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이후 운동과 커뮤니티에 남은 과제
인터뷰 : 코로나 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 (웅, 창구)
길완(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책담론팀)
재난과 ‘위기’ 상황 앞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에 누적되어 온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더 극명하게 확인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태원발 코로나’로 명명되었던 사건 현안에 대응했던 ‘코로나 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창구(다양성을 위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두 분과 성적 소수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권운동과 커뮤니티의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Q.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와 두 분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창구 : 다양성을 위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창구라고 합니다. 대책본부에서 커뮤니티 대상 홍보를 맡아서, 커뮤니티에 검진 독려 홍보도 하고, 인권침해 관련한 상담 등을 홍보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 웅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웅’입니다. 대책본부에서는 언론 모니터링과 인터뷰 등 언론대응을 담당하고 있어요. 5월 연휴 이후 언론에서 ‘게이 클럽’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했는데, 사실 언론보도 전부터 게이 클럽 앞을 방역한다는 스티커 사진이 여러 커뮤니티에 돌았어요. 그래서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악의적인 언론보도가 나오고 나서 “그냥 지켜만 볼 사안이 아니다, 성명서로 갈음할 사건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 즈음에 이태원에 다녀온 사람들이 검진을 받았는데, 지역 보건소에서 기저질환 물을 때 직접적으로 ‘HIV 검사 받았냐’고 묻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거든요. 그래서 긴급하게 무지개행동과 HIV/AIDS 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모여서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대책본부를 꾸리게 되었어요. 5월 12일에 출범 기자회견을 한 이후에 이 사건을 운동과 커뮤니티 차원에서 함께 조직적으로 대응을 해야겠다고 판단했고, 그때부터 공식적으로 23개 단체가 모여 본부 체계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Q. 대책본부에서 두 분이 주로 집중했던 사안, 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자세하게 소개도 부탁드려요
– 웅 : 언론모니터링에 집중을 했어요. 계속 뉴스에서 ‘게이 클럽’ 이라고 조명하고, 몇 년 묵혀둔 ‘찜방 르포’가 나오고, ‘이 시국에 게이들이 술 먹고 있는 게 문제 아니냐‘는 식의 기사가 나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언론사에 항의 전화를 하고, 정정 요청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시정권고 청원을 넣는 식으로 대응 했어요. 근데 초반에 기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수세적으로 갈게 아니라 정말 원치 않지만 ‘기갈 싸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모니터링을 성명처럼 쓰고, 매일 같이 올렸고, 어떻게 항의했고 시정되었는지에 대해서 올렸어요.
이번 사태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되게 입장이 다양했는데, 혐오세력과 지지세력 이렇게 딱 나눠지는 게 아니었어요. 파트너쉽과 관계가 있던 기자인데도 게이들이 ‘이 시국에 왜 만나냐’고 기사를 썼던 경우도 있었고, 찬반 프레임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고. 성소수자 인권의 관점에서 이야기 한다면서 피해자로만 가둬놓고 쓰는 경우도 있었어요. 언론 대응 활동이 이런 기자들을 학습시키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찜방 등 그동안 커뮤니티 안에서도 하지 못 했던 이야기를 언론에서 더 집중해서 팠잖아요. 커뮤니티에 우리 언어를 만들 필요가 있겠다, 이제는 이야기를 해야 될 때다, 이런 설득도 필요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커뮤니티 상대로도 이야기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 창구 : 대책본부가 주말에 급하게 꾸려졌고 각자의 일을 분배 했어요. 저는 커뮤니티 대상 홍보를 맡게 되었는데, 그 당시 지자체와의 접촉도 함께 시작하고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지자체에서 데이팅 어플, 웹 커뮤니티에 광고를 띄워달라고 요청해서 검진 독려하는 광고 띄우는 것으로 협의하고 실행 하게 되었어요. 이후 대책본부 홈페이지도 개설 하고, SNS로도 익명검사 홍보와 검진독려를 같이 했어요. 그리고 처음에는 클럽 다녀온 사람들만 익명검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지자체에 문제제기해서 이후에는 이태원 지역을 방문 한 사람 모두 익명검사 받을 수 있도록 바꾸게 하고 그랬습니다.
