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국회에 시대적 소명을 받아 조속히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며 입법 과정에서 반드시 담아야 하는 원칙과 내용, 그리고 사회적으로 충분하게 알려지고 논의되어야 하는 법 제정의 의의에 관해 세 가지 내용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짚고자 합니다.

첫째,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관한 통합적인 정의와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법이어야 합니다.

발의된 장혜영의원안과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 시안 모두 직접차별을 비롯하여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 표시・조장 광고를 차별로 보고 차별에 관한 폭넓은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개념들은 국내외 차별금지법제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어온 중요한 개념들입니다. 국회는 이들 개념을 모두 담아 ‘차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고, 차별을 겪는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입법 과정에서 간접차별 개념이 갖는 중요성, 차별적 괴롭힘이 도입되는 의의, 성희롱이 차별로서 적극적으로 규율되는 취지에 관하여 사회적 논의가 풍부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복합차별 규정과 문제의식도 강조되어야 합니다. 여러 차별사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게 되는 현실의 차별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복합차별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차별금지법제의 중요한 문제의식이기 때문이다.

둘째, 차별금지법은 차별이 발생하기 전에 차별을 예방하고, 차별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방법을 담아야 합니다.

차별피해자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으며,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는 차별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나 힘을 가지고 있는 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차별피해자가 실제로 진정이나 소를 제기하여 차별을 다툴 수 있으려면 차별피해자의 불리한 위치를 보완하고 효과적인 구제수단을 제공해주기 위한 조항들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 내지 시정명령제도, 차별피해자에 대한 소송지원제도, 차별의 피해를 실효성 있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법원이 차별중지, 재발방지 등을 명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입증책임의 전환 또는 배분, 악의적 차별에 대한 징벌적(가중적) 손해배상 등의 특례조항이 담겨야 합니다. 그래야만 차별을 실효성 있게 구제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개별 차별 행위의 시정뿐만 아니라 차별에 관한 예방 조치,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차별 개선 정책 조항들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평등에 관한 국가의 책무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평등권을 보장할 국가의 책무와 내용을 일반적으로 확인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차별금지법은 국가에게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책무가 있음을 선언하고, 국가기관이 평등 증진을 주요 과제로 인식하면서 장기적인 목표 아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여야 합니다. 2007년에서 2020년에 이르는 동안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은 ‘사회적 논란’, ‘사회적 합의’라는 명목 하에 사회구성원들을 끊임없이 줄 세우고 배제함으로써 평등의 가치를 오히려 훼손해온 과정이었습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소위 ‘사회적 논란’이 있다고 지목되어왔던 사유들을 법에 명확히 명시함으로써 보편적인 차별금지원칙을 선언하고 ‘모든 이의 평등한 존엄’이라는 대원칙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에서부터 시작하여 평등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사회의 모든 제도와 정책을 근본부터 점검하겠다는 국가와 사회의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평등을 향한 중요한 이정표, 실질적 평등 실현을 위한 국가와 사회의 책무와 역할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만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불평등을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없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과 평등에 관한 사회적 대화와 탐구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대화가 공정하게 오갈 수 있게 하는 규칙을 만드는 법이며, 따라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함으로서 우리는 모든 이의 존엄과 평등을 향한 시작선에 비로소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서 밝힌 세 가지 의미를 충분히 담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모든 국회의원에게 촉구합니다. 우리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존엄과 평등에 관한 원칙이 다시 서는 사회, 우리 안의 차별과 불평등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시정해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사회를 만들 것을 국회에 촉구합니다.

(2020년 7월 2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