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칼럼] 차별금지법안과 법무부의 직무유기-한상희교수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공감칼럼 : 2011년 1월 13일

 






 

차별은 폭력이다. 나와는 다른 모습,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별개의 집단으로 분류하고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 버리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정면에서 부정하거나 폄하한다는 점에서 고문이나 학살에 다름 아닌 폭력이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사회생활로부터 배제하거나 굴종을 강요하는 것은 그들의 자율성과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노예제에 상응하는 폭력이 된다.


최근 일부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동성애반대운동은 이 점에서 폭력이다. 그것은 단순히 어떠한 사회변화 혹은 사회제도의 도입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동성애를 사회적 악으로 치환하고 동성애자들을 교정과 치료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한편, 에이즈에 관한 허위정보로써 동성애자들을 소수자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를 일종의 사회적 게토(Ghetto)로 선별해 내고자 한다. 이는 나와 다른 어떤 모습이나 행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수준을 넘어,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다른 사람들을 이 사회로부터 배제하거나 고립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종교인들의 행위는 혐오발언의 전형에 속한다. 동성애자들을 폄하하고 겁박할 뿐 아니라 그들을 사회적으로 분류해내어 고립시키고 배제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인권에 의해 보호되는 권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자체를 침해하는 가장 본질적 의미에서의 범죄행위이다. 이 종교인들의 행위는 겉으로는 종교적 신념이나 교리에 입각한 듯이 보이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성적 지향에 대한 편견이나 왜곡된 인식을 신념과 교리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수준을 넘어 차별의 대상으로 삼아 사회로부터 배제할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변별되는 순간이 바로 이 때이다. 종교적 신념이 어떠하든 법이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 혹은 폭력으로 전이될 때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그것은 더 이상 신념이나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행위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피해 또는 그 위험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안)은 이 지점에 존재한다. 그 어떠한 이유에서건 일정한 속성을 가진 사람들을 그 속성만으로 분류하고 그들을 일종의 사회적 게토로 몰아넣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반사회적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더 이상 차별이라는 폭력이 현재화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반의지가 여기서 현현(顯現)하고 있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안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규정된 차별금지사유에다 고용형태와 같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안들을 추가하여 20개의 차별금지사유를 열거하면서 모든 영역에서의 배려와 박애의 정신이 충만한, 통합된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음은 천부적인 인권을 최대한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 헌법의 이념 자체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 법안의 소관부서인 법무부는 정반대의 길을 향해 달려간다. 시민단체 등에서 촉발된 차별금지법안을 2007년 10월 국회에 발의하면서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경력, 성적 지향, 학력(學歷), 병력(病歷)과 같은 7개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하여 분노의 대상이 되더니만 그것마저도 미온적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심의조차도 없이 폐기되도록 방임하였다. 그리고 이런 직무유기성 행태로 인해 2009년 11월 유엔의 사회권위원회로부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았으며, 차별금지법안 내에 국적과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사유로 삽입하지 않은 점 등에 대해 유감성 권고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며칠 전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 종교성 단체는 이 법안의 처리부서인 법무부 인권국의 담당자로부터 현 국회의 임기 중에는 차별금지법안을 다루지 않겠다는 전화 약속을 받았다는 취지의 발표를 하였다. 그동안 차별금지법안의 입법절차를 조속하고도 실효적으로 진행하라는 시민사회의 거센 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무부 인권국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부종교단체들의 주장을 이유로 계속 이 법안의 입법절차회부를 미루어 왔다. 그런 터에 그 종교성 단체의 주장 혹은 전언처럼 법무부가 더 이상 이 법안의 처리를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면, 이제 법무부 인권국은 직무유기의 죄악을 범하겠다는 언명을 공식화 한 셈이 되어 버린다.



대저 현대사회에 있어 민주적 의사표명과 타자에 대한 인권억압 내지는 폭력은 엄연히 구분된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반대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의사표명이겠으나, 그를 빌미로 일정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려는 것은 폭력이자 그들의 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 된다. 법무부 인권국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의사표명이며 무엇이 인권침해적 폭력인지를 분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후자의 폭력으로부터 사회적 소수자집단의 인권을 옹호해 내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이자 직무상의 의무임을 깨달아야 한다.



인권국은 사회내의 다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바라보는 동시에 소수자의 인권이 그 다수자로부터 어떻게 침해되는지 또한 바라보아야 하며, 만약 소수자의 인권과 다수자의 의사가 충돌하는 경우 후자로부터 전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 법무부 인권국이 일반적인 정치기관이나 행정부서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다수자의 폭력이라는 어설픈 민주주의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 해악으로부터 소수자의 기본적 권리들을 지켜내는 인권의 수호자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별금지법안의 경우에도 이런 원리는 의연히 적용된다. 여기서의 법무부 인권국의 임무는 사회내의 행위자들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런 발언들 속에서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어떻게 규정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분간해 내고 그 다수자들의 폭력으로부터 이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창의적으로 사고해 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달린다. 법무부 인권국이 차별금지법안의 입법추진을 포기 혹은 유예하였다는 뉴스가 진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법무부 인권국은 인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인들을 향한 정치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그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혐오발언을 일삼는 다수자의 폭력에 영합하겠다는, 철저한 권력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와중에 법무부 인권국은 그 종교인들와 더불어 또 하나의 인권침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 인권국이 차별금지법안을 처리하지 않겠다는 언명을 하였다면, 이는 또 다른 헌법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우리 헌법은 정교의 분리를 커다란 헌법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만약 법무부 인권국이 특정 종교인들의 동성애반대주장(이의 근원은 물론 성경이다)에 봉착하여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포기하거나 유예한다면 그것은 사회내의 특정분파의 주장에 손을 들어 주는 격이 되고, 이는 다시 특정 종교의 교리에 국가의지를 복속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환원되어 버린다.


특정 종교 단체들이 그 종교의 특정한 교리를 이유로 반대하는 입법안에 대하여 바로 그런 반대가 있기 때문에 입법추진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하는 것은, 문제를 조금만 단순화시키자면 그 교리 자체를 법무부 인권국의 정책결정의 근거로 삼은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법무부 인권국은 이 결정이 내려진 다른 근거나 논거는 전혀 제시한 바 없다. 오히려 그런 결정조차도 특정한 종교 단체에 전화통화로 직접 알려주었다고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결국, 헌법이 그토록 명확히 금지하고 있는 정교유착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법무부의 인권담당부서가 직접 실행하고 있는 셈이 된다. 정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약자들의 인권을 옹호해야 할 법무부 인권국이, 최근 한국 정치의 가장 핵심부에 존재하는 종교 집단의 이해관계에 영합하여 그 약자들의 인권을 저버리는 전도된 현실이 목하(目下) 가공(加功)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차별은 폭력이다. 정의와 평화가 시대정신을 이룬다면 차별은 그 어떠한 근거에서 이루어지든 관계없이 최대의 사회악이 된다. 그것이 존재하는 한 자유와 평등과 박애라는 근대정신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다른 인간’으로 규정하고 자신과는 다른 삶을 강요하는 현실은 이 시대의 야만이다. 하루빨리 떨쳐야 하는 헌법의 적인 것이다.



 




글_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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