– 웅 : 모든 어플에 광고를 다 올리고 그 예산을 서울시에서 받아서 하고 이랬던 게 운동 하면서 거의 처음 해봤던 것 같아요.
Q. 대책본부를 하면서 차별사례들이 많이 접수되었을 텐데, 성소수자에 대한 기존의 사회가 갖고 있던 편견에 기초해서 공통적으로 받는 차별들도 있었을 것 같고, 한편으로는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자원들이 워낙 다양하니까 그런 거에 따라서 (차별의 양상이) 달랐을 것 같거든요.
– 웅 : 지자체에서 화두가 아웃팅이었다고 생각해요. 게이들이 만나고 노는 장소가 노출 되고, 그 곳에 다녀왔다 게 드러나면서 아웃팅이 되었다는 건데, 이 얘기에 앞서 ‘아웃팅’에 대해 먼저 얘기 하고 싶어요. 아웃팅은 단지 정체성을 ‘들켰고’ 그래서 사회적 불이익을 ‘당했다‘고만 말하는 건 표면적인 것 같아요. 커밍아웃이든 아웃팅이든 나를 드러내거나 노출이 되는 상황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좀 살기 위해서 협상력을 주도 하기 위한 전략과 과정, 이런 것들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웃팅은 위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거여서 ’주도력‘을 상실했을 때 본인의 리듬을 잃는 상황들인 것 같아요. 거기다가 질병이 왔을 때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준다는 인식까지 있잖아요. 도덕적 낙인 같은 게 찍혀있을 때 사회에서의 공격도 심하고. 당사자가 갖는 양심적 가책, 트라우마 같은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이게 악순환을 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례들 중에서 병원에 갈 때 앰뷸런스가 오는데 이것 자체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걸 보여주기가 너무 쉬운 거였어요. 그리고 초반에 이태원에 이목이 집중 되었을 때 누구라도 예상 가능하고 추적 가능한 방식으로 방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알려지는 것 자체에 걱정을 많이 했죠. 언론에서 게이 클럽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이 사람들을 더 움츠려들게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이나 감염병 예방법이 있는데, 이것들이 개인정보 보호법보다 더 효과를 발휘하는 상황들이 많아졌던 거죠. 직장에서 “(이 직원이) 뭐 땜에 진료 받고 동선은 어떻게 되느냐”고 진료하는 보건소에 물었을 때 개인정보가 노출 되는 것들이 문제가 되었어요. 그리고 병원에서도 직원을 통해서 아웃팅 되거나 지인을 통해서 아웃팅 되는 사례도 있었고요. 언론까지도 이 사람을 얼마든지 추적 가능하게 동선 공개 하는 것에 대해 언론에 항의하면 ‘이건 지자체에서 이미 공개를 해서 나는 책임이 없다’ 이런 식으로 했어요. 지자체는 보건소 홈페이지에서만 동선을 공개하지 않고, 시정 블로그나 시장의 개인 SNS에도 올렸어요. 마치 조합의 장사를 하듯 지지율의 도구로 삼은 건데 지역 주민을 모욕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식으로 전 방위에서 확진자를 고립 시키고 노출 시키고 얼마든지 추적 가능하도록 표적 하는 것들이 많은 사례를 만들었어요. K-방역이라고 하는 게 촘촘한 감시와 검열을 정당화하는데 작동 하고, 사회 구성원의 의료 접근권을 저해했는데, 이렇게 국가 권력이 커지는 문제는 인권운동에서 고민 했던 것 같아요.
그 짧은 시간 동안 뉴스에서 계속 나오고 직장이나 식당에서 다들 이태원에 대한 얘기들을 했는데 이태원을 가지 않고 질병이랑 상관없는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고, 게이들 중에서 젠더 규범에 어긋나는 사람들은 더 표적이 되었어요. 이 사람들한테는 정말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욕하고 그랬다는 거죠. 이런 공격들이 게이 남성이라고 하더라도, 이 중에서 어떠한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었어요. 지금의 상황에서는 방역이 곧 관리하고 감시하고 검열하는 것이고 (코로나19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이 더 공격 받고 있고, 성소수자들이 해왔던 일상의 관계나 행위들이 질병을 전파시킨다는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움츠려들고 있는가를 보게 되었어요.
