵적인 고용차별은 여전히 문제가 되지만 어쨌든 최소한 공식적인 제한 조치는 없어진 것입니다.



그 후 그가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토목공학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자리였습니다. 취업 제한도 풀렸고, e항원이 사라지고 간기능 검사결과도 오히려 비보균자보다 좋게 나와서 별 문제없이 신체검사를 통과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만성 B형 간염은 간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6개월에 한 번씩 꼬박꼬박 병원을 다니면서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 친구는 IT 업계 노동자들이 그렇듯 과로를 밥 먹듯이 했고, 가끔씩은 만나면 일 못하는 후배 직원 흉도 보고, 무능한 부장, 황당한 거래처 뒷담화도 빼놓지 않는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승진을 하고 나더니, 노동자 편이 아니라 관리자 편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괴롭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 바쁜 와중에 사회운동 단체의 홈페이지를 보수해주기도 하고 컴퓨터들을 점검해주기도 했었습니다.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유별날 것 없는 삶의 모습입니다.



사실 오늘 이런 이야기도 본인이 직접 와서 해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그가 학창시절 내내 경험했던 따돌림과 상처, 자신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불안… 이런 것들을 더욱 생생하게 들려주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저는 그의 간염 진단 시기나 취직 시점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최소한 본인한테 사실 확인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그 후배는 마침 결혼을 앞두고 간암을 진단받았습니다. 열심히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병을 이겨내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젊은 나이만큼이나 암세포도 혈기왕성했던 것 같습니다. 작년 초 암의 전이가 발견된 즈음,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대로 인생을 끝내기엔 너무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아쉽지 않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내내 외톨이로 지냈던 10대, 법이 바뀌기를 피검사 결과가 좋아지기만을 무작정 기다리던 20대 후반 – 그가 살아온 짧은 생의 절반 이상이 불안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의 삶을 끝낸 것은 간염 바이러스였지만, 그가 살아 있던 동안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간염 바이러스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이었습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그저 배려심이 조금 부족해서, 혹은 후배가 다녔던 학교의 선생님들처럼 잘못된 지식 때문에, 아니면 막연한 불안 때문에 다른 이의 삶을 단정하고 기회를 가로막고는 합니다. 훗날 잘못을 깨닫는다 한들 그 상처를 보듬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후배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닌 열망’들을 남겨두고 떠났지만, 그가 받았던 상처와 고통은 오늘 한국사회에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특히나 HIV 감염처럼 밑도 끝도 없이 ‘부도덕’의 오명을 동반하는 경우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강상태가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삶의 기회를 차단당하는 일들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질병 자체가 주는 고통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두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Ⅰ


 


 






















01




02




03




04



첫 번째 이야기 손님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김이찬


두 번째 이야기 손님


외톨이 점심시간이


아픈


김명희


세 번째 이야기 손님


일상의 자리를


되찾고 싶은


고동민 


네 번째 이야기 손님


기억되고 기록되는


공간을 열망하는


 



 


 


※ 사진출처 : [비마이너]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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