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부정하는 혐오가 공중파에 전시된 것에 대해 KBS의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
더 이상 소수자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이 절실하다!
– KBS 토론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에 부쳐
지난 27일 KBS는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이라는 주제로 심야토론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찾아나가야 할지 고민하자는 취지로 이루어진 해당 토론을 보면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존재의 찬/반을 논하는 것이 토론이 될 수 있는가? KBS는 공영방송사로서 성소수자의 존엄함을 부정하는 혐오가 공중파에서 노골적으로 전시된 것에 어떠한 책임을 느끼는가?
해당 토론은 기획 단계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당초 토론을 위한 국민패널을 모집하면서 KBS는 가제를 ‘동성애, 어떻게 볼 것인가’로 잡고 ‘대한민국의 풀리지 않는 논란, 동성애’와 같은 문구를 통해 동성애가 마치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이후 주제가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으로 바뀌고 문제되는 문구가 삭제되었지만 그로 인해 토론이 다루고자 하는 쟁점 자체가 모호해지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패널 구성 역시 문제였다. 반대의견의 패널로 출연한 조영길 변호사는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 전문위원으로 ‘동성애 독재’, ‘동성애 성행위는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행위’ 등 노골적으로 혐오를 선동해 온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패널로 출연한 이언주 의원은 최근 난민반대집회에 참석하여 난민혐오를 선동하는 등, 혐오를 이용해 자신의 지지 세력을 모아온 인물이다. 공공연히 혐오를 선동하고 차별을 조장해 온 두 인물을 패널로 출연시킨 KBS는 정말로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금지법에 대해 상호존중의 토론장을 열 의지가 있었는가.
이처럼 기획, 패널, 쟁점부터가 혐오가 깔려 있던 만큼 이 날의 방송에서 토론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혐오의 전시는 예견된 것이었다.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 시민 참여자를 포함 다수의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음에도 조영길, 이언주 두 패널은 끊임없이 동성애는 비정상, 부도덕한 것이라는 혐오표현을 쏟아냈고, 이미 언론을 통해 검증이 완료된 가짜뉴스를 들어 사실을 왜곡시켰다. 그럼에도 사회자는 이에 대한 제지 없이 오히려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짐으로써 혐오를 방치하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인권을 신장하며 민주주의 기본질서의 정착에 앞장선다”는 KBS 방송편성규약,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집단의 이익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는 방송법의 정신이 완전히 실종된 이 날의 방송 앞에서, 제작진을 비롯한 방송책임자들은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방송 말미 사회자는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어떤 입장으로 토론이 진행될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현재 이루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시간이 이를 해결해줄 리가 없다. KBS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방송에서 어떠한 차별과 혐오도 없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차별금지 가이드라인 제정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으로 이 날의 토론은 역설적으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공중파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논하는데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공공연하게 존엄성을 침해하는 폭력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야 했던 것은,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 소수자들이 겪는 현실이기도 하다. 존재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의견이라는 미명 아래 당당히 이루어지고 그 앞에서 소수자들은 토론의 소재로만 활용되는 장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하고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차별과 혐오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모두가 평등하게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러한 사회의 기초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2018. 10. 28.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방송 보는 내내 황당함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동성애 혐오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난무하는 혐오발언에 대한 대책도 준비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