– 창구 : 5월 연휴 이후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공문을 통해 4월 26일부터 5월 6일까지 클럽과 주점을 방문한 사람들은 다 자가 격리 하라는 조치를 내렸어요. 회사나 집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 집에서 사이버 강의를 듣는 그런 친구들. 좀 다른 케이스인데 예를 들어서 군대에 있는 세 번째 케이스가 있었어요. 앞에 두 가지 케이스에 경우, 성소수자 혐오 선동 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와서 그 시기에 자가 격리 하면 이태원 다녀온 사람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집과 직장에서 커밍아웃 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웃팅 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 부분들에 대한 상담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리고 집에 커밍아웃 하지 않은 청소년인데, 집에서 혐오적인 발언이 나오는 걸 본인은 계속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에요. 폭력적인 언어에 계속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진 거죠. 또 군대 안에서는 커밍아웃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가, 생활관에서 동기들이 뉴스를 보면서 “똥꼬충 더럽다“ 고 말하는 걸 그대로 들으면서 피할 수가 없었던 거죠. 방역과 공익을 위해서 쓴 건지 의문스러운 기사들도 많았잖아요. 언론의 혐오적인 기사들 때문에 그곳을 다녀온 당사자뿐만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위치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고스란히 갔다고 생각해요.
– 웅 : 국민일보 같은 경우 계속 반인권적이고 공익에 저해하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했는데, 그게 다른 언론들에 참조가 되었던 것 같고, 이런 부분을 어떻게 타격 해야 할지 고민 했어요. 뉴스가 계속 나오면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 하는데, 우리가 대항적인 언어를 계속 만들고, 문제제기를 계속 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메이저 언론 같은 경우는 직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우리 입장을 이야기했는데 그런 게 들어보니까 커뮤니티에 많이 환기가 되었던 것 같더라고요. 웹 커뮤니티도 초반 분위기가 험악했었는데, 대책본부가 출범하고 난 전후로 힘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이래서 인권운동이 필요 하구나”는 글도 올라오는 걸 봤어요. 방어를 잘 했다고 평가 하고 있어요.
– 창구 : 대책본부에서 언론 기사 브리핑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대상으로 글도 써냈었거든요. 근데 그 글들이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그 전에는 솔직히 말하면 웹 커뮤니티에서는 “인권운동 그런 거 왜 하는지 모르겠다, 맨날 조용히 잘 살고 있는 우리들 피해보게 한다”는 이야기들이 좀 있었는데, ‘커뮤니티 추신’이 붙은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거나, 힘이 되었다, 용기가 되었다는 반응들이 많아서, 웅님이 (웅 : 제가 다 썼어요) 고생을 많이 하셨죠. 그렇게 커뮤니티에 다가갈 수 있었던 지점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Q. 커뮤니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난문자로 특정 찜방 상호명이 공개되었을 때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는데. 게이인거랑 클럽, 찜방 다닌다는 게 층위가 다르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 웅 : 자신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추적되는 방식으로 아웃팅 되는 게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과 다르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클럽에 가고 찜방에 가는 게 노출이 되는 건 단지 내 정체성이 직장, 군대, 학교에 아웃팅 되어 불이익 받는 수준을 넘어 도덕적인 지탄을 받고 어떤 사회적인 활동의 경력이 끊기는 등 잘 못 될 수도 있다는 식의 걱정이 되었던 것 같아요. 클럽이랑 찜방도 무게가 좀 다른 것 같은데, 특히 찜방 같은 경우는 낙인의 무게가 좀 더 크니까. 그런 이야기들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창구 :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보는 위치, 찜방과 클럽을 보는 위치가 되게 다른 것 같아요. 클럽 다니는 친구들은 ‘그래 뭐 놀러갈 수도 있지’, 찜방 같은 경우는 ‘좀 문란한 성관계’ 약간 이렇게 생각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느껴요. 그래서 찜방 다닌다는 이야기를 자신 주위에 하지 않는 거고.
