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
첫번째 이어말하기 | 숨겨지는 사람들의 커밍아웃
차별의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정체성, 일하는 조건, 나이, 장애에 따라 여러 가지 조건에 놓여 있지만,
그것을 이유로 우리를 안보이는 곳에 치우려는 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힘에 맞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한 명은 숨겨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를 숨길 수는 없을 겁니다.
네 번째 이야기손님
구별과 경계를 뛰어넘어 함께 사는 세상을 원하는, 정혜실 (Transnational Asia Women’s Network)
“이주노동자 그리고 한국여자! 그들의 금지된 욕망에 관하여”
연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만 통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내가 원하고 상대방이 원하면 그 누구하고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서 온 무슬림 남성과 연애를 시작한 그 순간과 결혼을 통해 알았다. 연애와 결혼 그것은 개인의 선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금지된 욕망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그가 이주노동자라면 말이다.
내가 결혼했던 당시 90년대에는 국제결혼 자체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때로서 한국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문제되던 시절이다. 그것은 변함없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가부장적 남성들의 시선이다. 과거에는 양공주라는 호명으로 불온한 성적 욕망을 실현하는 문제적인 여성으로 폄하했던 그들은 지금 이주노동자들의 비자 취득 목적의 대상이 되는 피해자 여성이거나 뭔가 모자란 여성들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하려는 여성이 연상이거나 이혼의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장애를 가진 여성이라면 반드시 위장결혼이나 이용당하는 피해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한국사회에서 나이 많은 여성이 어린 남성과 결혼하거나, 이혼녀가 다시 결혼을 하려거나, 장애여성이 결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는 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는 뭔가 ‘정상성’에서 벗어나 있거나 ‘금지된 욕망’을 실현하려는 여성들이라는 ‘편견’과 ‘왜곡된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편견과 왜곡은 정책을 만들고 실현하는 정치가나 법률가 그리고 공무원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은 제도화가 되어 차별을 만드는 합리적 근거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최근 제2차 외국인기본계획이 발표된 이후 영주자격전치주의라는 제도가 국제결혼에 있어서 국적취득과정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아직 시행되지 않는 제도이지만 그 시행을 위한 법무부의 출입국 직원들의 태도가 변화고 있고, 국제결혼한 결혼이주민에게 부여되는 비자타입이 F-2에서 F-6로 바뀌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경남지역의 한 출입국사무소에서 F-2로 5년간의 결혼생활을 해왔던 한 파키스탄커플은 비자연장을 위해 출입국을 갔더니, F-6로 비자타입의 변경되면서 남편의 가족관계증명서를 파키스탄으로부터 다시 받아야 와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남편의 가족들이 서류를 빨리 보내주지 않자, 출입국직원은 남편에게 다른 아내가 있을 거라며 이는 위장결혼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흥분해서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한 한국인 아내는 내게 상담전화를 걸어왔고,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직접 파키스탄에 다녀오겠다는 남편 때문에 불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불안하다면 같이 다녀오라고 했고, 다녀온 그녀는 그의 가족이 파키스탄에서도 아주 시골이라면 순박한 시부모님과 천진난만한 조카들을 만나고 왔다며, 이런 식의 출입국 ‘카더라’사실에 근거한 모욕적인 의심에 대해 분개했다. 파키스탄 출신의 이주노동자는 일부다처제가 가능한 이슬람국가에서 왔고, 이주노동자들은 비자 목적으로 한국여성과 결혼한다는 속설들을 기정사실화 하고 싶은 반다문화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출입국 공무원들은 이런 식으로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 한 한국여성들의 결혼생활 자체를 흔들리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심지어 한국으로 오는 이주노동자 연수과정에서 한국정부로부터 한국여성과 결혼하는 파키스탄 남성이 많아서 문제라며 이주노동자 쿼터를 줄여야겠다는 소리에 파키스탄정부는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여성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았다고 하니, 이주노동자의 연애와 결혼은 한국 땅에서 금지된 욕망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족 동반도 금지된 한국사회에서 이십대와 삼심대를 보내는 이주노동자는 자신들의 금욕의 생활을 요구받는 기계처럼 일하는 도구로만 취급받는다. 한국여성이 아닌 같은 나라 출신의 여성과 설사 연애를 하고 결혼을 꿈꾸어도 그들은 오전한 가정을 꾸리기 힘들다. 캄보디아에서 결혼 하고 따로 따로 농업이주노동자로 들어 온 신혼부부는 경기도와 경상도로 분리되어 살아야만 하고, 이 때문에 직장이동을 원해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이주노동자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해도 그 아이들은 부모가 미등록이면 자동으로 미등록자가 되어 부모들의 불안한 체류상태로 인해 교육이나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특히 대학도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어서 한국에서는 꿈을 가질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금지된 욕망’일 뿐이다.
‘차별’은 인식에서 시작되고 제도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억압하고 위계화하고 배제한다. 이주노동자 없이 제조업도 농업도 어업도 건설업도 굴러가기 쉽지 않은 생산현장에서 필요해서 불러들인 사람들을 우수인재가 아니라고, 투자자가 아니라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의 문제이고 우리사회 인식의 문제이다. 단지 인종이나 피부색 문제만이 아니라 학력이나 재산, 국적, 신분 등 아주 복합적인 차별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이주노동자라는 것이다. ‘사랑’이 낭만이 되고, ‘가정’이 편안한 안식처라는 것은 이 땅에서 누구에게는 선택의 문제라면 누구에게는 금지된 욕망이 되는 이 곳 대한민국에서 언제쯤 누구나 평범한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날은 언제쯤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