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두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Ⅰ
차별은 사람들을 특정한 자리로 몰아넣고 가두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리를 빼앗고 내 쫓습니다.
공장과 학교의 담벼락, 공공장소, 국경, 병원 문턱, 화단과 농사짓는 땅이 누군가에는 넘지못할 벽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
세 번째 이야기손님
일상의 자리를 되찾고 싶은, 고동민
대한문은 그런 곳입니다
나는 해고자입니다. 그리고 나는 대한문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눈에 넣으면 아플만한 아이들 셋이 있습니다. 무섭지만 마음 따뜻한 옆지기도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가끔 전화가 옵니다. 아빠 언제쯤 와? 내 대답은 늘 궁색해집니다. 하지만 내가 이곳 대한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동료와 가족들 중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24분이나 운명을 달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한문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기 시작한 이후부터 해고된 나의 동료들과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쌍용차 해고자입니다.
나와 나의 동료들에게 차별은 일상입니다. 이 곳 대한문에서 집회를 하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누워있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경찰들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청와대 앞에 가는 것도, 정부청사 앞에 가는 것도, 중구청 앞에 가는 것도 일단 제지의 대상이 됩니다. 경찰들은 나와 나의 동료들에게 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들은 일반시민이 아니라고. 이렇게 모여 있는 건 불법이라고. 몇 조 몇 항에 의거해서 처벌 받을 거라고. 그리고는 연행합니다. 기소를 합니다. 벌금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구속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에게 떨어진 벌금만 해도 1억 원이 넘습니다. 그리고 김정우지부장도 우리에게 빼앗아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9년 파업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자들에게 430억이 넘는 손배가압류 구상권이 청구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쉽도록 이야기해서 430억을 일당 5만원씩 노역을 살려면 860,000일을 살아야합니다. 100명이 235년씩 감옥에 갇혀야 합니다. 놀랍게도 이 소송은 지금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일반시민이 아니지 않느냐는 경찰의 말은 그래서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함께 살자고, 해고는 살인이라고, 살기위해서 싸웠던 것뿐입니다. 물론 우리가 모두 다 정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쇠파이프를 들었고, 화염병도 던졌습니다. 흔히 말하는 불법폭력파업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폭력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경영상의 위기라는 이유만으로 3000명이나 해고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해고만 하지 않으면 임금과 복지 모두 양보할 수 있다고 호소했는데 거부당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자 절규했는데 용역깡패와 구사대와 경찰들이 폭력으로 우리를 몰아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폭력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값을 치뤘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해고자들과 노동자들과 시민 분들이 구치소와 감옥에 갔고 집행유예기간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불법폭력을 저지른 용역깡패와 구사대와 경찰 어느 누구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죗값을 치루고 난 뒤에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해고자라는 이유로, 강성노조라는 이유로, 전과자라는 이유로, 쌍용차 해고자라는 낙인으로 우리는 취업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이력서를 100통 썼다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평택 주변에서 취업하기 어려우니까 여수로, 거제로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쌍용차 해고자인 걸 알아버린 순간 일을 그만 두라는 통보를 받기 때문입니다. 해고자들은 그래서 일용직이나 대리운전으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5년째 그냥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청문회 이후로 진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경영상의 위기라고 이야기한 것이 사실 회계조작에 의한 거짓이었고, 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 산업은행이 공모한 사기극이었다는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24명이나 죽고 3000명이 길거리로 내몰린 쌍용차 정리해고의 진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냥 요구만 한건 아닙니다. 김정우지부장이 목숨을 건 단식을 41일이나 했었고, 3명의 정규직 비정규직해고자들이 송전탑 고공 농성하며 171일 동안 호소했습니다. 박근혜대통령을 비롯한 대선후보들, 여야 당대표, 국회의원 등 많은 정치인들이 약속했던 국정조사를 실시하라는 우리의 요구는 너무나도 상식적입니다. 그러나 국정조사 실시하라는 요구에 분향소를 철거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키라는 요구에 김정우지부장을 구속시켰습니다. 이건 숨 쉬지 말라는 협박입니다. 벼랑 끝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이들의 손을 밟는 살인행위입니다. 지난 5년 동안 계속 이어진 죽음의 행렬을 간신히 막고 있는 상황에서 더 죽어버리라는 악다구니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대한문을 떠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무지막지한 국가권력에 맞서 싸워나갈 것입니다.
쌍용차해고자들을 함께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해고자들처럼 차별받고 배제되었지만 맞서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 차별과 배제에 분노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차별이 너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자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한문은 그런 곳입니다. 쌍용차해고자들만의 싸움이 아닌 저항하는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모를 멈출 수 없습니다. 위로와 응원도 멈출 수 없습니다. 다시 이곳 대한문을 추모의 공간 만남의 광장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나의 차별이 우리의 차별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저항의 구심점이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만나야합니다. 나의 차별만이 아닌, 너의 차별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차별에 맞서 배제된 이들이 더 만나고 만나서 산을 이루고, 바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들이, 성소수자들이, 철거민들이, 해고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배제된 자들이 함께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서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함께 싸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싸움을 만들기 위해 더 웃겠습니다. 더 질기게 싸우겠습니다.
두 번째 이어말하기 |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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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
※ 사진출처 : [비마이너]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