– 웅 :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프라이드-자긍심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고, 별개로 그러거나 말거나 (이쪽)술집, 클럽 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런 사람들 중에서나 혹은 은둔 중에서 찜방을 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좀 많이 섞여있어서 찜방에 대한 반응들을 읽어내는 것도 좀 복잡했던 것 같아요. 이후 성소수자 운동의 과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까 말씀했던 것처럼 ‘노는 사람 싫다, 관계 많은 사람 싫다‘는 은둔의 정서들이 ’봐라 너네는 놀면서 질병까지 전파시킨다‘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뀌는 등 커뮤니티 내부에 낙인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조성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찜방 다니는 걸 포함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 장소나 행위들을 비난만 하면 여기에 대한 다양한 맥락을 읽고 문화로 바라보기도 전에 음지화가 더 강화될 거 같았거든요. 한편으로는 운동과 커뮤니티의 풀뿌리 문화가 거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도 고민 되요. 그래서 우리 운동이 어떻게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단지 운동과 커뮤니티의 거리를 좁히는 게, 커뮤니티에도 중요하지만, 운동의 과제라고도 생각해요. 운동의 언어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 운동의 언어를 같이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청자와 동료를 많이 만들어내는 게 의무처럼 와버린 것 같아요
Q. 다시 돌아가서, 국가기관을 접촉 하면서 이번 사태로 인해 바뀐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지? 여전히 문제적이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 창구 : 재난 문자를 보내는 것에 대한 중앙정부, 지자체 모두 정확한 지침이 없던 게 문제였어요. 그런 상태에서 보낸 재난문자에 업소명, 성별, 아파트 동 까지 나가는 일이 있었던 거죠. 초반에 대책본부에서 서울시, 경기도, 중대본을 만나면서 개인정보 침해 문제를 계속 이야기 했죠. 과도한 동선 공개에 대해서도 그렇고, 성별을 넣어서 재난문자를 보내는 문제도 지적하고, 이미 대량 노출된 장소는 중대본 홈페이지에 다 공개가 되어 있는 부분을 또 재난문자로 보내는 것도 지적하고요. 대책본부가 이런 부분들을 바꿔냈다는 점을 높게 보고 있어요. 정부를 바꾼 거잖아요. 그 전까지만 해도 성소수자만 해도 거들떠 안 보더니 자기들 급해지니까 해달라는 거긴 했는데, 개인정보 침해 문제 계속 이야기 하니까 그들도 인식한 거죠. 그런 성과를 대책본부에서 이뤄낸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웅 : 국가기관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정말 없다고 생각했죠. 초반에 성소수자 목록을 달라고 단체들에게 물어보고, (창구 : 인천시가 인권재단 사람에 연락을 했고, 서울시는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서울지회에 연락을 했음) “너네는 대표가 없냐. 대표한테 좀 검사 받으라고 이야기 좀 하게 해라” 라고 얘기를 했어요. 이게 지자체의 공식 입장은 아닐 텐데 공무원들이 그렇게 물어봤어요. 성소수자는 한두 번 거리에 나오는 교단 같은 특정한 집단으로 봤나? 싶기도 한 거 에요. 성소수자 감수성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대본에서는 혐오와 차별은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서울시는 예외적으로 적극성을 보여서 익명검사가 전국으로 확장 되었잖아요. 그 동안 HIV 인권 운동이 사람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식으로는 예방되지 않는다고 몇 년 동안 이야기 했던 게 학습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행정적인 효율성 측면에서도 이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물론 긴장도 있었어요. 당근과 채찍이라고 생각하는데. 한편에서는 익명검사 하니 자발적 검진을 독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휴대전화, GPS 검색하고, 카드 사용 내역 다 뒤져서라도 찾을 테니 검진 받으라는 식으로 위협 아닌 위협하는 게 긴장이 있었죠.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소통이 잘 안 돼는 것도 보였어요. 중대본에서는 동선 공개에 우려하고 지침도 여러 번 냈는데, 부천·안양 같은 곳에서는 일터까지도 노출을 했어요. 지자체마다 다른 지침에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고민이 들었어요.
(관련 링크 : https://news.v.daum.net/v/20200703094658419)
Q. 차별과 불평등한 문화를 넘어서 자신의 고유함을 공격받지 않는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대책위 활동하면서 두 분께서 고민하고 있으신 게 있을까요?
– 창구 : 인권위에서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를 발표했잖아요. 거기에 보면 약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나도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나와 있어요. 지금까지는 차별을 개인적으로 인식하는 강도가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는 것을 느꼈어요. 코로나 상황이 오기 전까지 차별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혐오를 보면서, 저 상황이 언제든 내가 될 수 도 있었다는 걸 왜 이제 서야 깨달았을까 싶었어요. 저는 교육 과정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차별에 대한, 상대방의 경험, 나의 경험이 자라오면서 있었으면 더 생각해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코로나 상황을 계기로, 혐오와 차별을 공교육에서부터 다루면 좋겠어요. 반복적으로 혐오와 차별에 대한 실제적인 교육도 필요한 것 같고, 일상생활에서 자꾸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 웅 : 내가 어떤 낙인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 때, 나를 세상에 어떻게 드러내거나 숨길까요. 인천 확진자의 경우 나를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는 방식으로 대처한건데. 그 이후의 효과만 보고 그 사람 내면에서 차별과 배제를 받았다는 맥락을 놓치는 것에 대해 고민되었어요. 이런 음지화 된 감정에 말을 걸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 구성원으로 나와서 거버넌스 역량을 키우고, 재난 대응 함께하는 주체라고 각인을 시키는 등 우리의 지평을 넓히고 시민권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는 게 안팎으로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커뮤니티가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커뮤니티가 오랫동안 일궈온 역사들이 있으니 지금이나마 버티고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업소의 분위기나 환경들도 많이 변화할 것 같은데 사람을 만나는 패턴도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번개도 많이 하고 찜방 가는 것 좋아했던 친구들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을 막 만나는 게 부담스럽다 이야기 하는데, 저는 코로나가 연애관을 바꿨다고 생각해요. 근데 이게 강제적인 변화라는 거죠.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필요한 것은 커뮤니티 안에서의 인프라를 구축 해놓는 게 너무 중요한 것 같거든요. 위기 대응의 근력을 키울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커뮤니티만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민관 협력이든, 차별금지법 같은 제도를 만드는 등 전 방위적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을 같이 해줄 사람을 만드는 것도 과제가 된 것 같아요.
Q. 대책본부의 앞으로의 활동과 과제는?
– 창구 : 현재는 대책본부 상황실이 주에 한 번 정도로 회의 텀을 늘려가고 있어요. 모든 활동 기록을 백서로 펴내는 작업도 시도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 했던 관과의 협력이 처음으로 광범위하게 있었는데,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잘 정리해서 우리의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시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코로나 현장에 놓였던 당사자 분들 불러서 수다회 하려고 해요. 그 당시 본인이 느꼈던 감정, 어떤 혐오와 차별을 받았는지 그 분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볼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추후 상황실이 해소되고, 대책본부 해소해도 되겠다고 정해지면, 그대로 무지개행동으로 이관해서, 계속 가지고 갈 예정에 있습니다.
– 웅 : 중대본이나 지자체에서 손을 내밀고 말을 먼저 걸었던 건 성소수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인데, 상황과 맥락을 보았을 때, 방역을 위해서 마지못해 했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거든요. 방역당국이 ‘우리’를 컨트롤 못 하면 정말 끝난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 같고요. 그래서 방역의 차원에서만 인정을 받고 마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방역과 거버넌스 사이의 거리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동원된 차원을 넘어서, 성소수자도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참여 하고, 내부에서도 목소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환기 시키면서, 차별금지법도 그렇고 다른 권리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방역을 위해서 불렀지만, 어쨌거나 정부 차원에서 성소수자들도 배제할 수 없고 우리가 엮여있다는 것을 이번 계기를 통해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이후 질병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라도 깨닫게 하는 게 운동의 과제가 된 거죠. 그리고 성소수자의 어떤 특수한 상황을 제도로 연결시키는 것도 중요하고, 전혀 특수한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데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도 과제로 남은 것 같아요.
어쨌거나 이렇게 짧은 시간에라도 네트워크가 생기고 협력과 사업을 같이한게 소중한 경험이었잖아요. 아무리 한계가 있고 긴장이 있다고 해도 성과로 남기고 앞으로의 성소수자 운동에 있어서 레벨업 같은 걸로 평가하고 앞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중앙정부나 수도권을 중심의 대응이 할 수 있는 게 한계였는데 이후 상황실에 QIP가 참여하면서 지역이랑도 소통하면서 지역 단체에서도 모니터링 하는걸 보면서 지역과의 네트워크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함께 만들고 싶은 세상은?
– 창구 : ‘내 삶의 오늘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에요. 혐오와 차별과 낙인이 없는 세상에 살게 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그렇게 살게 된다면, 지금 사는 내 삶의 오늘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함께 ‘내 삶의 오늘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같이 만들고 싶어요. 누구나 자랑스럽게 좀 살았으면 좋겠어요.
– 웅 : 앞으로의 세상은 차별금지법이 있는 세상이겠죠? 차별금지법 이후의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위치,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너무 나갔을 수 있지만 왜 얘기를 하냐면, 성소수자가 시민권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요구하기 위한 사회적 위치는 뭘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구호를 만들거나 캠페인 방향을 설정할 때 그 동안 많은 구호들이 수세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 동안 ‘차별과 혐오에 반대 한다‘, ’우리는 존엄하다‘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근데 세상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보다도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들이 필요할까 고민이 들어요. 내가 어떤 차별을 경험하는지를 일단 하는 게 제일 기본적인 거겠죠? 너무 중요하고. 근데 그렇기 위해서 내가 정부에 어떤 것들을 요구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하고, 내가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한다는 자기의식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파트너십 같은걸 가질 수 있는 태도나 역량 같은 것을 많이 높이는 게 중요한 것 같고. 본인이 느끼는 차별의 감수성을 유지해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요.
그동안 재난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안전이 키워드로 많이 올라오긴 했었는데, 저는 안전만큼이나 이야기 되어야 하는 게, 아주 다른 건 아니지만, 내가 변화를 요구하는 주체가 되어야 된다는 게 중요한 것 같거든요. 태세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은 차별금지법 이후의 이것들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같이 나눌 수 있는 세상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만들고 싶은 세상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같이 만들 수 있는 동료들이 힘을 잃지 않는 세상이에요. 사회를 변화시키겠다고 활동가들 허리가 휘고 마음이 망가지는 건 여전히 인권운동은 변한 게 없다는 얘기잖아요. 좌절하거나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생겨도 서로를 살피면서 안팎의 변화를 모색해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려요
– 창구 :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좀 더 인식을 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는 대중 운동이 점거도 잘 해, 팔뚝질도 잘 해, 기자회견도 잘 해, 다 잘하는데, 잘 못 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커뮤니티와 대중에 대한 접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이번 활동으로 커뮤니티에 대한 접근은 어느 정도 스타트라인은 끊었으니 이 감을 잃지 않고 접근을 계속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지 운동 안에서 고민하면 좋을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운동이 커뮤니티와의 접근도 어렵지면 대중에 대한 접근은 더더욱 못 한다는 것이에요. 단체들이 활동가의 눈 말고, 대중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낮춰서 볼 수 있는 능력을, 물론 많은 분들이 갖고 계시겠지만, 함께 기르는 과정도 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쓰는 언어들과 대중이 쓰는 언어들은 갭이 엄청 크거든요, 근데 그런 부분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해요. 이번 대책본부의 경험 잘 살려서 커뮤니티와 대중에게 잘 접근하는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웅 : 저는 아까 이야기를 다 했는데, 지금은 활동에 대해서 돌아보고 의미를 남기는 작업들을 대책본부 안에서 하고 있잖아요, 불러주는 곳들도 많고, 학술대회에서도 부르는데 의미를 남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 안에서 하이라이트 지점이 있는데 예를 들면 시청 농성이, 조례 제정 운동 등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번에도 뭔가 좀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편으로는 운동의 차원을 전환? 확장했다는 생각도 좀 들어요. 일이 많고 너무 바빴다고 해도 타겟이 확실해서 어디랑 소통하고 뭘 바꿔야 할지 눈에 보이는 활동이었던 것 같거든요. 그 동안의 운동의 경험과 역량들이 있어서 단체들의 지원과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고. 그래서 운동의 지평을 바꿔냈다는 생각도 들어요.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운동도 많이 성장하면 좋겠어요. 부끄럽지 않고 동료들이 힘을 잃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